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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버스를 타고 화압사 입구에 내렸다. 지난번 두 번째 구름산행을 함께 했던 마리아 씨와 같이다.
화압사는 산 중턱에 있어 절까지 가는데 급경사인 포장길을 올라가야 했다.
절 입구에 못 미쳐 잣나무 숲으로 가는 샛길로 들어가니 지난주 내린 눈으로 빙판이다.
나는 내 아이젠을 오른발에 신고 나머지 한 쪽은 마리아 씨한테 건넸다.
“오른쪽에 신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불편해도 한 쪽이라도 신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내가 삼성산 가자고 문자 보냈을 때 마리아 씨는 나는 아이젠도 없는데 하며 불안해 하였다.
아침에 오면서 생각하니 한 쪽 씩이라도 나눠 신으면 되겠다 싶었다. 마리아 씨는 내가 한 쪽만 신는게
미안해서인지 급사양하지만 나눠 신겠다는 생각이 그렇다고 변할 수는 없다.
다행히 아이젠 발톱이 높진 않아서 그런대로 걷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잣나무 숲을 지나니 돌과 바위투성이인 오르막으로 얼음과 눈에 덮힌 매우 미끄러운 길이다.
“아이구, 진작에 마련할 걸. 큰 산 입구에는 용품 파는 사람들 있더구만, 여긴 없나?”
마리아 씨는 한 쪽의 아이젠으로 안심하고 얼음길을 오를 수는 있지만 마음은 불편한 모양이다.
나는
“괜찮아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그 대신 아이젠 신은 발을 콱 디뎌야 미끄러짐이 덜 할 거예요.”
나는 같이 왔으니 아무 사고 없이 같이 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어디를 가나 누구와 가나 늘 같은 생각이다.
산봉우리에 올라서니 햇살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날씨 좋은데요. 하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람이 불어도 매연 때문에 흘러가질 못하고 정체된 수도권 미세먼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우리가 저 속에서 살고 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참 우울한 기분이다. 왜 하필 중국 옆에 살아서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먹고 살아야하나, 조상들이 당했던 약자의 설움도 열받히는 일인데 하며
이웃나라를 탓해본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 이웃나라 잘 못 둔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저 더러워진
공기들이 세계인들을 살게 하는데 일조하는 공장에서 나오는 것을, 저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 생길
아수라장은 또 하나의 세계대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을 떨쳐내려 가방을 내려놓고 뜨거운 물을 꺼냈다. 마리아 씨가 가져온 고구마는 정말 맛있었
다. 나는 곶감을 내놓았다. 산에서 마시는 커피는 왜 이리도 좋은 걸까에 대한 나의 답은 힘들게 지고
올라와서다. 휴식도 힘들게 일한 뒤에 와야 쉼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되고 배가 고파야 밥도 맛있
다. 세상살이가 모두 이분법적일 수는 없으나 더러는 이런 논리가 맞을 때가 많다.
진달래가 많은 능선은 걷기에 한결 수월하다. 삼막사쪽으로 걸어가다보니 길옆에 등산용품을 파는 아저
씨가 있다. 당연 아이젠도 있다. 마리아 씨가 샀다. 나에게 많이 미안했나보다.
그런데 나머지 한 쪽을 받아 왼 발에 신고 보니 뒤뚱거리고 어색하다. 한 쪽만 신은 것에 그새 익숙해
진 모양이다.
방향이 남쪽이라 그런지 눈이 녹은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길을 걷고 걸어 잠시 쉬고 있는데 한 등산객
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뒷 배경에 건물이 보이길래 저게 뭐냐고 물으니 경인교대라 한다.
채석장 자리에 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도 저게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는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아, 맞어. 전에도 이 길을 한 번 왔었구나. 그 때는 앞서가는 이의 뒤를 따라만
왔었지. 나의 의지가 배제된 삶이란 이런 건가 보다. 기억조차 확실하질 않으니
호암산에서 시작하여 장군봉을 지나 삼성산 국기봉에 닿으니 한 시다. 세 시간가량 걸은 셈이다.
점심은 컵라면이다.
아직 쌀쌀한 산정에서 뜨뜻한 국물 맛이 최고다.
반월암쪽으로 내려오니 포장길에 남은 눈을 암자 스님이 쓸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스스럼없이 얘기를
하셔서 조금 듣다가 삼막사쪽으로 해서 내려오는데 포장길이 엄청 길다. 내 생각으로 4키로이상 될
듯하다. 그래서인지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도 쉬고 싶어한다. 그런데 쉴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경인교대앞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관악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4시다.
“뒤에서 보면 30대인 줄 알겠어요. 날씬하고.....”
단지에 들어서며 마리아 씨가 한 말이다.
“에구, 맛난 거 사드려야겠네유.”
그랬더니
“오늘 산행으로 다 됐어요. 좋은 하루였어요. 정말 고마워요.”
뭘요. 나도 고맙지요. 동행해줘서. 푹 쉬고 담에 또 다른 산가요.
퇴근한 남편. 삼성산 갔다왔다고 하자
“오늘 큰일 했네. 다리에 베개 받혀놓고 자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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