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제9권
역사 제9권
제1~24장 마르도니오스 군대의 재진격과 그리스인의 대응 ............................................................................................867
제1~11장 페르시아군의 아테네 재점령과 스파르타군의 출정
알렉산드로스가 귀환하여 아테나이인들의 말을 전하자, 마르도니오스는 테살리에를 떠나 아테나이로 군대를 이끌고 갔다. 테살리에 지도자들은 페르시스인들을 더욱더 부추겼다.
페르시스 군대가 보이오티에에 도착하자 테바이인들은 마르도니오스를 그곳에 붙잡아 두려 했다. 그리고 헬라스인들이 단합을 하면 누구도 제압할 수 없다면서 헬라스의 여러 나라의 유력자들을 돈으로 매수하면 쉽게 분열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도니오스는 그 조언을 무시했고, 아테나이를 다시 한 번 점령하겠다는 무서운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는 왕에게 좋은 소식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티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때도 아테나이인들을 전혀 보지 못했고 빈 도시를 점령했다. 왕이 먼저 점령하고 이번에 재점령할 때까지 열 달이 걸렸다.
마르도니오스는 아테나이에 입성하자, 살라미스에 무리키데스를 보내 알렉산드로스가 전했던 제안을 다시 전하게 했다. 무리키데스가 협의회에 나가 제안을 전하자 혹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찬성하는 그를 돌로 쳐 죽였고, 그의 가족까지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아테나이인들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지원군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그동안 아티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지원군은 오지 않고 침략군이 가까이에 왔다는 것을 알고 모든 재산을 옮기고, 그들 자신도 살라미스로 건너갔다. 그리고 라케다이몬인들에게 침략군에 대항하지 않는 그들을 비난하면서 아테나이인들이 편을 바꿀 경우를 예상하며 협박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이때 히아킨티아 제전을 거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장 주된 관심은 신을 잘 모시는 것이었다. 아테나이 사절들이 동맹국들과 함께 라케다이몬에 도착하여 말했다. 페르시스인들이 아테나이와 협약을 맺기를 원하지만 그에 응하지 않고 거절했음을 밝히고 라케다이몬인들이 하루 빨리 군대를 보내 전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감찰관들은 대답을 미루며 열흘을 보냈다. 이 기간에 이스트모스의 방벽을 쌓는 일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그들에게 아테나이인들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결국 스파르테인들이 답변을 주고 출정하게 되었다. 사절들이 떠나기 하루 전날 라케다이몬에서 외국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테게에인 킬레오스가 사절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약 아테나이인들이 페르시스와 협약을 맺게 된다면 이스트모스에 아무리 튼튼한 방벽이 축조되었다 해도 페르시스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아테나이인들의 말을 듣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즉시 군사를 꾸며 출정시켰고, 파우사니에스가 지휘했다. 그러나 날이 밝자 사절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들 역시 각자의 나라로 떠나기로 하고 감찰관들에게 갔다. 그리고 이제 아테나이인들은 그대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동맹국들도 부족하니, 최상의 조건으로 페르시스와 협약을 맺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라케다이몬인들이 벌써 군대가 출정했음을 알리자 사절들은 깜짝 놀라서 추가된 병력과 함께 그 군대를 뒤쫓아 서둘러 이스트모스로 향해 갔다.
제12~18장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에서 테바이로 물러남
한편 아르고스인들은 파우사니에스와 그의 군대가 스파르테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아티케로 사절을 파견했다. 그들은 전에 마르도니오스에게 스파르테인이 출정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아르고스 사절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알리고 되돌아갔다.
마르도니오스는 그 말을 듣자 더는 아티케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테나이인들이 이제는 협약을 맺을 것으로 여겼지만 일이 성사되기 어려울 듯하자 아테나이를 불태우고 파괴한 후 철군했다. 지형적으로 불리한 아테나이보다는 테바이에서 싸우는 편이 기병에게 더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마르도니오스가 철군하여 행군하고 있을 때, 라케다이몬인 선발대가 메가라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당도했다. 그는 할 수 있다면 이들을 먼저 쳐부수고 싶어서 메가라로 향했다. 그곳은 에우로페에서 서쪽으로 가장 멀리까지 간 곳이었다.
그 후 마르도니오스에게 헬라스인들이 이스트모스에 집결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그는 데켈레에를 지나 되돌아갔다. 그는 다음날 테바이 땅인 스콜로스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군대를 위한 방벽을 만들었다.
