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을 찾아서

14 - 문경 대야산 휴양림

떨켜 2019. 11. 21. 12:49

가을은 우리보다 먼저 문경까지 내려와 있었다. 포근한 카펫의 촉감이 느껴질 듯 산은 파스텔빛으로 물들어 있고, 들녘은 한 해의 쉼표인 벼의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문경에 가까워질수록 논밭을 메워 만든 작은 과수원이 많이 보였다. 작물은 주로 사과였는데, 어찌나 빨갛게 많이 달려 있는지 먼데서 보면 꽃이 만개한 듯이 보였다. 기후의 영향으로 사과의 주산지가 북쪽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우리가 맨 먼저 도착한 곳은 문경새재였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자면 힘들게 넘어야 하는 곳이 조령이었다. 전국을 누비는 장사꾼들과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 오갔던 곳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새재에 숨겨져 있을까. 

개보수중인 제1관문이 멀리 보인다. 새재 입구의 넓은 잔디밭
맨발로 걸어도 좋은 고운 길

길은 잘 정비되어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보인다. 곳곳에 기념이 될 만한 이정표가 있고 재현해 놓은 주막과 같은 건물들이 있다. 산을 비춘 계곡물은 파르스름하니 아름답기 그지없고, 흐르는 물 따라 제 몸을 맡긴 낙엽도 곱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을 길가 주막

 

                                                 

용추폭포

 

마당바위는 길에서 조금 들어간 숲 속에 있다. 그 옛날 첩첩산골을 걷는 나그네 쉬어가라고 널찍하고 평평하다. 자연이 위로하는 방식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산불됴심

                                 길가에 특이한 글씨를 새긴 바위가 있어 가까이 가 보니, “산불됴심이라고 쓰여 있다. ‘조심됴심이라고 한 것을 보아 적어도 19세기 이전에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어느 만치 올라가니 새삼스레 폭포가 보인다.

수줍은 새색시 같은 조곡폭포

                                               높이를 알 수 없는 산비탈을 타고 내리는 면사포를 드리운 새색시 같은 조곡폭포이다. 설악의 비룡폭포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폭포라서인지 참 반갑다. 2관문까지 갔다가 되돌아 왔다.

새재를 나와서 길 가에서 파는 할머니 사과를 사고, 정육점에서 문경약돌한우 등심도 샀다.

대야산휴양림은 가은 쪽으로 30분 정도 달려간 그곳에 있었다.

 

대야산휴양림 숙소

잘 자고,아침에는 둔덕산에 올랐다. 경사가 사뭇 급하고 자갈이 많아서 걷기에 힘들었다. 그래도 산 정상에 가까운 능선까지 올라 먼 데 높은 산들을 바라보는 맛은 참 좋다. 무엇도 거치지 않은 바람을 맨 먼저 맛보는 그런 신선하고 신성한 느낌이 있다. 겹겹이 어깨동무를 하고 내 안에 너 있고, 네 곁에 내가 있다고 묵언의 메시지를 주는 산들을 마주하니, 독불장군처럼 혼자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왜 산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줄기였다가 골골이 품어주는 엄마품이었다가 산은 그렇게도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있는데, 강퍅한 내 마음이 좁디좁다는 것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다.

 

 

휴양림을 나와 가은 아자개장터로 놀러 갔다. 아자개는 견훤의 아버지이고 신라 왕손이다. 이 지역에서 군대를 일으켜 장군이 되어 살았다고 한다. 장은 동네 사람들 몇몇 앉아 있는 정도로 작았다. 마늘과 들깨를 샀다. 마늘 파는 할머니한테 들깨도 파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다 팔았다고 한다. 어찌어찌해서 들깨를 샀는데 장을 나오는 길에 마늘할머니가 들깨 자루를 보고 얼마에 샀냐고 물었다. 아마도 할머니가 받은 들깨 값보다 비싼 듯싶어 속이 아린 표정이다. 이런 모습이 재미있다. 시골 할머니라 그런지 포커페이스를 못하는 것 같다. 한동안 할머니 심난하시겠다.

아자개장을 나와 속리산으로 향하는 길 첩첩산골이라는 말 그대로 산을 넘어간다. 길가 묵은 밭에서 냉이를 뜯었다.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산밭에서 남편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용할 양식을 찾았다. 한 주먹 정도 캐니, 그 정도면 됐다고 남편이 서둘러 밭을 나갔다. 나도 따라 나가다가 물도랑 근처에 미나리가 무더기로 자라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캐지는 않았다. 냉이로도 충분하기에. 이렇듯 시골에서는 부지런하면 나물이나 채소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다.

 

산골은 적막하고 감나무에는 풍요가 가득 열려 있고, 산길은 한가롭다. 그리고 계절이 지나가는 파란빛 하늘은 고요하고도 깊었다.

 2019.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