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제4권
역사 제4권
제1~82장 스키티아인들의 관습과 문화..................................................................................................411
제1~4장 다레이오스의 스키티아 원정 배경
바빌론 점령 이후 다레이오스는 직접 스키티에인 원정에 나섰다. 아시에에서 막대한 수입이 들어오자 왕은 스키디에인들을 응징하기를 원했다. 예전에 스키티에인이 메디아에 침입하여 아시에 상부 지역을 28년 동안 통치했다. 그런데 이 28년 동안 스키티에인들이 고국을 떠나 있던 시기에 스키티에에 남아 있던 아내들이 자신들의 노예들과 동침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장성해 있었다. 자식들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자 메디아에서 귀환하는 스키티에인들과 대적했다. 귀환자들은 전투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는 자신들의 노예들과 싸워봤자 득이 될 것이 없으며, 자신들은 창과 활을 버리고 말채찍을 들고 저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노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귀환자들이 이렇게 실행하자 노예들이 달아나 버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다레이오스는 이런 일에 대한 응징을 하고 싶었다.
제5~16장 스키티아인들의 유래
스키티에인들은 모든 종족들 중에서 가장 연소한 종족이라고 한다. 당시 황량한 땅이던 이 지역에 타르기타오스라는 사람이 맨 처음으로 태어났다. 그에게 세 아들이 태어나고 이들이 함께 다스릴 때 하늘에서 황금으로 만든 쟁기 등이 떨어졌다고 한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황금 농기구를 잡으려고 했는데 불길이 일어 잡을 수가 없었지만 셋째 아들이 잡으려하자 불이 꺼졌기 때문에 그들은 막내에게 모든 왕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스키티에 초대 왕 타르기타오스로부터 다레이오스가 그들의 땅에 침입한 때까지의 기간이 햇수로 모두 1,000년쯤 되었다고 한다. 왕들은 그 신성한 황금을 정성껏 지키고 많은 제물을 바치며 달래준다. 스키티에 땅은 아주 넓어서 왕국을 세 개로 분립했다. 그중 황금을 보호하고 있는 왕국을 가장 크게 만들었다. 그 나라에서 북쪽은 흩날리는 깃털 때문에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헤라클레에스가 게리오네스의 소 떼를 몰고 오다가 에리테이아라는 섬에 거주했다고 한다. 헤라클레에스는 그곳에서 스키티에 땅에 도착했고, 거기서 혹한을 맞아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그의 암말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헤라클레에스는 잠에서 깬 후 말들을 찾아 그 땅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힐라이에 지역에 이르렀다. 그는 그곳에서 반은 처녀이고 반은 뱀인 괴물이 있었는데 괴물이 자기와 동침하는 조건으로 말들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헤라클레에스를 보내주기 싫은 괴물이 아들을 셋 낳는 동안 세월이 지났다. 괴물은 헤라클레에스를 보내면서 세 아들이 장성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물었다. 헤라클레에스는 활과 허리띠를 주면서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 아들은 데리고 있고, 그렇지 않은 자식은 이 땅에서 내보내라고 했다. 괴물은 성인이 된 아들 중에서 막내아들인 스키테스가 남게 되었고, 스키티에의 모든 왕들은 헤라클레에스의 아들 스키테스에게서 기원했다고 한다. 지금도 스키티에인들이 허리에 잔을 달고 다니는 것은 헤라클레에스의 허리띠 잔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스키티에인들이 아시에에서 유목민으로 살다가 마사게타이인들에게 쫓겨 킴메리에 땅으로 들어갔다. 킴메리에인들은 스키티에인들이 쳐들어오자 서로 대책을 의논했는데 의견이 분분하여 서로 싸우다가 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이에 스키티에인들은 아무도 없는 빈 땅을 차지했다고 한다. 지금도 스키티에 땅에는 킴메리에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킴메리에인들이 스키티에인들을 피해 헬라스 도시 시노페 반도에 식민했음이 분명하다. 또 스키티에인들이 그들을 추격하다 길을 잘못 들어 메디아 땅에 침입한 것도 분명해 보인다.
프로콘네소스인인, 아리스테에스는 자신의 서사시에서 그가 포이보스의 영감을 받아 이세도네스인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세도네스 근방에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아리마스포이인들과 황금을 지키는 그립스들이 살며 그 이웃에는 히페르보레오이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들 종족들은 서로 공격하여 땅을 빼앗아서 킴메리에인들도 스키디에인들에게 밀려났다고 한다. 아리스테에스는 좋은 가문의 일원이었는데 한 축융업자 가게에 들렀다가 거기에서 죽었다. 축융업자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가게에 돌아왔을 때 시신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후 240년이 지난 후에 아리스테에스가 메타폰티온인들 앞에 나타나 아폴론의 제단을 짓고 자신의 인물상을 세우도록 명했다고 한다. 지금도 아폴론 신상 옆에는 아리스테에스라는 인물상이 서 있다.
내가 이번 이야기에서 언급하기 시작한 이 지역의 위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아리스테에스조차도 위쪽 지역에 대해서는 남에게 들은 것이라고 했다.
제17~20장 스키티아인 종족들
보리스테네스인들의 무역지에서부터 시작하면 제일 먼저 헬라스계 스키티에인들이 살고 있고, 그 옆에는 스키티에인들과 관습이 같은 다른 종족이 살고 있다. 또 그 너머에는 농경 스키티에인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판매를 하는 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의 위쪽에는 네우리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종족은 힐라이에와 강 주변에 살고 있고, 이들의 위쪽으로는 넓은 황무자가 있다. 이 황무지 다음에는 안드로파고이인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스키티에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자들이다. 이들 농경 스키티에인의 동쪽으로는 유목 스키티에인들이 살고 있다. 게르로스 강 건너편에는 왕령지가 있고 스키티에인들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가장 인원이 많은 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다른 스키티에인들을 자신의 노예로 여긴다.
제21~35장 스키디아 너머의 종족들
타나이스 강 건너편은 스키티에 땅이 아니다. 이곳은 사우로카타이인들의 구역이다.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그들의 위쪽은 부디노이인들이 사는데 온갖 나무들이 빽빽하다. 부디노이인들 지역 북쪽에는 인구가 많고 독특한 종족인 티사게타이인들이 있다. 그들은 수렵으로 살아간다. 이웃에는 역시 수렵으로 살아가는 이이르카이인들이 산다. 이곳까지는 모두 평지이며 땅이 기름지다.