이방인들이 공사를 하는 동안, 테바이인의 아타기노스가 성대한 연회에 마르도니오스와 페르시스인 50명을 초대했다. 연회는 테바이에서 베풀어졌다. 테르산드로스는 오르코메노스 저명인사 중 한 명인데 자신과 테바인 50명도 함께 참석했다. 연회 중에 페르시스인이 테르산드로스에게 말을 걸어 그대가 미리 알고 자신의 안전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알려 준다면서 머지 않아 이들 모두 가운데 소수만이 살아남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의 뜻에 의해 일어나는 일은 인간이 피할 수 없다며 인간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했다. 테르산드로스는 이 이야기를 플라타이아이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다른 자들에게도 전해 주었다고 했다.
마르도니오스가 보이오티에에 진을 치고 있는 동안에 이 지역 헬라스인들 가운데 페르시스 편을 든 자들은 모두 그에게 군대를 제공하고 아테나이 침입 때에도 동참했다. 하지만 그중 열렬히 페르시스 편을 들었던 포키스인들은 아테나이 침입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테나이 침입에 앞서 페르시스인들과의 전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9~24장 그리스군이 페르시아 기병 격퇴
라케다이몬인들은 이스트모스에 도착하자 그곳에 진을 쳤다. 그리고 여타 펠로폰네소스인들도 그 소식을 듣고 합류하기 위해 엘레우시스에 도착했다. 아테나이인들과도 합류하여 보이오티에의 에리트라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적들과 마주보고 키타이론 산기슭에 진을 쳤다.
마르도니오스는 헬라스인들이 평지로 내려오지 않자 전체 기병들을 그들에게 파견했다. 기병들은 헬라스인들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이때 마침 메가라인들의 진지가 공격 취약 지점에 있어서 기병들이 가장 세차게 공격을 하였다. 이에 메가라인들이 헬라스 장군들에게 사자를 파견해 지원 병력을 요청했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철수하겠다고 했다. 이에 아테나이인들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올림피오도로스가 지휘하는 300명의 아테나이인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의 다른 모든 헬라스인들을 지키기 위해 에리트라이에 진을 쳤으며 궁수들도 따로 뽑아 갔다. 그들은 오랫동안 전투를 벌였는데, 결국 기병 지휘관을 죽이는 성과를 얻었다. 지휘관은 갑옷을 잘 갖추어 입었기 때문에 그를 죽이기가 쉽지 않았으나 눈을 찔러 죽일 수 있었다.
아테나이인들에게 페르시스 기병들 전체가 진격해오는 것을 보자 전체 보병들이 그들을 도우러 왔다. 기병들은 시신이 된 지휘관을 거두어가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포기하고 물러났다.
페르시스 기병들은 진영에 도착하자 전 군대가 기병 지휘관 마시스티오스를 통렬하게 애도했다. 그는 페르시스인들과 왕에게 마르도니오스 다음으로 가장 존중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제25~89장 플라타이아 전투............................................................................................................................879
제25~32장 그리스군의 플라타이아 진군, 그리스군과 페르시아군의 전열구성
한편 헬라스인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기병들에게 항거하여 그들을 격퇴하였으므로 사기가 크게 높아졌다. 헬라스인들은 마시스티오스의 시신을 마차에 싣고 군대의 대열 옆을 죽 돌아 다녔다. 죽은 자는 신장이 크고 용모가 아름다워 구경할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챙겨 들고 키타이론을 지나 플라타이아이에 도착하자 가르가피에 샘과 영웅 안드로크라테스의 성역 부근에서 국가별로 전열을 형성했다. 그곳은 나지막한 언덕들 있는 평평한 지대였다.
그때 전열을 구성하면서 테게에인들과 아테나이인들 사이에 다른 쪽 날개 구간을 맡아야 한다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테게에인들은 예전의 역사를 들먹이며 자신들에게 다른 쪽 날개 구간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하자, 아테나이인들 역시 헤라클레에스 후손들에게 자신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했던 것을 이야기하며 다 필요 없고, 마라톤 전투만을 예로 들며 헬라스인 중에 단독으로 페르시스인들을 대적해 승리했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라케다이몬인들에게 자리 배치를 어떻게 하든 그들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다. 날개 구간은 결국 아테나이인들에게 돌아갔다.
그 후 헬라스인들은 모두 모인다음 정렬했는데 오른쪽 날개 구간은 라케다이몬인들이 맡았고, 그 옆에는 테게에인들, 코린토스인, 아르카디에인 등의 순이었고, 왼쪽 날개 구간은 아테나이인들이 맡았다. 이들의 지휘관은 아리스테이데스였다.
이 병력은 스파르테인 1명에게 배속된 헤일로테스 7명씩을 제외하곤 모두 중무장 보병 약 4만여 명이었다. 또 같은 수의 경무장 보병도 있었다. 플라타이아이에 집결한 전체 헬라스 군대는 11만 명이었다. 그때 헬라스 군대는 대열을 갖추고 아소포스 강가에 주둔해 있었다.
