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과 생선회를 먹고 장염에 걸려 일주일 넘게 고생하는 바람에 한 주를 하둥이 못 보고 지나갔다. 오늘은 매우 춥기는 해도 길이 미끄럽지를 않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렇게 손주들을 만나러 가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바구니에는 아기들 먹일 과자며, 아기 김도 챙기고, 딸 먹일 소 등심과 쌈채를 담았다. 나이 들어가며 손주를 한 번씩 돌봐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인류가 지속되어온 원동력에도 조금은 이런 마음이 기여한 것은 아닐까. 뭐라도 갖다주고 싶고, 아무리 봐도 안 이쁜 데가 없으니 할머니가 되면 누구나 느끼는 마음일 게다. 그렇게 귀하고 예쁜 하둥이가 고개를 반짝 든 아기 호랑이처럼 나를 맞이했다. 은아, 랑아, 이리 온 하고 손을 내미니, 은이는 갑자기 물구나무를 선다. 다리 사이로 얼굴이 보이면 내가 까꿍을 해준다. 그러면 몇 번이고 또 한다. 이게 인사인 것 같다. 랑이는 처음에는 심드렁하다가 내 무릎에 앉아서 놀기를 좋아했다.
요즘은 잘 때하던 쪽쪽이를 떼느라 엄마도 아기도 고생이란다. 아기 때부터 했던 분신 같은 쪽쪽이 없이 잠이 들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처음엔 울고 잠떼를 부리다가도 이젠 우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딸도 아이들이 잘 시간이 되면 잠방 문을 닫아주고 나와서 캠으로 살펴본다고 했다. 엄마가 있으면 자꾸 놀자고 해서 시간을 놓치고 그러다보면 서로 피곤해지니 마음은 조금 불편해도 견딜만 한가 보다.
은이 혼자서도 잘 타요.이모가 사온 이쁜 옷 입고 외출 준비 중양말 벗어버리고 이렇게도 해맑은 표정으로 사진에 임하는 은우리 랑이 으젓하구나포즈의 왕아이구, 으니 맞아?멍 때리니 랑?뭐가 이리도 재밌을까운동화를 좋아하는 은활짝 웃었네랑
점심에는 등심을 구워서 작게 잘라 집어먹으라고 주니 잘 먹는다. 익힌 양배추도 밥 위에 얹어주니 따박따박 잘 받아 먹었다. 내가 가지고 간 김도 잘 먹었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하면서 신발이 필요해서 엊그제 쇼핑몰에 다녀 왔다고 한다. 유명 브랜드인데 무슨 어른 신발 값하고 비슷하다. 이쁘긴 하다.
랑이는 보행기를 밀면서 어찌나 빨리 걸어가는지 쫓아가기 바쁘다. 거실에서 현관까지 복도로 이어진 긴 길이 있어서 이곳이 연습 장소다. 은이보다 랑이가 훨씬 많이 연습한다. 보행기가 두 개 있는데도 서로 한 개만 타겠다고 싸우기도 한다.
은이는 그림책에서 동물 소리가 나는 곳을 정확히 짚어 소리를 들었다. 자꾸 읽어달라고 했다. 랑이도 같은 곳을 짚어냈다. 똑똑한 아기들이다. 랑이는 식탁 위에 있는 물병을 까치발로 서서 잡아당길줄 안다. 오늘 보내준 영상을 보면 이제 랑이는 미끄럼틀을 아주 제대로 잘 탔다. 오전에 은이가 랑이 입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랑이가 은이 손가락을 깨물어서 은이가 한참이나 울었다고 한다. 은이가 이번에 놀라고 나서 랑이 입에 손가락 넣는 것을 안 했으면 좋겠다. 밖은 바람도 세고 무척 추운데 하둥이네 집은 바람 한 점 없다. 아주 온화한 집이다. 감사한 일이다.
하루는 랑이가 잠방에 있는 가습기를 쓰러뜨리는 사고를 쳤다. 그때 딸은 주방에 있었는데, 은이가 주방 문까지 기어와서 자꾸 잠방을 쳐다보며 뭐라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딸이 잠방에 가 보니, 가습기가 넘어져 있고 물이 다 쏟아져 매트를 적시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일로 하루 종일 딸은 침구를 빨고 말리느라 힘이 빠졌단다. 랑이 어떻게 가습기를 넘어지게 했는지는 캠의 방향이 달라서 알 수 없다. 그리고 은이가 정말 엄마한테 가보라고 사인을 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일이 있으니, 딸이 어려서 우유를 엎어놓고, 동생 목욕물에 먼저 들어가 물장난하던 게 생각났다. 아무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얼마나 또 많을까? 그렇더라도 다치지 않고, 크게 위험한 게 아니면 되지 싶었다.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라도 우리 하둥이들 얼마나 귀여운가. 건강한 꾸러기로 잘 자라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