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을 찾아서

22 - 인천 무의도 휴양림

떨켜 2023. 6. 18. 18:04

무의도에 국립자연휴양림이 생겼다는 정보를 알고 추첨 신청을 시도한 끝에 드디어 당첨되었다. 주말 내내 비 예보가 있었지만 휴양림에서 비 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하늘은 예상과 달리 쾌청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영종도 공항을 지나 잠진항 근처에 다다랐을 때서야 아차, 예약자인 나의 신분증을 가져 오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있는 딸에게 나의 운전 면허증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있다고 한다. 일단 돌아갈 수는 없고, 휴양림에 전화로 물어보니 본인 확인(본인 이외의 누구에게 대여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은 꼭 해야 한다면서 모바일 신분증을 제출하면 된다고 한다. 일단 달리는 차안에서는 스마트폰 터치가 어려워서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모바일 신분증 어플을 열고 하라는 대로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것을 답습하였지만 역시 실패하였다. 자꾸 해봐도 안 되니까 짜증도 나고 하기도 싫어져서 모바일 신분증은 집어치우고, 딸이 알려준 용유동행정센타에 가서 주민등록등본을 무인 발급을 받았다.  그러노라니 작년에도 신도 갈 때 같은 일이 벌어졌던 기억이 났다. 배를 타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또 안 가지고 온 것이다. 그때도 무인 발급기 찾아가고 지문 인식이 안 되어 애를 먹고 남편 손가락 빌려 간신히 발급 받았었다. 어휴 어째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걸까. 내가 어디에 정신이 팔려 이렇게 실수를 하는 건지, 한심한 일이었다. 그런데 옆의 남편은 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뭐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수 있지라면서 운전만 열심히 해준다. 이럴 때 그의 성격이 참 고맙다. 변덕이 없고 쿨할 때는 엄청 쿨한 그의 성격이라 때론 춥기도 하지만.

 

휴양림 입실은 3시가 되어야 한다길래 우리는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휴양림과는 거의 붙어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주차장은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널널하다. 모래사장까지 물이 철썩이고 있어서 들어가지는 않고 바다 가운데를 걸을 수 있도록 설치된 나무 데크를 걸었다.

산과 어우러진 바위를 테마로 바닷길에 놓인 데크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가 치는 모습이 달려오는 군사같기도 하다.

호룡곡산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는 바위가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굳어져 병풍처럼 산자락을 둘러싸고 있어서 바다에서 바라보는 맛이 있었다. 남편은 차 트렁크에 있는 낚시 도구가 생각난다며 이곳은 우럭이나 노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데크를 내려오니 산자락 트레킹 코스가 이어졌다.

해무가 약간 끼어 먼 섬들이 부유하는 것 같은 바다

이미 한낮이라 많이 덥다. 나무 사이로 바닷물이 포말을 만들며 달려오는 것 같은 풍경이 보인다. 산에서 내려와서야 이미 간조가 시작되어 물이 빠진 개펄이 드러난 것이 보였다. 남편은 스포츠 샌들을 신고 벌써 개펄로 들어가면서 내가 조개 잡아 올게 여기서 기다려라고 말한다.

쿨이 빠진 개펄은 경사가 없어 안전해 보인다. 어린이들이 많다

나는 우산을 쓰고 간식을 먹으며 점점 작아지는 남편 형상을 놓치지 않으려 시선을 길게 뻗는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 앞으로 걸어나가기만 할 뿐 엎드려 조개를 찾아보는 시늉도 하지 않는 것 같다. 30분 정도 있다가 전화가 왔는데 조개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고 했다. 조개가 있으려면 작은 구멍과 모래 무덤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조개를 캐려면 훨씬 더 멀리 나가야 한단다. 그래도 바다를 좋아하는 그이기에 놀다가 오라고 하다가 심심하기도 해서 나도 개펄로 들어갔다.

울타리가 쳐진 곳 왼쪽은 마을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양식장이라 들어갈 수 없다. 개펄의 평원

개펄은 딱딱하다. 물결의 흔적으로 이랑처럼 굴곡이 있어 요철이 느껴질 뿐 걷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평지 같았다. 나중에는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걸었다. 한 시간 정도 아이들처럼 호미질도 해보고 놀다가 나왔다.

조개는커녕 아무 것도 없던 개펄 그래도 재밌다 산자락에 휴양림이 보인다

수돗가에서 씻고 차에 오르니 특유의 바다 짠내가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빨리 씻고 싶었다. 3시 땡 치자마자 휴양림 체크인을 하는데 주민등본을 내보이니, 모바일 신분증 보여달란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마뜩찮아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몇 가지 질문으로 넘어갔다. 나야 본인이기에 무슨 질문에도 막힘없이 말할 수 있지만 예약자가 다른 사람일 때는 곤란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작년에 지었다는 휴양림은 깨끗해 보였고, 5인실이라 방도 따로 있어서 둘이 묵기에는 넓다 싶다. 작년에 갔었던 신시도 휴양림 숙소와 거의 같은 형태였다. 일단 씻고 나니 살 것 같다.

바다 뷰가 일품인 테라스

밥 먹으러 나갔다. 을왕리 근처 칼국수 맛집을 추천 받은 지라 무의도를 벗어나 용유동으로 갔다. 우리가 들어갈 때만 해도 좌석이 많이 비었는데 조금 있으니 꽉 찼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해물파전이란다. 그런데 파전보다 배추 겉절이가 어찌나 맛있는지 계속 리필해서 먹었다. 근데 남편 칼국수에서 안 열린 조개를 열었다가 펄을 뱉어내는 바람에 다시 새로 끓여오는 해프닝이 있었다.

식후에 무의도로 돌아오는 길에 전에 갔었던 소무의도에 가자고 한다. 고개를 몇 개 넘어 광명항에 도착하니 주차난이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조금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식당에서 에어컨 바람이 싫더니 컨디션이 별로라서 방에 보일러를 틀었다. 선갑도(숙소 이름) 거실 창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달려오는 파도가 한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깝다. 바람이 거세다. 그래도 서쪽 하늘에서 노을이 비끼고 있다. 둘이 난간에 나와 노을과 바다를 감상했다. 밤이 되자 천둥 번개 동반한 비바람이 불었다. 방이 따듯해서 잘 자고 나오니, 남편은 거실에서 좀 춥게 잔 것 같다고 한다. 보일러 생각을 못하고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무의도 휴양림에는 금계국이 많다. 입구에도 산책로에도 온통 노란색이다

아침은 밝고 깨끗하다. 어제 내린 비로 청량한 기운이다. 아침은 라면에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키를 반납했다. 휴양림 안에 있는 짧은 산책로를 한바퀴 돌고 집으로 왔다. 잘 쉬고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