한편 마르도니오스 휘하의 이방인들도 아소포스 강 쪽으로 갔다.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하자 적에 맞서 전열을 배치했다. 페르시스인들은 가장 강력한 병력을 라케다이몬인들 맞은편에 배치했고, 그 옆으로는 메디아인, 코린토스인, 포티다이아인들 등의 순서로 배치했다. 또 마케도니에인들과 테살리에 주변인들은 아테나이인들의 맞은편에 배치했다. 이방인들의 군대는 30만 명이었다. 반면 마르도니오스의 동맹국이 된 헬라스인들의 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5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제33~40장 양측의 희생제식과 소극적 태도
그들이 모두 종족별, 부대별로 배치되고 나서 다음날 양측은 희생제물을 바쳤다. 헬라스인들을 위해서는 티사메노스가 제물을 바쳤다. 그는 예언자로서 군대를 따라왔다. 그는 엘리스인이었는데 라케다이몬인들이 그를 자신들의 동료 시민으로 삼았다. 티사메노스가 자신의 자식 생산에 대해 신탁을 물었는데 피티에 여사제는 그가 다섯 번의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그가 전쟁에서 이길 것을 예언한 것이라 믿고 그에게 전쟁의 지도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값을 불러 관철되자, 요구를 허락했다.
왕권에 대한 요구와 시민권에 대한 요구를 같이 놓고 본다면 그의 이런 요구는 멜람푸스를 모방한 것이었다. 아르고스 여자들이 광란에 빠졌을 때, 아르고스인들이 필로스에 와서 자기네 여자들의 병을 멈추게 해 달라고 하자, 멜람푸스가 그 대가로 왕권의 절반을 달라고 했다. 아르고스인들은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 거절했지만 여자들의 광란이 더 심해지자 멜람푸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지만 이에 멜람푸스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 필요성이 더 많아질수록 요구는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동생과 같이 스파르테의 시민이 된 티사메노스는 스파르테인들이 중요한 다섯 번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네 번째 전쟁까지 도와주었고, 마지막으로 도와준 전쟁은 아테나이인들이 아르고스인들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었다.
그리하여 스타르테인들이 데려 온 티사메노스가 플라타이아이에서 헬라스인들을 위해 예언을 해 주었는데, 헬라스인들이 먼저 강을 건너가 공격을 하지 말고 수비에 전념하라는 내용이었다.
마르도니오스는 공격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이곳의 예언도 수비를 해야 길하다고 나왔고, 헤르피스의 아들 티메게니데스가 그에게 키타이론 산의 고갯길들을 지키라고 조언했다. 이때는 양측 군대가 8일 동안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마르도니오스는 티메게니데스의 조언이 타당하다고 여겨 키타이론 산의 고갯길에 기병들을 파견했다. 조언자의 예측이 맞았는지 기병들은 고갯길에서 식량을 운송하던 동물 500마리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다시 이틀이 지났는데, 양측 어느 쪽도 먼저 공격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도니오스의 기병들은 페르시스 측을 열렬히 지원하는 테바이인들이 도와준 덕에 헬라스인들을 계속 압박하고 괴롭힐 수 있었다.
제41~45장 마르도니오스의 전투 결정과 알렉산드로스의 제보
양측이 플라타이아이에 진을 친 지 11일째가 되었을 때, 헬라스인들의 수는 더 늘었고, 마르도니오스는 지지부진한 상황에 안달이 났다. 이에 마르도니오스와 파르나케스의 아들 아르타바조스가 협의를 했는데 아르타바조스는 일단 군대를 식량과 물자가 비축되어 있는 테바이 성으로 이동시키고 헬라스인들에게 보물들을 주어 회유 해보자고 했다. 반면에 마르도니오스는 그보다 더 강성이고 더 완고하고 비타협적이어서 빨리 전쟁을 치르자고 했다.
마르도니오스의 확고한 의견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고, 그는 다음날 동이 트면 즉시 전투가 개시 될 것이라고 지시했다. 그는 그전에 페르시스들이 헬라스에서 파멸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는데 이것은 델포이 성소를 약탈했을 때 일어날 일이고, 자신들은 그곳을 약탈하려 하지도 않을 테니, 우리는 파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예언은 페르시스인들이 아니라 일리리아인들과 엥켈레스인들의 군대에 내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 관한 것으로는 바키스가 내린 예언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메디아인들이 쓰러지리라.”