이들의 동쪽에는 다른 스키티에인들이 산다. 그들은 왕령 스키티에인들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들어온 자들이다. 이 땅부터는 돌이 많고 울퉁불퉁하다. 높은 산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대머리로 태어난다. 그들에게는 목초지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가축도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도 이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들은 신성한 자들이라고 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쟁 무기도 갖고 있지 않으며 이웃 주민들 간의 분쟁도 판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이름은 아르기파이오이다. 이들 대머리족을 방문하는 스키티에인들은 7명의 통역과 7개의 언어를 통해 자신들의 업무를 본다. 이들의 위쪽 지역은 통과할 수 없는 높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세도네스인들은 아버지가 죽으면 모든 친척이 가축을 끌고 와서 도살한 후 주인의 죽은 아버지 시신과 함께 잘게 썰어 잔치를 한다. 이세도네스인들은 공정한 자들이고 여자들도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앞서 언급한 모든 지역은 겨울 추위가 극심하여 연중 8개월은 혹한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호수가 결빙되면 스키티에인들은 빙판 위로 진군하여 건너편 신도이인들에게로 간다. 그곳은 여름이면 끊임없이 비가 온다.
스키티에인들이 말하는 공중에 가득한 깃털들은 눈이라고 생각한다.
히페르보레오이인들에 대해서는 델로스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밀짚으로 싼 성스러운 공물들이 히페르보레오이인들에게서 스키티에로 운반되어 온다고 한다. 공물들은 이웃 나라에서 또 이웃 나라로 전해지다가 헬라스인 중에서 맨 먼저 도도네인들이 그것들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국가들을 거쳐 델로스에 도착한다고 한다.
제36~45장 세계의 지리; 리비아·아시아·에우로페
페르시스인들은 홍해 남쪽 바다에까지 뻗어 살고 있다. 메디아인, 사스페이레스인, 콜키스인들 네 종족이 바다와 바다 사이에 걸쳐 살고 있다. 이 지역에서 서쪽 방향으로 반도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의 반도는 폰토스와 헬레스폰토스를 따라 트로이아스의 시게이온에까지 이른다. 한편 바로 이 반도는 남쪽으로는 포이니케의 미리안드로스 만에서 트리오피온 곶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이 반도 내에는 30개 종족이 살고 있다.
한편 또 하나의 반도는 페르시스 땅에서 시작해 홍해로 뻗어 있는데 여기에는 페르시스, 아시리에, 아라비에가 나온다. 이 반도는 다레이오스가 네일로스 강으로부터 수로를 연결한 아라비에 만에서 끝난다. 이 반도는 이쪽 바다를 끼고 팔라이스티네의 시리에와 아이깁토스를 따라 이어지며 아이깁토스에서 끝난다. 이 반도에는 단지 세 종족이 있을 뿐이다. 한편 페르시스인과 메디아인, 사스페이레스인, 콜키스인이 사는 너머 동쪽으로는 인도스인들이 살고 있다. 리비에는 아이깁토스 다음에 이어져 있다. 리비에는 아시에와 접경한 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이 확실하다. 이를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아이깁토스 왕 네로스이다.
한편 아시에의 대부분은 다레이오스가 밝혀냈다. 그는 인도스 강이 바다와 합류하는 곳이 어딘지 알고 싶어 했다. 결국 여러 달에 걸쳐 일주한 바닷길을 이용하여 인도스인들을 정복했다.
한편 에우로페에 대해서는 동쪽이나 북쪽의 지역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만 땅의 명칭이 티로스의 에우로페의 이름을 따서 불린 것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제46장 스키디아인들의 유목 생활
다레이오스가 군사 원정에 나선 폰토스 지역에는 스키티에인드를 제외하면,온 세상에서 가장 우매한 종족들이 살고 있다. 스키티에인들은 도시도 없고 성채도 없으며 모두가 집을 갖고 다니는 기마 궁사들이며, 농경이 아니라 가축들로 먹고산다고 한다. 또 그들의 거처가 마차 위에 있으니 이들과 교전하기가 힘든 무적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제47~58장 스키티아의 강들
그들이 이런 방법을 발견한 것은 그들에게는 평탄한 땅과 풀이 무성한 숲과 관개가 잘되어 있는 강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바다에서부터 통행할 수 있는 강은 이스트로스 강을 비롯한 5개의 강이다. 이스트로스 강으로 유입되는 강들은 매우 많다. 이스트로스 강에 합류되는 강들은 각 지역에서 발원한 강들로 이스트로스 강의 수량을 증대시킨다. 그리하여 이스트로스 강이 가장 큰 강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겨울에 내린 눈이 얼었다가 우기인 여름이 되면 녹아내리기 때문에 강의 수량은 더욱 늘어난다. 이스트로스 강은 에우로페를 관통해 흐르다가 스키티에 측면으로 흘러들어 간다. 스키티에에는 이스트로스 강 이외에도 티레스 강과 히파니스 강, 보리스테네스 강이 있다. 이중에 보리스테네스 강은 풍요롭기도 할뿐더러 깨끗하다. 강변의 경작지에서는 최고의 수확이 이뤄지고 하구에는 소금덩이들이 엄청 많이 쌓여 있다. 이 강은 황무지를 통과해 농경 스키티에인들의 땅으로 흘러간다. 보리스테네스 강과 판티카페스 강 사이에는 농경 스키티에인들이 살고 힐라이에가 있다.
제59~75장 스키티아인들의 관습; 제사·전쟁·예언술·장례
스키티에인들은 히스티에를 가장 특별하게 받들고 다음으로 제우스와 게를 그 다음으로는 아폴론과 천상의 아프로디테, 헤라클레에스, 아레스를 받든다. 그들은 관례적으로 아레스 말고는 어떤 신들에 대해서도 신상과 제단, 신전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희생제식에서 다 똑같은 방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스키티아에는 나무가 워낙 없기 때문에 익은 고기를 만드려면 솥에 살코기만을 넣은 후 동물에서 발라낸 뼈를 태워 불을 땐다. 소와 여타 모든 동물들은 자신를 태워서 자신을 익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방법으로 제물을 마련하고 다른 가축들도 제물로 바치지만 말을 가장 많이 바친다.
스키티에인들은 다른 신들에게는 그렇게 제사를 지내지만 아레스에게는 더 특별하게 지낸다. 그들은 나뭇더미를 높이 쌓아 놓은 제단에 아레스의 성상(철제 단검)을 모셔놓고 매년 가축과 말들을 바친다. 그들은 포로로 붙잡은 적들을 100명당 1명씩 제물로 바친다. 그들은 관례적으로 돼지를 키우지도 않고, 제물로 바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최초로 쓰러뜨린 자의 피를 마신다. 또 죽인 자들의 머리를 왕에게 가져간다. 그들은 머리 가죽을 벗겨 손수건을 만드는데 그런 가죽 손수건을 가장 많이 가진 자를 가장 탁월한 인간으로 여긴다. 스키티에인들은 철천지원수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사용한다. 빈객들이 방문하면 자신이 쳐부순 자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이를 남성적 덕성이라고 한다.
