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농사일기

18 엄마의 장독대

떨켜 2008. 10. 2. 18:43

 

 

 

 

 

 
 아이구, 어깨, 팔이야.

꼬박 하루 걸려 고추장을 담았다.

물을 끓여서 엿기름 물 내고 찹쌀가루 삭혀 졸인 물에

메줏가루와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항아리에 넣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들었다.

 

마침 노모의 전화가 왔다.

고추장 담고 있는 중이라고 했더니, 무척이나 대견해 하셨다.

몇 가지 더 알려주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그래 자주 여쭤봐야지. 난 만드는 법이 적힌 종이를 열 번도 넘게

읽어가며 그람 수 달아가며 하지만 그분은 오로지 자신의 경험으로

손과 눈의 어림으로 하셨을 테지. 그래도 단 한 번도 잘못되지 않았을 거야.

연세 많으신 엄마의 방법들을 들을 기회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갑자기 마음을 조급하게 하였다.

 

엄마의 된장 고추장들은 왜 그리 맛있었을까?

지금은 고추장에 엿을 넣지만 엄마는 엿기름만으로 단맛을 내셨을 거야.

겉보리 싹을 내어 말리던 멍석 위로 찾아온 맑은 바람과 햇볕이

그렇게 담백한 맛을 내게 했던 것은 아닐까?

전에는 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먹거리였으므로

아마 지금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정성과 소중한 마음으로

장만하셨기 때문이기도 할 거야.

 

엄마의 허리에 늘 매어있던

하얀 앞치마와 머릿수건이 가슴 아련하게 그립다.

나지막한 북쪽 담장 아래 돌 받침으로 약간 높이 돋워놓았던

하루 종일 햇살이 머물던 장독대 근처에는

봄부터 각종 꽃들이 다투어 피어있기도 했다.

이맘 때 서리가 올 무렵이면

아버지는 겨울 동안 얼어 죽지 않게 꽃나무들을 캐서 화분에 옮겨

방안에 들여놓으셨는데 그 중에서 제일 귀하게 여긴게

칸나였다. 붉은 선홍빛 칸나를 좋아하신 아버지에 비해

엄마는 국화와 과꽃, 봉숭아들을 아주 잘 키우셔서

누구나 감탄하게 만들었다.

왜 엄마들은 모든 것을 잘하셨을까?

우리는 어째서 엄마가 해주신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일까?

우리의 입맛 속에 엄마가 들어있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입맛 속에는 엄마 대신 식당과 패스트푸드가

들어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 엄마의 장독대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