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나목단상

떨켜 2008. 12. 22. 18:48

요즘 길을 걷다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나무들이다. 아니 나목들이다.

잎새 한 잎없이 홀로 겨울을 마주하고 선

나목들의 아름다움에 심취되기 일쑤이다.

척박한 도시의 대지를 굳건히 딛고 서서

온 힘을 다해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

당당하게 다 내어놓고 서서

찬바람을,

눈보라를

받아들여서 이겨내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그마한 시련에도 비켜서고 싶어하는

나의 연약함이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나무들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지 그 모습이 흥미롭다.

잎눈이 불쑥불쑥 나와 있는 게

꼭 꼬마전구를 달아놓은 것 같아

겨울을 축제 분위기로 지내는 은행나무는

스위치를 누르면 금방이라도

반짝반짝 불이 들어올 것 같다.

또 목련은 냇가의 버들강아지 같은 포근한 꽃눈을 달고 있어서

보기만 하여도 따스한 느낌이 든다.

마로니에 나무의 가지는

굵은 크레파스로 쭉쭉 그어 놓은 듯한 선이

남성스럽다.

그에 비해 느티나무는 여성스럽다.

느티나무는 잎사귀가 많은 여름철에도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지만

나목의 모습에서도 단아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준다.

큰 줄기 끝에 작은 가지들의

섬세하고 가녀린 모양은 엄마의 스티치인가,

모성적인 느낌마져 있어서 더 아름답다.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는 채로 봄을 맞이하면

그 해에는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줄 것은 다 내어주는 것,

버릴 것을 다 버릴 줄 아는 것.

잎새 한 잎없이 말라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로는 열심히 수액을 빨아올리는 나무들처럼,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나목들처럼

봄을 맞이하고 싶다.

새로운 봄을 위해

나를 비워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