마르도니오스가 지시를 내린 후 밤이 되자 보초들이 배치되었다. 밤이 깊어졌고 모두 잠에 취해 있을 때, 마케도니에인 알렉산드로스가 아테나이인들의 장군들과 대화하고 싶다며 요청해 왔다. 장군들을 만나 알렉산드로스는 마르도니오스가 이제 기습 공격해 올 것이며, 전쟁이 시작되더라도 아테나이인들은 자리를 지키고 머물도록 하라면서 마르도니오스의 전쟁 물자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전쟁은 헬라스인들이 원하는 대로 끝나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혈통도 본디는 헬라스인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제46~57장 페르시아 기병의 공격과 그리스군의 진지 이동
아테나이 장군들은 오른쪽 날개 구간으로 가서, 알렉산드로스의 말을 파우사니에스에게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페르시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했다. 전투가 새벽에 벌어질 것이니, 아테나이인들이 페르시스인들을 맡고, 자신은 적군헬라스군을 맡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서로 경험이 있는 적을 맡는 게 유리할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아테나이인들도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헬라스인들의 진영 배치를 알아챈 마르도니오스는 자신들도 구역을 바꾸어 상대를 정했다. 몇 번의 이런 구역 정하기가 바꾸어지면서 그들이 원래 구역에서 다시 포진했을 때, 마르도니오스의 사자가 스파르테인들에게 달려왔다. 사자는 스파르테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이 무서워 아테나이인들에게 우리를 시험해 보도록 하고 자신들은 우리의 노예들과 싸우려 하고 있다고 스파르테인들을 비웃는 마르도니오스의 말을 전한 다음 스파르테인들이 헬라스를 대표해 우리와 한 판 붙어보지 않겠냐는 말과 그러면서 승리한 쪽에 전체 군대를 대신해 승리한 것으로 하자고 했다.
사자는 답변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그에게 답변을 주지 않자, 진영으로 돌아와 마르도니오스에게 보고했다. 이에 마르도니오스는 크게 기뻐하며 이 헛된 승리에 고무되어 헬라스인들을 공격하러 기병들을 내보냈다. 기병들은 돌진하여 헬라스 전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들은 기마 궁수들이었고, 근접해 싸우기가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헬라스 장군들은 페르시스 기병들로 식수가 차단되자 파우사니에스에게로 모여들어 여타의 문제들을 의논하기로 했다. 그들에게도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군들은 회의를 열어 페르시스인들이 그날 회전을 벌이지 않는다면 플라타이아이 시 앞에 있는 섬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페르시스인들의 기병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이른 새벽에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키타이론 산에 갇혀있는 식량을 구하러 갔던 하인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밤이 되자, 헬라스인들은 그곳을 떠나 플라타이아이 시로 향하다가 헤레 신전에 도달했다. 그들은 헤레 신전에 이르자 신전 앞에 자신들의 무기를 쌓아 두고 신전 주위에 진을 쳤다.
그 뒤를 이어 라테다이몬인들도 출발했다. 이때 다른 부대장들은 파우사니에스의 지시에 따르고자 했건만 피타네 부대 지휘자인 아몸파레토스는 이방인들에게서 달아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장군들은 아몸파레스를 설득하여 함께 움직이려고 아몸파레스에게 계속 권유했다. 한편 아테나이인들은 라케다이몬인들이 정말 이동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있을 것인지 몰라 파우사니에스에게 물어보려고 전령을 보냈다. 그때 라케다이몬인들을 서로를 설득하려고 하다가 결국 언쟁이 벌어졌다. 파우사니에스는 전령들에게 지금 본 대로 아테나이인들에게 전하고 출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하는 대로 따라 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새벽까지도 언쟁을 계속했는데 아침이 되자 파우사니에스가 아몸파레스 군대를 제외한 전체 군대를 이끌고 이동했다. 그러자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워진 아몸파레스도 부대를 데리고 따라왔다. 그들이 합류했을 때, 이방인들의 기병들이 전 병력으로 공격해 왔다.
제58~75장 플라타이아 전투와 그리스군의 승리
마르도니오스는 헬라스인들이 밤중에 떠났다는 말을 듣고 그들의 진지가 텅 빈 것을 보자, 라케다이몬인들은 전쟁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전쟁에 대해 제일
가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을 비웃었다. 그리고 아르타바조스가 진영을 테바이 성으로 옮기자고 한 말을 왕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으르렁댔다. 그리고 라케다이몬인들이 페르시스인들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면서 추격하기로 했다.
그들은 아소포스 강을 건너 헬라스인들을 추격했다. 그들은 헬라스인들을 금방 해치울 것으로 보고 함성을 지르며 헬라스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파우사니에스는 아테나이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힘껏 도우며 서로를 보호하자고 했다. 지금은 라케다이몬인들이 위험하니 궁수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아테나이인들은 이들을 도우러 가기로 했지만 이들 역시 적군에게 공격당하고 있었다. 라케다이몬인들과 테게에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의 공격으로 많은 사상자들이 났다. 그리하여 스파르테인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그 때 파우사니에스는 헤레 신전 쪽을 바라보며 여신에게 기도하였다.