스키티에인들은 예언자가 많은데 그들은 버드나무 가지들의 묶음을 풀어 놓으면서 예언을 한다. 그러나 양성체인 에나레스들은 아프로디테가 자신들에게 예언술을 부여했다고 하면서 참피나무 껍질을 이용하여 예언한다.
스키에인들의 왕이 병에 걸리면 예언자 세 명이 그 나라의 시민 중 누군가의 이름을 대어 거짓 맹세를 했다고 유죄를 선언해 참수한다. 그러나 끌려온 자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그 두 배의 예언자들을 부른다. 다시 온 예언자들이 끌려 온 자를 방면하면 최초의 예언자들 자신이 처형된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소가 끄는 수레에 결박하여 불에 태워 죽이는데 자식들도 함께 죽이지만 여자들은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서약을 할 때면 자신의 피와 포도주를 섞어 마신다.
왕들의 무덤은 게르로스 땅에 있는데 시신이 그곳에 도착하면 무덤 안의 침상에 안치하고 왕의 후궁 한 명과 시종들을 함께 매장한다. 그런 후에 거대한 봉분을 쌓아 올린다. 스키티에의 평민들이 죽으면 친척이나 친구들이 죽은 자를 수레에 싣고 40일 동안 친구들을 순회한다.
그들의 땅에는 대마가 자라는데 이것으로 옷을 만든다. 이들은 대마 씨를 불에 달구어진 돌멩이 위에 던져 증기를 발산시켜 목욕을 한다. 이것이 몸을 절대로 물로 씻지 않는 그들의 목욕이다. 여자들은 삼나무와 유향수를 잘게 갈아 얼굴에 바르고 자는데 다음 날 반죽을 떼어 내면 피부가 깨끗하고 윤기가 난다.
제76~80장 스키티아인들의 외국 관습 배격
스키티에인들은 외국의 관습을 따르기를 매우 꺼린다. 특히 헬라스의 관습을 더 꺼린다. 전에 아나카르시스가 세상의 여러 곳을 유람하다가 스키티에 땅으로 귀국할 때, 키지코스인들이 신들의 어머니에 대한 제전을 성대히 치르는 것을 보고 스키티에로 돌아와 여신에 대한 제식을 거행하자 왕은 활을 쏘아 그를 사살했다. 그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외국의 관습을 따르고 헬라스인과 교제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왕의 아들 스킬레스가 이스트리에 태생인 그의 어머니에게 헬라스의 언어와 문자를 배웠다. 왕이 죽자 스킬레스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스키티에의 생활 방식보다 헬라스의 방식을 훨씬 더 선호하여 이웃 도시에 가서는 헬라스 복장으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보리스테네스 안에 집을 짓고 그곳의 여성과 혼인하였다. 그가 바코스 디오니소스의 제의에 입문하려고 거행하려고 할 때 그의 대저택에 벼락이 내리쳤다. 집이 모두 불에 탔지만 스킬레스는 끝까지 제의를 수행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스키티에인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그의 형제를 왕으로 옹립했다. 왕은 스킬레스의 목을 벴다.
제81~82장 스키티아인들의 인구수와 헤라클레스 발자국
스키티에인들의 인구수를 알려면 액삼파이오스라는 지역에 있는 청동 혼주
용기의 화살촉을 세어봐야 한다. 이 혼주용기는 파우사니에스가 봉헌한 것이다. 아리안타스 왕이 인구수를 알고 싶어서 모든 스키티에인들에게 각자 화살촉을 하나씩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이에 막대한 양의 화살촉이 모아졌고 왕은 그것으로 이 청동 용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강들은 크기가 최대로 크고, 그 수가 최다이다. 그리고 광대한 평원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곳 티레스 강변의 바위에는 헤라클레에스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것은 사람의 발자국 모양과 흡사하고 크기는 2페키스에 이른다.
제83~144장 다레이오스의 스키티아 원정..............................................................................................452
제83~98장 원정군의 진로와 이스트로스 강 도강
다레이오스는 스키티에인 원정을 준비하며 여기 저기에 사절들을 보내 일부에게는 육군을, 일부에게는 함대를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이며 다레이오스의 동생인 아르타바노스가 스키티에 원정을 말렸으나 듣지 않고 스키티에를 향하여 수사를 떠났다.
그는 보스포로스을 지나 키아네아이로 항해했다. 다레이오스는 극소의 한 곶에 앉아서 폰토스의 장관을 바라보았다. 폰토스는 바다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곳이다. 헬레스폰토스는 아이가이오스 해로 흘러나간다.
다레이오스는 폰토스를 살펴본 후 다리 쪽으로 귀항했다. 그 다리를 건설한 자는 사모스인 만드로클레에스였다. 왕은 그것에 석주를 세우고 자신이 거느리고 온 종족의 명단을 새기게 했는데 하나는 아시리에 문자로 다른 하나는 헬라스 문자로 새기게 했다. 그들은 함대를 제외하고 기병까지 합해 70만에 달했으며 선박도 600척이 소집되었다. 그 후 다레이오스는 부교가 마음에 들어 그것을 건설한 만드로클레에스에게 온갖 선물을 하사했다. 그리고 그는 에우로페로 건너갔다. 다레이오스는 피부병을 치료하는 데 특효가 있다는 테아로스 강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도 석주를 하나 세웠다. 왕은 아르테스코스라는 강에 이르러 그곳에 거대한 돌무더기를 남기고 계속 행군해 갔다.
이스트로스 강에 도달하기 전에 다레이오스가 가장 먼저 정복한 것은 자신들이 죽지 않는다고 믿는 게타이인들이었다. 트레이케인, 키르미아나인, 닙사이오이인들은 저항 없이 스스로 항복했다. 트레이케인 중 가장 용맹한 자들인 게타이인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다가 곧바로 예속 되었다. 이 트레이케인들은 천둥과 번개가 치면 하늘을 향해 활을 쏘면서 신을 위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 이외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이 믿는 살목시스 신은 인간이었고, 사모스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자유인이 되어 부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이대 트레이케인들은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몹시 우매한 자들이었다. 이 살목시스는 헬라스의 현자 피타고레스와 함께 지내며, 이오네스인들의 생활 방식과 관습을 알게 되었다. 살목시스는 최상류층 시민들을 연회에 초대하여 영생불멸의 삶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의 은둔처를 마련해 트레이케인들에게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부터 그가 말한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타이인들은 페르시스인들에게 정복당한 후 군대를 따라 행군했다. 한편 다레이오스와 군대가 이스트로스 강에 이르러 모두가 강을 건너자, 왕은 이오네스인들에게 부교를 해체하라고 명했다. 그러자 미틸레네인들의 장군인 코에스가 부교를 해체하지 말고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여 귀로를 확보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자 왕은 유익한 조언이라며 좋아했다.
