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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2권읽고 보고 그리고..... 2020. 4. 10. 19:25
역사 제2권
제1장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의 즉위와 이집트 원정 착수........................................................................203
키로스가 죽자 그의 아들 캄비세스가 즉위했다. 캄비세스는 이오네스인들과 아이올레스인들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노예들로 여겼다. 그는 아이깁토스 원정을 실시하였고, 이 때 그가 통치하는 다른 자들과 함께 그의 지배를 받는 헬라스인들도 함께 데려갔다.
제2장~4장 프삼메티코스 왕의 실험과 이집트인들의 업적......................................................................203
프삼메티코스가 왕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깁토스인들은 자신들이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자들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프삼메티코스가 왕이 되자 누가 맨 먼저 생겨난 자들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 이후로 아이깁토스인들은 프리기에인들이 먼저 생겨났다고 여기고, 자신들은 그 외의 다른 자들보다 먼저 생겨났다고 여긴다. 프삼메티코스는 탐문을 통해서는 누가 인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는지를 알아낼 수가 없자, 신생아 두 명을 목자에게 키우되, 절대로 아기들 앞에서는 말을 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 이유는 아기들이 옹알이를 할 때 무슨 말을 먼저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아기들이 목자에게 맡겨진 2년 쯤 되자 아기들은 목자를 보고 “베코스”라고 외쳤는데 그것은 프리기에인들이 빵을 부르는 말이었으므로 프리기에인들을 자신들보다 더 오래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아이깁토스인들은 모든 인간들 가운데 최초로 별들을 근거로 하여 역년(曆年)을 창안하고, 12신의 명칭을 최초로 사용했으며 이것을 헬라스인들은 이들로부터 받아들였다. 또 최초로 신들에게 제단과 신상, 신전을 만들어 주었으며, 최초로 돌에 형상을 새겨 넣은 것도 이들이다.
아이깁토스 최초의 왕은 민으로 그의 치세 때에는 테바이 주를 제외한 전 지역이 늪지대였고, 낮은 곳은 모두 물속에 있었다고 한다.
제5장~34장 이집트의 지리..................................................................................................................205
5장~18장 이집트의 지형과 크기
현재 헬라스인들이 배를 타고 다니는 아이깁토스 지역은 아이깁토스인들이 새로 획득한 땅이고 강의 선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이깁토스를 플린티네에서 카시오스 산기슭의 세르보니스 호수까지로 한정할 경우에 아이깁토스 자체의 해안 길이는 600km이다. 땅을 측정할 때는 땅의 넓이에 따라 다양한 단위를 쓴다. 아이깁토스 해안에서 헬리우폴리스까지의 땅은 폭이 넓고 평탄하며 물기가 많은 진흙땅이다.
헬리우폴리스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아이깁토스가 좁아지며 한쪽으로는 아라비에 산맥이 나란히 뻗어 있고, 홍해를 향해 위쪽으로 쭉 뻗쳐 있다. 그 산맥 안에는 멤피스의 피라미스를 만드는 채석장들이 있다. 이 산맥의 가장 넓은 곳은 동에서 서로 갈 때 두 달 걸리고, 그 동쪽 끝에는 유황이 산출된다고 한다.
아이깁토스의 다른 한쪽은 리비에 쪽으로 또 다른 바위 산맥이 있고 그 안에 피라미스들이 있다. 이 산맥은 모래로 뒤덮여 있고, 남쪽을 향해 뻗어 있다. 헬리우폴리스부터는 땅이 넓지 않고 폭이 좁다. 그 중 가장 좁은 곳은 66km 정도이다. 한편 여기서부터는 다시 넓어진다. 헬리우폴리스에서 테바이까지 강을 거슬러 항해하는 데는 9일 걸리고 거리는 810km이다.