파우사니에스가 이렇게 기원하는 동안 테게에인들이 먼저 전진하여 이방인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제물의 길조가 나타났다. 그러자 라케다이몬인들도 페르시스인들을 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중무장 보병의 무장을 갖춘 스파르테인들이 유리했다.
마르도니오스는 최정예 부대 천 명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 싸웠는데, 바로 그곳에서 페르시스인들이 적들을 가장 심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마르도니오스가 죽고, 최강 부대도 파멸하자 나머지 자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그들의 파멸 요인은 중무장 보병의 무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르도니오스는 신탁이 말한 대로 레오니데스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스파르테인들에게 이행했다. 아낙산드리데스의 손자인 파우사니에스는 우리가 아는 모든 승리 중에 가장 찬란한 승리를 거두었다. 마르도니오스는 스파르테에서 이름 높은 아에임네스토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페르시스인들이 플라타이아이에서 라케다이몬인들에게 패해 달아날 때, 데메테르 숲 옆에서 전투를 벌였음에도 성소 주위의 성화되지 않은 땅에서 죽었다. 그것은 그들이 엘레우시스의 이 여신의 성소를 불태웠기 때문에 여신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파르나케스의 아들 아르타바조스는 마르도니오스가 왕에 의해 남겨진 것을 처음부터 불만스레 여겼고, 당시에도 교전을 반대하며 누차 만류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4만 명의 군대는 마르도니오스의 군대와는 다른 행보를 하게 하여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도중에 페르시스인들이 도망쳐 오는 것을 보고 포키스인들의 땅으로 재빨리 달아났다. 그는 얼른 헬레스폰토스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헬라스인들은 승리를 거두고 크세륵세스의 군사들을 추격했으며, 그들을 해치웠다. 그때 파우사니에스의 승전보가 헤레 신전 부근에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던 다른 헬라스인들에게 날아왔다. 그 소식을 듣고 코린토스인들과 메가라인들, 그리고 플레이우스인들도 전선을 향해 이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적군이었던 테바이 기병들에 의해 하잘것없이 죽었다. 한편 페르시스인들과 다른 무리들은 나무 방벽 안으로 피신하였지만 라케다이몬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은 교전 끝에 페르시스인들의 방벽을 무너뜨렸다. 방벽 안으로 제일 먼저 들어간 것은 테게에인들이었다. 그들은 청동으로 된 말구유 등을 약탈했다. 그리고 큰 승전보를 울릴 수 있었다.
이방인 중에는 페르시스인 보병과 사카이인 기병이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개별적으로는 마르도니오스가 그랬다. 반면에 헬라스인들 중에서는 테게에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이 용감했고, 용맹함에서는 라케다이몬인들이 최고였다. 왜냐하면 라케다이몬인들이 적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자들을 공격하여 이겼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용감한 자는 아리스토데모스였다. 그는 테르모필라이에서 300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던 그 사람이다. 그다음으로는 포세이도니오스와 필로키온 그리고 스파르테인인 아몸파레토스였다. 그런데 이들은 아리스토데모스만 제외하고 모두 명예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아리스토데모스는 아무 명예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테나이인 중에는 데켈레에 구 출신인 소파네스가 큰 명성을 날렸다. 아테나이인들이 전하는 데켈레에 주민들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틴다레오스의 후손들이 헬레네를 되찾아 가려고 아티케에 침입하여 여러 촌락을 약탈하고 다닐 때, 바로 데켈레에인들이 그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말해주고 그들을 아피드나이로 안내했다. 데켈레인들의 이런 행동 때문에 스파르테에서는 그들에게 조세를 면세해주고 앞자리 특권을 부여했다. 그리고 아테나이인들과 펠로폰네소스인들의 전쟁에서도 테켈레에는 약탈을 하지 않았다.
소파네스는 이 지구 출신이었는데, 그는 가슴갑옷 허리띠에 쇠닻을 청동사슬로 묶어 놓고 다녔다는 것이다. 쇠닻은 전투 중에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려놓고 싸웠다고 한다. 그는 아테나이인들이 아이기나를 포위 공격했을 때, 오종경기 우승자인 에우리바테스에게 도전하여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는 금광을 놓고 싸우다가 에도노이인들에게 죽었다.
제76~85장 전투 후 그리스인들의 상황과 전리품 분배
이방인들이 플라타이아이에서 헬라스인들에게 패했을 때, 한 여성 탈주자가 헬라스인들 찾아왔다. 그녀는 페르시스인의 첩이었는데 금장식으로 치장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파우사니에스를 보자 자신을 전쟁 포로의 예속에서 구해 달라고 탄원했다. 파우사니에스는 전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빈객으로 대우해 주어 그녀가 원하는 대로 아이기나로 보냈다.
이 여성이 찾아온 후, 곧이어 만티네에인들과 엘리스인들이 도착했는데 이들 모두 전쟁이 끝난 후에 도착했으므로 전투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애통해했다.
