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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화요일 날씨 봄날
어제 먹고 남은 불고기에 밥 한덩이 넣어 쓱쓱 비벼먹고
처음엔 씁쓸하지만 끝맛은 달짝지근한 믹스커피 반 잔 마시고 나니
뜨뜻한 거실 바닥은 내 등짝을 끌어당겨 저절로 tv앞에 누워졌다.
온 몸은 퍼질대로 퍼져 무장해제된 말년병장처럼 마음도 뒹굴뒹굴,
리얼 버라이어티를 하는 연예인들의 재미진 웃음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릴락말락하며 잠을 재촉하였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놀고도 돈 벌고' 이런 하릴없는 생각하며 잠이 들만 할 때
따르릉 하고 집전화가 울렸다. 그럴때 전화기가 팔을 뻗어도 안 되고 꼭 일어나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는게 왕짜증인데 받으니 더 가관이다.
"여보세여?"
졸음과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내 목소리에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카랑카랑한 감정 없는
"우체국입니다."하는 여자 목소리다.
"또 그 사기 전화구나. 예이. 오늘은 휴일이다. 거긴 쉬지도 않냐?"
난 달아난 잠을 찾으려다 잠이 안와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갔다가
사기 전화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실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으니....
명절동안 쉼 없이 먹어댄 결과물이 아랫배에 타이어를 만들어 놓고 있었고
난 찬물을 뒤집어 쓴 놀란 기분으로 바지 지퍼를 힘껏 올리며
잘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결심을 하였다.
"먹고 자면 쥐약이다. 산에 가자."
오늘 산에 가면 트럭 타이어가 자전거 타이어로 변할 것만 같은 희망에 가득차 런닝화끈을
꽉 조이고 산에 가는 길목을 올라가는데 벌써 다리가 후들거릴 것만 같다.
산에는 날이 좋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걸음도 사뿐사뿐 잘도 걷는데 나는 숨이 차다.
"이게 다 내 업보여. 그동안 왜 산에도 안 오고 뭐했다냐? 내 탓이다. 내 탓."
마음은 그렇지만 다리는 네 탓을 하고 있는 것 만 같다. 천근만근. 그래도 한 시간은
걸어야 온 보람이 있을 텐데 싶어 비탈진 산길을 내려오는데 응달이라 눈이 얼어 미끄럽다.
그러지 않아도 힘이 빠진 다리에 얼음을 밟았는지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리도 아프고 쉬고 싶은 마음에 나뭇가지를 주워 흙과 낙엽을 길 위에 뿌렸다.
미끄러운 곳곳에 뿌려놓고 한 바퀴 돌고 오니 사람들이
"누가 미끄럽다고 이렇게 해 놨네. 안 미끄럽고 좋구만." 그러면서 지나간다.
난 사람들이 아슬아슬 지나가지 않고 안심하고 가는 게 내 덕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며 걸어가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 것 같다. 덕분에 나도 한 시간을 거뜬히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허리에 붙어있는 타이어는 바람이 조금도 안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사기 전화 땜에 잠도 못자고 짜증이 났었지만
그 덕분에 운동했으니 모든 게 생각할 나름이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운동하며 성실하게 살자고
새해 결심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