아이깁토스의 홍해에는 해만이 있는데 만의 가장 안쪽에서 출발해 넓은 바다로 노를 저어 항해하는 데 40일 걸리는 거리다. 네일로스 강의 범람은 아이깁토스의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19장~27장 나일 강의 홍수 원인
네일로스 강이 범람할 때에는 델타 지역뿐 아니라 리비에와 아라비에 강까지도 강물이 흘러넘친다. 네일로스 강은 하지 때부터 시작하여 100일간 범람하다가 그 기간의 일수가 차면 반대로 물이 빠져 줄어들고 다시 하지가 될 때까지 겨울 내내 수위가 낮게 유지된다. 그 이유를 아이깁토스인들에게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부 헬라스인들은 네일로스 강에 대해 견해를 제시한 바가 있다. 네일로스 강이 범람하는 이유는 에테시아이 바람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테시아이가 다른 강에도 같은 영향을 줘야 하는데 다른 강들은 네일로스 강과 같은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이에 나는 태양이 이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 지역의 대기가 건조한 원인도 태양이 지나는 경로가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일로스 강에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이유는 바람은 보통 추운 지역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28장~34장 나일 강의 원천
네일로스 강의 원천에 대해서는 사이스 시에서 아테나이에의 성물들을 담당하는 서기가 말해준 내용이 있다. 즉 테바이스의 시에네 시와 엘레판티네라는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뾰족한 산이 둘 있는데 바로 이 산들의 중간에서 네일로스 강의 원천들이 흘러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물의 절반은 북쪽을 향해 아이깁토스로 흐르고, 절반은 남쪽을 향해 아이티오피에로 흐른다고 한다. 프삼메티코스 왕이 그 깊이를 측정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 서기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엘레판티네 시에서 위쪽으로 들어가면 땅이 가팔라진다. 이 지역은 배로 4일 걸리는 거리인데 이곳의 네일로스 강은 굽이지어 흐른다. 그 후에 평지에 닿게 되는 데 여기서 네일로스 강은 타콤프소 섬을 끼고 흐른다. 엘레판티네 위쪽으로는 아이티오피네인과 아이깁토스인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50여일을 배를 타고 항해하면 메로에라는 큰 도시에 도착한다. 이 도시는 전체 아이티오피에의 모시라고 한다. 메로에에서 50여일을 또 가면 탈주자들의 땅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아이깁토스의 전사들이었는데 아이깁토스인들이 3년 동안 수비대 근무를 했는데도 임무 해제를 해주지 않자 모두가 프삼메티코스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아이티오피에로 넘어가 그곳에 정착했다.
리비에인에 속하는 나사모네스족 중에 리비에 북쪽 해안을 탐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해안 전역(헬라스인들과 포이니케인들이 차지한 지역을 빼고)에는 리비에인의 여러 부족이 살고 있으며 그 지역 너머에는 야수들이 우글거리고 그 지역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불모의 사막이 있다고 했다. 넓은 사막을 건너면 평원이 나오고 그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보통 사람보다 작은 소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피부가 검다고 했다. 암몬인의 왕 에테아르코스는 그 나사모네스인들이 방문한 곳의 사람들은 모두 마법사들이었다고 한다. 에테아르코스는 그 도시 옆으로 흐르는 강이 네일로스라고 추측했는데 이는 맞는 것 같다. 강은 리비에에서 발원하여 리비에 한가운데를 가르며 흐른다고 할 수 있다. 네일로스 강은 이스트로스 강과 마찬가지로 같은 거리에 있는 수원에서 발원해 흐르기 때문이다. 이스트로스 강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네일로스의 원천에 대해 모르는 것은 네일로스 강이 통과하는 지역이 사막이기 때문이다. 나는 리비에 전역을 통과하는 네일로스 강이 이스트로스 강과 길이가 같다고 생각한다.
제35~98장 이집트의 관습과 문화..........................................................................................................222
35장~36장 이집트와 다른 지역의 관습 차이
아이깁토스인들의 기후가 남다르고 그들의 강이 다른 강들과 성질이 상이한 것처럼, 그들의 관습과 규범은 거의 모두 다른 사람들의 것과 정반대다. 여자들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일을 하는 반면, 남자들은 집 안에서 베 짜는 일을 한다. 소변을 볼 때 여자들은 서서 보고 남자들은 앉아서 본다. 아들들은 부모 부양의 의무가 없지만 딸들은 반드시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 아이깁토스인들은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밀과 보리를 먹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대신에 그들은 올리라라는 곡식을 먹고 산다. 아이깁토스인들은 문자를 두 종류를 사용하는데 그중 하나는 신성문자, 다른 하나는 민용문자라고 불린다.
