수리재 이야기
떨켜
2008. 6. 10. 17:19
지금 막 남서쪽으로 기운 햇살에 성긴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며
땅에 닿기도 전에 흔적없이 사라지던 그 때가
우리가 수리재에 도착하던 날이었다.
어느새 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여가 흘러
1월말이 되었을 즈음 두 언니와 함께 언니의 별장에 들렀다.
깊은 겨울 잠에 빠져 꿈쩍도 않는 마당가 늙은 밤나무는
찬 바람에 이리저리 서성대며 휩쓸리는 떨어진 잎사귀조차 귀찮다는 듯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내 나이도 훨씬 더 먹었다는 밤나무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한 바퀴 집 주변을 돌아보고 제일 먼저 할 일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난방이야 보일러가 있지만 뜨뜻한 구들장에 지져대는 맛에 비길데가 있으랴!
작은언니가 불쏘시개로 장작에 불을 지피려 애쓰는 동안
큰언니와 나는 옆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마당가에서 보았을 땐 벌목꾼들이 쓰러뜨려 놓은 잣나무며 잡목들이
제법 만만하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깐 볼게 아니었다.
먼지를 마셔대고 나뭇가지에 긁혀대며 낑낑 끌고 와 부려놓고 보니
애개 이렇게 초라한 것이었다니 .........
서너번 작은언니까지 합세하여 끌어다 놓았을 때야
한 번 쯤 따뜻이 아궁이를 뎁힐만 하였다.
장작불은 불이 잘 붙어 활활 타오르고 대충 방도 훔쳐놓았을 때라
별 할일이 없어진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언니네가 여기에 별장을 마련한 것도 벌써 10여년이 되었지만
뒤에 떡 버티고 있는 저 산을 오르기는커녕 이름도 모르고 있는게 답답하여
'내 오늘은 꼭 저 산 꼭대기 멋진 소나무를 만져 보고 오리라' 마음먹고
두 언니한테 올라가자고 하였다.
처음엔 머슥거리며 뭐하러 가냐고 하던 언니들도 내 성화에 운동화 끈을
꽉 조이고 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산 중턱 어느만큼까지는 전원 주택지였기에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위로 올라가니
흙길이다. 그런데 방금 공사를 끝낸 듯 새로 닦은 길이 있고
나무가 베어져 가지런히 쌓여져 있고
산 비탈은 제 살의 벌건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눈으로 재보아 조금만 더 가면 꼭대기에 이를 수 있을만한 곳까지
산을 파헤쳐 놓은 것이 보였다.
무엇때문 일까? 왜 이렇게 나무를 베어냈을까?
나는 없어진 길을 찾아 더 올라가자고 하였지만 두 언니는 거기까지도 만만치 않다고
다음에 가자고 하여 내려오는데 파헤쳐진 곳에서 칡뿌리를 발견하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기에 잘려진 칡뿌리가 보인다. 이게 웬 떡이냐 싶게
자매들은 칡뿌리를 주워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나는 자꾸 뒤돌아보며
산꼭대기에 무엇을 두고온 양 아쉬워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