플라타이아이의 아이기나인 군대의 람폰은 아이기나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파우사니에스에게 마르도니오스의 목을 베어 말뚝에 매달아 놓으라고 말했다. 레오니데스가 죽었을 때 마르도니오스와 크세륵세스가 한 짓을 대갚음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파우사니에스는 시신을 모욕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나 어울리는 짓이라며 레오니데스에 대한 복수는 이미 크게 보복을 했다고 했다.
파우사니에스는 누구도 전리품에 손대지 말라는 포고를 내리고 헤일로테스에게 재화들을 모두 수합하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진영 곳곳에서 많은 금과 은 등으로 도금한 와상들과 용기들을 찾아냈는데, 일부는 아이기나인들에게 팔아 넘겼다. 그때 아이기나인들은 진짜 금을 마치 청동인 양 헤일로테스들에게서 사들여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그들은 재화의 일부를 수합한 뒤, 그중의 일부를 델포이의 신들을 위해 황금삼족의자와 청동상 등을 만들어 봉헌했다. 이것들을 다 제하고 나머지는 분배되었다.
크세륵세스가 헬라스에서 도망갈 때 마르도니오스에게 그 자신의 비품들을 남기고 갔다. 그것을 빼앗게 된 파우사니에스는 왕의 비품들도 정찬을 차리라고 명령했고, 그 풍성한 진수성찬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라코니아식 정찬도 만들라고 지시하여 비교해 보자,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났다. 그러자 그는 장군들을 불러 페르시스인들은 이렇게 화려하게 살면서 빈약한 우리의 식사를 빼앗으려 했던 거라는 얘기를 했다.
마르도니오스의 시신은 전투 다음날 사라졌는데, 누가 시신을 가져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한편 플라타이아이의 헬라스인들은 전리품을 분배한 후, 각기 자신들의 전사자들을 별도로 매장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나이와 직위에 따른 무덤을 셋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제86~89장 그리스인들의 테바이 응징과 아르타바조스의 퇴각
헬라스인들은 플라타이아이에서 전사자들을 매장한 후, 회의를 열어 테바이인 원정에 나섰다. 이들이 테바이인들을 포위 공격하여 그들의 최고위 인사들을 넘겨받게 되었다. 양측이 이런 조건하에 협약을 맺었을 때, 인사 중의 한 명이 도망쳤고, 이에 그의 아들들이 잡혀 왔으나 파우사니에스는 아들들은 죄가 없다며 풀어 주었다. 그러나 파우사니에스는 테바이인들이 인도한 다른 사람들을 인도받자 그들을 코린토스로 데려가 처형했다.
한편 아르타바조스는 플라타이아이에서 도망쳐 이미 멀리 가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 테살리에인들은 나머지 군대에 대해 물었다. 아르타바조스는 사실대로 말하면 자신과 군대가 모두 위험해진다고 생각하여 자신과 군대는 본영으로부터 임무를 띠고 트레이케로 파견가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마르도니오스의 군대가 오고 있으니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라고 거짓말을 하고 정말로 급하게 서둘러 내륙으로 길을 가로질러 갔다. 아르타바조스는 아시에로 돌아갔지만 많은 군사를 잃은 후였다.
제90~107장 미칼레 전투.................................................................................................................................921
제90~101장 그리스군의 이오니아행 항해와 미칼레 상륙
한편 페르시스인들은 자신들이 플라타이아이에서 패배를 당한 바로 그날, 공교롭게도 이오니에의 미칼레에서도 패배를 당했다. 라케다이몬인 레우티키데스와 함께 항해한 헬라스인들이 델로스에 도착하여 주둔해 있을 때, 사모스에서 그들에게 사절이 왔던 것이다. 사절들은 사모스인들이 페르시스인들과 그들이 임명한 참주 페오메스토르 몰래 보낸 자들이었다. 그들은 헬라스인들에게 같은 헬라스인인 자신들을 예속에서 구하고 이방인들을 물리쳐 달라고 간절히 권했다.
사모스에서 온 방문자가 이렇게 열심히 간청하자, 레우티키데스가 그 사모스인에게 이름을 묻고, 동맹을 맺기로 하였다. 그들은 그 후 출항했지만 이름을 물었던 헤게시스트라토스는 자신들과 함께 항해하도록 했다.
헬라스인들은 그날을 기다렸다가 다음날 희생제물에서 길조를 얻었는데, 바로 배들을 이끌고 델로스를 떠나 사모스로 향했다. 그들은 헤레 신전 가까이에 정박하고 해전을 준비했다. 그 소식을 들은 페르시스인들은 헬라스인들과의 해전을 피하기로 하고 육군의 보호를 받기 위해 육지 쪽으로 향했다. 이 육군은 왕의 명령으로 이오니에를 지키고 있었다. 페르시스 함대는 스콜로포에이스에 이르자, 배들을 해안으로 끌어올리고 방벽을 쌓았으며 말뚝을 꽂아 공격과 수비에 대비했다.
