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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축 전화기
    사노라면 2014. 3. 6. 16:03

    노모가 자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은 전화기가 제일 컸다.

    어머니는 몇 해 전만 하더라고 우리 집 전화번호는 외워서 걸곤 하셨다.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번호판을 잘못 눌러서 통화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전화번호는 매직으로 크게 써 드렸으니 보기에 불편함은 없겠지만 번호를 보고 전화기 버튼까지 오는 시간에 잊어버리거나 중복해서 누르는 실수가 잦다보니 전화를 하다가 짜증만 난다고 하셨다. 여러 번 시도하여 어쩌다 잘 걸린 듯 하면 이눔의 자식들이 받지를 않는단다.

    결국 자식들이 종종 전화를 드리면 별 문제도 없겠지만 요즈음 자식들은 모두 바빠서 엄마한테 전화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내가 단축 다이얼을 설명하고 사다드린다고 해도 해보는 데까지 해 겠다셔서 알았다고 했었다.

     

    드디어 사 와라하는 지령이 떨어졌다. 그날로 전자제품만 파는 "ㅎ"마트에 나가보니 단축 버튼 기능이 있긴 한데 몇 개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오마니 자식을 일곱이나 낳으셨으니 이를 어쩌나

    전화를 자주 하는 놈도 있지만 1년에 한두 번 하는 자식까지 있으니 전화를 자주 하는 놈 번호를 넣어줘야 하나, 목소리 잊지 말라고 안 하는 자식 번호를 넣어줘야 하나 갈등이 생겼다. 어찌어찌하여 네 개만 단축 시켰다해도 1번에 누구 2번에 누구 하는 식으로 써 드려야 한다. 만약 자식 중에 자기 번호가 단축으로 저장된 걸 알면 맘이 편하겠지만 혹시 자기 번호가 빠져 저장되지 않았음을 안다면 소외를 느껴 어머니 사랑을 의심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이것 저것 신경이 쓰였다.

    번호를 10개 정도 단축할 수 있으면서 편하게 쓸 수 있는건 없을까 유선 전화기 파는 데를 다 가보고 인터넷으로도 뒤져 보았지만 90 노모가 쓰시기에 마땅한 걸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가게마다 다니며 이런저런 전화기가 필요하다고 하소연만 하고  돌아왔다.

     

    그 사이 노모의 하소연은 매일 되풀이되다시피 했다.

    내가 전화를 드리면

    "아이고 잘 했다. 그러지 않아도 너한테 할 말 있어서 전화를 걸다가 걸다가 안되서 ...... 얘, 테레비서 그러는데 신문지를 돌돌 말아서 다리며 팔이며 자꾸 두드려주면 피가 잘 돌아서 좋댜. 너도 꼭 해라이."

    "아이고 전화 마침 잘했네.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었더니 입에서 곰팽이 나려고 했어.ㅋㅋㅋㅋ"

    하루 걸러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의 강의를 듣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은 황사가 심하니 나가지 말고 나가려면 입마개 꼭 하고 가거라.

    감기는 목에서부터 드는 거랴. 그러니 목도리 꼭 하고 나가거라."

    "얘, 낙지 국은 어떻게 끓이는 겨? 아까부터 궁금해서 너한테 전화했는데 느이께 고장난 거 같아. 어떤 여자가 자꾸 뭐라고 혀. 네 목소리가 아닌디......"

     

    이젠 더는 노모에게  딱 맞는 전화기는 찾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단축 다이얼 4개 짜리라도 사려고 "ㅎ"마트에 또 나가봤다.

    전화기 담당한테 하소연 한 게 통했는지 단축 10개라고 쓰인 전화기가 떡 놓여있다.

    "맞아, 이거야. 이거 이거 주세요."

    디자인이야 시커멓고 별로였지만 단축이 10개면 자식 일곱에 친척 번호까지 넣을 수가 있다.

     

    다음 날 전화기,조기, 갈치, 사탕과 구충제 그리고 어머니 일기 쓰시라고 큰 노트와 매직을 갖고 내려갔다.

    도착하니 "그러지 않아도 너한테 전화 거는 중이었어. 날이 추우니 오지 말라고.....근데 잘 안되네."하셨다.

    전화선에 꽂아 설치해드리고 큰딸부터 막내아들까지 순서대로 단축을 시켜놨다.

    그리고 시험 삼아 해보라고 하였더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삐삐삐하면서  신호가 가는  게 신기하다면서 좋아하셨다.

    구충제를 드시게 하고 조기와 갈치를 졸여놓고 쓰고 싶은 대로 쓰시라고 일기장 드리고 올라왔다.

    노모의 일상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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