37장~48장 이집트인의 종교적 관습
아이깁토스인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더 특별나게 경건한 자들이며, 음료를 마신 청동 잔은 매일 깨끗이 닦는다. 또 그들은 갓 세탁한 아마옷을 입고 다닌다. 그들은 근사하게 보이는 것보다 청결을 더 우선시 한다. 사제들은 오직 아마포로 만든 옷과 파피루스로 만든 끈 신발만 신는다. 그들은 물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각 신들을 모시는 사제는 다수이며, 그중 한 사람이 최고 사제이다. 사제 중 누가 죽으면 그의 아들이 그를 대신해 맡는다.
아이깁토스인들은 수소들을 에파포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소에게서 검은 털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 소는 순수하지 못하다고 간주된다. 만인 수소가 순수할 경우 사제는 그 뿔들에 파피루스를 감아 표시한 후 그 위에 봉인을 위한 진흙을 바르고 반지로 날인한다. 수소는 제단으로 데려가서 불을 피운 다음 죽인 후에 머리를 잘라낸다. 머리에 각종 저주를 퍼부은 다음 시장에서 처분하거나 강 속에 던져 버린다. 저주를 내린 머리로 불행이 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라 그들은 생명이 있는 존재의 머리라면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깁토스인들은 흠결 없는 수소와 수송아지들을 제물로 바친다. 하지만 암소는 이시스에게 바쳐진 신성한 동물이라서 제물로 바칠 수 없다. 그들은 다 똑같이 모든 가축 중에서 암소를 최고로 숭앙한다. 이시스의 형상이 암소와 같기 때문이다. 가축들이 죽으면 암소는 강물에 던지고 수소는 땅에 묻는다.
테바이에우스 제우스의 신전을 짓는 자들, 혹은 테바이 주 사람들은 모두 염소를 희생 제물로 바치고 양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깁토스인들이 모두 동일한 신들을 숭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테바이인들은 숫양을 제물로 바치지 않고 성스럽게 여기지만 일 년에 하루, 제우스 제전 때는 숫양 한 마리를 가죽을 벗겨 제우스의 신상에 씌운다.
나는 헤라클레에스가 12신 중의 일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헬라클레에스라는 이름을 헬라스인들이 아이깁토스인들한테서 받아들였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를 많이 갖고 있다. 즉 헤라클레에스의 부모가 모두 혈통상 아이깁토스에서 기원했다는 점이다. 헤라클레에스는 아이깁토스에서 오래된 신에 해당한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명확하게 알고 싶어서 포이니케의 티로스에 헤라클레에스의 성전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거기 그들의 신전이 지어진 지 얼마나 되었는가를 알아보니 2,300년이 되었다고 했다.
헤라클레에스에 대한 헬라스인들의 이야기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헤라클레에스가 아이깁토스에 오자 아이깁토스인들이 그를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끌고 갔으며 헤라클레에스가 저항하여 그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아이깁토스인들은 가축 중에서도 수소와 수송아지, 거위 말고는 제물을 바치지 않는데 어찌 그들이 인간을 제물로 바칠 수 있겠는가.
아이깁토스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긴다. 그래서 돼지치기들은 그 어떤 신전에도 출입하지 못한다. 아이깁토스인들은 다른 신들에게는 돼지 제물을 바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보지만 셀레네와 디오니소스에게만은 같은 시기에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먹는다. 디오니소스 제전의 전야에는 합창 가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헬라스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거행한다. 여자들은 거대한 남근이 달린 인형을 들고 다니며 디오니소스 찬가를 부른다.
