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둥이 이야기

8 - 고군분투

떨켜 2023. 8. 2. 18:21

8월 1일 화요일 맑음 무지무지 더움

오늘은 웬일로 올림픽대로가 흐름이 좋았다. 딸의 집에 도착하니 8시 15분, 아이들이 놀고 있다. 감기 기운이 있는데도 잘 놀았다. 10시쯤 되어 아기들이 잠을 자러 들어가고 딸도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간 사이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40분쯤 되어 은이가 먼저 깼다. 무언가 먹고 싶은 것처럼 입을 날름거려서 물을 주었더니 잘 먹는다. 딸이 아직 안 와서 문자로 아기들 이유식을 어떤 것, 무슨 맛으로 준비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알려준다. 냉장고에서 찾아, 데우기를 하면서 아기들을 의자에 앉히고 턱받이옷을 입히는 준비를 했다. 아기들은 의자에 앉는 것만으로도 벌써 밥 먹는 시간이라는 걸 안다. “오늘은 할머니랑 먹을 거예요. 그러니 잘 먹어야 해요. 알았지요?” 둥이들은 다 안다고 얼른 밥이나 달라는 표정이다. 은이와 랑이를 나란히 앉혀놓고 한 술 씩 떠 먹이니 차분하게 잘 받아먹었다. 어이구, 잘 먹네. 우리 아기들. 자신감이 붙으려고 할 때 딸이 왔다. 딸은 손목과 발뒤꿈치가 아파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했다. 아기 키울 땐 아기들도 엄마도 아프면 안 되는데, 병원 가기도 수월하지가 않은데, 그래서 여태까지 병원도 안 가고 미루어 두었나 보다. 저도 아프면서 딸은 아기들이 이유식은 그런대로 잘 먹는데, 분유를 안 먹으려고 한다고 걱정했다.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는지 그때는 어떻게 이유식을 먹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렇게 다양하고 영양가 있는 이유식을 먹인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안 날까. 도와줄래야 도와줄 수가 없다. 그때하고 상황도 환경도 모두 많이 달라져서 적용하기도 어렵지만. 아이들이 자는 동안 점심을 먹었다. 은이가 깨어 거실로 나왔는데 놀랍게도 혼자 잘 놀았다. 나는 그저 다칠까봐 봐주기만 하면 되었다. 

3시 이유식을 먹는데 랑이 먹기 싫다고 떼를 쓰며 울었다. 난 랑이 그렇게 우는 것을 처음 봐서 조금 놀랐다. 은이도 랑이 우는 것에 입맛이 없어졌는지 딴청을 피운다. 메뉴 주재료가 흑임자여서 싫을 만도 할 것 같다. 그래도 딸은 아기들 밥을 거의 다 먹였다. 은이가 밥 다 먹고 거실 매트로 왔는데 똥 냄새가 나서 보니 흑임자 죽이랑 똑같은 똥이다. 그렇게 활발한 말괄량이 은이도 똥 치울 때는 가만히 있다. 이런 걸 보면 아기들도 느낌을 다 아는가 보다. 랑이도 기저귀 갈아주고 소아과에 갔다. 그런데 대기가 한 시간도 넘게 밀려 있다. 내가 은이를 안고 있었는데 집에서는 이리저리 뒹굴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은이 정말 그림같이 조용하게 앉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쁘다. 랑이도 제 엄마 품에 있다가 의자에 앉았다가 하면서 잘 기다린다. 그러다가 은이가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아주 피곤한지 곯아떨어진 모양인데 차례가 왔다. 자다가 깬 은이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청진기할 때도, 입속, 귓속, 콧속을 들여다볼 때도 의사 앞에서는 울지도 않고 진찰을 다 받았다. 금방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던 아기 같지가 않고, 은이 신기할 정도로 상황파악을 잘 하는 것 같았다. 랑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를 쳐다보며 진찰을 받았는데 기침 이외에는 이상이 없었고, 은이는 가래가 조금 있다고 해서 약이 다르다고 했다. 무려 1시간 반 만에 병원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올 때보다는 시원하다. 딸이 제 몸도 아픈데 아기들 돌보는 게 안쓰럽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키웠으니, 조금씩 힘든 것도 나아지겠지.

내가 귀가하고 나서 랑이 아랫니가 3,4번이 났다고 문자가 왔다. 랑이 이가 나느라고 아파서 그렇게 울었나 싶어서 또 마음이 아련하다.

둘이 놀다가 엄마 소리에 돌아다보는 둥이들
마치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듯
랑이 골똘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