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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제5권
    읽고 보고 그리고..... 2020. 4. 22. 17:57

    역사 제5

     

    1~27장 페르시아의 트라키아·마케도니아 원정...............................................................................................513

     

    1~2장 메가보조스의 페린토스·트라키아 정복

    다레이오스의 지휘관 메가바조스는 헬레스폰토스 중에서 페린토스인을 제일 먼저 정복했다. 이유는 페린토스인들이 다레이오스에게 예속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페린토스인들은 전에 파이오니에인들에게 혹독하게 핍박받은 적이 있었다. 페린토스를 정벌하라는 신탁을 받은 파이오니에인들과 전쟁을 벌이다 패하여 자유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페린토스인들은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웠지만 메가바조스에게 수적 열세로 패하였다. 메가바조스는 트레이케로 진군하여 모든 종족을 왕에게 복속시켰다.

     

    3~8장 트라키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트레이케 종족은 인도스인들 다음으로 최대 종족이다.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친척들이 주위에 둘러앉아 그가 태어난 이상 겪어야 할 온갖 불행에 대해 그를 애도한다. 그리고 누가 죽으면 그가 많은 불행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며 즐거워한다. 크레스토니아인들 위쪽에 사는 자들은 아내를 여럿 거느린다. 남편이 죽으면 가장 사랑받았던 아내는 남편의 무덤 위에서 죽임을 당한다. 남아 있는 아내들은 살아 있는 것을 최대의 수치로 여긴다. 그들은 자식을 외국에 팔았고, 노동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가장 고귀하게 여기고, 농사꾼이 가장 천하고 전쟁과 약탈을 명예롭게 여긴다. 그들은 아레스와 디오니소스, 아르테미스만을 숭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지배자들은 헤르메에스를 최고로 숭배한다. 그들 가운데 부자들의 장례는 시신을 공중 앞에 안치한 후, 먼저 애도를 한 후, 온갖 희생 제물들을 죽이고 잔치를 벌인다. 그런 다음 화장을 하거나 매장을 한다.

     

    9~10장 이스트로스 강 너머의 종족과 관습

    이스트로스 강 너머에는 시긴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는데 그들은 메디아식 복장을 한다. 또 그들의 말은 털이 텁수룩하고 길이가 길다. 몸통이 왜소하여 사람을 태우지는 못하지만 마차에 매이면 정말 빠르다고 한다. 트레이케인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온통 벌들이 차지하고 살고 있다고 하는데 추운 지방이라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11~16장 메가바조스의 파이오니아 정복

    다레이오스는 헬레스폰토스를 거쳐 사르디스에 도착하여 전쟁의 공적 포상으로 밀레토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에게 미르키노스 도시를 주고, 미텔레네인 코에스에게도 참주가 되게 하였다.

    (히스티아이오스: 다레이오스가 스키티에를 공격할 때 건너야 하는 비잔티온과 바다 입구의 성소 사이의 중간 지점에 놓인 사모스인 만드로클레스가 만든 부교를 지키고 있던 이오네스인들의 회의에서 다레이오스를 위해 부교를 해체하지 말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함. 스키티에인들은 잠시 눈을 속여 화살 거리만큼만 해체 했다가 다레이오스가 오면 다시 이어주자고 했던 공로

    코에스: 다레이오스가 다리를 건너자 부교를 해체하라고 명령했을 때 귀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한 공로)

    피그레스는 파이오이니에의 참주가 되고 싶어 아름다운 누이를 이용해 다레이오스의 눈에 띄게 했다. 누이는 물동이를 이고 아마실을 잦으며 걸어가 물을 길어오게 하였다. 호기심 많은 다레이오스는 그녀를 만나게 되고 피그레스도 함께 와서 항복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매는 파이오이니에 사람들은 모두 근면하고 성실하다고 말했다. 그 후 다레이오스는 메가바조스에게 파이오이니에인들을 그들의 고향땅에서 몰아내고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했다. 이에 메가바조스는 파이오이니에를 점령하고 많은 원주민들을 아시에로 이송했다. 하지만 팡가이온 산과 프라시아스 호수 주변인들은 조금도 정복하지 못했다. 이들은 호수 한가운데에 높은 말뚝들 위로 단단히 고정된 고대가 세워져 있고 육지에서 들어오는 통로는 다리 하나뿐이다.

     

    17~22장 페르시아 사절들의 마케도니아 방문과 피살

    메가바조스는 파이오니에인들을 정복한 후 마케도니아에인들에게 일곱 명의 사절을 보냈다. 이들은 다레이오스 왕을 위해 흙과 물을 요구하러 아민테스에게 파견된 것이었다. 이에 아민테스는 왕의 요구를 들어주고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에서 사절들이 이런 자리에는 여자들이 동석하는 것이 페르시스 관습이라고 하며 여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자 아민테스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여자들이 데려왔다. 그러자 페르시스인들은 그녀들에게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민테스는 그 광경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지만 페르시스인들이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참을 수가 없어 사절들을 살해했고 하인들도 죽임을 당했다. 이 일은 은폐되었고 페르시스에서는 사절들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찾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수색대장의 입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올림픽 경기는 헬라스인만이 하는 경기임을 주장하는 헬라스인들에게 자신이 아르고스인임을 입증하여 헬라스인으로 판정받게 되어 경기에서 1위를 한 적이 있다.