제99~101장 스키티아의 지형
트레이케 땅은 스키티에 땅보다 바다 쪽으로 더 나와 있다. 트레이케가 만을 이루는 곳에서 스키티에가 시작되고 하구가 동쪽으로 향해 있는 이스트로스 강도 그곳에서 바다로 흘러 나간다.
제102~120장 스키티아 주변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스키티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두 면은 바다와 접해 있고 내륙 쪽의 경계 길이와 해안 쪽의 경계 길이가 아주 똑같다. 스키티에인들은 그들 혼자만으로는 다레이오스의 군대를 물리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 이웃 지역들에 사절들을 보냈다. 이 때 함께 모인 왕들은 타우로이인과 아가티르소이인, 네우리스인, 안드로파고이인, 멜랑클라이노이인, 겔로노스인, 부디노이인, 사우로마타이인들의 왕들이었다.
타우로이인들은 난파선의 조난자들과 자신들이 약탈하여 붙잡은 헬라스인들을 쳐녀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그들이 제물을 바치는 이 여신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라고 한다. 이 타우로이인들은 약탈과 전쟁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아가티르소이인들은 그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자들이며 가장 성대하게 금장식을 하고 다닌다. 그들은 아내를 공유하고 동침하는데 이는 그들이 형제가 되고 친척이 되어 싸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네우리스인들은 수많은 뱀들이 출현하여 그들의 국토를 버리고 부디노이인들과 함께 살았다.
안드로파고이인들은 모든 인간 중에서 습속이 가장 야만적인 자들이며 정의에 대한 인식도 없으며 법률도 없다. 안드로파고이인들은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육을 먹는다.
멜랑클라이노이인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는다.
부디노이인들은 대규모 종족으로 인구가 많은데, 모두들 눈은 잿빛이고 머리털을 붉다. 그들에게는 나무로 지어진 도시가 있는데 바로 겔로노스이다. 그들은 디오니소스 제전을 3년마다 여는데 광란의 잔치를 벌인다. 그들은 옛날의 헬라스인들이었기 때문에 언어도 일부는 스키티에어이고 일부는 헬라스어다.부디노이인들과 겔로노스인들은 언어가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사우로마타이인들은 이렇게 전한다. 헬라스인들이 아마조네스들과 싸움을 한 적이 있었는데 헬라스인들이 그녀들을 생포하여 배에 싣고 출항하는 중에 해상에서 아마조네스가 남자들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배를 조종할 수 없었던 아마조네스는 표류하다가 크렘노이에 닿게 되었다. 그곳으로 상륙하여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나왔으며 맨 처음에 스키티에인들의 땅을 약탈했다. 스키티에인들은 아마조네스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과 친분을 쌓아 아내로 맞아들였다. 아마조네스는 스키티에인들에게 재산을 가져와서 함께 이 땅을 떠나 타나이스 강을 건너가서 살자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역에 정착했다.
다레이오스와 싸울 왕들이 모여 있을 때, 스키티에인의 사절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페르시스 왕이 다른 대륙을 모두 정복했으며 이스트로스 강에도 다리를 놓아 이 지역도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한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면서 공동의 대응을 하자고 했다. 겔로노스와 부디노이, 사우로마타이인들의 왕들은 스키티에인들 돕기로 약속했지만 아가티르소이인과 네우리스인 안드로파로이인, 멜라클라이노이인, 타우로이인들의 왕들은 스키티에인들이 먼저 페르시스인들에게 해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서 도와줄 수 없다고 하였다.
스키티에인들은 이런 대답을 듣자, 이 동맹국들이 자신들에게 합류하지 않을 것이니 공공연히 정면 대결은 벌이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후퇴하기로 했으며 또 물러나는 도중에 있는 우물과 샘들을 다 흙으로 메우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군대를 둘로 나누어 작전을 세웠다. 그런 연후에 스키티에인들은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서 협의를 거쳐 좋다고 생각되면 적을 공격하기로 했다.
제121~129장 스키티아인들의 후퇴와 페르시아군의 추격
스키티에인들은 이런 계획을 세워 놓고 다레이오스의 군대와 맞섰는데 가장 뛰어난 기병들을 선발대로 파견했다. 그들은 미리 가족과 식량과 가축을 북쪽으로 이동하라고 일러 놓았다.
스키티에 선발대는 페르시스인들보다 하루 걸리는 거리만큼 앞선 곳에서 진을 쳤으며 땅에난 모든 초목들을 제거했다. 페르시스인들은 스키티에 기병들을 발견하고 계속 후퇴하는 그들을 추적하며 전진하여 마침내 사우로마타이를 지나 부디노이인 땅에 도달했다. 페르시스인들은 스키티에와 사우로마타이를 지나는 동안 땅이 메말라 있어 아무런 해를 입힐 수 없었다. 그러나 부디노이인들 땅에 들어 갔을 때 아무도 없는 목조 성채를 발견하고 불태워 버렸다. 계속 스키티에인들을 추격하다 보니 황무지에 이르게 되었다.
다레이오스는 황무지에서 군대를 주둔하게 했다. 그런 후 그는 거대한 요새8개를 건설하게 했다. 그가 이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스키티에인들은 위쪽으로 우회하여 스키티에로 돌아갔다. 다레이오스가 되도록 빨리 군대를 진군시켜 스키티에에 이르렀을 때 두 스키티에인 부대와 마주쳤고 이에 그들을 추격했다. 스키티에인들은 그들의 계획에 따라 동맹을 거부한 자들의 땅으로 들어갔다. 스키티에인들과 동맹을 거부한 자들의 땅을 차례대로 거쳐가며 페르시스인들과 전쟁을 하여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멜랑클라이노이인과 안드로파고이인, 네우리스인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황무지로 도주해 버렸다. 그런데 아카티르소이인들은 스키티에인들에게 자신들의 국경 안으로 들어오지 말도록 금지하여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다레이오스는 스키티에 왕에게 기병을 보내 싸우지도 않고 도망만 다니려면 너희의 주인에게 흙과 물을 바치라고 전하게 했다. 이에 스키티에 왕은 스키티에는 빼앗길 도시도 없고 점령되거나 약탈당할 경작지도 없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 싸우고 싶다면 조상의 무덤을 찾아내 파괴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스키티에의 왕이 나의 주인으로 여기는 것은 나의 조상인 제우스와 스키티에인들의 여왕인 히스티에뿐이라고 했다, 스키티에 왕들은 예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가 충천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우로마타이인들과 함께 편성한 부대를 이오네스인들에게 보내 이들과 협상하도록 지시했다. 이오네스인들은 이스트로스 강에 놓인 부교를 지키고 있던 자들이었다. 뒤에 남은 스키티에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이 식량 수집에 나설 때마다 공격하여 페르시스 기병들을 패주시키곤 했다.
