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켜 2020. 4. 15. 13:06

역사 제3

 

1~38장 캄비세스의 이집트 원정....................................................................................................................317

 

1~3장 캄비세스의 이집트 원정 이유

이 아마시스에 대해 키로스의 아들 캄비세스가 군사 원정에 나섰다. 그가 군사 원정에 나선 이유는 이렇다. 예전에 키로스가 아마시스에게 아이깁토스에서 가장 훌륭한 안과 의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 일로 페르시스로 가게 된 의사가 있었다. 가족과 헤어져 타국으로 간 의사는 자신을 보낸 아마시스에게 앙심을 품고 캄비세스를 부추겨 아마시스의 딸을 달라고 요청하게 만들었다. 아마시스는 딸을 보내면 캄비세스의 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라 전왕인 아프리에스의 딸인 니테티스를 자신의 딸이라 속여 캄비세스에게 보냈다가 발각이 되었다. 이 일로 캄비세스는 아이깁토스에게 격노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상은 페르시스인들의 이야기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키로스의 부인인 카산다네가 니테티스를 질투하여 왕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탄하자 어린아이였던 캄비세스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호언한 적이 있었는데 캄비세스가 왕이 되자 아이깁토스 원정을 시행했다고 한다.

 

4~16장 이집트 정복과 캄비세스의 만행

그런데 마침 이 원정에 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아마시스 휘하의 용병 중에 용감한 전사 중 한 명인 파네스가 아이깁토스에서 달아나 캄비세스에게로 도망을 쳤다. 이렇게 캄비세스는 그에게서 아마시스의 사정을 알게 되고 사막을 안전하게 건너는 방법까지 듣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아라비에인 왕과 안전을 위한 서약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아라비에인들은 서약을 대단히 존중한다.

아마시스의 아들 프삼메니토스는 네일로스 강 하구에서 캄비세스를 기다렸다. 이 때 아마시스는 44년 동안 왕위를 누리고 사망했다. 그는 죽어서 미라로 만들어진 후 자신이 직접 지은 신전 안의 무덤에 안치되었다. 프삼메니토스가 왕이 되었을 때 테바이에 비가 내리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테바이에는 비가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페르시스인들과 대치 중인 아이깁토스인들은 파네스가 적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을 보고 아이깁토스에 남아 있던 그의 자식들의 목을 베어 피를 마시고 전투에 나섰다. 전투는 매우 격렬했지만 결국 아이깁토스인이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의 양측 전사자들의 유골에는 재미있는 점이 있다. 페르시스인들의 머리뼈는 너무 연약해 쉽게 깨지지만 아이깁토스인들의 해골은 매우 단단해서 돌로 쳐도 부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페르시스인들은 어려서부터 티아라라는 모자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햇볕을 쬐지 못해서 약해졌고, 아이깁토스인들은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기 때문에 뼈가 햇볕을 쬐어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 뒤 캄비세스는 힘들이지 않고 아이깁토스인들을 정복했다. 또 아이깁토스의 이웃 나라인 리비에 역시 스스로 항복했으며 키레네인들과 바르케인들도 리비에를 따라 했다. 캄비세스는 멤피스의 요새를 점령하고 난 후 아이깁토스 왕 프삼메니토스를 모욕하려고 그의 정신을 시험해 보았다. 프삼메니토스의 딸을 학대하고 아들이 죽임을 당하러 끌려가는 것을 보게 한 것이다. 프삼메니토스는 그 장면을 보고서도 울부짖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삼메니토스친구 중의 한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캄비세스가 그에게 친척도 아닌 사람에게 반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제 가족의 불행은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을 만큼 너무 큰 것이지만 친구의 수난은 마땅히 울어 줄 만한 것이었다는 대답을 하여 좌중을 숙연하게 했다. 캄비세스는 프삼메니토스를 가련히 여겨서 그의 아들을 처형하지 말고 자신에게 데려오도록 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첫 번째로 처형되었기 때문에 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프삼메니토스는 캄비세스의 보살핌으로 어떤 억압도 받지 않고 지냈다.

페르시스인들은 관례적으로 왕의 아들들을 존중해 왔다. 자신들에게 반란을 일으킨 왕들의 경우에도 그 아들들에게 지배권을 돌려준다. 그렇지만 프삼메니토스는 어떤 해악을 꾸몄다가 응분의 대가를 받고 캄비세스에게 죽임을 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캄비세스는 아마시스의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채찍질을 하며 아마시스를 모욕하게 했고, 나중에는 시신을 불태우라고 했다. 이는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페르시스인들은 불을 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신에게 인간의 시신을 드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한다. 한편 아이깁토스인들은 불을 살아 있는 동물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시신을 동물에게 주는 관습이 전혀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것이다. 시신이 벌레에게 먹히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캄비세스는 양쪽 모두의 관습에 어긋나는 일을 하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17~26장 페르시아의 에티오피아와 암몬 원정 실패

그 후 캄비세스는 세 가지 원정 계획을 세웠는데 즉 카르케돈인, 암몬인, 아이티오피에인에 대한 원정이었다. 아이티오피에에는 첩자를 보내 태양의 식탁이 진짜로 있는지 정탐하라고 했다. 태양의 식탁은 도시 교외의 한 초원에 마련된 식탁이라고 한다. 온갖 익힌 고기가 가득하고 누구든 여기에 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캄비세스는 이크티오파고이인 중에서 아이티오피에에 말을 할 줄 아는 첩자를 보내기 위해 물색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해군에 카르케돈 공격을 위해 항해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포이니케인들은 그 명령을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카르케돈인들과 확고한 서약을 맺은 사이라는 것이다. 캄비세스는 포이니케인들 없이는 전쟁을 하기가 어려웠으므로(페르시스의 해군은 포이니케인들에게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카르케돈을 공략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카르케돈인들은 페르시스인들에게 예속되는 신세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크티오파고이인들이 캄비세스에게 도착하자 온갖 선물과 해야 할 말을 일러주고 아이티오피에인들에게 파견했다. 아이티오피에인들은 시민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진 자가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한다.