     

    23~24장 히스티아이오스의 수사행

    메가바조스는 파이오니에인들을 끌고 헬레스폰토스를 거쳐서 사르디에스로 갔다. 이때 밀레토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는 부교 수호에 대한 포상으로 받은 미르키노스를 요새화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메가바조스의 조언으로 다레이오스는 히스티아이오스를 불러들여 (도시 건설은 중단하고 조언자가 되어달라는 명목으로) 그와 함께 수사로 떠났다. 메가바조스는 히스티아이오스가 살기 좋은 곳에 도시를 건설할 경우 페르시스인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5~27장 오타네스의 비잔티온·렘노스 점령

    다레이오스는 이복동생 아르타프레네스를 사르디에스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또 오타네스를 해안 지대의 군사령관에 임명했는데 예전에 오타네스의 아버지 시삼네스는 캄비세스에게 살가죽이 벗기는 참형을 받은 적이 있다. 캄비세스는 아버지의 살가죽으로 의자를 만들고 그 자리에 오타네스를 앉혔다. 그 오타네스가 메가바조스의 뒤를 이어 군사령관이 되었다. 오타네스는 비잔티온, 칼케도니아, 트로이아스, 렘노스, 임브로스 점령했다. 렘노스인들은 리카레토스를 그들의 통치자로 앉혔다. 이 리카레토스는 렘노스를 다스리던 중 죽었다.

     

    28~37장 이오니아의 반란 발생........................................................................................................................526

     

    28~34장 밀레토스와 페르시아 연합군의 낙소스 원정 실패

    얼마 후, 낙소스와 밀레토스로 말미암아 이오네스인들에게 재앙이 닥쳐왔다.

    낙소스와 밀레토스는 이오니에에서 최고의 번성을 누리고 있던 나라였다. 그러나 밀레토스는 이보다 두 세대 전에 내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이때 파로스인들이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에게 나라의 통치를 맡기게 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여 밀레토스인들을 화해시켰다. 그런데 이제 이 나라들로 말미암아 이오네스에 재앙이 닥쳐오게 되었다. 당시 낙소스에서 몇몇 부자들이 평민들에 의해 추방되어 밀레토스로 갔다. 그때 밀레토스를 통치하던 자는 아리스타고레스였는데 그는 히스티아이오스의 사위이자 사촌형제였다. 히스티아이오스는 밀레토스의 참주였지만, 그는 수사에 있던 참이었다. 낙소스인들은 밀레토스에 도착하자 아리스타고레스에게 자신들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약간의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이에 아리스타고레스도 혹시나 자신에게 득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확답은 미룬 채, 아르타프레네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겠다고 했다. 낙소스인들은 모든 경비를 대겠으니 꼭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리스타고레스는 사르디에스의 아르타프레네스에게 낙소스를 정복하라고 부추기며, 이 키클라데스 군도뿐 아니라 주변 나라까지도 점령을 하라고 말했다. 이에 아르타프레네스는 그 제안은 왕가에 매우 유익한 것이라며 봄이 되면 선박 200척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아리스타고레스는 이 말을 듣고 밀레토스로 돌아갔다. 아르타프레네스는 다레이오스의 허락을 얻어 대규모 군대를 갖춘 다음 사촌인 메가바테스를 그들의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군대를 아리스타고레스에게 보냈다.

    메가바테스가 밀레토스에서 아리스타고레스와 이오네스인 군대와 낙소스인들을 합류시킨 다음 헬레스폰토스로 간다는 구실하에 출항하여 키오스에 기항하고 있을 때였다. 메가바테스의 순시선이 돌고 있을 때 민도스의 배에 보초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메가바테스가 매우 화가 나서 이 배의 선장인 스킬락스를 결박했다. 이것을 안 아리스타고레스는 스킬락스는 자신의 외빈이라며 풀어달라고 간청했지만 메가바테스가 이를 듣지 않자 자신이 스킬락스를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아리스타고레스는 메가바테스는 다레이오스가 자신의 지시를 받으라고 보낸 사람인데 왜 말을 듣지 않고 간섭을 하느냐며 따졌다. 이에 더욱 화가 치민 메가바테스는 낙소스인들에게 그들에게 닥칠 일의 전말을 일러주었다.

    낙소스인들은 이 원정이 자신들을 목표로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참이라 포위 공격에 대비했다. 그리하여 적들이 낙소스를 공격했을 때 이들은 이미 방어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원정군은 4개월 동안 그곳을 포위 공격하다가 별 성과 없이 본토로 돌아갔다.

     

    35~37장 이오니아의 반란 개시

    아리스타고레스는 아르타프레네스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그는 원정 비용을 갚으라는 요구로 곤경에 처했고, 메가바테스와의 불화도 걱정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밀레토스의 통치권을 잃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을 우려하여 반란을 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침 수사의 히스티아이오스에게서 반란을 일으키라는 전갈이 왔다. 히스티아이오스가 이런 일을 한 것은 자신이 수사에 억류당한 것을 탐탁치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밀레토스에서 무언가 혼란이 일어나야 자신이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타고레스와 히스티아이오스의 뜻이 맞아떨어지자 그들은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다만 연대기 작가 헤카타이오스는 반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며 다른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아리스타고레스는 즉시 작전을 개시하여 미우스에 주둔하고 있던 페르시스 군대의 장군들을 생포하였다. 그리하여 아리스타고레스는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다레이오스에게 해가 되는 일은 무엇이든 도모했다. 그는 밀레토스의 참주정을 폐지하고 이소노미에를 수립했다. 그런 후 그는 이오니에의 여타 지역에도 똑같은 일을 시행했다. 그는 일부 참주들을 추방했으며, 배에서 생포한 참주들을 그들의 나라에 인도했다.