스키티에에는 원래 추위 때문에 나귀와 노새를 생산하지 못해서 스키티에 전역 어디에도 나귀와 노새가 없다. 그런데 페르시스인들의 나귀 울음소리를 들은 스키티에 말들이 깜짝 놀라 당황하며 혼란스러워했다. 이것은 페르시스인들에게는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다.
제130~144장 페르시아군의 곤경과 퇴각
스키티에의 산발적인 게릴라 전법에 페르시스인들은 크게 동요하게 되었다. 스키티에인들은 그들을 그곳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여 물자 부족으로 고통을 주려는 작전이었다. 스키티에인들은 일부러 가축들과 목자들의 일부를 남겨두고 자신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갔는데 페르시스인들은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가축들을 잡아갔고 그 성과에 의기양양해 하곤 했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마침내 다레이오스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스키티에 왕들은 이를 알아채고 사절을 보내 왕에게 새, 쥐, 개구리 한 마리씩과 화살 다섯 개를 선물로 전달했다. 페르시스인들이 의아하게 여겨 선물의 의미를 묻자 페르시스인들이 지혜롭다면 선물의 의미를 알 것이라고 했다. 페르시스인들은 그에 대해 서로 협의했다. 다레이오스의 생각은 스키티에인들에 항복의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고브리에스는 페르시스인들이 빨리 달아날 것을 요구한다는 의미로 보았다.
한편 이스트로스의 다리를 지키는 이오네스인들을 만나러 간 스키티에 군대는 다리에 도착하여 이오네스인들에게 자신들의 말을 들으며 자유를 주겠으니 다레이오스가 지키라고 한 날까지만 다리를 지키다가 그 이후에는 떠나도록 하라고 했다. 이오네스인들은 그러마고 했다.
선물을 다레이오스에게 보낸 후 스키티에인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정렬해 있었는데 어디선가 튀어나온 토끼 한 마리를 잡으려고 소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것을 안 다레이오스는 선물의 의미를 파악한 고브리에스의 견해가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과 군대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느냐를 의논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고브리에스는 허약한 병사들과 나귀들을 궁지에 내버려두고 이스트로스 강으로 가자고 조언했다. 다레이오스는 고브리에스의 말대로 병사들과 나귀들을 남겨놓은 채 이스트로스 강으로 진군했다. 이튿날 동이 트자 남겨진 병사들은 자신들이 다레이오스에게 배신당했음을 알고 스키티에인들에게 항복했다. 스키티에인들은 곧장 이스트로스 강 쪽으로 페르시스인들을 추격했다. 스키티에인들은 기병이었고 페르시스인들은 보병이었던 까닭에 스키티에인들이 먼저 다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오네스인들이 아직 다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자 빨리 다리를 파괴하고 여기를 떠나라고 했다. 그때 이오네스인들이 협의를 벌였는데 밀티아데스의 의견은 스키티에인들의 말을 따르고 이오니에를 해방하자는 것이었는데 밀레토스의 히스타아이오스는 다레이오스 덕분에 자신들의 국가에서 참주 노릇을 하고 있으니 다레이오스 권력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했다. 결국 히스티아이오스의 의견이 힘을 얻어 스키티에인들을 속이기로 하였다. 스키티에인들이 보이는 곳까지는 다리를 해체하여 스키티에인들에 협력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그 다음부터는 페르시스인들을 기다리기 위해 다리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다레이오스는 이오네스인들이 다리를 다시 놓아주자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스키니에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을 놓치자, 이오네스인들에 대해 비겁한 자라고 비판하며 노예에 딱 어울리는 예속민이라고 조롱을 퍼부었다. 다레이오스는 아시에로 건너갔고, 에우로페에는 다레이오스가 크게 칭송했던 메가바조스가 사령관으로 남았다. 메가바조스는 헬라스폰토스 지역에서 페르시스 편을 들지 않는 자들을 정복해 나갔다.
제145~205장 페르시아의 리비아 원정...................................................................................................479
제145~167장 테라와 키레네의 건국과 역사
페르시스인들은 그와 똑같은 시기에 리비에에 대한 군사 원정을 전개했다. 예전에 아르고호 승선자들의 후손들이 브라우론에서 여자들을 약탈한 펠리스기에인들에 의해 쫓겨난 일이 있다. 이때 그들은 펠라스기에인들에게 렘노스에서 쫓겨나자 라케다이몬으로 갔다. 이에 라케다이몬인들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미니아이인이고 아르고호의 승선자들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자 그들을 받아들여 땅을 분배해주며 살도록 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 되어 곧 미니아이인들이 왕위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다. 이에 라케다이몬인들은 이들을 처형하려고 했을 때, 미니아이인들이 감옥을 탈출하여 산으로 들어갔다.
마침 이 시기에 아우테시온의 아들 테라스가 라케다이몬에서 나가 식민시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테라스는 카드모스의 후손이었고, 아리스토데모스 아들들의 외숙부였다. 이 소년들이 아직 어렸을 때, 테라스는 섭정으로 스파르테의 왕권을 행사했었다. 그런데 조카들이 장성하여 왕위에 오르자 친족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지금은 테라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칼리스테라고 불린 섬에는 포이니케인인 포이킬에스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 카드모스가 에우로페를 찾아 다니다가 테라에 기항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자신의 친척인 멤블리아레오스를 섬에 남겨 두었다. 이들은 칼리스테에서 테라스가 라케다이몬에서 오기 전까지, 여덟 인간 세대 동안 살고 있었다.