49장~58장 이집트 신앙과 제식의 그리스 전래
거의 모든 신들의 이름은 아이깁토스에서 헬라스로 들어온 것들이다. 나는 탐문을 통해 신들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았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헬라스인들을 위해 신의 계보를 만들고 신들의 호칭을 부여했고 그들의 형상을 표현했던 자들이다. 한편 아이깁토스인들은 헬라스의 신탁소와 리비에의 신탁소가 만들어진 이유는 테바이에우스 제우스의 사제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여사제 둘이 포이니케인들에 의해 테바이에서 끌려갔는데 한 명은 리비에로 가고 다른 한 명은 헬라스인들에게로 팔려 갔다고 한다. 헬라스와 리비에에 신탁소를 세운 것은 바로 이 여인들이었다고 한다. 도도네 예언녀들은 다르게 말한다. 검은 비둘기 두 마리가 테바이에서 날아올라 그들에게로 왔는데 신탁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비둘기의 말을 듣고 자신들이 신탁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노예들로 팔려간 두 여사제가 테바이에서 이미 신전을 돌보았던 경험으로 신전을 세웠을 것이다.
아이깁토스의 테바이에서 예언하는 방식과 도도네에서 예언하는 방식이 서로 비슷하다.
59장~64장 이집트의 제전들
아이깁토스인들은 제전 집회를 일 년에 한 번만 여는 것이 아니고 자주 거행한다. 그중 가장 성대하고 열광적인 것은 부바스티스 시의 아르테미스 제전이다. 사람들이 부바스티스 시로 이동할 때는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춤을 춘다. 부바스티스 시에 도착하면 성대한 제물을 바치며 제전을 거행한다. 그곳으로 모여드는 사람은 7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65장~76장 이집트의 동물과 동물숭배
아이깁토스에는 동물들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모두 신성하게 여겨진다. 동물을 사육하는 일은 아버지에게서 자식에게로 세습된다. 사육된 동물을 죽였을 경우 고의라면 사형을 당하고 고의가 아니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따오기나 매를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한다.
인간들 사이에 사육되는 가축 중에서 고양이가 죽으면 시의 신성한 방들로 옮겨지는데 거기서 미라로 만들어져 매장된다. 악어는 가장 작게 태어나 가장 크게 자라는 동물이다. 악어는 본래 혀가 없는 동물이며 아래턱을 움직이지 않는다. 악어는 물속에서는 눈이 멀지만 대기 중에서는 시력이 엄청나다. 아이깁토스인들 중에는 악어를 신성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고 적대시하는 자들도 있다. 악어 사냥에는 돼지의 살코기를 이용하는데 악어가 낚이면 맨 먼저 악어의 두 눈에 진흙을 바른다. 그러면 쉽게 악어를 제압할 수 있다. 하마는 파프레미스 주에서는 신성한 동물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강에 사는 수달과 레피도토스라는 물고기와 뱀장어도 신성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포이닉스라는 새도 신성한 존재다. 이 새는 500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 테바이 부근에 신성한 뱀들이 있다.
77장~91장 이집트 경작 지대의 관습
아이깁토스인들 자신 중에서도 아이깁토스의 경작 지대 부근에 사는 자들은 모든 인간들의 기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가장 박식한 자들이다. 아이깁토스에는 계절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건강하다. 올리라와 보리술을 먹는다. 그들은 조상 전래의 관습을 따르고 그 외 다른 관습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깁토스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일치하는 관습이 있는데 그것은 연장자를 우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술이 달린 아마포 키톤을 다리에 둘러 입는다. 아이깁토스인들은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한 사람의 운명이 생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깁토스인들은 어떤 징조가 발생하면 그 결과를 잘 살펴서 기록해 둔다. 그들의 예언술은 몇몇 신들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헤라클레에스, 아폴론, 아테나이에, 아르테미스, 아레스, 제우스의 신탁소들이 있으며 그 중에 가장 숭앙받는 레토의 신탁소는 부토 시에 있다.
그들의 의사는 각자 한 가지 병만을 다룰 뿐이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의사가 아주 많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애도를 하고 미라로 만들어 묘실에 보관한다.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 미라를 만드는 방식과 보존하는 방식이 다르다.
92장~98장 이집트 늪지대의 관습과 문화
늪지대에 거주하는 자들은 그들의 식량을 값싸게 얻기 위해 백합의 가운데 부분으로 빵을 만든다. 또 파피푸스의 아랫부분도 식용으로 쓴다. 그곳의 어떤 자들은 오로지 물고기만 먹고 산다. 늪지대 부근에 사는 아이깁토스인들은 아주까리 열매로 만든 기름을 사용한다. 그곳은 모기가 많아 사람들은 모기를 피해 높은 누각에 올라가서 잠을 잔다. 또 낮에 고기를 잡을 때 쓰던 그물을 침상 주위에 둘러치고 자기도 한다.
