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산행) 1 구름산

떨켜 2013. 12. 26. 19:37

해 넘어 간다고 만났던 친구가 북한산행 같이 하자고 몇 번이나 전화를 하였다.
처음엔 남편과 노느라고 두 번째는 스틱을 못찾아서 친구와의 산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거의 평지 수준의 뒷산만 걸은 터라 큰산행은 겁도 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큰 맘으로 광명시에 있는 구름산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친구들 따라 가려면 연습을 해야 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광명시 보건소 앞에 내리니 산악회 사람들이 초입에서 준비 체조를 하고 있다.
스틱을 늘여서 맞추고 숨을 크게 쉬고 한 걸음을 내딛었다.
구름산은 처음부터 오르막이 심하다. 게다가 떨어진 갈참나무잎에 가려진 얼음이 군데군데 보인다.
조심하며 올라갔다. 산길에는 산 근처 주민인 듯 별 장비 없이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구름산은 세모꼴을 두 개 나란히 세워놓은 듯한 형상이다. 하나의 세모꼴을 넘고 또 하나의 세모꼴 정점에
올라야 정상이다. 적어도 나에겐 급경사와 급내리막이다. 그래도 전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산이라  낯설지 않았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긴 해도 금방 비나 눈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가리대 쉼터 부근에 다다라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 눈발이 하나 둘 내렸다.
나는 잠시 30분 정도 더 가면 정상인데 눈이 와서 어떡하나 망설였다.
그런데 남자분 셋이서 우회길로 간다. 따라갔다. 점점 눈발이 굵어지고 잦아졌다. 둘러보니 사방이 캄캄하다. 새미 약수터까지 갔을 때 두려움이 생겼다. 오늘은 여기까지야. 그만 돌아가자. 유턴을 하여 다시 온 길로 되짚어 가는데 눈발은 더욱 거세져서 바람을 안고 가는 꼴이 되었다. 천지간에 아무도 없고 산허리를 감은 좁은 길도 눈 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안가지고 왔다는 사실은 나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게 했다.

 

정신없이 뛰다시피 걷고 있는데 길 위에 발자국이 있다. 눈에 덮히지 않은 걸로 보아 금방 지나간 것 같았다.

십 분 쯤 더 가니 앞에 붉은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내가 그 분을 따라잡자 그 분이 돌아다 보셨다. 그러더니 "이런 산 길을 혼자 걸으면 뒤에서 누가 나를 후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자꾸 돌아보게 되요. 그런데."  일단 여자라서 안심이라는 뉘앙스다.

그러나 두려운 게 사람이지만 또 반가운게 사람이었다. 이제 동행이 생겨 안심이 되었다.

"나는 약수터까지만 갔다오는 사람입니다. 어디까지 갔어요?"

어르신이었다.

"저는 정상까지 가려고 했는데 눈 땜에 약수터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어찌나 빨리 뛰어왔는지 이미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쉼터까지 오니 정자에는 아까 체조를 하던 무리들이 쉬고 있어 왁자지껄 하였다.

아이젠을 신었다.

눈도 이젠 조금 성글어졌다. 눈을 들어 산천을 보니 넘 아름답다. 20분 사이에 온 세상이 설경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젠을 신으니 미끄럽지도 않다. 대신 나뭇잎이  아이젠 발톱에 끼어 자꾸 떡이 되었다. 자주 빼줘야 했다.

무사히 보건소 앞까지 내려왔다. 그 곳은 비가 온 듯 길이 질펀하다.

 

퇴근한 남편한테 그 무용담을 말했더니

"어이구. 큰일 날 뻔 했네. 절대로 혼자 가지마. 왜 무모한 짓을 했어. 내가 같이 안 간다고 시위한 거야?"

남편은 내려 올 산을 왜 힘들게 올라가는 지를 아직도 모른다고 했다.

"시위 아니고 그냥 혼자 연습하려고 한건데......"

나는 위험한 장난을 하다 혼이 난 아이가 되어 입을 삐죽 내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