이크티오파고이인들이 아이티오피에인들에게 도착하자, 선물을 주며 캄비세스가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아이티오피에 왕은 그들이 첩자로 왔음을 알아채고 첩자를 보낸 왕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한 다음 큰 활을 주며 그것을 쏠 수 있을 때 쳐들어오라고 했다. 아이티오피에 왕은 선물로 가져간 외투와 장식물과 향유와 술에 대해 자세히 묻고는 페르시스 왕이 먹는 음식과 수명에 대해서도 물었다. 페르시스인들의 수명이 80세라고 하자 아이티오피에인들은 대부분 120살까지 산다고 했다. 주로 밀로 된 빵을 먹는 페르시스인들보다 익힌 고기와 우유를 먹는 아이티오피에인들이 더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티오피에에는 더욱 놀라운 것이 있다. 물의 비중이 너무 낮아 아무 것도 뜨지 않고 가라앉는 물로 씻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를 관람한 후 태양의 식탁도 구경했다.

그 후 그들은 마지막으로 아이티오피에인들의 관을 구경했다. 그것들은 히알로스석으로 만들어진다. 시신을 건조시킨 다음 전신에 석고를 바르고 색칠로 단장하여 생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든다. 그것을 속이 빈 석주 안에 넣으면 시신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것은 역한 냄새도 풍기지 않고 다른 어떤 불쾌한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을 1년 동안 집에 보관한다.

첩자들이 이 모든 것을 관찰한 후 캄비세스에게 보고하자 그는 분노하여 즉시 아이티오피에인 원정에 나섰다. 그는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군대가 먹을 식량도 챙기지 않고, 원정 거리도 살피지 않고 출격했다. 그들이 사막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식량이 바닥이 나서, 운송용 동물들을 잡아먹었고, 이제는 사람까지 잡아먹는 경우가 생겼다. 캄비세스는 원정을 포기하고 군대를 되돌렸다.

 

27~38장 캄비세스의 광적인 행동

캄비세스가 멤피스에 왔을 때, 아피스가 아이깁토스에 출현했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깁토스인들은 축제를 벌였다. 그 광경을 본 캄비세스는 많은 병력을 잃고 돌아온 자신의 불행을 기뻐한다고 생각했다. 행정관들이 아피스와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사형에 처했다. 다음으로는 사제들을 불러 아피스를 데려오라고 했다. 거의 미친 상태였던 캄비세스는 아피스의 배를 찌른다는 것이 그만 넓적다리를 찌르고 말았다. 캄비세스는 축제를 중단시키고 사제들을 처벌했다. 다리에 상처를 입은 아피스는 죽고 말았다.

아이깁토스인들은 말하기를, 캄비세스가 이전에도 광증이 있었지만 이 부정한 일로 말미암아 그 즉시 미쳐 버렸다고 한다. 그의 첫 번째 악행은 친동생 스메르디스를 제거한 일(아이티오피에에서 가져온 활을 잡아당긴 사람이 유일하게 스메르디스였다는 이유로)이었고, 그 두 번째 악행은 캄비세스와 혼인해 살고 있던 친누이를 살해했다. 캄비세스는 여러 누이들을 사랑하여 혼인했는데 가장 나이 어린 누이가 그를 따라 아이깁토스에 왔다가 살해당했다. 캄비세스가 새끼 사자와 강아지를 싸우게 하자, 형제 강아지들이 강아지를 도우러 온 것을 보고, 누이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캄비세스가 그 이유를 묻자 강아지 형제들의 우애를 보자 스메르디스 생각이 났다고 하자 누이를 죽였다. 캄비세스는 자신의 친족들에게 광분했다. 그는 신성한 병(간질)이라는 중대한 병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캄비세스는 신하 프렉사스페스에게 페르시스인들에게 자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프렉사스페스는 다른 점에서는 왕을 크게 칭송하나 음주에 너무 탐닉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캄비세스는 분노하여 자신을 술에 빠진 미치광이로 여기고 있다면서 그들이 이전에 했던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했다. 캄비세스는 키로스와 자신을 견주어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일부 페르시스인들은 키로스의 업적에 캄비세스가 더 추가했기 때문에 캄비세스가 더 낫다고 했고, 크로이소스는 키로스에게는 캄비세스라는 아들이 있지만 캄비세스는 캄비세스만한 아들이 없기에 키로스가 더 낫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캄비세스는 프렉사스세스의 아들을 문 앞에 세워두고 활을 당겨 누가 미친 것인지 확인했다. 정확하게 신하의 아들 심장에 화살이 꽂히자 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느낀 프렉사스세스는 캄비세스의 활 실력을 칭송했다고 한다. 또 언젠가는 최상류층 페르시스인 12명을 대단치 않은 죄로 붙잡아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생매장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크로이소스는 캄비세스에게 훈계를 하였다. 그러자 캄비세스는 마사게타이인들과의 싸움에서 크로이소스의 말을 들어 국가를 잘못 운용하게 한 것과 키로스를 죽게 한 것을 끄집어내며 크로이소스를 죽이려 하였다.

캄비세스는 페르시스인들과 동맹국들에도 그런 미친 행동을 많이 저질렀다. 그가 멤피스에 있을 때 오래된 관들을 열고 시신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헤파이스토스 신전에 들어가 그곳의 신상을 몹시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카베이로이의 신전에도 들어갔다.(율법 상 사제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음) 캄비세스는 단단히 미쳐서 신성한 것들과 관습들을 조롱했다.