그들이 짐을 실어 나르는 배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든다.
네일로스 강이 범람할 때면 도시들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다른 지대는 모두 바다가 된다.
제99장~182장 이집트의 역사..............................................................................................................257
99장~141장 이집트의 왕들: 민·세소스트리스·케옵스·미케리노스·세토스 등
아이깁토스의 초대 왕 민은 제방을 쌓아 멤피스를 강으로부터 막아 주었다고 한다. 민은 자신이 물길을 막은 지역이 마른 땅이 되자 멤피스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는 이 도시의 외부에 호수를 팠으며 도시 내에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세웠다. 민 왕 이후의 왕 330명 중에서 아이티오피에인 왕은 18명 아이깁토스 여왕이 한 명 있었으며 다른 왕들은 모두 아이깁토스 남성들이었다. 그들 중 모이리스 왕은 헤파이스토스 신전 북쪽에 출입문을 건립하고 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수 안에 피라미스를 건립했다.
또 왕 중에 세소스트리스는 최초로 배를 타고 아라비아 만을 출발하여 홍해 부근을 정복했으며 여러 다른 종족들도 정복했다. 그는 육지를 횡단하여 아시에에서 에우로페의 스키티에인과 트레이케인들을 정복했다.
콜키스인들과 아이깁토스인들은 유일하게 아마포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그들은 전반적인 생활 방식과 언어에서도 비슷하다.
사제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아이깁토스의 세소스트리스 왕은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서 귀환할 때 그의 동생에게 몰살당할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왕은 아이깁토스로 돌아와 동생을 징벌한 후 자신이 데리고 온 포로들을 활용했다. 신전을 지을 때 거석을 운반하게 한다거나 운하를 팔 때 강제노동을 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깁토스는 운하가 많고 사방으로 뻗어 있게 되었다. 왕은 모든 아이깁토스인 간에 땅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고 그에 대한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만약 어떤 자의 토지가 자연적으로 줄어들었을 경우에는 다시 측정하여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이로부터 기하학이 창안되어 헬라스에 전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소스트리스 왕은 아이티오피에까지 통치한 유일한 아이깁토스 왕이었다.
세소스트리스 왕이 죽자 그의 아들 페로스가 왕이 되었다. 페로스는 강이 범람하자 소용돌이치는 강에 창을 던지는 오만을 저지른 후 장님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신탁을 받게 되는 데 남편 이외의 남자와 교접하지 않은 여자의 오줌으로 씻으면 낫는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여자들의 오줌으로 씻어보았지만 낫지 않다가 마침내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는 시험해 본 여자들을 모두 모아 죽였으며 시력을 회복하게 해 준 여자는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눈병이 낫자 헬리오스 신전에 두 개의 석조 오벨리스크를 바쳤다.
내가 헬레네의 이야기를 묻자 사제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에로 항해하고 있을 때 강풍으로 아이깁토스로 떠밀려 가게 되었다. 당시 해안에는 헤라클레에스 신전이 있었는데 누구의 하인이든 이곳에서 자신을 신에게 바치게 되면 아무도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법을 알게 된 알렉산드로스의 하인들이 탄원자가 되어 알렉산드로스의 죄상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하여 멤피스의 프로테우스에게 이들 모두 끌려가게 되는데 ‘자신을 환대한 주인을 배신하고 그 아내를 데리고 나온’ 알렉산드로스에게 이곳에서 떠나라는 프로테우스의 명령을 받게 된다. 헬레네를 찾으러 온 메넬라오스는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아무 탈도 입지 않은 헬레네를 찾을 수 있었으나 결국에는 메넬라오스의 부정한 일로 리비에로 도망치게 된다.
