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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꼬여버린 인생에 어떻게 저항하는가, <국두>를 보고

떨켜 2021. 7. 12. 16:12

장이모 1990 (이 글은 영화헤살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추알은 양조장 주인이었던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죽어버리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영으로 부를 이루며 눈 맞은 남자와 잘 살다가 일제에 항거하다 죽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국두는 원초적인 욕망에만 매달린 채로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관습과 궁핍의 굴레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이 본인의 삶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는가를 국두와 추알을 통해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두 영화를 보고 비교해 본다면 좀 더 잘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수밭은 웅장하고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색감도 강렬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국두>는 스토리도 영상도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다. 물들인 천을 널어 말리는 장면도 허술하고, 그렇게 볼 만한 영상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인생 초반에 꼬여버린 자신의 삶을 스스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많은 국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20세기 초 중국 시골 마을의 염색 공장 사장이 새 장가를 들었다. 비싸게 사온 젊은 아가씨 국두(공리)는 고량주 만들던 추알과 비슷하다. 장이모는 중국 봉건사회의 잔재 중에서도 젊은 여자가 팔려가야 했던 세태를 추알에 이어 국두로 보여준다.

늙은 서방은 여자를 괴롭히며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 하지만, 추알의 눈에 유이찬아오가 있었던 것처럼 국두의 마음에는 벌써 일꾼 천청이 있다. 서방이 외출한 틈을 타서 젊은 두 남녀는 한 몸이 되어 즐거움을 나눈다. 그리고 아들을 낳는다. 서방은 자신의 아들이라 여겨 성대한 잔치를 열기도 하지만 하반신 불구가 된 다음에야 아들의 진실을 알게 된다.

매매혼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용이다. 돈은 있지만 자식은 없는 50줄의 노인이 이제 막 피어오르는 처녀를 돈으로 데려오지만, 그때부터 비극의 시작이다. 정말 결혼은 두 사람이 좋아해도 어려운 일이 많은데 어디 당최 어울리는 조합인가. 딸을 팔아서 얼마나 팔자를 고치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추알의 예를 소설 <붉은 수수밭>에서 보면 추알의 친정도 별로 잘 살게 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미개하다 싶다가도 오늘날에는 이런 결혼이 아주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결혼이더라도 다행히 오늘날은 해결책이 있다. 다 아는 바대로.

일꾼 천청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본인의 아들이라 여기면서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에게 아빠라고 못하고 형이라고 해야 하다니, 죄를 저질러 잉태했기 때문이다. 도둑이 부자가 되면 어찌 큰소리치며 자랑할 수 있겠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참 많다. 그중에 가장 떳떳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자식인 것 같다. 평생 안고 갈 짐짝을 만들지 않으려면.

두 남녀가 드러내 놓고 눈꼴신 모습을 보여줘도 몸이 말을 안 듣는 늙은이는 어찌할 수가 없다. 게다가 국두는 늙은이가 살아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봐야겠다며 죽으면 안 된다고 비아냥거린다. 이 이상하고 변태적인 가정의 모습을 다 보며 아들이 크고 있다. 그러니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을 낳게 되나 보다. 아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늙은이는 아들이 자기를 아빠라고 부르자, 자기 씨앗임을 확신하지만 좋아하기도 잠깐이고, 아들에 의해 염색 물통 안에서 죽게 된다. 붉은 물감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웃는 아들. 진짜 핏줄이라면 아무리 어린아이라 해도 아버지가 괴로워하는데 웃음이 나올까. 유전자 검사 전에는 누가 아버지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적인 관계가 이렇게 끝이 난다.

장례식은 성대하다. 특이한 것은 죽은 자의 아내인 국두와 명색이 조카인 천청이 행렬의 상여 앞에서 길을 가로 막으며 가지 말라고 훼방을 놓아야 하는데 이 행위를 49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늙은이가 죽어 좋아 죽겠는데 우는 연기를 이렇게나 많이 해야 한다니, 지쳐 죽겠다.

거기에 천청은 국두가 늙은이를 죽인 게 아닌가 의심도 하지만 국두는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는 않아서 펄펄 뛴다. 결국 장례를 치르고 그는 국두와의 소문으로 마을에서 추방당한다. 그래도 가끔 국두를 찾아와 성 밖에서 같이 자고 들어오는데 이미 마을 사람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어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아들은 천청마저 염색 물통 안에서 죽게 만든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