     

    38~54장 아리스타고레스의 스파르타 방문과 스파르타의 지원 거..............................................................531

     

    38~48장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와 도리에우스

    미틸레네인들은 코에스(다레이오스가 미틸레네를 선물했던 인물)를 인도받은 즉시 그를 죽였다. 하지만 키메인들과 다른 국가들은 그들의 참주를 풀어 주었다. 그리하여 그 나라들에서는 참주들이 종말을 맞았다. 한편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레스는 참주들을 종식시킨 후 각 나라에서 각각의 군사 지휘관을 임명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자신은 라케다이몬과 우방을 맺기 위해 사절로 갔다.

    스타르테의 왕 아낙산드리데스가 죽자 그의 아들 클레오메네스가 왕이 되었다. 아낙산드리데스는 조카를 아내로 맞았으나 아들이 없자 신하들의 권유에도 첩을 얻지 않았다. 그러나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한 왕비를 한 명 더 얻자는 말에는 응하여 후실에게서 아들 클레오메네스를 얻게 되었다. 그러자 첫째 왕비도 연이어 아들 셋 도리에우스, 레오니데스, 클레옴브로스를 낳았다.

    클레오메네스는 정신이 좀 실성한 상태였다. 반면 도리에우스는 총명하여 그는 자신의 덕성에 맞게 자신이 왕위를 차지할 것으로 믿고 있다가 클레오메네스가 왕이 되자 식민시 건설에 나서 리비에를 향해 출항했다. 그를 안내한 것은 테라인들이었는데 그가 도착한 곳은 키닙스 강변에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3년째 되는 해에 마카이인과 리비에인, 카르케돈인들에게 쫓겨나 펠로폰네소스로 돌아왔다.

    그때 엘레온인 안티카레스의 조언에 따라 시켈리에의 헤라클레이에를 식민하러 이탈리에를 향해 떠났다.

    바로 이 시기에 시바리스인들이 전하는 얘기로는 시바리스인들은 크로톤을 원정하려고 했는데 이에 놀란 크로톤인들이 도리에우스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했고, 도리에우스는 시바리스 원정에 참여하여 시바리스 정복을 도왔다고도 하고, 크로톤인들은 시바리스와의 전쟁에서 칼리에스 말고는 어떤 외국인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도 한다. 시바리스인들의 이야기의 증거는 크라티스 강의 성역과 신전이라고 한다. 도리에우스가 시바리스 정복을 도와준 후 아테나이에를 기려 그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반면에 크로톤인들은 크로톤 지역에 도리에우스와 그 후손들에게 토지가 주어진 것들이 없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도리에우스가 시바리스 정복을 도왔다면 토지를 갖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스파르테인들도 식민시 건설에 동참하기 위해 도리에우스와 함께 항해했는데 테살로스, 파라이바테스, 켈레에스, 에우릴레온이 그들이다. 이들은 시켈리에로 갔다가 포이니케인과 에게스타인들에게 패해 파멸했다. 이들 가운데 에우릴레온 혼자만이 살아남았다가 셀리누스인들의 식민시인 미노에를 점령했지만 참주가 되려는 에우릴레온은 셀리누스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크로톤인 필리포스도 도리에우스를 따라다니다가 그와 함께 죽었다. 그는 올림피아 경기의 우승자였고, 당대 헬라스인 중에서 가장 잘 생긴 미남이었다.

    도리에우스는 이런 식으로 죽었다. 클레오메네스는 딸 하나를 남기고 죽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고르고였다.

     

    49~51장 클레오메네스의 지원 거절

    밀레토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레스가 스파르테에 온 것은 클레오메네스가 통치할 때였다. 아리스타고레스는 세계 지도가 그려진 청동판을 보여주며 클레오메네스를 설득하려고 했다. 스파르테는 헬라스를 이끄는 자들로 이오네스인들이 노예가 된다면 스파르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대들의 혈족인 이오네스인들은 예속에서 구해달라고 했다. 스파르테가 이오니아를 구하고 리디에와 프리기에, 킬리키에, 아르메니에와 수사까지 아시에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클레오메네스가 아시에까지의 거리를 묻자 아리스타고레스는 그만 솔직하게 석 달 걸리는 거리라고 말했다. 클레오메네스는 도와주지 못 하겠으니 어서 그만 스파르테를 떠나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리스타고레스는 탄원자의 가지를 들고 다시 클레오메네스에게 사정을 해보기로 하고 돈으로 유혹하려 하자, 옆에 있던 클레오메네스의 딸 고르고가 아리스타고레스를 피해 여기를 떠나라고 아버지에게 충고를 했다. 아리스타고레스는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52~54왕의 길의 경로와 역참들

    아리스타고레스가 클레오메네스에게 페르시스 왕에게로 가는 행로를 알려주려 했던 여정은 이렇다. 길의 도처에 왕의 역참과 숙박소가 잇으며 길 전체가 안전하다. 리디에와 프리기에를 지나는 구간에는 역참이 20개나 잇다. 그 다음으로는 할리스 강, 카파도키에, 킬리키에, 아르메니에, 또 티그리스 강, 긴데스 강, 키시에에서 수사에 이르기까지 역참은 모두 111개다. 이 길은 매일 150스타디온만큼 지나간다고 하면 정확히 90일 걸린다.

