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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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전쟁수리재 이야기 2010. 8. 6. 15:22
휴가를 수리재에서 보내게 되었다.냉이 많던 이장네 문중 땅엔 옥수수가 제철이다.농사 고수인 금슬 좋은 이장네 부부는 옥수수도 예쁘게 잘도 키웠다.그런데 옥수수가 익을 무렵이 되니 걱정이 생겼다.산돼지가 벌써 시식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속 좋은 이장은 "할수 없지, 뭐. 남는 거 먹어야지. 허허허"하고 웃었지만청평장에 내다 팔아야 돈 사는 이장네는 "아유, 속상하지 뭐. 돼지 주려고 키웠나." 하며근심스러워하였다. 그러더니 그날 저녁, 집 앞 길가에 낯선 트럭이 서 있어 누군가 했더니 마을 포수라 하였다.잠복근무라 했다. 다음 날 아침 고추밭에서 먹을 고추를 따고 있는데 옥수수밭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장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가보니 옥수숫대가1소대 정도 쪼르르 넘어져 있고 열매가 없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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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어디 갔나요?수리재 이야기 2009. 3. 24. 22:55
지난 주말, 수리재 마당에서 주목을 옮겨심느라 분주한데 아래 이장네 밭에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들렸다. 언니가 "얘. 우리 점심 반찬도 없는데 너도 가서 뭣좀 캐와라." 하였다.호미와 비닐봉지를 들고 내려가보니 청평읍내에서 왔다는 아줌마 셋이서 수다를 떨며 냉이를 캐고 있다.나를 보더니 삼 년 전에 왔을 땐 그 많던 냉이가 다 어디로 갔냐며 물었다.글쎄요, 다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나는 냉이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느님께 여쭤보았다.하느님은너도 캐어가지 않았니? 대보름전에도 또 지지난주에도 조금이지만 캐는 걸 보았는데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잖아요. 전에는 훨씬 더 많았는데너 말고도 가끔 두세 명씩은 왔었다. 그들도 바구니를 채우지는 못했더라.아주 없어져 버릴 것 같아요. 씨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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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농사수리재 이야기 2008. 10. 6. 20:35
청량 고추를 많이 심은 덕에 고추를 따다보면 손이 매워 아릿하다.밑거름도 없이 거의 생땅이다 싶은 곳에 고추를 심고 단 한 번 복합 비료를 정말 조금 주었을 뿐이라 고추를 따려면 엎드려야 한다.요즘 고추는 키가 커서 서서 따고 앉아서 딴다는데 우리 고추는 약도 한번 안 먹은지라 약해보이기만 하다. 그래도 큰 병없이 자라 빨갛게 익은 고추를 보면 꽃만치 예쁘다. 언니넨 그나마 비료를 많이 주었는지 잘못 주었는지 비료 독에 크지도 못해 얼마 달리지도 않았다.마트 장바구니 두 개 정도를 첫물로 따고 보니말릴 일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올해 초가을 날씨가 여름 못지않게 덥고 비가 오지 않아말리는데 고생을 하지 않았다. 한 열흘 정도 좋은 햇볕에 말리니 바삭바삭한 소리가 났다. 볕이 아니면 고추 썩어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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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매기수리재 이야기 2008. 6. 16. 17:06
엊저녁엔 회사에 갈 일이 있다며 수리재에 가지 못할거라고 하던 남편이아침이 되자 나를 깨웠다."갈 거면 빨리 일어나. 차 막히기 전에 출발하자."달디단 아침잠에 10여 분을 더 바치고 부스스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했다.청평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안되어 농협에서 쌀과 고기 그리고 고추 묶어줄 끈을 샀다.수리재 마당에선 언니가 무언가 잘 안된다며 끙끙대고 있었고형부는 늘 오로지 한 가지 잔디 풀 매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밭에 올라가 보니 고추랑 오이가 그런대로 되가고 있다.한 바퀴 돌고 마당에 엎드려 모두 풀을 맸다.풀처럼 잘 자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매도 매도 뒤돌아보면 또 있다.점심엔 오골계를 잡아 백숙으로 먹었는데 맛있었다.술 한잔에 밤나무 그늘에 신선 놀음이다.점심상을 치우고 아랫밭에 내려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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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심기수리재 이야기 2008. 6. 16. 16:47
고추, 토마토, 대파, 고구마, 오이등 모종과 멀칭으로 쓸 비닐까지 사고 보니비용이 수월찮다. 남편은 이 돈으로 사 먹지 웬 고생이람 하며 투덜거린다.난 흙과 자연에서 얻는 기쁨이 큰 데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수리재가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꼼꼼하고 확실하게 도와준다.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덮고 모종 심을 구멍을 뚫어주면나와 언니가 물을 주고 모종을 심었다. 지난주에 심은 언니네 것들은 추위를 탔는지시원치 않다. 한 시간 정도 일을 하니 언니가 새참으로 막걸리와 빵을 내왔다."일은 눈곱만큼 하고 새참만 찾는다"며 웃지만 그런 즐거움 없는 노동뿐이라면넘 팍팍하다. 그늘막에 앉아 산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우리가 심어놓은 작물들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없이 그 시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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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수리재 이야기 2008. 6. 16. 16:29
남자들이 달려들어 세우고 조이고 해서 과실 나무 근처에 닭장을 짓고 나니제법 그럴 듯하다. 양평 언니 사돈네서 얻어온 닭들은 날로 윤기가 반드르하게 커 가고 있다.하긴 사료를 한 달에 두 푸대씩 먹어대니 그럴밖에.난 벌레나 풀만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하는데 꼭 사료를 넣어주고 간다.일주일 만에 와서 젤 먼저 찾아보는 게 닭이 되었다.내 소유가 는다는 것은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아 보인다.언니는 집에 가서도 닭걱정이라고 한다. 하긴 나도 그랬다. 에이 아인지 하는 닭병이 돈다고 하니 걔들은 잘 있을까 집에서도 자주 생각이 났었다.주말에 갔을 때 다 죽어있으면 어찌하나 그걸 젤 먼저 보게 되는 사람은 얼마나 놀랄까? 다행히도 얼마나 씩씩하게 잘 크는지 보기만 하여도흐뭇하다. 수탉은 멋진 왕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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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수리재 이야기 2008. 6. 16. 16:26
오른쪽으로 뻗은 산에 취나물이라도 있을까해서 올라갔다.그러나 취나물은 이제서 뾰족하게 나고 있어서 손에 잡히지도 않고야생화가 더 잘 보인다.양지바른 무덤가엔 할미꽃이 지천으로 있다.꽃은 다 지고 홀씨만이 등불 밝히고 있다.솔붓꽃도 두어 포기 캐 담은 바구니엔 나물보다 꽃 바구니다.둥굴레도 캐어 담았다. 주로 들깨만 심는 비얄밭은 산괴불주머니 밭이다.아예 밭을 전세 냈다.고사리 찾아 올라간 산 돌 틈에는 금낭화가 어찌나 예쁘던지열 포기 정도 담았는데 바구니에 가득 찼다.노란 애기똥풀에 낮은 곳에 민들레, 제비꽃, 야생화의 언뜻 보면 소박하지만 자세히 보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아아 세상은 꽃 천지구나. 나무에도 땅에도 온통 피어야 할 꽃은 다 피었구나. 꽃을 보는 마음으로만 살아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