헬라스인들은 이방인들이 육지 쪽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고 혼란에 빠졌다. 결국 그들은 해전 준비를 하여 미칼레 쪽으로 항해했다. 레우티키데스는 그들을 향해 출전하는 적선이 한 척도 보이지 않았고, 대규모 육군이 해안을 따라 정렬해 있는 것을 보자, 이오네스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포고하게 했다. 그 내용은 전투를 벌이게 되면 자신의 자유를 기억하고 우리의 군호인 ‘헤베’를 기억하라고 했다. 그 말은 페르시스인들은 알지 못하는 말이었으므로 이런 행동은 테미스토클레에스가 아르테미시온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내려는 것이었다.
헬라스인들은 배들을 육지에 갖다 대고 해안에 상륙했다. 페르시스인들은 헬라스인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이오네스인들에게 권유하는 것을 보자, 우선 사모스인들이 헬라스인들에게 동조한다고 의심하여 사모스인들에게서 무기를 빼앗았다. 사모스인들이 전에 크세륵세스의 군대에 붙잡힌 아테나이인 포로들을 도와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스인들의 무기를 회수한 다음 밀레토스인들에게 미칼레의 고갯길을 지키라고 지시했고 그들 자신은 버들가지 방패들을 쌓아 방벽을 만들었다.
헬라스인들이 이방인들을 향해 진군했을 때, 헬라스인들이 보이오티에의 전투에서 마르도니오스 군대에 승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하여 헬라스인들의 군대는 훨씬 더 사기충천해지고 더 열렬히 위험을 감수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전쟁터 가까이에 모두 엘레우시스 테메테르의 성역이 있었다. 헬라스인들과 이방인들은 다 전투를 열렬히 바라고 있었는데 섬들과 헬레스폰토스가 그들에게 전리품으로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제102~105장 미칼레 전투와 그리스군의 승리
아테나이인들은 해안과 평지를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라케다이몬인들은 계곡과 산지를 따라 뻗어 있었다. 페르시스인들은 방어와 공격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아테나이인들과 그 옆의 군대들이 버들가지 방패들을 돌파하자 전세는 역전되었다. 페르시스인들은 이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성벽 안으로 달아났다. 아테나이인들, 코린토스인들, 시키온인들, 트로이젠인들은 성벽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 성벽을 점령했다. 이 싸움에서 페르시스 지휘관들이 대거 죽임을 당했다.
한편 우회하던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행자들은 남은 전투를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페르시스인들에게 무기를 빼앗긴 사모스인들은 헬라스인들을 전심으로 도왔고 다른 이오네스인들도 페르시스인들에게서 이탈하여 이방인들을 공격했다.
밀레토스인들에게 고갯길을 지키라고 했던 페르시스인들은 밀레토스인들의 배신으로 페르시스인들의 가장 해로운 적이 되었다. 이방인들이 후퇴할 때,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밀레토스인들은 적진으로 통하는 길로 페르시스인들을 안내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오니에는 페르시스인들에게 두 번째 반란을 일으켰다. 이 전투에서 가장 용감한 군대는 아테나이인들이었고, 그중에서도 헤르몰리코스가 뛰어났다. 아테나이인 다음으로는 코린토스인, 트로이젠인, 시키온인들이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
제106~107장 전투 후 양측의 상황
헬라스인들은 이방인들을 대부분 죽이고 나서, 전리품과 재화 창고를 찾아낸 후 이방인들의 배들과 성벽 전체를 불태웠다. 그리고 사모스에 도착했다. 헬라스인들은 이오네스인들을 언제나 지키고 보호해 줄 수는 없다고 봐서, 이오네스인들을 어디에 정착시켜야 할지를 의논했다. 헬라스인들은 사모스인들과 키오스인들, 레스보스인들, 그리고 전쟁 동맹국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헬레스폰토스 다리를 해체하기 위해 그곳으로 출항했다.
한편 미칼레로 도망갔던 소수의 이방인들은 사르디에스로 향했다. 그때 페르시스군이 패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다레이오스의 아들 마시스테스가 지휘관 아르타인테스를 잔뜩 비난했다. 페르시스인 사이에서는 여자보다 더 비겁하다는 말이 최대의 치욕이었는데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아르타인테스는 격노하여 마시스테스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크세이나고레스가 마시스테스를 구했다. 그 일로 그는 왕의 하사를 받아 킬리키에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사르디에스에 도착했다.