테라스는 여러 부족 사람들로 이루어진 무리를 데리고 이들에게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칼리스테 사람들을 자신의 친족으로 여기며 함께 살고자 했다. 그 때 미니아이인들이 감옥에서 탈출하여 테이게톤에서 머물고 있었는데라케다이몬인들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자 테라스가 그들을 데리고 떠나겠다고 하여 멤블리아레오스의 후손들에게로 출항했다. 미니아이인들은 파로레에타이인들과 카우코네스인들의 땅으로 가서 그들을 몰아낸 다음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그 섬은 식민시 건설자의 이름을 따서 테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테라스의 부족 남자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자, 그들은 신탁에 따라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복수의 신들의 성소를 건립하여 그들의 자식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바로 이 테라스의 후손이며 테라 섬의 왕이던, 그린노스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델포이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미니아이인의 일원인 바토스를 동행시켰다. 그린노스가 다른 일로 신탁을 구하려 했을 때 피티에 여사제는 그에게 리비에에 도시를 건설하라는 신탁을 내렸다. 그러자 그린노스가 바토스를 가리키며 그 일은 젊은이에게 맡기라고 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나는 동안 테라에는 지독한 가뭄이 들어 섬의 나무들이 단 한 그루만 남고 모두 말라 죽었다. 이에 테라인들이 신탁을 구하자 피티에 여사제는 리비에에 식민시를 세우라고 했다.
그들은 리비에에 가 본 적이 없었으므로 크레테 섬을 돌아다니며 리비에에 간 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그곳에서 코로비오스라는 조개잡이 어부가 표류하다가 리비에의 플라테아 섬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코로비오스의 안내를 받아 그 플라테아 섬에 도달한 다음 코로비오스에게 식량을 주고 자신들은 테라로 귀항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테라인들이 돌아오지 않자 코로비오스는 모든 것이 동나고 말았다. 그 후 플라테아 섬으로 표류해 온 사모스의 콜라이오스라는 선장의 도움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섬에서 출항하여 아이깁토스로 가려고 했지만 동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타르테소스에 닿아 상품 교역으로 많은 이익을 얻게 되었다. 사모스인들은 그들이 얻은 이익으로 아르골리스 양식의 청동 용기를 만들었다. 그 가장자리에는 빙 둘러 그립스의 두상들을 배열했는데 이것을 헤레 신전에 봉헌했다. 이 일을 계기로 키레네인들과 테라인들은 사모스인들과 처음으로 든든한 우애를 맺게 되었다.
한편 테라인들은 코로비오스를 섬에 남겨 놓고 테라에 돌아와서, 자신들이 리비에 앞바다의 한 섬에 식민시를 세웠다고 보고했다. 이에 테라인들은 지역 전체에서 인원을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바토스를 그들의 왕으로 삼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테라인들이 말해 준 것이다. 키레네인들이 말해준 바토스 이야기는 이렇다. 크레테에 오악소스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에테아르코스가 그곳의 왕이었다. 그는 딸을 두고 상처한 후에 다시 혼인을 했는데 그 여자가 계모 노릇을 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계모의 음모를 믿은 에테아르코스는 딸을 바닷속에 던져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딸은 테미손이라는 테라의 상인에게 구출되어 폴림네스토스의 후실이 되었다. 그 후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는 혀꼬부랑이에 말더듬이였다. 그가 바토스였다. 피티에 여사제는 그가 장차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바토스가 장성하여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피티에 여사제에게 묻자 이번에도 리비에에 식민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내렸다. 바토스는 아무 힘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식민시를 세우라고 하느냐고 하였지만 이번에도 같은 신탁이 내려졌다. 바토스는 신탁 중간에 그곳을 떠나 테라로 향했다.
그후 바토스와 테라인들에게 역경이 닥쳐왔다. 그들은 델포이에 사절을 보내 현존하는 불행에 대해 물었지만 피티에 여사제는 리비에의 키레네에 식민시를 세우면 좋을 것이라는 신탁을 내렸다. 그리하여 바토스는 플라테아에 식민시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2년 동안 지냈지만 더 나아진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델포이에 다시 신탁을 묻게 되어, 드디어 리비에 본토로 진입하게 되고 그들은 리비에 본토의 한 지역에 식민했다. 그곳은 아지리스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그곳의 양쪽에는 최고로 아름다운 계곡이 있고 한쪽으로 강이 흐른다. 이곳에서 그들은 6년을 살았다.
그런데 7년째 되는 해에 리비에인들이 그들에게 더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그곳에서 떠나 달라고 권유했다. 리비에인들은 테라인들이 아름다운 곳을 통과할 때 보지 못하게 하려고 밤에만 이동시켰다.
식민시를 건설한 바토스는 40년간 지배했다. 그러나 그 후에는 피티에 여사제가 모든 헬라스인들에게 키레네인들과 함께 리비에에 식민시를 건설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키레네에 모여들었는데 키레네 주변에 거주하는 리비에인들과 왕은 많은 토지를 빼앗기자 아이깁토스에 사절을 보내 아이깁토스와 아프리에스에게 자신들의 일신을 의탁했다. 아프리에스는 군대를 소집하여 키레네인들과 교전을 벌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아이깁토스인들은 아프리에스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바토스에게 아르케실레오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아르케실레오스가 왕이 되자 자신의 형제들과 싸움을 벌여 내쫓았다. 형제들은 리비에의 다른 지역으로 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바르케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그 후 아르케실레오스와 형제들은 리비에인들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참패를 당하고난 후 아르케실레오스는 형제에게 목 졸려 죽었다. 아르케실레오스의 왕위는 그의 아들 바토스가 물려받았는데 그는 절름발이였다. 키레네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 지 델포이 신탁을 물었는데 피티에 여사제는 그들에게 아프카디에의 만티네에에서 조정자를 한 명 데려가라고 명했다. 이에 키레네인들이 요청하자 만티네에인들은 데모낙스를 보내주었다. 데모낙스는 키레네에 와서 모든 사정을 파악한 후 그들을 세 부족으로 나누었다. 또한 그는 바토스 왕을 위해 일부 영지와 성직들을 따로 떼 놓고, 왕의 권한들을 모두 인민들이 갖도록 넘겨주었다.
그런데 아르케실레오스가 왕이 되자 왕의 특권과 관련하여 큰 분란이 일어났다. 절름발이 바토스와 아르케실레오스는 데모낙스가 제정한 체제를 따르기를 거부하고 왕의 특권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르케실레오스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전을 치르다가 패배하여 사모스로 달아났고 그의 어머니페레티메는 살라미스로 피신했다. 이때 살라미스는 에우엘톤이 통하치고 있었는데 델포이에 아주 볼만한 향로를 봉헌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에우엘톤에게 그들을 키레네로 복귀시켜 줄 군대를 요청했지만 에우엘톤은 들어주지 않았다.