 

39~60장 스파르타의 사모스 공격..................................................................................................................340

 

39~43장 폴리크라테스의 번성

한편 캄비세스가 아이깁토스를 공격하는 동안, 라케다이몬인들은 사모스와 폴리크라테스에 대한 원정을 벌였다. 폴리크라테스는 반란을 일으켜 사모스를 장악한 인물이었다. 그 후 폴리크라테스는 아마시스와 우호 관계를 맺었다. 그 후 단기간 내에 폴리크라테스는 세력이 크게 성장했다. 그가 원정에 나서는 곳마다 모든 일이 성공했다. 그는 수많은 섬과 육지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했다.

아마시스는 폴리크라테스가 번성한다는 것을 알고 편지를 써서 사모스로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폴리크라테스의 번성을 축하한 뒤에 인간은 흥망성쇠가 교차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므로 귀하의 행운에 맞서는 일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즉 자신에게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버려보라는 것이었다. 폴리크라테스는 그 조언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 자신의 황금 인장 반지를 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어떤 어부가 멋진 물고기를 잡았다며 폴리크라테스에게 바쳤는데 물고기의 뱃속에서 그가 버린 황금 인장 반지가 나왔다. 이에 폴리크라테스는 이것이 신이 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모든 일을 편지에 적어 아마시스에게로 보냈다.

아마시스는 폴리크라테스의 편지를 읽고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그의 운명으로 정해진 일에서 건져 낼 수가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폴리크라테스가 스스로 던져 버린 것도 다시 찾을 정도로 행운아임을 알았지만 나중에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임을 알고 그와의 우호 관계를 파기한다고 밝혔다. 즉 폴리크라테스에게 무서운 재앙이 닥칠 경우 그가 마음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44~53장 사모스 공격의 배경

라케다이몬인들은 만사에 행운을 누리던 바로 이 폴리크라테스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는 후일 크레테에 키도니에를 건설한 사모스인들의 부탁에 따른 것이었다. 폴리크라테스는 캄비세스가 아이깁토스 원정에 필요한 군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 사모스의 자신에게도 군대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해 달라고 한 바 있다. 이것을 캄비세스가 흔쾌히 들어주자 사모스의 반란 요주의자들을 모아 보내면서 캄비세스에게 이들을 돌려보내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요주의자들은 아이깁토스에까지 가지 않았다고도 하고, 아이깁토스에 도착하여 감시를 받다가 도망쳤다고도 하였다. 그들이 사모스로 귀항했을 때, 폴리크라테스는 그들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이때 귀환자들이 패하여 라케다이몬으로 떠났다.

폴리크라테스에게 쫓겨난 사모스인들은 스타르테에 도착하자 고위 관리들에게 자신들의 절박한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별 말이 없던 스파르테 관리들은 나중에는 사모스인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라케다이몬인들은 준비를 갖추고 사모스 원정에 나섰다. 사모스인들은 전에 라케다이몬인들과 메세니아인들이 전쟁을 벌일 때 사모스가 도와준 일이 있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였지만 라케다이몬인들은 전에 자신들이 크로이소스에게 가져가던 혼주용기와 아마시스가 자신들에게 선물로 보낸 흉갑이 사모스인들에게 탈취당한 것을 응징하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한편 코린토스인들도 사모스 원정이 이뤄지도록 기꺼이 참여했다. 그들 역시 한 세대 전에 사모스인들에게서 모욕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킵셀로스의 아들 페리안드로스는 케르키라 상류층 아들 300명을 환관으로 만들기 위해 사르디에스의 알리아테스에게로 보냈다. 그때 소년들을 호송하던 코린토스인들이 사모스 정박했을 때 사모스인들이 소년들을 보호하려고 아르테미스 성소를 꼭 붙잡고 있으라고 했다. 그런 후 그들은 성소에서 탄원자들을 끌어내지 못하도록 했으며 코린토스인들이 소년들의 식량을 차단하자, 제전을 개최하여 소년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이런 일은 소년들을 지키던 코린토스인들이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후 사모스인들은 소년들을 케르키라로 돌려보냈다. 페리안드로스가 죽은 후에도 코린토스인들과 케르키라인들 사이가 좋지 않았다.

페리안드로스가 케르키라의 자제들을 환관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케르키라인들에게 보복을 하기 위함이었다. 페리안드로스는 아내를 죽인 후 아들들이 이 사실을 전해 듣게 되자 둘째 아들인 리코프론은 아버지를 멀리하였다가 집에서 쫓겨났다. 리코프론은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말라는 왕의 포고령으로 주랑들을 배회하다가 그를 가엾이 여긴 왕이 그리해서는 안 될 사람에게 분개하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응하고 집으로 돌아오라고하였지만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페리안드로스는 아들을 보지 않으려고 케르키라로 보냈다. 세월이 흘러 페리안드로스도 늙어 케르키라의 아들을 불러오게 했다. 그는 큰아들은 참주의 가망성이 전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리코프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왕은 아들이 누이동생의 말은 잘 들을 것으로 생각하여 딸을 보내 설득하려 했지만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코린토스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다시 페리안드로스는 자신이 케르키라로 가고 리코프론이 코린토스로 와서 참주가 되라고 제안하자 그것에는 아들이 응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케르키라인들은 페리안드로스가 자신들의 나라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리코프론을 살해했다. 페리안드로스는 바로 이 일에 대해 케르키라인들에게 보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54~59장 사모스의 공격과 철군

라케다이몬인들은 대군을 데리고 와서 사모스를 포위 공격했다. 이에 폴리크라테스가 직접 대병력을 이끌고 와서 그들을 격퇴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40일 동안 사모스를 공격했지만 전세가 아무런 진척이 없자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갔다. 이것이 라케다이몬의 도리에스인들이 행한 최초의 아시에 원정이었다.

