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도 계속 오고 휴가도 보내느라 한 열흘 정도 농장에 못 갔다. 그래서 휴가 끝자락에 비까지 오는 저녁 무렵, 밭으로 간다. 내 발걸음은 고향집에 들어서는 양, 성큼성큼 마음은 벌써 저만큼에 달려가고.... 하늘을 찌를 듯한 키 큰 해바라기가 문패인 우리 밭이 저기 보인다. 내가 가꾸고 애정을 쏟았다는 게 이런 건가?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장미꽃을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옥수수수염이 말라비틀어진걸 보니 딸 때가 되었다. 방울토마토도 그 사이 너무 익어 살이 터지고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감자 캐 낸 자리에 심은 상추도 예쁘게 나서 남편이 솎아주고 풀도 매줬다. “고추도 얼른 얼른 따다 먹자.” 남편이 젤 좋아하는 게 매운 고추이다. 그는 청량 고추만 있어도 반찬 걱정이 없다. 망친 상추 뽑은 자리에 모종한 상추가 이제 제법 먹을 만 하게 잘 자랐다. 지난번 상추 때 상한 속을 지금 낫게 하시나보다. 그때, 지금 주지 않는다고 부린 투정이 부끄럽다. 풀 매고 있는데 이웃 밭주인이 근대와 신선초를 주신다. 밭도 이웃이고 마음도 이웃이다. 자연에 있으면 모두가 넉넉해지는 모양이다.
가지, 옥수수, 상추, 토마토, 고추, 깻잎, 신선초, 근대.... 집에 가지고 와서 식탁에 올리니, 참 많이도 주신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그 분이 하시는 일.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