     

    55~97장 아리스타고레스의 아테네 방문과 아테네의 지원 수락......................................................................541

     

    55~56장 히피아스의 동생 히파르코스 피살

    한편 스타르테에서 내쫓긴 아리스타고레스는 아테나이로 갔다. 당시 아테나이는 참주 지배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히파르코스는 참주 히피에스의 아우였는데 꿈을 꾸고 나서 살해당했다. 그는 판아테나이아 제전 전날 밤 꿈에 나타난 남자의 환영에게 나타나 견딜 수 없는 일을 겪더라도 견디라는 말을 들었다. 이를 해몽가들에게 알리고 나서 그는 환영을 잊어버렸고, 제전 행렬을 호송하다가 그 도중에 죽고 말았다.

    히파르코스 살해자들이 속한 게피라이오이족은 카드모스와 함께 보이오티에 지역에 도달했던 그 포이니케인들 중의 일부였다. 그들은 타나그라 땅을 배정받아 거주하다가 카드모스 후손들이 먼저 아르고스인들에 의해 그곳에서 쫓겨난 후, 다음으로 이 게피라이오이족이 보이오티에인들에게 쫓겨나 아테나이로 갔다. 아테나이인들은 특정 조건하에 그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였는데 여러 권한에서 그들을 배제했던 것이다.

     

    57~61장 페니키아 문자의 그리스 유입

    카드모스와 함께 온 이 포이니케인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헬라스인들에게 다른 많은 지식과 문자를 전해 주었다. 이 당시 그들 주변에 살고 있던 헬라스인들은 대부분 이오네스인들이었다. 이들 이오네스인들은 포이니케인들에게서 문자를 배워 받아들였다. 이들은 그 문자의 형태를 조금 변형하여 사용했다. 이오네스인들은 옛날부터 파피루스 서책을 가죽이라고 불렀다.

    나 자신은 테바이의 아폴론 성소 안에서 카드모스 문자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몇몇 삼족의자들 위에 새겨져 있고, 대체로 이오네스 문자와 같았다. 아테나이로 간 게피라이오이족은 그들만의 제식을 수립했다.

     

    62~65장 아테네의 참주정 붕괴와 히피아스 굴복

    히피에스가 참주로 있으면서 히파르코스 죽음을 이유로 아테나이인들을 더욱 혹독하게 대하자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에 의해 추방된 아테나이인 혈통의 알크메오니다이 가문 사람들이 다른 추방자들과 함께 귀국하려고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 후 알크메오니다이 사람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에 반대하는 온갖 수단을 강구했는데 인보동맹 회원들로부터 델포이 신전을 건립하는 계약을 따냈다. 그들은 신전을 계약보다 더 좋은 자재로 완공했다. 알크메오니다이 가문 사람들은 델포이에 머물면서 피티에 여사제를 매수하여 라케다이몬인들에게 아테나이인들을 해방시키라는 신탁을 촉구하게 했다.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항상 똑같은 신탁이 내려지자,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를 아테나이에서 몰아내기 위해 앙키몰리오스를 군대와 함께 파견했다. 이때 라케다이몬인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인들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는데 자신들에게는 신적인 문제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앙키몰리오스는 팔레론에 기항하여 군대를 상륙시켰고, 반면 페이시스트라토스인들은 동맹 국가인 테살리에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테살리에의 동맹군을 확보하자, 팔레론의 평원을 기병이 활동하기에 적합하게 만든 다음 적진으로 기병대를 진격시켰다. 기병대는 라케다이몬인들과 특히 앙키몰리오스를 죽였다. 라케다이몬의 첫 번째 원정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 후 라케다이몬인들은 더 큰 규모의 원정군을 아테나이로 파견했다. 군 지휘관이 된 클레오메네스는 아티케에서 테살리에 기병대와 싸워 이들을 격파하고 아테나이 시에 도착하여 성벽 안에 갇힌 참주들을 포위했다. 성 안에 갇힌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는 식량과 물을 충분히 비축해 두어서 걱정이 없었지만 이 일가의 아이들을 나라 밖으로 몰래 이송하려다가 라케다이몬인들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아이들을 되찾는 대가로, 아테나이인들이 바라는 조건에 따라 아티케를 떠나기로 타협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인들은 아테나이를 36년 동안 지배했었다.

    아테나이인들은 이렇게 참주들에게서 해방되었다.

