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리 동백정에 도착하니 바람이 어찌나 차고 거센지 남편 오리털잠바가 아니었으면 얼어죽을 날씨였다. 동백숲은 500년 넘은 동백이 80여 그루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3년 전 12월에 왔을 때는 동백이 지고 있던 때라 떨어진 꽃잎이 더 아름답다고 느꼈었는데 매표소에서 물어보니 지금은 날씨가 추워 못 피고 있다고 하였다. 3월말께나 만개할 것 같다고 하였다. 과연 동백정에 올라가니 바람이 더욱 거세게 느껴져 꽃을 보기엔 무리였다. 시린 손을 불어가며 사진을 찍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여기 하나 피었다."라며 남편이 찾아 주었다.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서해의 바닷빛이 힘차고 아름답다. 어디선가 끝없이 달려와 해안가에 부딪고 다시 사라질 곳을 찾아 떠나는 파도의 포말은 삶의 부질없음을 대변해 주는 듯 하였다.
동백숲을 지나면 쭉쭉 뻗은 모습의 해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늠름하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해송들에게 꼭 안아주며 인사를 하였다. 해송의 두꺼운 표피에 얼굴을 대보니 놀랍게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래, 이것이 살아있음이로구나. 죽지 않았기에 속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있었기에 땅속 깊은 곳의 정기를 빨아올리는 숨결이 있었기에, 이것이 살아있음이로구나.'
서로를 의지해가며 오랜 세월 500년을 함께해 온 동백나무
따뜻한 햇볕이 이들의 꽃망울을 터뜨리리라.남편의 발견! ! 한송이라도 봤으니 온 보람 있네. 희소성으로 더욱 귀한 개화
홍원항에 들리니 역시 넘 추워 사람들도 별로 없다. 바람이 거세니 조업을 못한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는 해산물도 시원치 않다. 도다리회를 떠가지고 숙소로 들어왔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안 좋은 예민함이 있는 내가 휴양림에 오면 푹 잘 수 있어서 좋다. 아마도 그곳까지 오는 고단함과 숲속의 맑은 공기와 아늑한 공간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반자와 함께 해서가 아닐까 싶다.
아침, 새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어찌나 맑고 아름다운 음색인지 창을 여니 새는 안 보이고 숙소 앞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물오리 몇 마리가 아침 산책을 하는 호수를 뒤로 하고 산에 올랐다.
숙소 앞 작은 호수 물빛이 신비롭다
희리산은 능선으로 올라가는 경사가 급할 뿐이고 능선으로 이어진 산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은 가슴속 잡념까지 싸악 쓸어가버리고 높은데서 내려다보는 경치 구경이 일품이다. 능선에서 바라보니 멀리 장항 제련소의 높은 굴뚝이 들어오고, 평야지대와 서해가 펼쳐진 풍경들이 풍요롭게 보여졌다. 남쪽으로는 금강 하구가 있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산길따라 진달래가 많았는데 피려면 또한 바닷바람땜에 한두 달정도 걸릴 것 같다고 산행 온 지역 주민이 알려준다.
서해가 손에 잡힐 듯하다능선이 동네 뒷산길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희리산 정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남편의 sos로 숙소로 내려왔다. 아쉬우면 혼자라도 정상까지 갔다오라는 남편의 말에 잠시 생각해보니 "좋을 때나 힘들때나, 아플때나 건강할 때나," 하며 맹세했던 결혼서약이 생각나 "함께" 하였다. ㅋㅋ 서천 특화시장에 들러 아이들 줄 저녁거리로 자연산 홍합과 젓갈을 사 가지고 홈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