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단둘이 오직 휴식의 목적만을 갖고 서울을 떠나는 일이 참 오랜 만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미세 먼지와 안개로 뒤덮인 하늘은 시야를 막아 답답하다. 그래서 남편한테 종알종알 얘기를 하는데 일찍 일어나서인지 하품이 나왔다.
“하아아아아. 아하 졸려.”
그러자 남편이 졸리면 자라고 한다.
“상무님이 운전하시는데 제가 어찌 잡니까?” 하며 드라마 대사 흉내를 냈다.
그러자 남편이 나를 아주 때려 눕혔다. 그의 강력한 펀치가 날아 온 것이다.
“떠드는 것보단 자는 게 나아.”
남편은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너그러운 성격을 갖고 있다. 내가 얼마나 시끄럽게 했으면 저럴까하고 나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손으로 막아가며 묵언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당진 대전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여기가 당신 고향쯤이야하고 남편이 금기를 깼다. “어디?” 새로 난 길이고 자주 가보질 않아서 고향도 분간이 안되었다. 내가 혼잣말로 여긴가 저긴가 하며 계속 창밖을 내다보니까 남편이 말했다.
“다 지나갔는데”
이미 사라진 풍경 속에서 뭘 찾는 거냐고 하는 거다. 하긴 120킬로로 달리니 고향도 금방 사라질 수밖에.
그런데 눈물이 났다. 고향을 지나면서 고향을 찾을 수 없다니, 무척이나 서글픈 생각에 나도 모르게 주르륵. 난 한참이나 그 기분에 빠져서 휴지를 빼어 눈물을 닦았다.
대전을 지나 전라도 접경에 들어서자 산세와 나무들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나는 파계를 하고 말았다.
‘저게 뭐지? 서산 태안에는 소나무가 많은데, 내륙으로 들어오니 갈참나무가 많네. 토양과 기후 때문인가.’
혼잣말을 하니 남편이 좀 다르긴 다르지?하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당신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요?”
나는 얼씨구나하고 포문을 열었다.
“와아, 산이 선명하게 보이네. 서울서 빠져 나오길 정말 잘했네요. 저기 저 마을이 특이하네요. 저기 가 볼 테야.”
남편은 운전하느라 고개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친다. 창밖 풍경이 전원적이고 목가적이다. 진안까지 8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휙 지나갔다.
진안 아이씨로 나와 진안 시장 안에 있는 국숫집에서 아점을 먹었다. 3년 전,처음 왔을 땐 그렇게도 맛있던 국수가 오늘은 영 맛이 안 났다. 시장 구경한다고 돌아다니다가 부동산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영락없이 시골 복덕방이다. 퀘퀘한 냄새와 담배연기에 절은 벽지와 할아버지. 내가 고속도로에서 본 마을과 거리를 설명해주니 거기가 무슨 동네인지 대충 알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 마을을 찾아가는데 도중에 꽃잔디 축제를 하는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얕으막한 산에 전부 꽃잔디를 심어 분홍산이 되었다. 운전하느라 흘낏 한번 보고 얼마쯤 더 가니 아까 보았던 마을이다.
“맞아, 여기네.”
하얀 실낱 같은 시골길을 따라간다. 경사가 급한 언덕을 뒤집어질 듯 올라가고 내려올 땐 엎어질 듯 내려온다. 야산을 죄다 개간하여 밭을 일구었는데 아직 작물을 심지 않아 냉이꽃, 자운영, 꽃다지 같은 야생화만 가득하다.
어찌보면 볼 것도 없는 깡촌 풍경을 보러 찾아다니는 아내가 싫을 수도 있을 텐데 남편은 불평 한마디 안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설명해준다. 그게 맞는 설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고맙다. 사람을 만나면 비키기도 힘들 것 같은 농로를 따라 다녀도 우리는 이리저리 자유롭다. 속도를 낼 수 없는 길이다보니 길 옆에 난 풀까지 다 보며 지나간다.
“앗, 저게 뭐죠?”
내가 오른쪽 뚝방에 난 풀을 가리켰다.
“머위 같은데?”
“응, 맞아. 내가 가서 좀 사올 게요.”
“누구한테?”
“저기 밭주인인 것 같네.”
벌써 사방을 스캔한 내 눈이다. 나는 차를 세우고 밭고랑으로 주인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밭이랑에 비닐 멀칭을 하던 주인이 인사를 한다.
“네. 웬일이세요?”
