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모 1994 (이 글은 영화헤살꾼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린 한 가정의 희비애락이 녹아 있는 영화였다. 역시 공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만하면 감독과 배우의 끈이 단단하다.
때는 역사를 거슬러 1940년대, 부유한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며 도박에 빠져 사는 후우꿰이(부귀: 걸우)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편을 두고 떠나는 지아젠(가진: 공리)이 있다. 도박장 옆 무대에서는 그림자극을 하고 있다. 후우꿰이는 배우가 노래를 잘 못하자, 대신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박수를 받는다. 그림자극이 이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 걸까.
아직 파산하기 전이라 후우꿰이는 돈을 다 잃고도 사람 등에 업혀 귀가한다. 그때면 인력거도 있었을 텐데 업고 가는 사람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도박 좀 그만하라고 아들 후우꿰이에게 꾸지람을 하는데 그는 도리어 아버지가 첩을 셋이나 두고 산 본보기가 있어서 그렇다고 남 탓을 한다. 후우꿰이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오직 도박 재미로 산다. 딸 펭시아(봉하)와 임신한 아내를 책임질 가장의 역할은 1도 없다. 지아젠이 울면서 도박을 그만하라고 만류를 하지만 듣지 않고 아내가 떠나가던 날, 파산을 하게 된다. 대궐 같던 큰 집은 롱에우가 차지하게 되고, 그제서야 후우꿰이는 현실을 바로 보게 된다.
1년이 흘러 낡고 좁은 후우꿰이의 집에 지아젠이 남매를 데리고 돌아온다. 지금부터는 잘 살아 보자고 약속을 하며 좋아하는 후우꿰이는 롱에우에게 빌려온 그림자극 소품을 갖고 연극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대로 가정 안에는 평화가 있다. 큰 집에 살던 때와는 다르다. 그림자극이 상영 중일 때, 칼이 막을 푹 찢으며 국공내전을 알린다. 바로 국민당군으로 강제 징집된 후우꿰이는 전장에서도 그림자극 소품 가방을 소중하게 안고 다닌다. 함께 끌려간 춘셍이 자동차를 타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자 그는 난 가족이 젤 소중하다며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진작에 정신 좀 차리지. 꼭 이렇다. 다 잃으면 그때서야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인생의 아이러니가 있다.
부대가 몰살되었는데 어쩌다 살아남게 된 후우꿰이는 공산당 포로가 되지만 그림자극으로 인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그림자극이 목숨까지 부지 시킨 것이다. 후우꿰이에게 누가 권력을 잡든,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누구이든 그것은 알 바가 아니다. 오로지 집으로 살아서 돌아가는 일이 절대 명제이며, 최고의 선이고, 최후의 목적이다.
남편이 전쟁터로 끌려가던 날, 시어머니도 죽고, 지아젠은 당의 도움으로 남매를 데리고 살아가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던 남편이 찾아오고 가족은 다시 합체한다. 지역 책임자 동지가 찾아와 반동인 롱에우를 처단해야 한다고 전한다. 당에서는 집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우꿰이는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면 처형당할 사람은 자신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금 가난하고 평범한 인민이 되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아젠은 남편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해진 군대 증명서를 찾아 이어붙여 놓는다. 그들을 보호해줄 유일한 서류인 것이다. 공산당은 공공식당을 만들어 무료 급식을 하고 한편으로는 집집마다에서 쇳덩어리를 공출해 간다. 그리고 그림자극 소품들도 빼앗아 가려고 하다가 연극은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지아젠과 후우꿰이의 말을 듣고 그냥 간다. 다시 그림자극의 덕을 보게 된다.
열병으로 말을 못하게 된 누나 팡시아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낸 아들 유퀸(유경)을 나무라는 남편에게 지아젠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남편더러 아들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이럴 때보면 가정교육을 참 잘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은 누구이거나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지아젠은 소원해진 아버지와 아들을 화해시키느라 아이디어를 짜내어 그들의 평화는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잠을 못 자서 만두도 안 먹고 자고 있는 유퀸에게 학교 선생님의 호출이 온다. 철 만들기 행사에 위원장이 온다고 하니 전교생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엄마와 아빠의 생각이 다르다. 엄마는 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잠이니 학교에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아빠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니 아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빠가 자는 아들을 업어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위원장이 탄 차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아들이 죽게 되었다.
아들의 무덤 앞에 먹지 못한 만두 도시락이 놓여 있다.