     

    66~69장 클레이스테네스의 부족제 개편

    아테나이는 전에도 강했지만 이제 참주들로부터 해방되자 더욱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 당시 아테나이에는 알크메오니다이 가문 클레이스테네스와 티산드로스의 아들 이사고레스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권력을 두고 분쟁을 벌여 열세에 놓인 클레이스테네스가 평민들과 제휴를 맺고 부족제를 개편했다. 이는, 이 클레이스테네스가 자신의 외조부인 시키온의 참주 클레이스테네스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주 클레이스테네스는 음송 시인들의 경연을 금지(아르고스인을 찬미하는 호메로스의 시를 이유로)했고, 아드레스토스를 축출하고 싶어서 그와는 원수지간인 멜라니포스를 모셔 오기도 했던 인물이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시키온인과 아르고스인이 똑같은 부족을 갖지 않게 하려고 도리에스인의 부족들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는 시키온인들을 심하게 조롱했다.

    한편 이 시키온인의 외손자이고 그에게서 이름을 딴 아테나이의 클레이스테네스도 이오네스인들을 경멸하여 외조부를 모방했다. 그는 이전에 모든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던 아테나이 평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나서 부족들의 이름을 바꾸고 그 수를 전보다 더 늘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반대파들보다 훨씬 더 우세해졌다.

     

    70~89장 아테네의 대외적 분쟁들

    이사고레스는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라케다이몬인 클레오메네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클레오메네스는 이사고레스를 도와 클레이스테네스를 비방하며 그들을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일이 생기자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나이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 후 클레오메네스는 소수 병력을 거느리고 아테나이에 나타나 아테나이인 700가족을 저주받은 자라하여 추방하고 이사고레스 일파에게 통치권을 맡겼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이 따르려 하지 않자 클레오메네스와 이사고레스는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했다. 이에 나머지 아테나이인들이 이틀 동안 그들을 포위하게 되자, 휴전이 성립되어 그들 중 라케다이몬인들이 모두 그곳을 떠나갔다. 한편 아테나이인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포박하여 사형에 처했다. 그 중에는 델포이 사람으로 힘과 용기로 엄청난 업적을 이룬 티메시테오스가 있었다.

    그 후 아테나이인들은 클레이스테네스와 클레오메네스에 의해 추방된 700가족을 다시 불러오고, 페르시스인들과 사절을 맺기 위해 사르디에스로 사람을 보냈다. 그들은 라케다이몬인들과 페르시스인들이 적대적인 사이임을 알고 있었다. 사절들이 사르디에스에 도착하여 지시받은 내용을 이야기하자, 총독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아르타프레네스는 그들의 나라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페르시스와 동맹을 맺고 싶으면 다레이오스에게 흙과 물을 바친 다음에 하자고 했다. 사절들은 동맹을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에 그것들을 바치겠다고 했고 그들은 아테나이에 돌아온 후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클레오메네스는 아테나이인들이 자신을 크게 모욕했다고 여겨 군대를 소집했다. 목적은 아테나이 평민들에게 보복하고 이사고레스를 참주로 세우려는 것이었다. 클레오메네스의 대군과 동맹군들은 아테나이를 양쪽에서 공격했다. 그런데 군대들이 막 교전을 벌이려고 할 때, 분열이 일어나 코린토스인들이 철수하고 또 다른 스파르테의 왕 데마레토스도 떠나 버렸다. 이탈하는 군대들을 본 다른 동맹국들도 그곳을 떠나 철수했다.

    이 군대가 불명예스럽게 해산되자 , 아테나이인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먼저 칼키스 원정에 나섰다. 그러자 보이오티에인들이 칼키스에 지원 병력을 보냈으나 아테나이인들에게 패하였고, 칼키스인들도 패하고 말았다. 아테나이인들은전쟁에서 생포한 적군들을 족쇄에 묶어 감금했다. 아테나이인들은 그 족쇄들을 아크로폴리스에 걸어 놓았다.

    그리하여 아테나이인들은 더욱 강성해졌다. 이세고리에(평등, 민주정)는 모든 면에서 좋은 것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들이 참주 지배에서 벗어나자 단연 최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그들이 예속되어 있을 때보다 자유를 얻게 되면 각자가 자신을 위해 성과를 이루려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그 후 테바이인들은 아테나이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신탁을 구하러 보냈다. 피티에 여사제는 테바이인들에게 말소리가 많은 것의 도움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거쳐 아이기나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들의 요청에 아이기나인들은 아이아코스의 후손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테바이인들은 아이아코스의 후손들의 지원에 힘입어 공격을 시도했지만 아테나이인들에게 호되게 당했다. 아이기나인들은 아테나이인들이 보이오티에인들을 공격하는 동안 아티케에 쳐들어가 팔레론을 약탈하는 등 아테나이인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아이기나인들은 아테나이인들에게 오랫동안 품고 있던 원한이 있었다. 언젠가 에피다우로스인들의 땅이 아무런 수확을 맺지 못하자 이 재앙에 대해 델포이 신탁을 물었다. 피티에 여사제는 그들에게 다미에와 아욱세시에 조각상을 올리브나무로 만들어 세우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에피다우로스인들은 아테나이인들에게 목재를 얻는 대신 아테나이 신전에 매년 제물을 바친다는 약속을 하였다. 올리브나무로 조각상을 만들어 세우자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들은 아테나이인들과 합의한 것을 이행했다.

    아이기나인들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전처럼 다른 모든 점에서도 에피다우로스인들에게 복종했다. 그러나 그 후 아이기나인들이 배를 건조하게 되자 서로 반목하게 되고 싸우게 되었다. 아이기나인들은 에피다우로스인들에게서 이 다미에와 아욱세시에의 조각상을 약탈했다.