폴리크라테스와 싸우던 사모스인들 역시 배를 타고 시프노스로 떠났다. 당시에 시프노스는 금광으로 섬 주민들 중에서 가장 부유했다. 그들은 광산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델포이에 보고를 지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번영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가를 신탁에 물었을 때, ‘나무 매복지와 붉은 사자를 경계할 수 있는 명민한 자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바로 사모스인들의 배가 주홍색였다. 사모스인들은 사절을 보내 시프노스인들에게 10탈란톤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하자, 사모스인들은 시프노스의 농촌 지대를 약탈했다. 이리하여 시프노스인들은 사모스인들과 전투를 벌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이 싸움으로 사모스인들은 그들에게서 100탈란톤을 거두었다. 이 사모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 인근 히드레아 섬을 사들여 그곳을 트로이젠인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크레테에 키도니에를 건설했다. 그들은 키도니에에 머물러 살며 5년 동안 번성을 누렸다. 하지만 6년째 되는 해에 아이기나인들이 크레테인들과 함께 그들을 해전에서 격파하고 노예로 삼았다. 전에 아이기나인들이 사모스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던 것에 대한 원한 갚음이었다.

 

60장 사모스의 건설 업적

사모스인들은 전체 헬라스인들 가운데 최대의 공사를 세 개나 완수했다. 그중 하나는 터널이고, 또 하나는 방파제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공사는 우리가 본 모든 신전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신전이다.

 

61~87장 페르시아 왕 다레이오스의 즉위........................................................................................................353

 

61~67장 마고스의 반란과 캄비세스의 사망

캄비세스가 제정신을 잃고서 아이깁토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두 마고스 형제가 캄비세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중 한 명은 왕실의 집사였다. 그는 스메르디스의 죽음이 비밀에 부쳐져 스메르디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여기는 것을 알고 제 형제를 스메르디스라고 속여 왕좌에 앉혔다. 특히 아이깁토스의 캄비세스에게도 스메르디스가 왕이 되었음을 공표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캄비세스는 프렉사스페스를 불러 스메르디스 도모건을 추궁했다. 이에 프렉사스페스는 스메르디스가 죽은 것은 사실이며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결국 왕이 바뀌었다는 것을 공표한 자가 마고스임을 알게 되어 캄비세스는 빨리 수사로 가서 마고스를 정벌할 생각으로 말 등에 뛰어올랐다. 그가 말 등에 뛰어올랐을 때 그의 칼집 마개가 떨어졌고 칼이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캄비세스가 상처를 입은 곳은 전에 그가 아피스 신을 내리친 곳과 똑같은 자리였다. 캄비세스는 자신이 치명상을 입었다고 여겨 이 도시가 어딘지를 알아보았는데 악바타나였다. 그는 전에 부토 시로부터 그가 악바타나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죽을 때에 이르러 캄비세스는 동생을 죽인 일을 실토하며 후회했다. 동생에게 통치권을 빼앗기는 꿈을 꾼 후에 그를 살해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카이메니다이 가문 사람들은 왕권이 다시 메디아인에게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되다며 왕실을 지켜달라고 했다. 캄비세스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슬퍼하며 울었다.

캄비세스는 모두 75개월 동안 왕위에 있었는데 한 명의 자식도 남겨놓지 못 했다. 캄비세스가 죽자 신하들은 마고스가 권력을 차지했다는 말이 내심 별로 믿기지 않았다. 그때 그들은 키로스의 아들 스메르디스가 왕위에 올랐다고 믿었다. 프렉사스페스가 자신이 스메르디스를 죽이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했던 것이다.

캄비세스가 죽자 그 마고스는 스메르디스 행세를 하며 7개월 동안 왕으로 지냈다. 이 기간에 마고스는 모든 신민들에게 큰 혜택을 베풀었다. 그래서 그가 죽자 페르시스인들을 제외한 모든 아시에인들이 몹시 그를 그리워했다.

 

68~797인의 거사

마고스가 왕위에 오르고 8개월째 되고 그의 정체는 발각이 났다. 오타네스라는 최상류층 인물의 의심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마고스 왕은 캄비세스의 아내들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오타네스의 딸이 그중 한 명이었다. 오타네스는 마고스의 양쪽 귀가 없다는 사실에 알고 딸에게 그의 귀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결국 오타네스의 딸은 아버지가 의심을 명확하게 해주는 일을 했다. 오타네스는 페르시스인의 최상류층 인사들 5인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때 마침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다레이오스가 수사로 와서 합류하는 바람에 7인이 거사를 도모하기로 했다. 이들 7인은 신의의 서약을 맺고 의견을 나누었다. 다레이오스는 지금 왕으로 있는 자가 마고스이고 키로스의 스메르디스는 이미 죽고 없다는 것을 알고 왔다며 마고스를 죽일 거사를 도모하러 서둘러 온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오타네스는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우리의 수가 더 많아진 후에 도모하자고 했으나 다레이오스는 비밀이 새어나가 일을 망칠 수 있으니 오늘 바로 실행하자고 밀어붙였다. 자신이 방금 페르시스에 도착했으니 왕에게 전갈을 전달해야 한다고 하면 왕을 알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런 후에 고브리에스마저 페르시스인들로서 메디아인인 마고스에게 지배를 받는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며 캄비세스가 반드시 왕권을 되찾으라고유언한 것을 상기시키게 되자 모두들 그에 찬성했다.

