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여행기1
황금연휴에다가 날씨도 좋은 5월에 우리는 북해도로 여행을 갔다.
일본 열도 중 맨 북쪽에 있는 섬, 치토세 공항에 내릴 무렵은 활주로에 불빛이 환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저물 무렵이었다.
낮은 야산 위 하늘을 물들인 석양 때문인지 북해도의 첫 인상은 차분하고도 부드러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봤을 때 설산이 있었는데 둘러봐도 보이질 않는다. 수속하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땐 이미 9시가 다 되었다.
소고기 샤브샤브와 대게 요리. 안주가 좋으니 술 생각이 간절한 남편은 벌써 서빙하는 여자를 부른다. 결국 사케 작은 병을 시켰는데 나한테 한 잔 따라주고 자기 잔에 따르니 없다. 여행가방 속의 참이슬이 울고 있을 게다
또 한 병 시켜 마셨어도 성에 안 차는 사케. 또 한 병 시키고 싶지만 이젠 내 눈치를 본다. 벌써 소주로 치면 한 박스 값을 해치웠으니, 거기다가 주변 눈에는 벌써 주당으로 찍혔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1박으로 묵을 곳은 도큐호텔이다. 불이 환히 켜진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창이 있다. 내일 입을 옷을
꺼내어 놓고 가방을 정리한 다음 차를 한 잔씩 마셨다. 그리고 자려는 데 불을 끄는 스위치가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아, 저건 가 봐."
침대 옆에 박스가 있었다. 내가 다가가 자세히 보려고 하니 남편왈
"오디오 박슨데?"
둘 다 안경을 안쓰고 어림짐작으로 단정해 버리고 나니, 스위치는 찾을 길이 없다.
어느새 남편은 코를 골고 있고, 잠자리 바뀌면 잠덧을 하는 나는 불까지 켜져 있으니 누워 있는 것도 괴롭다. 다시 일어나서 벽에 걸린 그림 뒤와 냉장고 근처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 안 계시다. 하는 수 없이 열쇠박스에 있는 열쇠를 빼버렸다. 그제서야 밀려오는 어둠을 덮고 잠 좀 잘 수 있으려나 싶었다.
그러나 한 시쯤 되자 이제 추워서 못 자겠다. 열쇠를 뺐으니 빈방인줄 알고 난방이 자동으로 꺼진 것이었다. "아이고, 어찌하나." 혼자 잘 자고 있는 남편이 미울 지경이다. 세 시쯤 되자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자괴감 게이지까지 올라가니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가 해결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프론트에 전화를 해서 상황 설명을 한다. 그러나 어떤 언어로 소통 할 것인가. 일어, 영어, 다 신통치 않다. 이럴 땐 바디랭귀지라는 언어가 만국공통어렸다. 나는 일본 잠옷 벗어던지고 내 옷으로 갈아입었다.
새벽 세 시의 호텔은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였다. 프론트에는 젊은 남자 둘이 서 있다가 나를 보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아주 짧은 영어로 "플리즈, 웨어 이즈 라이트 온 오프?"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 직원이 자기가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나를 앞장 세워 우리 방에 들어간 직원이 가리킨 곳은 우리가 오디오 박스라고 생각한 그것이었다.
"아, ~~~~ 띵!!!!!!"
직원이 나가고 나서 안경을 쓰고 자세히 보니 라이트 온 오프가 영어로 쓰여 있었다.
"에휴,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체는. 남편 뭐야욧?"
나 혼자 씩씩거리며 노려보아도 그러거나 말거나 넓은 침대에서 축구를 하는 것인지 뒹굴면서 잘도 자는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