    한편 에피다우로스인들은 그 조각상들을 빼앗기자 아테나이인들에게 합의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아테나이인들이 분노하자 에피다우로스인들은 조각상이 아이기나에 있으니 제물을 그곳에서 받으라고 주장했다. 이에 아테나이인들이 아이기나에 조각상을 반환하라고 했으나 아이기나인들은 상관없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 후 아테나이인 시민들이 아이기나에 가서 그 조각상을 가져오려고 했을 때, 갑자기 천둥이 치고 지진이 일어나 시민들 중 한 명만 살아오고 나머지는 다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은 시민들의 아내들이 그만 혼자 살아 돌아온 것에 분노하여 살아온 한 명도 죽임을 당했다. 아테나이인들은 여자들의 행태가 끔찍했지만 여자들의 복장을 이오니에식으로 바꾸라는 처벌만을 내렸다. 이상이 아테나이인들과 아이기나인들이 서로에 대해 품은 원한의 발단이다.

    아이기나인들이 아티케 해안 지대를 약탈하자, 이에 아테나이인들이 아이기나인 원정에 착수했을 때, 델포이에서 신탁이 왔다. 아이기나인들의 부당 행위에 대해 30년 동안은 대응을 자제하고 그다음 해에 아이아코스에게 성역을 봉헌한 다음 전쟁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아테나이인들은 성역을 봉헌하였지만 아이기나인들을 응징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90~96장 히피아스의 아테네 복귀 좌절

    아테나이인들이 아이기나인들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 라케다이몬에서 일이 일어났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알크메오니다이 가문 사람들이 피티에 여사제와 꾸민 일과 라케다이몬인들 자신과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에 대해 꾸민 일을 알자, 이중으로 한탄했다. 즉 라케다이몬인들이 자기의 빈객들을 빈객들 자신의 나라에서 내쫓았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했건만 아테나이인들에게서 아무런 감사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클레오메네스가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가 쫓겨날 때 성소 안에 남겨 두었던 신탁을 입수하여 공개하자 라케다이몬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신탁은 아테나이인들이 라케다이몬인들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그때 그 신탁을 입수하고 또 아테나이인들의 세력이 커져서 이제 자신들에게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자,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아티케인들이 참주정일 때는 약해지고 비굴해진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다시 참주정으로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가 피신한 시게이온에서 히피에스를 불러오게 하고 다른 동맹국들도 불러와서 히피에스를 아테나이로 복귀시키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동맹국 대부분은 그 말에 수긍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코린토스인 소클레에스가 말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참주정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참주 지배를 복귀시킬 준비를 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으며 그렇게 참주정이 좋다면 라케다이몬인들부터 참주를 세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조국인 코린토스의 내력을 이야기했다.

    코린토스가 과두제였던 과거에는 바키아다이 한 가문이 국가를 지배했고 혼인도 그들 내에서만 했다. 그런데 이들 일원인 암피온에게 라브다라는 절름발이 딸을 에에티온과 혼인시켰지만 자식이 없자 신탁을 구했다. 신탁은 라브다가 둥근 돌을 낳아 코린토스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했고, 이는 코린토스에 내려졌던 이전의 신탁과 같은 의미였다. 바카아다이 가문은 에에티온이 아이를 낳자 죽여 없애기로 하여 자신들의 일족 열 명을 에에티온의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서로를 나무라며 책망했다. 그때 라브다가 일족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궤짝 속에 숨겨서 그들은 아이를 찾지 못했지만 돌아가서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하기로 했다.

    그후 에에티온의 아들은 킵셀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킵셀로스는 장성하여 신탁을 믿고 코린토스를 공격하여 그곳을 차지했다. 그는 참주가 되어 수많은 코린토스인들을 추방하고 재물과 목숨을 빼앗았다.

    킵셀로스는 30년 동안 지배한 후 평온하게 생을 마쳤고, 그의 아들 페리안드로스가 참주 자리를 승계했다. 페리안드로스는 처음에는 온건했지만 밀레토스 참주 트라시불로스와 교유한 이후에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가혹해졌다. 트트라시불로스가 그에게 시민들 가운데 탁월한 자들을 죽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민들에게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며 참주 지배란 것은 이런 것이라고 하며 소클레에스는 말을 끝냈다. 동맹국들은 소클레에스의 말에 모두 동조했으며 라케다이몬인들에게 헬라스의 나라에 혼란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일은 그렇게 끝났다.

    히피에스가 그곳에서 쫓겨나자, 마케도니에 왕 아민테스와 테살리에인들도 오라고 하였으나 그는 시게이온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미틸레네인들에게서 빼앗은 곳으로 미틸레네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이 오랫동안 전쟁을 벌인 곳이다. 양측을 화해시킨 것은 킵셀로스의 아들 페리안드로스였다. 그리하여 시게이온은 아테나이인들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한편 히피에스는 아시에를 방문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아르타프레네스에게 아테나이인들을 중상했다. 아테나이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페르시스인들이 아테나이 추방자들의 말에 따르지 않도록 촉구했다. 결국 설전이 오간 후에 아테나이인들은 공개적으로 페르시스인들과 적대하기로 결정했다.

