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시설물과 우중충한 도시가 첫 인상이었다. 더군다나 가이드가 첫 안내로 데리고 간 ‘우리나라 십전대보탕보다 훨씬 보신이 되는 몸에 최고인 국물로 만든 국숫집’은 가히 최악의 식사였다고 할 만큼 지독했다. 냄새는 역하고 국물은 짙은 갈색으로 비위가 좋은 남자들도 먹지 못하는 거 같았다. 반찬으로 나온 무짠지도 한번 먹은 뒤로는 정나미가 떨어져서 결국 첫날 아무 것도 못 먹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또 타이밍을 못 맞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망고아이스크림 가게에 데리고 갔을 때였다. 용산사 구경을 하고 나왔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라 기온이 쌀쌀했다. 하필 그럴 때 아이스크림을 사 준 것이다. 덜덜 떠는 사람들을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혀놓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며 먹으라고 줬던 가이드 아저씨는 자기 자랑을 많이 했지만 별로 믿음직하지 않았다.
용산사는 타이베이 사원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하며 가장 전형적인 타이완 사원이라고 한다. 불교, 도교, 유교의 중요한 신을 함께 모시는 종합 사찰로 참배객의 향불이 끊이지 않았다. 네모난 뜰을 중심으로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3번 반복되는 3진 사합원의 궁전식 건물로, 타이완 전통 사원 건축의 극치를 보여 준다. 벽면에는 생생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석조 역시 매우 정밀하며, 기둥과 처마의 경계 부분은 못을 쓰지 않는 전통 방식으로 되어 있다. 지붕의 사방에는 용, 봉황, 기린 등 상서로운 상징물이 조각되어 있으며 채색 기와로 마감되어 있다. 맨 처음 지어진 것은 1738년인데, 자연재해와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된 것을 1757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국가 2급 고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하고 향불 냄새가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짙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너무 넓고 전시유물이 많아서 한 번에 다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박물원에는 중국 국민당이 국공 내전에서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이동할 때에 대륙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박물원이 소장품의 수는 69만 7490개나 되어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역시 진귀한 보물들이 많았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취옥백채라는 배추를 옥으로 조각한 작품이다. 배추 잎에는 여치와 누리라는 곤충이 앉아있는데 뛰어난 번식력을 상징한다고 했다. 중국의 인구가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작품의 의미는 아마도 황실 자손의 번성함을 기원하는 의도였을 텐데)웃음이 나왔다.
옥으로 만든 배추도연명화려하다옥으로 만든 연꽃잔황금 향로였던가가장 아름다웠던 보석함
도연명의 글씨로 된 귀거래혜사를 보았다. 귀거래사는 정치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소회를 초사체로 읊은 시이다. 이런 문학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그릇들은 옥으로 된 것들이 많았다. 특히 비취색으로 된 옥그릇들이 많았다.
청나라 고종 황제의 옥새를 보며 저 도장이 한 번씩 찍힐 때마다 얼마나 큰 사건들이 일어났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저 도장에 달려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세 시간 정도 관람을 하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환기가 잘 안 되는지 목도 매캐하게 막혀왔다.
차를 타고 시내를 돌다보니 산 곳곳에 산동네 같은 것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공동묘지였다. 묘지에 작은 사당을 지어 울긋불긋하게 치장을 해 놓아서 사람이 사는 집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동네가 곳곳에 있었다.
하루는 기차를 타고 두 시간도 더 걸리는 화련에 있는 태로각 협곡이라는 곳에 갔다. 협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굉장히 좁고 가파른 절벽 아래에 물이 흐르고 있다. 산은 마치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듯 거의 90도로 보이게 가파르기만 했다. 산 아래는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정과 망치와 사람의 손만으로 터널을 뚫었다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서려있을까.
말 그대로 좁은 계곡그래도 물은 아래로 흘러 가장 낮은 곳으로 모인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민초들이다. 나는 당시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두 대가 차가 교행하기에는 너무도 아슬아슬한 도로, 관광버스는 금방이라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듯하면서도 그 많은 관광객을 사고 없이 실어 나르고 있다한다. 낭떠러지 아래의 격랑하는 석회석 물길은 이런 삶의 모습을 닮고 있어서인지 거칠고 투박하다. 계곡을 발밑에 두고 산과 산을 연결하는 다리 또한 금방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산을 벗어나니 긴장이 풀리고 비로소 휴하고 한숨을 쉬게 되었다.
야류는 북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기기묘묘한 암석층의 자연예술공원이다. 암석층은 조산운동과 맞물려 수만 년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대표적으로 엘리자베스여왕 얼굴모양이 있고 버섯모양, 촛대모양 등이 있다. 여왕은 목이 가늘고 길어서 부러질 듯이 가냘프게 보였다. 가장 인기 있는 포토라인이었다.
사자 바위곰보 투성이 바위야류가장 인기 있다는 엘리자베스 여왕 바위
타이베이의 101빌딩은 대나무 마디를 연상케 하는 외관이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옥상 정원에서 도시의 야경을 구경했다. 101빌딩은 우리나라의 63빌딩처럼 수식어가 많이 붙었지만 그렇게 볼거리가 흥미롭지는 않았다.
대만 타워타워 안에 있던 조형물타이뻬이의 야경
우리는 관광을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봐 두었던 과일가게를 찾아갔다. 알지 못하는 열대 과일이 가짓수도 많고 종류도 많았다. 그중에서 용과랑 바나나를 샀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30분 정도 걸리는 데, 길 가에 있는 대학교를 구경하였다.
해안에서전통 시장 언덕에서식당 근처 공원에서사랑초
대만에 가기 전에 나는 한자 급수를 딴 지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한자를 안 잊어버렸기 때문에 대만 간판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간자를 많이 쓰는 중국과는 다르게 정자를 쓰기 때문에 읽기에도 편하고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