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에 제일 잘 자라는 게 열무다. 싹도 쉽게 트고 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어떤 이는 한 자리에서 댓 번은 해 먹었다고 자랑이다. 올해 사오월은 비도 알맞게 오고 햇볕도 좋아서 대체적으로 씨앗들이 잘 나 주었다. 벌써 예쁜 초록색 열무를 올해의 첫 수확으로 뽑으며 ‘이것은 지금 투병중인 자매한테 갖다줘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물에 씻을 때도 바삭거려서 부서질까 걱정이니 아기 다루듯 했다. 몽땅 갖다주니, 후에 만나서 너무 잘 먹었다고, 물김치 정말 맛있었다고 한다. 그래, 잘 먹고 이겨내. 하는 내 마음이 그 맛에 녹아있음을 그녀도 알았겠지. 그런데 시간차를 두고 심은 열무를 큰 것만 대강 솎아올 때도 괜찮았었는데 사일 만에 찾아가보니, 아뿔사, 날 벌레가 달려들어 줄기와 잎맥만 남겨놓고 몽땅 갉아먹었다. 그걸 보고 웬 만한 것은 징그럽다고도 안 하는 남편이 “벌레가 너무 많다. 이걸 어찌 먹어.” 하며 질겁을 한다. “그래도 버릴 순 없지. 다듬어 가지고 갈 거야.” 하며 밭둑에 앉아 벌레를 털고 떼고 하는데 정말 심하다 싶다. 하긴 약 안 준건 너희들이 먼저 알지. 나방 같기도 하고 모기 같게도 생긴 놈들이 떼로 날아다니다가 잎새 뒤에 알을 낳고 애벌레로 크는데 색이 열무하고 똑같아서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집에 가져오니 사실 물김치하기에는 좀 께름칙하다. 벌레가 둥둥 떠 있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데쳐 국이나 끓이자고 씻는데 물속에 떨어진 벌레가 한 주먹이나 될 성 싶다. 아이들이 볼세라 얼른 버렸다.(국 안 먹을까봐) 그러다가 생각난 분이 글라라형님이다. 그분이라면 이런 걸 드려도 괜찮아 하시겠지 하고 연락하니 두절이다. 메모를 써서 현관문에 달아놓고 왔더니 나중에 “아유, 왜 데쳐. 그런 게 진짠데. 물김치 담았지,” 그러신다. 그럼 더 드릴 걸하며 벌레 이야길하니 “건져내고 먹으면 되지. 뭘. 그게 다 약인 거여.”하신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그분의 넉넉한 마음이여! 저런 마음을 배워야지. 데쳐 국을 끓이니 정말 맛좋다. 남편과는 동물성 단백질이 들어 있어서 그럴 거라고 서로 눈짓한다. 반은 도시내기인 은정에게 주었다. 고추나무도 감자도 오이 잎사귀 뒤가 꺼끌한 것도 처음 알았다며 신기해하던 은정이 지난번 밭에 데리고 갔을 때 벌레 보고는 십리 밖으로 도망갔었다. 그런데 열무국을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벌레들어 더 맛있다는 얘기를 할꺼나말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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