그다음 왕은 람프시니토스였다. 그는 막대한 은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의 서쪽 출입문을 자신의 기념물로 남겼다. 그가 죽자 아들들은 석실에 들어가 재물을 확인하곤 했는데 재물들이 자꾸 들어드는 것을 눈치 챘다. 도둑들은 형제들이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덫에 걸리자 누군지 알 수 없도록 목만 베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왕은 도둑의 시신을 높이 걸어놓아 도둑의 신원을 알아보려 했지만 형제들의 기지로 시신을 빼앗기게 된다. 이에 왕은 공주를 내세워 도둑을 잡게 되는데 결국에는 그 도둑이 아이깁토스인들 중에 가장 출중한 자라하여 공주와 혼인을 시키게 되었다.
아이깁토스인들은 데메테르와 디오니소스가 지하 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사제들이 말하기를 람프시니토스 왕 때까지는 전반적으로 훌륭한 정치가 행해지고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 왕인 케옵스는 그들을 극심한 곤경에 빠뜨렸다. 그는 모든 신전을 폐쇄했으며 모든 아이깁토스인들에게 왕 자신을 위해 노역하도록 했다. 아라비에 산맥의 채석장에서 네일로스 강까지 돌을 실어 나르도록 했고, 다시 리비에 산맥으로 끌고 가도록 했다. 그리하여 왕을 위한 묘실을 만들고 피라미스를 세웠다.
케옵스가 50년간 왕위에 있다가 그의 형제인 케프렌이 왕위를 물려받았는 데 케프렌 역시 케옵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피라미스를 만들었다. 케프렌 역시 56년 동안 왕위에 있었는지라 이 106년 동안 아이깁토스인들이 온갖 불행을 겪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케옵스의 아들 미케리노스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신전을 개방하고 곤경에 빠진 백성들이 자신의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했으며 모든 왕들 중에서 재판을 가장 공정하게 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이깁토스인들은 그를 모든 왕 중에서 그를 최고로 찬미한다. 그는 유일한 자식인 딸이 죽자 속이 빈 목제 암소를 만들어 금박을 입힌 다음 그 안에다 죽은 딸을 묻고는 왕궁의 잘 치장된 방에 놓았다고 한다. 이 왕도 피라미스를 하나 남겼는데 그의 아버지 것보다 훨씬 작다.
미케리노스 왕 다음으로 아시키스가 왕이 되었다. 그는 돈의 유통이 크게 부진하자, 아버지의 시신을 담보로 빚을 낼 수 있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왕은 벽돌로 만든 피라미스를 자신의 기념물로 만들었다.
그의 다음에는 아니시스 시 출신의 맹인이 왕이 되었는데 이름이 아니시스였다. 이 때 아이티오피에인들이 아이깁토스를 장악하여 이후 50년 간 아이깁토스를 통치하다가 왕이 자다가 웬 환영을 본 후 피신해 달아났다. 바로 신탁이 예언한 50년간의 아이깁토스 통치 기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떠나자 맹인 왕이 돌아와 다시 아이깁토스를 다스렸다.
그다음에는 세토스라는 헤파이스토스 사제가 왕이 되었다. 그는 아이깁토스 전사들을 멸시하고 모욕했으며 그들의 토지를 빼앗았다고 한다. 그 후로 아라비에인과 아시리에인이 아이깁토스를 침공했지만 신의 도움으로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고 적들에게 몰려든 쥐로 인해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지금도 헤파이스토스 신전에는 한 손에 쥐를 든 세토스 왕의 석상이 서 있다.
142장~146장 이집트의 연대 추산
지금 헬라스인들 사이에는 헬라클레에스와 디오니소스, 판이 신 중에서 가장 젊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아이깁토스인들 사이에는 판이 그 중 가장 오래된 신이라고 한다.
