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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인생 후르츠>읽고 보고 그리고..... 2019. 1. 1. 13:13
(이 글은 영화헤살꾼이 될 수 있습니다.)
조조할인이라는 영화 보는 모임을 할 때가 있었다. 다섯 명의 멤버가 한 달에 한 번 조조영화를 보러 만나곤 하였다. 그 모임이 5년 넘게 지속되다가 멤버들이 사정이 생기게 되어 나가고, 둘 만 남았다가 그도 흐지부지 되어 깨지고 말았다. 그때는 일 년에 영화관에서 본 12편에 동네 문화회관에서 보는 것까지 합치면 꽤 많은 영화를 보았다.
오늘은 인생 후르츠라는 일본 다큐 영화를 보았다. 연말이라 남들은 다 바쁜 것 같은데 나는 한가하다. 바쁜 게 싫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별로인 내게 영화보기는 꽤 괜찮은 취미이다. 그것도 혼자서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어서 가장 매력적이다.
젊은 시절에는 건축가로 일본 경제 성장기의 도시를 설계했던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200년 넘게 양조장 했던 집안의 큰딸 히데코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집과 자연의 생태적 철학을 스스로의 집에 접목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대로 생활해왔다.
영화가 열리고 첫 화면은 밭과 나무가 어우러진 작은 집이다. 내가 가장 염원하는 풍경이다.
동경대 요트부 주장이었던 슈이치는 학교를 졸업하자 건축을 배우게 된다. 맥아더의 등장과 동시에 전쟁은 끝이 나고, 전쟁으로 황폐화 된 일본의 도시를 복구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현장에 슈이치가 활약하며 몇 개의 도시를 설계하게 된다. 슈이치는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내고 숲을 살리는 도시를 설계하지만 상부의 논리는 싼 땅에 비싼 집을 지어 파는 일이었다.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우는 방식을 보면서 슈이치는 자연적 상태의 모습을 살려내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나 혼자 만으로라도 하는 심정으로 300평의 땅을 구입하여 15평의 집을 짓고 나머지 땅에는 나무를 심고 텃밭을 일구어 산 지가 40여 년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마당가에는 호두나무, 무화과, 체리 등 50 여 가지의 과일나무들이 울창하고 밭에서는 알이 굵은 감자와 각종 채소들로 항상 풍성하다.
두 부부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 도와준다. 슈이치의 집은 중소도시의 외곽에 있다. 밭에서 나지 않는 채소와 과일은 수퍼마켓에서 구입해 먹는다. 등이 굽은 히데코 할머니는 87세에도 얼굴이 귀엽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꼿꼿하다. 건장하지는 않지만 건강해 보인다. 나무가 많은 곳에서 죽순도 캐고, 새들의 옹달샘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낙엽을 모아 퇴비를 만들어 쓴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잡초 제거 작업을 하고 들어와 90세의 생을 마감한다. 할머니는 아주 담담하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 달라는 부탁과 함께. 하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니 죽음도 순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꽤 긴 시간 죽은 할아버지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줘서 의아하기도 했다. 죽은 사람은 주로 흰 천으로 덮어 죽은 것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영화와 달라서 이다. 어떻게 죽느냐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은 저녁 잘 먹고 자는 동안에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얘기했다. 슈이치의 죽음이 그것이다. 죽을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갔어도 히데코 할머니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철이 오면 철에 맞게 땅을 일구고 가꾼다. 태풍이 불기 전에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잘 여문 결실들을 나눠 먹기 위해 종이 상자 여러 개에 담는 작업 중이다.
인생의 과일들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식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물이나 명예일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들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자연에 거슬리지 않게 순응하며 생태적으로 살아갔던 일본 노부부의 삶을 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열매들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2019년의 해가 밝았다. 올해에는 나의 꿈이 이루어질까. 노부부처럼 밭을 가꾸며 소박하게 사는 날이 찾아오게 될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해로 만들어야 겠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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