     

    97장 아테네의 지원 수락

    아테나이인들이 페르시스인들과 사이가 틀어진 바로 그때에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레스가 라케다이몬의 클레오메네스에게 스파르테에서 쫓겨나 아테나이로 왔다. 그는 민회에 나가 아테나이는 창과 방패를 사용하지 않는 페르시스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면서 전쟁을 부추겼다. 그리고 밀레토스는 아테나이에서 온 식민자들이니 강국인 아테나이가 자신들을 구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간절히 부탁하느라 온갖 약속을 다 했고 결국은 그들을 설득해냈다. 실로 한 사람보다는 다수를 현혹하기가 더 쉬운 일인 것 같다.(클레오메네스 한 사람은 현혹시키지 못했으므로) 그리하여 아테나이인들은 이오네스인들을 도우러 배 20척을 파견하고 멜란티오스를 함대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이 배들은 헬라스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불행의 근원이 되었다.

     

    98~126장 이오니아 군대의 공세와 키프로스의 반란....................................................................................572

     

    98장 파이오니아인의 귀향

    아리스타고레스는 밀레토스에 도착하자, 다레이오스를 괴롭히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프리기에의 파이오니에인에게 사람을 보냈다. 이들은 메가바조스에 의해 스트리몬 강 유역에서 포로로 붙잡혀 프리기에 한 촌락에서 그들끼리 살고 있었다. 사절은 아리스타고레스가 파이오이에인들을 구출해줄 조언을 전하러 왔다면서 지금 모든 이오니에가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대들도 그대 자신의 땅으로 탈출하라고 했다. 이에 파이오니에인들은 크게 기뻐하며 바다 쪽으로 도망쳤다. 파이오니에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의 추격을 피하여 키오스와 레스보스를 거쳐 도리스코스로 갔으며 그곳에서 걸어서 파이오니에에 도착했다.

     

    99~103장 이오니아 군대의 사르디에스 공격

    아테나이인들이 배 20척을 타고 도착했을 때 에레트리아인의 삼단노선 5척도 함께 데려왔다. 이 에레트리아인은 아테나이인을 위하여 온 것이 아니고, 에레트리아인들이 칼키스인들과 전쟁을 할 때, 밀레토스인들이 도와준 것을 갚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테나이인들을 위시하여 다른 동맹국들이 당도하자 아리스타고레스는 사르디에스 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그 자신은 출정하지 않고 밀레토스에 머물렀다. 이오네스인들은 이 함대와 함께 에페소스에 도착하여 진군해 갔으며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사르디에스를 점령했는데 아르타프레네스가 수호했던 아크로폴리스만은 예외였다.

    이오네스인들이 이 도시를 점령했지만 사르디에스의 집은 갈대로 지은 것들이 많아서 한 병사가 어느 한 채에 불을 지르자 불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로 번졌다. 성내에 있던 리디에인들과 페르시스인들은 강 쪽으로 몰려들었다가 극렬하게 저항을 하자 이오네스인들 일부는 저항을 하고 일부는 산 등으로 도망을 갔다.

    그런데 사르디에스가 불에 탔을 때 그 안에 있던 토착 여신 키베베의 성소도 불타 버렸다. 나중에 페르시스인들은 이것을 구실로 내세워 헬라스의 성소들을 불태웠다.

    페르시스인들은 이오네스인들이 사르디에스에 없다는 것을 알고, 이오네스인들을 추격하여 공격했다. 이오네스인들은 크게 패하여 모두 전장에서 도망쳐 각기 자신의 나라로 흩어졌다.

    그 후 아테나이인들은 이오네스인들과 완전히 결별했다. 그러나 이오네스인들은 아테나이인들과의 동맹이 해체되었음에도 왕에 대한 전쟁을 준비했다. 그들은 헬레스폰토스의 비잔티온과 그 외의 나라들을 모두 그들의 지배하에 두었고, 카리에의 대부분 지역을 동맹으로 확보했다. 전에는 그들과 동맹 맺기를 원치 않던 카우노스조차도 사르디에스가 불탄 후 그들 편에 합류했던 것이다.

     

    104~115장 키프로스의 반란과 좌절

    키프로스인들은 아마투스인들만 제외하곤 모두 자발적으로 그들 편에 합류했다. 키프로스인들도 메디아인들에게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한편 다레이오스 왕은 사르디에스가 아테나이인과 이오네스인에게 점령되어 불에 탔다는 보고를 받으며, 그 일의 주동자가 아리스타고레스라는 것을 알게 되자 하늘을 향해 활을 쏘며 제우스에게 아테나이인들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를 갈며 이 말을 상기했다.

    다레이오스는 자신이 억류 중인 히스티아이오스를 불러 아리스타고레스의 소행에 대해 다그쳤다. 그러자 히스티아이오스는 절대 금시초문이라며 아리스타고레스의 독단적 소행이라고 발뺌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아리스타고레스의 불온한 짓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본인을 억류한 왕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꾸민 밀레토스의 대리인을 왕의 수중에 넘길 테이니 되도록 빨리 자신을 이오니에로 돌려보내 주십사고 읍소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이런 말로 왕을 기만했지만 왕은 그 말에 수긍하고 그를 보내주며 일을 다 처리하고 다시 그의 곁으로 오라고 했다.