147장~182장 이집트의 왕들: 프삼메티코스·네코스·아프리에스·아마시스 등
헤파이스토스 사제 왕의 통치가 끝난 후에 아이깁토스인들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깁토스 전역을 12지역으로 나누고 12왕을 세웠다. 이들은 서로 혼인을 맺었으며 아주 긴밀한 우방이 된다는 규약에 따라 통치했다. 즉 그들이 처음에 왕위에 올랐을 때, 그들 중에 헤파이스토스 신전에서 청동 잔으로 헌주하는 자가 아이깁토스 전체의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그들은 공동 기념물인 미궁을 만들었다. 미궁은 피라미스를 능가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 피라미스로 들어가는 통로는 지하에 만들어져 있다. 이 미궁은 호수 한 가운데 2개의 피라미스로 세워져 있다. 12왕은 정의를 존중하며 지냈다. 그 얼마 후 그들이 헤파이스토스 신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치게 되었는데 제주를 바칠 때 쓰는 황금 잔이 11개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 중 맨 마지막에 서 있던 프삼메티코스는 잔이 없어서 자신의 청동 투구를 잔으로 사용했다. 프삼메티코스는 아무 사심 없이 그런 행동을 하였지만 다른 왕들은 전에 내려졌던 신탁을 상기하곤 그를 늪지대로 내쫓았다. 프삼메티코스는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이에 그는 부토 시의 레토 신탁소에 사절을 보냈는데 ‘청동 인간들이 자신을 도우러“온다는 예언을 들었으나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이오네스인들과 카리에인들이 청동 무장을 하고 아이깁토스에 상륙했을 때 프삼메티코스는 신탁이 실현된 것이라 보고 그들과 우호를 맺었다. 그는 다른 왕들을 폐위시킬 수 있었다.
아이깁토스 전역을 통치하게 된 프삼메티코스는 멤피스의 헤파이스토스 신전에 남쪽 입구를 세우고 맞은편에 아피스를 위한 마당을 만들었다. 프삼메티코스는 자신에게 협력한 이오네스인들과 카리에인들에게 땅을 주어 거주하게 하고 어린아이들을 그들에게 맡겨 헬라스어를 배우도록 했다. 그때 헬라스어를 배운 이들로부터 지금 아이깁토스의 통역들이 기원했다. 아마시스 왕의 호위대를 했던 이들이 아이깁토스에 정착하고 우리 헬라스인들이 그들과 교류함으로써 우리는 프삼메티코스 왕 때부터 시작하여 이후 아이깁토스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아이깁토스의 신탁소는 부토의 레토, 아폴론, 아르테미스의 성소가 있다. 레토 신전은 규모가 크고 레토의 성역 내에 단 하나의 큰 돌로 건조된 신전이 내가 거기서 본 것 중 나에게 가장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그 다음에 경이로운 것은 켐미스라는 떠다니는 섬이라고 한다. 섬 안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다. 프삼메티코스는 54년 동안 왕으로 있었고, 시리에의 대도시를 포위 공격하여 점령했다.
네코스는 대를 이어 아이깁토스의 왕이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홍해에 연결되는 수로 건설에 착수했는데, 나중에 페르시스인 다레이오스가 이 수로를 완성했다. 수로의 물은 네일로스 강에서 수로로 흘러들어온다. 네코스 왕 시대에 아이깁토스인 12만 명이 수로 공사를 하다가 사망했다. 네코스는 공사 중에 자신들이 아닌 자들을 위해 공사 한다는 신탁을 받고 공사를 중단했다. 수로 작업을 중단한 네코스는 군사용으로 삼단노선을 건조했고 시리에인들을 격돌하여 승리했다. 왕권은 그의 아들 프삼미스에게 넘겨졌다.
이 프삼미스에게 엘리스인 사절들이 와서 자신들이 올림피에 경기를 제정한 것을 자랑하자 왕은 가장 지혜롭다는 아이깁토스인들을 불러 보아 엘리스인들의 설명을 듣게 했다. 엘리스인들은 모든 종족에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였지만 아이깁토스인들은 그것은 타국인에게 불공정한 경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후 타국인들만을 위한 경기를 제정하고 엘리스인들은 그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하게 하라고 권고하고 조언했다.
