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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순창 회문산 휴양림휴양림을 찾아서 2013. 11. 5. 11:29
처음부터 회문산 정상을 오르겠다 마음먹지는 않았었다.
숙소에서의 아침 풍경- 벌써 떠오른 태양을 가로막은 산의 실루엣의 극명한 대조로 더욱 아름답다 .
숙소는 넓고 편안했다.
눈부신 햇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아침을 맞고 산책이나 하자고 걸은 것이 임도를 빠져나와 100년 된 서어나무가 있는 중턱까지 간 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남편은 걷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휴양림에 오기전부터 산에 가자면 휴양림에 가지 않겠다 엄포를 놓았었다. 시멘트로 된 임도보다 작은 오솔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 우리도 혼자 겨우 걸을 만한 숲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조금 못미쳐 남편은 물 말라버린 골짜기 바위등걸에 앉아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였다. 그럼 좀 쉬슈 하고 나 혼자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 편의 수채화같은 숲길에서
들어갈 수록 느껴지는 평화와 행복감에 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평일이라 아무도 없다. 문득 남편이 생각나서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어 전화를 하였다. 한참 뒤에서 그래도 나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매끈한 서어나무 숲에 잠시 쉬고 있으니 남편이 느릿느릿 올라왔다. 갑자기 숲속에서 가장 멋진 늙은 서어나무가 나타났다.
보호수 서어나무 할아버지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 나무 몇 년이나 되었는지 맞혀봐요. 맞힌 사람 하자는 대로 하기. 난 오백 년.” 하였다.
“난 삼백 년.”
남편이 정답과 점수차가 적은 쪽이다. 백 년이 되었다한다.
보통 서어나무는 줄기가 매끈하기만 한데 보호수라는 이 나무는 백년의 풍상을 겪은 상징을 보여주는 듯 범상치 않은 몸매다.
회문산은 빨치산 은거지였던 곳으로 토벌작전 때 불바다가 되었던 곳이라 한다.
그 불을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였다. 잠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곳까지는 완만한 산길이었다면 그후부터는 경사가 가파르고 진흙으로 되어 있어 올라가면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남편이 걱정되어 그만 내려가자고 하였으나 그는 산등성이까지만 가자고 하였다. 이럴 거면 스틱이랑 등산화를 신고 오는 건데 미리 엄살을 부려 아무 장비도 없이 이게 뭐람.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도 남편이 뒤에 따라오고 있다.
등성이에 올라서니 서어나무 갈림길이 나오고 남쪽은 회문산 정상 동쪽은 삼연봉이라고 씌여진 팻말이 있다.
“당신 힘든데 그만 내려갑시다. 여기까지 왔으면 됐답니다.”
“아냐. 정상까지 800미터라니 한 번 가봅시다.”
어랍쇼. 이게 웬일!!!! 남편은 회문산 정기를 받았는지 용기백배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돼지. 나는 억새풀이 간간이 보이는 회문산 정상을 향하여 앞장섰다. 이제는 서어나무보다 참나무가 많고 가끔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씩 보이는데 참 반갑다.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은 또하나의 끈질긴 생명이다.
억새풀이 있는 철쭉 군락지 오솔길
큰지붕으로 가는 길은 봄에 오면 좋을 듯한 게 철쭉 군락지다. 점점 먼산이 보이고 그 골마다 마을이 보인다.
억새풀을 헤치고 올라서니 회문산 정상 큰지붕이다. 온 세상이 보인다. 시야가 탁 터진 게 속이 후련하고 기분은 날아오를 것 같다.
동서남북이 산으로 겹겹이 싸여있다. 큰 산은 팔을 넓게 벌리고 세상 모든 것들을 품을 듯하고 작은 산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고 팔을 둘러 흩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 같다.
이 보다 아름다운, 이 보다 다정한 모습이 어디있을까?
사람은 쉽게, 벌린 품을 닫으려하고 서로에게 내어준 어깨를 거둬들이고 잡은 손을 놓아버린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샷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올라왔다.
“좋지요?”
“좋기는. 내려 갈 일만 남았네.” 라고는 하지만 그도 산 정상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고 조금은 더 가까워진 햇살을 느끼려는 것 같다.
정말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려가야 할 시간.
회문산을 아버지의 산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양기를 누르려 음의 기운을 찾아놓았다.
천문월굴이라는 바위굴 입구
천문월굴이라는 바위와 여근목이라는 소나무다. 모두 여성의 상징이 탁월한 자연물인데 정말 오묘하다. 양과 음의 조화는 세상 처음부터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생성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헬기장 쪽으로 내려가 큰지붕 작은지붕을 올려다보니 엄청 높다.와 우리가 저 높은 델 올라갔었네.이번 여행은 이것으로 백점이야.
전주, 정읍의 미시령길과 감나무와 산 중턱 고지대 마을인 천치마을을 지나 순창회문산까지
그리고 내일은 진안 데미샘의 일정이 남았지만 울 남편 파이팅이다.
가장 행복한 여행, 가장 편안한 여행,
남편과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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