    바로 같은 시각에 살라미스의 오네실로스가 아마투스인들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페르시스인 아르티비오스가 키프로스를 공격하러 올 것이라는 첩보를 받았다. 오네실로스가 이오니에 각국와 논의한 끝에 이오니에 연합군은 키프로스를 지원하러 왔다. 페르시스인들과 포이니케인들은 살라미스를 향해 진군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키프로스의 참주들이 이오네스인들의 장군들을 불러 모아서 장군들이 페르시스와 포이니케 중에서 싸우고 싶은 상대를 골라 선택하라고 말했다. 이에 장군들은 이오네스 공동체는 바다를 지키라고 자신들을 보냈다고 대답했다. 그 후 페르시스인들이 살라미스 평원으로 진격해오자 오네실로스는 자발적으로 아르티비오스와 대적했다. 오네실로스는 아르티비오스의 말이 뒷발로 똑바로 설 수 있으며 그 주인이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발로 차서 죽인다는 소문을 들고, 자신의 방패지기에게 어떻게 공격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방패지기는 장군은 장군에 대적하고 종들은 적들의 종이나 말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하께서는 그 말의 재주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말이 더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해 놓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후 육지와 해상에서 교전이 일어났다. 해상에서는 이오네스인들이 포이니케인들을 제압했으며, 그중 사모스인들이 가장 뛰어났다. 한편 육지에서는 양쪽 군대가 접전을 벌였는데 오네실로스와 아르티비오스가 붙자, 오네실로스의 방패지기가 아르티비오스의 말의 다리를 베어 버렸다. 그러자 아르티비오스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편 다른 자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 쿠리온의 참주가 상당수 병력과 함께 탈주했고, 그것을 본 살라미스의 전차부대도 이탈했다. 이런 일이 생기자 페르시스인들이 우세해졌다. 키프로스인들의 군대는 패주하며 많은 수가 죽었는데 그중에는 오네실로스(키프로스의 반란을 야기한 자)와 솔로이인들 왕의 아들도 죽었다. 아마투스인들은 오네실로스의 머리를 성문 위에 걸어 두었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벌 떼가 들어앉아 벌집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아마투스인들은 신탁을 물었고, 신탁은 그의 머리를 내려서 매장해주고 오네실로스를 영웅으로 기리면 그들의 형편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아마투스인들은 신탁대로 행했다.

    한편 키프로스 근해에서 해전을 벌인 이오네스인들은 오네실로스의 일이 실패로 끝났고, 살라미스를 제외한 키프로스의 모든 나라를 전왕 고르고스가 장악한 것을 알자마자 즉시 이오니에로 출항했다. 그 후 페르시스인들은 키프로스를 완전히 점령했다.

     

    116~123장 페르시아군이 반란 지역 진압: 헬레스폰토스·카리아·아이올리스·이오니아 일부

    한편 다레이오스의 사위들이 사르디에스로 진군한 이오네스인들을 추격하여 승리를 거둔 후에는 자신들끼리 나라를 나누어 약탈했다. 왕의 사위 다우리세스는 헬레스폰토스 연안의 나라 쪽을 점령했다. 그런데 카리에인들이 이오네스인들과 제휴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헬레스폰토스에서 방향을 돌려 카리에 쪽으로 군대를 진군시켰다.

    다우리세스가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카리에인들은 마르시에스 강변에 집결했다. 카리에인들은 페르시스인들이 강을 등지게 하고 싸우자는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카리에인들이 전투에서 대패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라브라운다의 제우스의 성소롤 피했다. 그곳에서 페르시스인들에게 항복할지, 아니면 아시에를 완전히 떠날지를 논의했다.

    이들이 논의하고 있을 때, 밀레토스인들과 동맹국들이 카리에인들을 도우러 왔다. 카리에인들은 다시 전쟁 준비를 하기로 하고, 페르시스인들을 맞아 싸웠지만 전보다 더 크게 대패했다. 특히 밀레토스인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참사 후에 카리에인들은 다시 전쟁을 재개하여 페르시스인들을 매복 공격했다. 이에 페르시스의 다우리세스를 비롯한 많은 장군이 죽었는데 이 공격을 이끈 자는 이바놀리스의 아들 헤라클레이데스였다.

    한편 사르디에스에 진군한 이오네스인들을 추격한 히마이에스는 미시에의 키오스를 점령했다. 그는 다우리세스가 카리에 원정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헬레스폰토스 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갔다. 그는 일리온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는데 영토를 넓히던 중에 그 자신이 병이 들어 트로이아스에서 죽었다.

    한편 사르디에스의 총독 아르타프레네스와 오타네스는 이오니에의 클라조메나이와 아이올리스의 키메를 점령했다.

     

    124~126장 아리스타고레스의 도피와 사망

    이들 나라가 점령되자,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레스는 기백이 대단한 자가 아님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이오니에를 혼란에 빠뜨리고 엉망으로 만든 자인데도 이러한 사태를 보자 도망칠 궁리를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파를 불러 모아 그들과 협의 하면서 어디로 도망갈지를 궁리했다. 그에 대해 헤카타이오스는 레로스 섬에 요새를 건설하여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그곳을 기반으로 훗날 밀레토스로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헤카타이오스의 조언을 듣지 않은 아리스타고레스는 미르키노스로 가서 그가 목표로 삼았던 곳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휴전을 맺고 떠나려고 했던 트레이케의 한 도시를 포위 공격하다가 트레이케인들의 손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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