프삼미스는 아이티오피에 원정에 나섰다가 죽었다. 재위 기간은 6년이다. 그의 아들 아프리에스가 왕이 되었고 그는 유복한 왕으로 25년간 통치했는데 그동안에 시돈을 공격하고 티로스인과도 해전을 벌였다. 그러다가 키레네인들에게 군대를 파견했다가 참패를 당했다. 그러자 아이깁토스인들은 그 일에 불만을 품고 아프리에스가 자신들을 파멸시키고자 명백한 재앙 속으로 내몰았다고 여겨서 반란을 일으켰다. 아프리에스는 이 소식을 듣고 아마시스를 반란자들에게 보내 대화로 그들을 저지하도록 했다. 그런데 아마시스가 왕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을 때, 누군가 아마시스의 머리에 가죽 투구 씌워주며 왕권의 표시라고 했다. 그 후 아마시스는 반란자들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자 아프리에스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아프리에스는 이 소식을 듣고 신하를 아마시스에게 보내며 그를 생포하여 데려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마시스는 오래전부터 왕에게 갈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하는 그 말을 듣고 아마시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되도록 빨리 아프리에스에게 보고하려고 달려갔으나 아마시스를 데려오지 못한 것을 안 왕은 크게 진노하여 그의 귀와 코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이제껏 왕의 편이었던 다른 아이깁토스인들은 아마시스에게로 돌아서버렸다.
아프리에스는 자신의 용병들을 무장시켜 아이깁토스인들에게로 진격했다. 그는 주위에 다른 나라의 용병 3만 명도 거느렸다. 아프리에스의 군대와 아마시스의 군대가 모멤피스 시에 다다랐다.
아이깁토스인들에게는 7개 계층이 존재한다. 사제들, 전사들, 소치기, 돼지치기, 소상인, 통역들, 조타수들이다. 그중 전사 계층은 칼리시리에스와 헤르모티비에스라고 불린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른 기술을 배우지 않고 오직 전쟁에 관한 일만 연마한다. 아이깁토스의 전사들은 특권이 따로 부여된다. 토지가 면세되고 곡식과 고기, 포도주도 주어졌다.
용병을 거느린 아프리에스와 전체 아이깁토스인들을 거느린 아마시스는 격돌하였지만 아프리에스가 패하여 생포되었다. 그는 자기 것이었던 왕궁이 이제는 아마시스의 것이 되어 그곳으로 이송되었다. 아마시스는 그를 잘 보살펴 주었으나 백성들의 원성으로 아이깁토스인들에게 인도되었다. 이에 그들은 아마시스를 목 졸라 죽였다.
아프리에스가 제거되자 아마시스가 왕이 되었다. 아마시스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왕이 된 후 오만하게 굴지 않고 지혜를 써서 아이깁토스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는 아이깁토스인들이 자신에게 예속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포섭했다.
아마시스는 오전에는 아고레에서 업무를 보고 처리하지만 그 이후에는 술을마시고 연회 친구들과 놀면서 보냈다. 그러자 신하들이 왕의 체통을 차려 옥좌에 앉아 업무를 수행하라고 했으나 아마시스는 활은 그것이 필요할 때에 당기는 것이라면서 놀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사인이었을 때도 음주와 희롱을 좋아했다. 가끔 도둑질도 해서 신탁에 의해 유죄로 인정되는 일일 많았는데 왕이 되자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한 신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잘 보살폈다고 한다. 아마시스는 사이스의 아테나이에 신전에 경탄할 만한 현관을 건설했다. 그는 대규모 조상들과 거대한 스핑크스를 봉헌했다. 그는 엘레판티네 시에서 한 개의 돌로 만든 석실을 운반해 왔는데 그것을 운반하는데 3년이 걸렸고, 인부 2,000명이 그것을 끄는 일에 배치되었다. 아마시스는 다른 모든 유명한 신전에 대규모의 작품들을 봉헌했지만 멤피스의 헤파이스토스 신전 앞에 와상을 봉헌하기도 했다. 또 그는 이시스 신전을 건립했는데 규모도 크고 가장 볼만하다.
아마시스 왕 때가 아이깁토스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인간이 거주하는 도시가 모두 2만 개에 이르렀다. 그는 아이깁토스인들은 누구나 매년 주행정관에게 직업과 수입을 신고해야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아테나이인 솔론이 아이깁토스에서 이 법률을 가져가 아테나이인들에게 시행했다. 아마시스는 헬라스인들을 좋아해서 일부 헬라스인들에게 땅을 주어 거주하도록 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신들을 위한 제단과 성역을 지을 땅을 부여했다.
아마시스는 키레네인들과 우호 및 동맹 관계를 수립했다. 그는 헬라스에도 봉헌물을 바쳤다. 그는 또 인간들 중에서 최초로 키프로스를 점령하여 공물을 바치게 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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