그들이 이렇게 협의를 하고 있는 동안에 마고스들은 프렉사스페스와 우호를 맺기로 결정했다. 프렉사스페스는 캄비세스가 그의 아들을 쏘아 죽이는 끔찍한 불행을 겪었으며, 키로스의 스메르디스의 죽음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였다는 점, 그리고 더욱이 프렉사스페스는 페르시스인들 사이에서 큰 명성을 누리고 있다는 점으로 그를 불러다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마고스들은 그에게 비밀유지를 위해 온갖 재화를 풍족하게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마고스들은 프렉사스페스에게 지금의 왕이 키로스의 아들 스메르디스라는 것을 선언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이유는 프렉사스페스가 키로스의 스메르디스의 살인을 부정했고 그가 살아 있다는 견해를 자주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프렉사스페스가 수락하자, 마고스들은 페르시스인들을 소집한 후, 그를 성루에 올려 보내서 연설을 하도록 지시했다. 프렉사스페스는 그들이 요구한 것들을 무시하고 아카이메네스로부터 시작하여 키로스의 계보를 죽 더듬어 나갔다. 그런 다음 마침내 키로스까지 내려오자 그는 키로스가 페르시스인들에게 행했던 선행들을 언급했다. 그리고 드디어 진실을 밝혔다. 자신은 캄비세스의 명을 받아 스메르디스를 죽였으며 지금 통치하는 자들은 마고스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루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한편 7인은 프렉사스페스에게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 채 마고스 공격을 위해 진격하다가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발을 멈춘 채 다시 의논을 했는데 오타네스는 거사를 미루자고 했고 다레이오스는 당장 가서 수행하자고 했다. 그 때 갑자기 일곱 쌍의 매가 나타나더니 독수리 두 쌍을 뒤쫓아 잡아채고 쥐어뜯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7인은 다레이오스의 견해에 찬동하여 왕궁을 향해 나아갔다.

이들은 왕궁으로 무사히 들어갔으나 환관들의 저지를 받게 되자 단검으로 이들을 제압했다. 이 때 마고스들은 둘 다 안에 있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자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양측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7인 중 몇몇은 마고스의 칼에 다치기도 하였지만 다레이오스의 단검이 마고스를 찔러 상황이 종료되었다. 지금 페르시스인들은 다른 어느 날보다 성대하게 이날을 공동으로 경축한다. 그들은 이날을 마고포니아라고 부른다.

 

80~82장 정치체제의 논의

혼란이 가라앉고 5일이 지났을 때 7인은 온갖 사안을 놓고 의논했다. 오타네스는 국정을 페르시스인 모두에게 공동으로 맡기자고 주장했다. 그는 군주제는 즐거운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니 이제 더는 우리에게 군주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군주제하에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자가 자기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기에 군주제는 적절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다수의 통치는 모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이름인 이소노미에’(법 앞의 평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메가비조스는 과두제로 바꾸자고 했다. 그는 오타네스의 참주정 종식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쓸모없는 군중보다 더 어리석고 방자한 존재는 없다면서 가장 훌륭한 자들을 뽑아 그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자고 했다. 세 번째로 다레이오스가 의견을 밝혔다. 그는 앞서 제시된 체제가 모두 최선의 상태라고 가정할 경우, 최선의 민주제와 최선의 과두제와 최선의 군주제 가운데 군주제가 단연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탁월한 한 사람보다 더 좋은 건 분명히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두제는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려 하고 서로 반감을 갖게 되며 분쟁이 생기고 또 살육이 발생된다고 했다. 민주제는 공무에 관한 해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서로 결탁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공적인 일에서 해악이 발생할 때 악인들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오히려 우애가 긴밀해진다고 했다. 이런 일은 누군가 민중의 지도자로 등장할 때까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결국 군주가 되는 거라고 했다.

 

83~87장 다레이오스의 즉위

세 의견 중에서 결국 다수의 표를 받게 된 군주제로 의견이 모아졌다. 오타네스는 자신의 의견이 좌절되자 자신은 7인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대신 자신과 자신의 모든 후손들이 어느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렇게 하여 오타네스는 그들과 경쟁을 벌이지 않고 그들 가운데서 물러났고 오늘날에도 그의 가문은 페르시스인 중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누리고 있다. 7인 중 남은 6인들은 거사를 최초로 계획하고 자신들을 규합한 오타네스에게 온갖 선물을 해마다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6인 중 누가 왕이 되는가는 말의 울음에 따라 정하기로 하였다. 6인이 말을 타고 일출을 보기로 했는데 처음으로 우는 말의 주인이 왕이 되기로 한 것이다. 다레이오스에게 왕의 선출 방법을 들은 그의 영리한 마부는 비방이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밤이 되자 마부는 다레이오스의 말이 가장 좋아하는 암말을 성 밖으로 데려가 매어 놓고 주인의 말과 교미하도록 해 주었다.

새벽이 되자 6인은 그들이 합의한 대로 말을 타고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나가 지난밤에 암말이 매어 있던 바로 그곳에 이르자 그 순간 다레이오스의 말이 울음소리를 냈다. 그때 동시에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말에서 뛰어내려 다레이오스에게 엎드려 경배를 드렸다.

 

88~117장 다레이오스의 통치 영역................................................................................................................371

 

88~9720개 통치관구 제정

그리하여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다레이오스가 왕이 되었다. 이미 아라비에를 제외한 아시에의 모든 주민이 그에게 예속되었다. 그러나 아라비에인들은 한 번도 페르시스에게 예속된 적이 없고 캄비세스가 아이깁토스로 갈 때 지나가게 해 준 일이 있어 서로 우호 세력이 되었다.

다레이오스는 처음에 페르시스 여성들과 혼인했다. 주로 키로스의 혈통인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마고스의 정체를 밝혀냈던 오타네스의 딸도 아내로 취했다. 다레이오스는 사트라페이에라고 부르는 20개의 통치관구를 확립했다. 다레이오스는 통치관구에 총독을 두어 종족별로 자신에게 정해진 조세를 바치도록 했다. 키로스와 캄비세스의 통치 시기에는 조세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었고 그냥 선사품으로 바칠 뿐이었는데 다레이오스는 모든 것에서 소소한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통치 관구는 20개 구역이었고, 각 지역마다 엄청난 세금이 다레이오스에게 들어왔다. 다레이오스는 세금으로 들어온 광물들을 녹여 점토항아리에 부어 놓았는데 항아리가 가득 차면 점토를 떼어 낸다. 그런 후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잘라 쓰는 것이다. 페르시스인들에게 예속된 구역에서는 세금을 받지만 페르시스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살았다. 한편 조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이깁토스 접경에 사는 아이티오피에인들과 신성한 니사 부근에 살며 디오니소스에게 제전을 거행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조세는 내지 않았어도 선사품을 갖다 바쳤다.

