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 결혼식이 있어 3주 만에 하둥이를 보러 갔다. 돌이 지나고 나니 크는 속도가 있어 아이들이 많이 컸다. 젖살이 빠진 얼굴은 더 작아졌지만 야물어진 느낌이다. 가지고 간 현미 떡뻥을 주니 엄청 좋아한다. 아기들 입맛에 맞으면 표정에서 벌써 맛있다가 나온다. 먹다가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지면 그것도 손가락 끝으로 집어서 먹는다. 그러다가 할머니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밥을 먹을 때는 입맛에 안 맞으면 딴청을 쓰기도 하는데 그럴 때 특효약은 김이란다. 김을 쥐어주면 랑이는 입을 새끼제비처럼 딱딱 벌리고 밥을 받아먹고, 은이는 김을 다 먹고 난 다음에 밥을 다시 잘 먹는다고 했다. 역시나 그랬다. 김에 짭조름한 맛 때문일까 싶어 난 많이 주지는 말라고 이른다. 딸을 제 방으로 들어가 쉬라고 밀어 넣고 아기들과 놀았다. 아기들은 곰돌이 타는 기구도 좋아하고 미끄럼틀을 제법 잘 올라가고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창가에 있는 아기 의자에 올라가 한참동안이나 창밖을 내다본다. 차가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물병에 물을 담아 놓으면 알아서 먹는다. 빨대를 빠는 게 아주 익숙해져서 잘 먹었다. 지난번 보내준 캠 영상에는 은이가 아기의자를 밀고 보행 연습을 하는 모습이 있었다. 은이는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실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랑이가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며 진보했다면 은이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행동을 보여주었다. 고개 들기, 뒤집기, 안기, 서기 등 행동 발달 과정도 좀 다르다.
아기들은 상대방이 갖고 노는 게 재미있어 보이는지 꼭 붙어 있다. 둘이 충돌이라도 하게 될까봐 더욱 세심하게 봐야한다.
은이는 볼풀에 랑이는 바깥에서 놀고 있다입을 꼭 다문 은이의 다부진 얼굴랑이 뭐해? 떡뻥 조각 먹고 있어요은이 의자에서도 두 손에 공을 들고 있다의자에 양발을 걸치고 있는 모습
행동반경이 넓어질수록 더 신경을 쓰고 잘 봐야하니 아기들도 바쁘지만 보육자도 바빠진다. 눈을 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은이가 변을 이틀에 한 번 본다고 했다. 얼굴이 온통 빨개지며 힘을 주고 있어서 기저귀를 보니 약간 지렸을 뿐이다. 그러다 내가 집으로 오고 나서 엄청 무더기로 쌌다고 한다. 우리 은이 배가 볼록하더니 똥배였구나 ㅋㅋ
점심으로 훈제 오리구이를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유통 기한이 지났다. 할 수 없이 상추만 가지고 갔더니 딸이 어느새 등갈비를 오븐에 굽고 있었다. 아기들을 재우고 나오니 솔솔 맛있는 냄새가 났다. 나는 너 힘든데 뭘 이걸 했냐고 했더니, 엄마와 오늘 송년회 하는 거라며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나는 딸이 고마웠다. 엄마가 1년 동안 아기 보러 다닌 것의 의미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러니 부엌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아기 보는 것만도 힘든데 일까지 하지는 말라고 했다.
등갈비구이 맛있다
내 일상에서 1년 동안 하둥이가 절대적인 존재인 한 해였다. 보고 집에 오면 눈에 아른아른 고 귀여운 모습들이 지워지질 않았다. 딸이 잘 키우고 있어서 믿음직했고, 아기들도 순한 편이긴 해도 아프거나 할 때는 참 어려울 텐데, 어찌되었든 헤쳐 나가는 딸이 대견했다. 그래서 쌍둥이 엄마가 된 딸을 도우려고 오다가 중간부터는 일기도 쓰게 되었다. 그래도 고맙다. 내가 갈 수 있어서, 아기들 돌볼 수 있어서, 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한 한 해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