아르케실레오스는 사모스에 머물면서, 토지 분배를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대규모 군대가 모이자 그는 델포이에 가서 자신의 귀환에 대한 신탁을 구했다. 피티에 여사제는 록시에스께서는 그들에게 키레네의 왕위를 주었는데 이제 더 이상 하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살라는 신탁을 내렸다.
아르케실레오스는 사모에서 데려온 병력을 이끌고 키레네로 돌아가 국정을 장악했다. 그런 후 그는 신탁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보복하려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완전히 나라 밖으로 달아났고, 일부는 아르케실레오스에게 잡혀 처형을 위해 키프로스로 보내졌다. 그러나 그들은 표류하여 크니도스에 닿게 되었고 크니도스인들이 그들을 구조하여 테라로 보내 주었다. 한편 또 다른 키레네인들은 아르케실레오스에게 불태워 죽었는데 그때서야 피티에 여사제의 신탁을 떠올리며 두려워했다. 아르케실레오스가 장인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바르케인들과 키레네에서 나온 도망자들이 그를 발견하고 살해했다. 그리하여 아르케실레오스는 자신의 운명을 완수했다.
아르케실레오스가 자신을 파멸시키는 행동을 저지르고 바르케에 가서 살고 있을 때에 그의 어머니 페레티메는 아들의 특권을 장악하고 모든 일을 관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아이깁토스로 도망갔다. 페레티메는 아이깁토스에 도착하자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호소했다.
캄비세스의 총독 아리안데스는 그녀에게 아이깁토스의 육군과 해군을 제공했다. 그러나 아리안데스는 군대를 파견하기 전에 아르케실레오스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보았다. 그러자 바르케인들은 자신은 모두가 자신이 한 짓이라고 했다. 아리안데스는 이 말을 듣고 페레티메와 군대를 파견했다. 이런 사유가 원정의 구실이었지만 리비에를 정복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리비에에는 온갖 종족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소수만이 페르시스 왕에게 예속되었고 대부분은 다레이오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168~180장 트리토니스 호수 동쪽 해안의 리비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아이깁토스를 기점으로 맨 처음에 거주해 있는 리비에인들은 아디르마키다이인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아이깁토스인들의 관습을 따르지만 복장에서는 다른 리비에인들과 똑같은 옷을 입는다. 이곳 여자들은 정강이에 청동 발찌를 두르고 다니며 혼인하게 될 여자들을 왕에게 데려가 보인다. 이 아디르마키다이인들은 아이깁토스에서 플리노스 항구에 이르기까지 살고 있다. 이들과 이웃한 길리가마이인들은 그들의 거주 지역은 서쪽으로 아프로디시아스 섬까지 뻗어있다. 길리가마이인들의 서쪽으로는 아스비스타이인들이 인접해 있다. 이들은 키레네 너머의 내륙에 사는데 리비에인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사두마차를 잘 몬다. 그들의 서쪽으로는 아우스키사이인들이 이웃해 있다.
또 아우스키사이인들의 서쪽으로는 대규모 종족인 나사모네스인들이 인접해 있다. 이들은 여름에 대추야자를 수확하고 메뚜기를 말려 가루로 만들어 우유에 타서 먹는다. 일부다처제이며 마사게타이인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아내를 공유한다. 나사모네스인 남자가 처음 혼인하면 신부가 첫날밤에 모든 하객들과 두루 관계를 갖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공정하고 훌륭한 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걸어 맹세하는데 이들 무덤에다 손을 대고 맹세를 한다.
나사모네스인들의 인접 주민은 프실로이인들이다. 그들은 극심한 가뭄이 들자 이를 남풍에 의한 일이라 여겨 남풍을 원정하러 나섰다가 사막에서 모래에 묻혀 멸종되었다. 그들이 다 없어지자 그 땅은 나사모네스인들이 차지했다.
이들의 내륙에는 야생동물 지대에 가라만테스인들이 사는데 그들은 모든 사람을 기피하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사모네스인들의 서쪽에는 해안을 따라 마카이인들이 인접해 있다. 그들은 도가머리 모양으로 머리를 깎는다. 그들은 전쟁할 때 타조 가죽으로 만든 방패를 들고 다닌다.
이들과 이웃한 자들은 긴다네스인들이다. 이곳 여자들은 남자와 잘 때마다 하나씩의 발찌를 착용해서 가장 많은 발찌를 찬 여자는 그들 중 최고의 여자로 간주된다.
긴다네스의 땅 옆에는 로토파고이인들이 사는데 그들의 로토스의 열매만을 먹고 산다.
로토파고이인들의 이웃에는 마클리에스인들이 사는데 그들의 땅은 트리톤이라는 큰 강에까지 뻗어 있다. 이 강은 거대한 트리토니스호수로 흘러 나가는데 이 호수에는 플라 섬이 있다. 이 섬에 식민시를 세우라는 신탁이 라케다이몬인들에게 내려졌었다고 한다.
아르고호가 펠리온 산의 기슭에서 건조된 후, 이에손은 델포이에 가려고 청동 삼족의자와 다른 제물들을 싣고서 펠로폰네소스를 돌아 항해했다고 한다. 그런데 항해 도중에 북풍이 불어 리비에로 가게 되었는데, 육지를 발견하기에 앞서 트리토니스 호수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에손이 출구를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 때 트리톤이 나타나 도와줬고, 그 대가로 삼족의자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성소 안에 삼족의자를 들여놓은 트리톤은 의자 위에서 예언을 했는데 아르고호 승선자들의 후손 가운데 누군가가 그 삼족의자를 가져간다며 트리토니스 호수 주변에 반드시 100개의 헬라스 도시들이 세워지리라는 것이었다. 그곳의 토착 리비에인들은 이 말을 듣고 삼족의자를 감추었다.