제108~113장 크세륵세스의 연애 행각과 마시스테스의 반란.............................................................................932
마침 사르디에스에는 왕이 해전에서 패하고 돌아온 이후로 계속 머물고 있었다. 왕은 아우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설득해도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마시스테스의 딸을 자신의 며느리로 맞아들인 후, 수사로 떠났다. 그가 수사에 도착하자 마시스테스의 아내에 대한 생각은 없어지고 그의 딸이자, 며느리인 아르타인테를 좋아하게 되었다.
크세륵세스의 아내 아메스트리스는 화려하고 좋은 겉옷을 왕에게 선물했는데 왕은 그것을 입고 아르타인테에게로 가서 그녀에게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 겉옷을 달라고 했다. 난감해진 왕은 겉옷 대신 군대와 황금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결국에는 겉옷을 주고 말게 되었다. 아르테인테는 그 옷이 마음에 들어 입고 다니며 자랑을 했다. 아메스트리스는 그 사실을 알고 며느리의 친정어머니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아메스트리스는 왕의 생일에 열리는 연회를 기다렸다가 왕에게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왕궁 연회에서 제기된 요청은 거부될 수 없다는 관습이 있었다. 왕은 어찌할 수가 없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동생을 불러들여 지금의 아내와 이혼하고 공주와 다시 결혼하라고 했다. 이에 마시스테스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느냐면서 제발 지금의 아내와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왕은 일을 이리 만든 것은 그대의 책임이니 그대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이에 마시스테스는 전하 전하께서는 아직 저를 살려 두셨습니다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같은 시각에 아메스트리스는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참혹하게 훼손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마시스테스는 아내를 본 순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박트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힐 생각이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왕의 수비대에게 당하고 말았다.
제114~122장 그리스군의 세스토스 점령과 아르타익테스의 죽음........................................................................936
한편 미칼레에서 헬레스폰토스로 출항한 헬라스인들은, 아비도스로 갔다. 헬레스폰토스 다리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이미 해체되어 있었다. 그러자 레우티키데스는 헬라스로 귀항하기로 결정했지만 아테나이인들과 장군 크산티포스는 그곳에 남아 케르소네소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아테나이인들은 세스토스를 포위 공격했다.
헬라스인들이 헬레스폰토스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지역에서 가장 굳건한 요새인 세스토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거기에는 다리에 쓰일 밧줄들을 가져다 놓은 오이오바조스도 있었다.
이 구역을 다스리는 자는 페르시스인 아르타익테스였는데 그는 교활하고 사악한 자였다. 전에 왕을 속여 프로테실레오스의 보화들을 훔친 적도 있었고, 헬라스인의 집을 탈취하여 재물 창고로 사용하였는데 아테나이인들에게 포위 공격을 당할 때도 여자들과 같이 있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격을 하는 아테나이인들에게도 가을이 닥쳐오자 마음이 조급해져서 귀국하기를 요청했지만 장군들은 그들의 지금의 상황을 견뎌보자고 했다.
한편 성벽 안에도 극심한 곤경에 처한 자들이 성벽 뒤편으로 달아나기도 했다. 아테나이인들 대부분은 저들을 추격했고 나머지는 도시를 점령했다.
오이오바조스도 트레이케로 도주했는데, 압신티오이인들에게 잡혀 제물로 바쳐졌다. 아르타익테스도 아들들과 함께 잡혀 세스토스로 이끌려 갔다. 포로들을 지키던 어떤 자가 생선을 굽고 있었는데, 생선이 살아있는 것처럼 뛰어오르고 몸부림을 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러자 아르타익테스는 그 기이한 현상은 프로테실레오스가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면서 신들에게 보화를 바칠 것이니 자신과 아들들을 살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그말은 크산티포스와 헬라스인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그와 아들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이렇게 행한 후, 헬라스로 출항했다. 그들은 다른 보화들과 함께 다리의 밧줄도 가져갔는데, 이것들을 그들의 성소에 봉헌하기 위해서였다. 널빤지에서 매달려 죽은 아르타익테스는 아르템바레스의 손자였다. 아르템바레스가 페르시스인들과 키로스에게 한 제안은 이렇다. 우리는 지금 아시에 전역을 다스리고 있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좁고 험준한 땅에서 이주하도록 하자고 하면서 우리 이웃에도 그런 곳이 많고 더 멀리에도 많으며 누구를 지배하는 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에 키로스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는 앞으로 그들이 남을 지배하지 못하고 남의 지배를 받을 준비를 할 거라고 훈계했다. 그는 부드러운 땅에서는 으레 부드러운 사람들이 생기고, 놀랄 만한 수확과 용감한 전사들이 같은 땅에서 생겨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페르시스인들은 그의 말에 수긍하고 그 앞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평원을 경작하며 남들에게 예속되느니보다 척박한 땅에서 남들을 지배하기를 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