 

98~105장 인도인들의 관습과 문화

인디케 땅의 동쪽은 모래 지대다. 인도스인들은 여러 종족으로 되어 있으며 종족 간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 이들은 골풀로 만든 의복을 입는다. 이들의 동쪽에 사는 또 다른 인도스인들은 유목민이고 육고기를 날로 먹는데 파다이오이인이라고 불린다. 그들의 시민들 중에는 누가 병이 들면 친구들이 그를 죽인다. 죽여서 그 고기를 먹는다. 그들 중 다른 생활 방식을 지닌 자들은 생물을 죽이지 않고 집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채식을 한다. 그들 중 병에 걸린 자는 사막으로 가서 눕는다. 그가 앓든 죽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들 인도스인들은 공공연하게 성행위를 한다. 이들 인도스인들은 페르시스인들로부터 남쪽으로 맨 끝에 산다. 그들은 다레이오스 왕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여타 인도스인들보다 북쪽에 거주하는 인도스인들은 박트리에인들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인도스인들 중에서 가장 호전적이며 금을 찾아다니는 자들이다. 그들이 금을 찾으려고 사막을 다닐 때는 낙타를 타고 다닌다.

인도스인들이 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시간은 태양의 열기가 가장 뜨거울 때이다. 이들의 지역에서는 오전에 태양이 가장 뜨겁다. 그 이후에는 해가 물러가면서 날이 점점 추워지다가 해질 무렵에는 몹시 추워진다.

 

106~117장 세계 변방들의 자연 환경과 산물

인도스에 사는 짐승들은 다른 곳의 같은 것들 보다 훨씬 크다. 그곳에는 금이 엄청나게 풍부하고, 야생의 나무들에서 양털보다 더 우수한 솜털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세상의 남쪽 맨 끝에 위치한 곳은 아라비에인데 모든 지역 중에서 유일하게 여기서만 유향, 몰약, 계피, 육계, 방향 수지가 나온다. 그들이 유향을 채집할 때는 스티락스를 태워 날개 달린 뱀들을 몰아내야 한다. 독사는 그들이 짝지어 교미를 하다가 수컷이 정액을 사정하는 순간 암컷에 물려 죽는다. 수컷의 복수는 새끼들이 하는데 그것들이 어미 뱃속에 있을 때 어미의 속을 다 뜯어먹고 나온다는 것이다. 독사가 너무 많지 않도록 하는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아라비에인들이 계피를 얻는 방식은 가죽들로 눈만 내놓고 모두 감싼 다음 호수로 가는데 그곳에는 대단히 공격적인 날개 달린 짐승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눈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면서 계피를 채취한다. 아라비에인들이 라다논이라고 부르는 방향 수지는 이보다 한층 더 희한하게 생산된다. 왜냐하면 악취가 가장 심한 곳에서 자라면서도 가장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염소의 수염에서 자란다.

해지는 쪽으로 세상의 맨 끝에 있는 곳이 아이티오피에다. 이곳은 금이 많이 나고, 코끼리들과 온갖 야생나무들, 흑단이 서식한다. 이곳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장수한다. 이것들이 아시에와 리비에에서 맨 끝에 있는 지역들이다.

에우로페 서쪽 끝에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 할 수 없지만 에우로페 북쪽에서는 금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아시에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원이 하나 있고, 산에서는 아케스라는 강이 흘러나온다. 강의 지류는 다섯 군데 갈라진 틈을 타고 다섯 집단 각각으로 물이 흘러갔다. 이 강이 페르시스인들의 차지가 되자 왕은 강의 지류를 막고 수문을 설치했다. 그러자 산 안쪽의 평원이 호수가 되었다. 그 물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농업용수가 부족하여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돈을 받고 수문을 열어주게 되어 왕은 조세 외에도 막대한 돈을 거둔다고 한다.

 

118~160장 다레이오스의 지배.......................................................................................................................384

 

118~128장 인타프레네스와 폴리크라테스, 오로이테스의 죽음

마고스에 봉기를 일으킨 7인 중 한 명인 인타프레네스는 오만한 행동을 범해 죽음을 맞았다. 그는 왕궁으로 들어가 왕과 어떤 상의를 하려고 왕을 접견하려고 들어가려고 하다가 이에 제지를 하던 문지기와 시종에게 칼을 휘둘렀다. 6인은 왕이 여자와 동침을 할 때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왕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마침 그때가 여자와 동침 중이었다. 문지기와 시종은 다레이오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왕은 6인이 반란음모를 꾸민 게 아닌가 하여 알아보았지만 그것은 아닌 것이 확인되자 인타프레네스 본인과 그의 남자 가솔들을 모두 잡아들여 처형하려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인타프레네스의 처가 수시로 왕궁의 문 앞에 와서 울며 한탄했고 이에 다레이오스의 맘이 눅어져 그녀를 동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구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그녀의 오빠라고 했다. 이유인즉 남편과 자식은 다시 생길 수도 있지만 형제는 다시 생길 수가 없어서라고 했다. 왕은 그 말이 타당하다고 여겨 그녀의 오빠와 장남을 방면해 주고, 나머지는 모두 처형했다.