이들 마클리에스인들의 이웃에는 아우세스인들이 있다. 아우세우스 처녀들은 매년 열리는 아테나이 제전에서 두 패로 나뉘어 돌멩이와 몽둥이를 가지고 서로 싸운다. 그들은 여자들을 공유하여 자유롭게 동침한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가장 닮은 남자의 아이라고 여긴다. 이상은 해안에 거주하는 리비에 유목민들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제181~185장 내륙의 리비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이들이 사는 너머의 내륙 쪽에는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리비에 땅이 있고, 이 너머에는 테바이에서 헤라클레에스 기둥들에 이르는 사막 구릉이 펼쳐져 있다. 이 사막 구릉에는 약 10일 거리 간격으로 소금 알갱이들이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 언덕을 이루고 있다. 이들 각 언덕의 꼭대기에는 소금 한가운데에서 차갑고 달콤한 샘물이 솟아 나온다. 테바이에서 10일 걸리는 거리에는 암몬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테바이에우스 제우스에서 기원한 신전이 있다. 그곳에는 정오에는 매우 차가워지다가 자정이 되면 뜨거워지는 태양의 샘이 있다. 암몬인들 이웃에는 아우길라가 있다. 이곳도 소금 언덕이 있고, 나사모네스인들이 대추야자를 따러 드나드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아우길라의 옆에는 대추야자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가라만테스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대단히 큰 종족으로 소금 위에 흙을 덮고 그곳에 씨를 뿌린다. 가라만테스인들에게는 뒤로 가며 풀을 뜯는 소들이 있다. 가라만테스 이웃에는 각 개인에게 이름이 없는 종족인 아타란테스가 있다. 태양이 너무 뜨거울 때는 태양에게 저주를 한다. 소금 언덕 부근에는 아틀라스 산이 있다. 산은 협소하고 둘레가 원형으로 되어 있다. 그 산은 너무 높아서 꼭대기를 볼 수 없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이 산이 하늘의 기둥이라고 한다. 그 주민들은 산의 이름을 따서 아틀란테스라고 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그 이후로는 비가 오지 않는 지역으로 소금 덩어리로 지은 집들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구릉 너머 남쪽 리비에는 사막이라서 짐승도 없고 나무도 없다.
제186~190장 트리토니스 호수 동쪽의 리비아인들의 유목민 관습
이렇게 아이깁토스의 트리토니스 호수까지의 리비에인들은 유목민으로 육류를 섭취하고 우유를 마신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깁토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암소 고기를 먹지 않고 돼지를 키우지 않는다. 키레네 여자들도 아이깁토스의 이시스 때문에 암소 고기를 먹지 않고 이시스를 기려 단식도 하고 제전도 연다. 바르케 여인들은 암소 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트리토니스 호수 서쪽에 사는 리비에인들은 유목민이 아니며 따르는 관습도 다르다. 그들은 아이들이 네 살이 되면 양털 기름으로 정수리 혈관을 지진다. 이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점액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이 해를 입는 것을 영원히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때문에 건강하다고 하며 실제로 리비에인들은 우리가 아는 인간 중에서 가장 건강한 자들이다.
이 유목민들은 태양과 달에게만 제사를 지낸다. 모든 리비에인들은 다 이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트리토니스 호수 부근에 사는 자들은 우선 아테나이에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다음에 트리톤과 포세이데온에게 지낸다.
이 유목민들은 모두 헬라스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은 자를 매장하는데 나사모네스인들만 예외다. 나사모네스인들은 시신을 앉은 자세로 매장한다.
트리톤 강의 서쪽 아우세우스인들의 이웃에는 농경 리비에인들이 있다. 이들은 관례적으로 자신들의 집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막시에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트로이에인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 지역과 그 서쪽의 나머지 리비에 지역은 유목민들보다 야생동물이 훨씬 더 많고 나무도 더 우거져 있다.
제191~196장 트리토니스 호수 서쪽의 리비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유목민들의 지역에는 영양, 가젤, 나귀 등이 있다. 또 여우, 하이에나, 자칼 , 표범. 악어, 타조 등이 산다. 사슴과 멧돼지는 리비에에 하나도 없다.
리비에는 막시에스인들과 인접해 사는 자우에케스인들은 전쟁이 나면 여자들이 전차를 몰고 나간다. 자우에케스인들의 이웃에는 기잔테스인들이 사는데 이들은 벌꿀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그들은 몸에 홍토를 바르며 원숭이를 잡아 먹는다. 기잔테스인들의 앞 바다에 있는 섬에는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들이 풍성하다.
제197~199장 리비아의 지리와 생산
이 땅에는 우리가 아는 한 네 종족이 살 뿐이고 더는 없다는 점과 그 종족들 중 둘은 토착민(리비에인과 아이티오피에인)이고, 둘(포이니케인과 헬라스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추가로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리비에는 아시에와 에우로페에 견줄 만큼 그렇게 우량한 땅은 아니지만 키닙스 지역만은 예외다. 그곳은 세상에서 데메테르의 결실을 최대로 생산하는 지역과 필적하며 토양은 흑토이고, 샘은 풍부하다. 리비에의 이 지역에는 비가 오는 것이다.
키레네 지역은 유목민들이 사는 리비에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데 이 지역에서는 정말 경이로운 세 차례의 수확기를 갖는다. 맨 먼저 해안 지대에서 곡물을 수확하고 나면 해안 위쪽의 중간 지대와 고지대의 생산물이 차례로 여문다. 그리하여 키레네인들에게는 수확기가 8개월 동안 지속된다.
제200~205장 페르시아군의 리비아 원정
한편 아리안데스가 페레티메의 복수를 위해 아이깁토스에서 파견한 페르시스들은 바르케에 도착하자, 도시를 포위 공격하며 아르케실레오스 살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했다. 바르케인들이 그들의 시민 전체가 공동 책임이 있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페르시스인들은 바르케를 9개월 동안 공격하면서 그동안에 성벽으로 통하는 땅굴을 파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한 대장장이가 그 땅굴을 찾아내어 바르케인들은 반대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페르시스인들을 죽였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양측에서 사망자가 다수 생기자 육군 지휘관 아마시스는 회담을 하자고 바르케인들을 초청했다. 바르케인들은 페르시스 왕에게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페르시스인들은 바르케인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기로 한 협약 체결에 그들은 동의했다. 그러나 서약 후에 아마시스의 지략에 빠진 바르케인들의 성이 함락되었고, 페레티메는 아르케실레오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페르시스인들은 바르케인들은 노예로 삼은 후, 되돌아갔다. 그들이 키레네 시 앞에 이르렀을 때, 키레네인들은 어떤 신탁을 이행하기 위해, 페르시스인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통과해 가도록 해 주었다. 군대가 키레네 시를 통과하는 동안 해군 지휘관인 바드레스가 도시를 점령하자고 주장했지만 육군 지휘관인 아마시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헬라스 도시로는 오직 바르케만을 공격하도록 파견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곧 키레네를 점령하지 않은 것에 후회하였는데 그들이 다시 도시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키레네인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페르시스 군대가 노예로 삼은 바르케인들은 왕의 앞으로 끌려갔는데 다레이오스는 이들에게 한 촌락을 주어 거주하도록 했다.
한편 페레티메도 인생을 행복하게 마감하지는 못했다. 과도한 복수는 신들의 증오를 산다는 것을 마치 인간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몸에 벌레가 끓어 죽은 것이다. 바토스의 딸 페레티메가 바르케인들에게 저지른 복수는 그러했고, 그처럼 지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