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농사일기

19 김장

떨켜 2008. 10. 2. 18:47

 
 
 
주말부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기에 무를 뽑았다.

총각무는 제법 여물어 보기에 참 좋다.

뽑다가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돌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성호를 그었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주시다니.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주신 이 거룩한 행복은

그분께 다 맡기고 내어놓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봄 내, 여름 내, 가으내, 주실 것을 다 주신 다음에

겨울이 오게 하셨으니 이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조차

처음 느끼는 것인 양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총각김치를 담으니, 세 통이나 되었다.

제법 맛이 든 것 같아 한 통은 가장 기쁘게 받으실 분께 보냈다.

삶은 무청 시래기를 함께 드렸더니 감동 받으셨다고 한다.

별 것도 아닌 시래기와 같은 내 맘을 아는 분이다 싶다. 

그분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일주일 후, 배추를 뽑았다.

속이 잘 찬 게 대여섯 통, 나머지는 별로 속이 없어 그리 잘 지은 농사

는 아니지 싶다.

잘 된 배추를 보면 장미 같다. 겹겹이 싸여 돌아가는 이파리가

어찌 꽃잎만 못하랴! 배추의 고소한 향기 또한 얼마나 매력적인지.......

올해처럼 배추 값이 금값일 땐 주말농장 할 만 하다고 그런다.

그러나 누가 앞일을 알고 하나? 이게 좋아야 하는 거지.

올해도 값만 좋지 실제로

생산자들께는 큰 소득도 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추 심고 나서 벌써 밭떼기로 넘겼기 때문이란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지만

유통 단계가 변하지 않는 한 생산자도 소비자도

피해자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추 값 폭락으로 밭 갈아엎은 게 작년,

올해는 김장도 담지 못하는 가정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다.

모두 다 같이 맘 편히 살기는 어려운 것일까?

 

비는 와서 흙은 달라붙고 차에 싣고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 절인 배추 편히 받을 수 있는 시절에

왜 이리도 고생스런 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올 농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첫 삽을 뜰 때부터 배추를 가져오기까지 내 힘으로

지어낸 농사였다. 심고 거두는 것은 내 힘으로였다. 그것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