캄비세스가 병들어 있을 무렵에 사르디에스 총독 오로이테스가 사모스의 폴리크라테스를 붙잡아 죽이고 싶어했다. 오로이테스가 다른 총독과 말싸움이 났는데 오로이테스가 근처에 있는 사모스를 차지하지 못했음을 비하하면서 폴리크라테스가 봉기를 일으켜 참주 노릇을 할 만큼 차지하기 쉬운 나라라고 하자 그런 말을 한 자는 놓아두고 그런 악담을 듣게 한 폴리크라테스를 파멸시키겠다고 작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로이테스가 무언가 요청할 일이 있어서 사모스에 사절을 보냈는데 그때 폴리크라테스가 이들을 무시한 적이 있어 이에 앙심을 품었다는 말도 있다.

오로이테스는 마그네시에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미 폴리크라테스의 의중을 알고서 그에게 사절을 보냈다. 폴리크라테스는 해상 지배를 구상한 자로 이오니에와 섬들을 지배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던 자였다. 오로이테스는 이것을 알고 캄비세스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으니 폴리크라테스가 오로이테스의 재물과 그 자신을 밖으로 데려가 주면 재물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폴리크라테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던 지라 오로이테스의 제안을 기쁘게 승낙했다. 폴리크라테스는 오로이테스의 재물을 확인하기 위해 서기를 보냈는데 오로이테스는 돌멩이로 위장한 금 상자를 보여주었다. 폴리크라테스는 오로이테스에게 갈 준비를 했을 때, 그의 측근들과 딸이 강하게 만류했다. 폴리크라테스는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배를 타고 오로이테스에게로 떠났다. 폴리크라테스는 많은 우인들을 데리고 갔는데 크로톤인 의사 데모케데스도 있었다. 그의 최고의 의술을 시행하는 자였다. 하지만 폴리크라테스는 마그네시에에 도착하여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오로이테스는 폴리크라테스를 죽여서 말뚝에 매달았다. 폴리크라테스의 거듭된 행운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 후 오래지 않아 폴리크라테스의 복수가 오로이테스에게 찾아들었다. 캄비세스가 죽은 후 마고스들이 권력을 차지했을 때 오로이테스는 페르시스인들을 전혀 돕지 않았다. 오히려 혼란한 와중을 틈타 다스킬레이온 총독과 그의 아들을 살해했다. 오로이테스는 온갖 오만한 만행을 저질렀고 다레이오스가 보낸 사절을 죽이기도 하였다.

다레이오스는 권력을 장악하자 오로이테스를 응징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오로이테스에게 막강한 군사가 있는지라 무력으로 진압하지는 않기로 했다. 왕은 신하들을 불러 누가 오로이테스를 죽이거나 생포해 데려오든지 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 중 많은 수가 서로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왕은 제비뽑기를 하게 했고, 아르톤테스의 아들 바가이오스가 뽑혔다. 바가이오스의 계략으로 오로이테스는 자신의 호위병들에게 살해되었다.

 

129~138장 크로톤의 명의 데모케데스

오로이테스의 재산이 수사로 올려 보내져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레이오스가 사냥하던 중에 말에서 뛰어내리다가 발을 삐는 일이 일어났다. 그의 곁에 있던 왕의들이 치료를 했지만 더 악화되어 왕은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사르디에스에서 데모케데스의 의술에 대해 아는 자가 다레이오스에게 알려 주었다. 왕은 당장 그를 데려오게 했다. 왕은 데모케데스에게 치료를 받고 얼마 안 있어 건강을 찾게 해 주었다. 다레이오스는 흡족하여 의사에게 황금족쇄 두 쌍을 선물로 주었다. 데모케데스가 크로톤을 떠나 폴리크라테스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은 성격이 가혹한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집을 나와 아이기나로 가게 된 것으로 연유된다. 그는 시설도 없는 그곳에서 다른 모든 의사들을 능가하여 의술을 펼쳤다. 그가 유명해지자 폴리크라테스가 그를 고용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사모스로 오게 되었다. 데모케데스는 수사에서 다레이오스를 치료해 준 뒤에 저택을 얻게 되고 왕과 식사도 같이 할 정도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 뒤 키로스의 딸이자 다레이오스의 아내인 아토사의 젖가슴에 난 종기를 치료하여 건강을 되찾게 해 주고 그 대신 데모케데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아토사가 건강해지자 그녀는 데모케데스가 시킨 대로 다레이오스를 부추겨 헬라스 정벌하도록 했다. 다레이오스는 헬라스의 해안 지방을 둘러보기 위해 신하들을 보내면서 (헬라스 전역에 대한 설명을 하라고)데모케데스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데모데네스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잘 데리고 오라는 명령도 내렸다. 다레이오스는 데모케데스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선물할 재화를 실은 화물선을 함께 보냈다. 첩자들은 헬라스의 유명한 곳을 많이 살펴본 후 이탈리에의 타라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타라스의 왕은 데모케데스에 대한 호의에서 페르시스인들을 첩자라는 구실로 구금했다. 페르시스인들이 그런 곤경에 처해 있는 사이에 데모케데스는 크로톤으로 돌아갔다. 타라스 왕은 데모케데스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자 비로소 페르시스인들을 풀어주었다.

페르시스인들이 타라스에서 출항하여 테모케데스를 쫓아 크로톤에 도착했다.

그들은 데모케데스가 아고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붙잡으려고 하였지만 다른 자들이 저항하며 페르시스인들을 때렸다. 페르시스인들이 왕의 명령을 어긴다면 이 도시를 공격할 것이라고 협박하였지만 크로톤인들을 설득시키지는 못하고 아시에로 귀항했다. 페르시스인들은 크로톤을 더나 항해하다가 이에피기에 근해에서 난파되었으나 타라스의 추방자 길로스의 도움으로 다레이오스 왕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의 페르시스인들이 헬라스에 최초로 도달한 페르시스인들이었다.

