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2023년 농사를 마치며
떨켜
2024. 1. 4. 12:47
올 농사를 돌아보니, 무엇보다도 열매 채소들의 활약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올해는 밭 꾸미기도 제대로 한 것 같지가 않고 듬성듬성 성의 없게 한 것 같은데, 호박, 가지, 오이가 아주 잘 되어서 텃밭 이웃들하고 나눠 먹을 수 있었다. 호박 모종은 매장에서 산 것도 있었고, 집에서 생긴 씨앗이 화분에서 자연 발아를 하여 옮겨 심은 것도 있었다. 그것이 단호박이었다. 크기는 작고 5개 정도 열렸는데,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물론 5개가 모두 잘 익은 것은 아니었다. 비가 많이 오면 습해서 썩기도 했고, 땅에 닿아 썩어 문드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첫 열매는 하둥이 먹이라고 줄 수 있을 정도로 잘 여물었다.
그리고 애호박 모종을 심었는데 참 예쁘게도 열었다. 두세 개가 조로롱 열리고 먹기 알맞을 정도로 익으면 더 예쁜 것은 하둥이네로 갔다. 애호박도 늦가을까지 열었다. 모두가 감탄스러웠다.
그래서 아기들 이유식에 호박과 가지가 많이 들어갔다. 우리 먹을 게 있는데도 또 딸 때가 되면 아랫밭, 옆밭 이웃들에게 나눠졌다. 오이는 노각을 4그루 심었더니, 여름내내 노각 무침을 먹을 수 있었다. 노각을 한꺼번에 많이 따게 되면 노각 김치를 담가 놓고 2주를 먹을 때도 있었다. 오이가 잘 안 연다는 아랫밭 이웃에게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노각은 처음 달릴 때부터 예쁘고 날렵한 다다기 오이에 비해 처음부터 생긴 게 뭉툭하고 타원형 비슷하게 자란다. 색도 다다기 오이는 연초록색인데 노각은 짙은 초록색이다. 그러다가 몸체가 커지고 표면에는 그물같은 줄이 생긴다. 그러면서 노각의 본연의 색이 되는데 갈색 종류가 된다. 그러면 길이가 20~30cm정도로 커지고 더 커지는 것도 있다. 오이가 무거워서 오이 덩굴은 자꾸만 아래로 쳐진다. 오이 두세 개만 따도 무겁다. 오이가 제일 먼저 걷히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었다. 9월이 되자 가지도 걷고 김장거리를 심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가지를 뽑을 수가 없는 게, 자꾸 꽃이 피고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이라서 그냥 두었더니, 서리가 올 때까지 열었다. 물론 전성기처럼 매끈하고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일하다가 간식으로 따 먹을 정도는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많이 주실까. 정말 고마운 것들이었다. 그에 비해 고추는 일찍 탄저병에 걸려 시들었고, 작년에 비해 방울토마토도 일찍 끝났다. 배추는 내가 텃밭을 한 이래도 가장 연하게, 가장 튼실하게 자랐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퇴비론자인 남편 덕분인 것 같다. 가을 농사 시작 전에 퇴비 두 푸대를 마음껏 뿌려 준 결과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는 심고 가꾸는 일을 하고, 땅을 파고 이랑을 만들고, 지지대를 박아주고 잡아 매주는 것은 남편이 다 했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올해의 텃밭을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풍요롭다. 고마운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