“만두 다 먹으면 아마 행복해질 거야,”
“그날 내가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았더라면 유퀸이 죽지 않았을 것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작은 무덤이 애처롭다. 아들의 무덤으로 위원장이 찾아왔다. 위원장은 바로 군대에 남기로 했던 춘셍이다. 춘셍은 위로금을 전하지만 부부는 받지 않고 아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친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책임자 동지는 후우꿰이를 찾아와 제국주의의 산물인 그림자극 소품들을 모두 태워버리라고 한다. 그동안 그림자극 덕에 살아왔다면 이제 그것으로 인해 반동으로 몰리게 되니, 세상이 다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방향이 달라진 바람에 맞설 수는 없다. 맞설 만큼 힘이 없다면 순응해야 하는 게 백성이고 서민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버릴 것도 없어서 쉽게 바람을 따라 갈 수 있다. 그게 없는 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소유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후우꿰이는 그림자극을 마오의 극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며 잔꾀를 써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것의 말살 정책이 혁명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원장 춘셍은 후우꿰이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선해 보지만 후우꿰이는 마다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펭시아가 절름발이 노동자인 완에르시와 결혼하게 되어 부부는 행복하다. 폭죽이 터지며 인민복 차림의 신랑신부가 등장한다. 하객들로 꽉 찬 마당, 담장에는 마오의 초상화 등이 걸려 있다. 사진을 많이 찍는다. 펭시아가 신랑을 따라 떠나가고 텅 빈 마당에 춘셍이 나타나 선물을 주고 간다. 그런데 그 선물이 마오의 초상화다. 이건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은데...
펭시아가 오랜만에 친정에 왔다. 사위는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서 아기를 가졌다는 희소식을 전한다. 지아젠은 사위더러 딸에게 잘해주라고 부탁하며 딸에게는 아기를 낳으면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사진은 현실을 있는 대로 인정하는 것이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격변의 시대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들을 기억하자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춘셍이 자본주의자로 잡혔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위는 그와는 아무 관련이 없기를 장인에게 당부한다.
어느 날 밤에 춘셍이 후우꿰이의 집에 몰래 찾아와 유퀸을 죽게 한 일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며 자기의 전 재산이 든 통장을 준다. 그리고 죽을 것을 암시하는 말을 한다. 그러자 후우꿰이는 “이 시대에 맞춰 살아남기란 매우 힘들고 네가 힘든다는 것은 잘 알지만 자살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하며 통장은 받지 않는다.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지아젠은 춘셍더러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그를 용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빚진 것을 생각하여 빚을 갚으려면 살아남아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한다.
펭시아가 출산을 하려고 병원에 갔을 때 경륜 있는 의사들은 모두 감옥에 가 있고, 신출내기 젊은 의사만 있다. 아무래도 불안하여 완에르시가 감옥에서 잠깐 왕 교수를 꺼내오는 기지를 발휘한다. 복도에서 기다리는 후우꿰이와 지아젠은 아기 이름을 “만두”라고 짓는다. 만두는 중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상용 음식이다. 대를 이어 먹어오고 앞으로도 먹게 될 그 이름처럼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딸은 손자를 낳고 과다출혈로 죽게 된다.
위급 상황에서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가 없는 병원, 감옥에서 허기진 채로 있다가 빵을 먹고 체해 쓸모가 없어진 왕 교수, 빨리 처치를 해달라는 울부짖음, 감독은 문화대혁명의 민낯을 이렇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손자 만두가 수레를 밀어 줄 정도로 컸다. 불도 지필 줄 알 만큼 자랐다. 사위와 후우꿰이는 자전거에 손자와 아내를 싣고 펭시아와 유퀸의 무덤을 찾았다. 후우꿰이는 또 자책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들도 딸도 죽었다고 한탄한다. 지아젠은 이제 과거일 뿐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림자극 도구함에 병아리를 담아온 만두는 병아리가 자라면 무엇이 될지 묻는다.
“병아리가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 되지, 양이 자라면 소가 된단다.”
“소가 자라면 무엇이 되나요?”
소가 자라면 무엇이 될까. 후우꿰이와 지아젠 부부는 만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바라는 궁극적인 삶의 목표이자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해도 얼마 지나면 이젠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미래에 대한 긍적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품게 된다.
《역사》에서 보면 솔론이라는 예언자가 나온다. 그는 인간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인간을 찾을 때, 꼭 죽은 사람에서만 찾는다. 이유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싼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 지금 좋다고 너무 들뜨지 말고, 조금 안 된다고 쉽게 낙담하지 말자.
세찬 바람과 거친 파도 속에서 오늘 하루 또 살아내기를 한다.
인생
감독 장이모
배우 공리, 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