139~149장 페르시아의 사모스 정복

그 후 다레이오스는 사모스를 정복했는데 사모스는 헬라스인과 이방인의 도시 가운데 그가 맨 먼저 정복한 곳이었다. 예전에 캄비세스가 아이깁토스 원정에 나섰을 때 많은 헬라스인들이 아이깁토스로 갔다. 일부는 장사를 하기 위해 참여한 자들도 있었고, 일부는 관광으로 가기도 갔다. 이 중에 아이아케스의 아들 실로손이 있었는데 그는 폴리크라테스와 형제간이었으며 당시 사모스에서 추방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실로손이 붉은색 외투를 입고 멤피스를 걷고 있을 때 캄비세스의 호위병인 다레이오스가 그 옷이 탐이 나서 옷을 사겠다고 하였다. 실로손은 그가 간절히 옷을 원하는 것을 보고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 실로손은 마고스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왕이 된 사람이 다레이오스임을 알게 되자 왕을 찾아갔다. 왕은 그 일을 생각하여 실로손에게 재물을 주겠다고 했으나 실로손은 재물 대신 조국 사모스를 돌려달라고 했다. 이에 왕은 오타네스를 지휘관으로 하여 군대를 파견했다. 물론 오타네스에게는 실로손이 요청하는 것을 다 이행하라고 일러두었다.

이때 사모스는 마이안드리오스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폴리크라테스에게 위임을 받아 권력을 차지했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공정한 인간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리되지는 못했다. 그는 권력을 모두가 공유하는 이소노미에를 공언한다며 자신은 특권을 지니겠다고 했다. 제우스의 사제직에 폴리크라테스의 재산의 일부를 갖겠다고 했다. 그러나 반발하는 세력이 나타나자 그들을 구금해버렸다. 그때 마이안드리오스가 병이 들자, 그의 동생이 구금된 자들을 모두 처형해버렸다. 그런 상황인지라 페르시스인들이 실로손을 복귀시키려고 사모스에 도착했을 때에 그들에게 대항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마이안드리오스의 동생 카릴레오스가 마이안드리오스에게 용병을 내주면 페르시스인들을 응징하겠다고 호언했다. 마이안드리오스가 비밀 통로로 탈출하여 배를 타고 사모스를 빠져나간 후에 카릴레오스는 페르시스인들에게 돌격하여 페르시스 최고 요인들을 살해했다. 다른 페르시스인들이 이들을 구하러 오고, 용병들은 아크로폴리스로 쫓겨 돌아갔다. 페르시스 지휘관 오타네스는 페르시스인들이 큰 피해를 입자 격분하여(다레이오스가 사모스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말라고한 명령을 잊고) 사모스인들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마이안드리오스는 사모스를 탈출하여 라케다이몬에 도착했다. 그는 스파르테의 왕의 아들 클레오메네스에게 자신의 재물로 환심을 사서 도움을 얻으려고 하였지만 이를 눈치 챈 클레오메네스에게 추방을 당하였다.

실로손이 사모스를 넘겨받았을 때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가 오타네스가 꿈속에서 환영을 보고 병이 생기자 사람들을 거주하게 하였다.

 

150~160장 바빌론의 반란과 페르시아의 재정복

페르시스 함대가 사모스로 떠났을 때 바빌론인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은 각 집안에 요리를 할 여자를 한 명씩만 살려두고 모두 죽였다. 다레이오스는 이 소식을 듣고 그들에 대한 정벌을 나섰다. 그는 바빌론에 진격하여 그곳을 포위 공격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빌론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을 놀려대며 노새들이 새끼를 낳으면 그때에나 너희들이 우리를 점령할 것이라며 우쭐댔다. 그 바빌론인은 노새는 새끼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후 2년여가 흐르고 그때까지 바빌론을 점령하지 못한 다레이오스는 조바심이 생겼다. 온갖 전략과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바빌론인들이 워낙 철저히 경계한 터라 그들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거사 7인 중 한 명인 메가비조스의 아들 조피로스의 노새가 새끼를 낳았다. 조피로스는 노새가 새끼를 낳으면이라는 말을 생각했고 이제 바빌론이 점령될 때가 왔다고 여겼다. 조피로스는 다레이오스가 바빌론 점령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을 제 것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바빌론으로 탈주하여 그들의 신임을 얻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조피로스가 바빌론 병력을 맡기게 되면 작전을 펼치겠다고 했다. 바빌론인들은 페르시스의 명망가가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들의 성으로 탈출한 것을 보고 그가 진심을 말하며 자신들의 협력자로서 왔다고 완전히 믿고 그에게 군대를 주었다. 조피로스는 작전대로 다레이오스의 병사들을 무찔러 바빌론인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조피로스가 페르시스인 병사 7,000명을 연속으로 학살하는 것을 보고 바빌론인들은 그에게 총사령관과 성벽 감독직을 맡기게 되었다. 다레이오스가 이미 조피로스와 합의한 대로 사방에서 성벽을 공격하게 되고 조피로스는 성문을 열어 페르시스인들이 입성하게 했다. 그리하여 이제 바빌론은 두 번째로 점령되고 말았다. 다레이오스는 바빌론인들을 정복하자 그들의 성벽을 허물고 모든 성문을 떼어 냈다. 그전에 키로스가 점령했을 때에는 그런 일은 어느 것도 행하지 않았다.

다레이오스는 페르시스인 중에서 조피로스의 선행을 능가하는 자는 키로스 다음으로 전무후무하다고 여겨졌다. 즉 다레이오스는 바빌론에 20개의 바빌론을 더 얻는다해도 조피로스의 몸이 훼손당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왕은 그를 극진히 존중했다. 이 조피로스에게서 메가비조스가 태어났고 그는 후일 아이깁토스에서 아테나이인과 그 동맹군에 대한 전쟁을 지휘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메가비조스에게서 조피로스가 태어났는데 그는 페르시스에서 아테나이로 탈주했던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