주인은 숙이고 일하던 허리를 펴며 밭에 들어온 나를 살폈다.
“저 머위요. 파시는 거면 좀 사고 싶은데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주인장 얼굴이 환하게 웃는다.
“아, 뜯어가세요.”
“정말요? 그럼 조금 먹을 거만 뜯을 게요.”
나는 머위를 한 주먹 뜯어가지고 주인한테 다시 갔다. 머위를 보여주었다.
“이만큼 얻어가요. 그런데 제가 농사일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비닐이라도 펴 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머위나 더 많이 뜯어서 그냥 가세요.”
주인은 내가 큰일이라도 저지를 사람으로 보였는지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사실 농사일 돕는답시고 함부로 나섰다간 망치기 일쑤라는 걸 나도 안다.
그때 남편이 왔다.
“저, 아내가 보답을 하고 싶어서 그러나 봅니다. 그럼 약간의 돈이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저 나눠 먹는 게 좋은 거죠. 부담 갖지 마세요.”
참 좋은 시골 농부를 만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3년 된 우엉이라며 두 뿌리를 캐 주고 부추까지 주었다. 남편은 담배와 소주가 있으니 갖다드리겠다고 하였으나 결국 극구 사양해서 고맙다고 인사만 하고 떠났다.
다시 숙소를 향해,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내가 네비 말을 잘 못 들어서 엉뚱한 길로 가게 되었다. 마침 차를 돌리려는데 진안 흑돼지 갈비라고 쓰인 식당 앞이다. 우리 돼지고기나 사 가지고 갈까요하고 내렸다. 그런데 그 식당은 파는 것은 없다고 한다. 식당 아주머니한테 어디서 파냐고 물었다.
“쩌그 다리만 건느면 돼야. 깜됑이집이라고 꺼그서 팔아야.”
인사를 하고 좌회전을 하여 깜됑이집을 찾아가는데 아무리 길 양쪽을 훑어도 깜됑이집은 보이질 않았다. 가다보니 아까 국수 먹은 시장통까지 왔다. 삼거리 근처에 정육점 간판이 보여 차를 세웠는데 저 건너편에 깜도야지집이 있다. 정육점 이름이 깜도야지집이었다. 시골 아주머니 쩌그가 여그였나 보다. 검은털이 숭숭 박힌 삼겹살 한 근과 쌈장을 샀다.
데미샘 가는 길은 정말 좋다. 계속 산골로 들어간다. 이 산을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오고, 고개를 넘으면 다시 산이 나타난다. 첩첩산골 그대로이다. 오래 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을 입구를 지나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양쪽이 다 벚나무이다. 처음 왔을 때는 가을이라 봄에 꽃 필 때 오자고 하였는데 꽃은 다 지고 없다. 대신 길 옆 과수원에 사과꽃이 한창이다. 과수원은 울타리가 없어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꽃향기를 맡으며 사진을 찍었다. 정말 향기롭네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사과꽃을 솎아주는 젊은이를 만났다.
“제가 어렸을 적에 사과나무 아래서라는 순정 만화가 있었어요. 고향에도 사과나무가 많았고요. 그래서 들어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얘기를 들려주니 젊은이도 웃으며 응수해 주었다. 늦게 피는 꽃을 따 주어야 좋은 꽃이 열매를 맺게 될 거라고 하였다. 나도 조금 도와주다가 데미샘으로 향했다.
전에 가을에 왔을 때 냉이 많던 밭이 생각났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그 밭은 묵밭이 되어 풀만 가득했다. 그래도 반가워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데 달래가 보였다. 차에서 칼을 꺼내와 달래를 캤다. 달래 뿌리가 마늘만 하다. ㅎㅎ 누가 나를 싫다고 할껴 ㅋㅋ 내가 웃으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도 어이구 또 나온다하며 같이 웃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어찌나 노곤한지 남편도 나도 낮잠을 잤다. 전화가 와서 많이 자지는 못했지만 좀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해 지기 전에 데미샘에 가서 인사하고 오자.”
남편이랑 아무도 없는 오솔길을 걸어 데미샘에 다녀왔다. 섬진강이 발원 되는 이 작은 물줄기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 너희들도 이렇게 시작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많은 것들을 포용하고 품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길 기원한다. 벌써 큰 골짜기를 관통하는 개천이 흐르는 숲속 오솔길은 언제 와도 좋은 곳이다. 노래도 하고 흐르는 물에 손도 씻고 새소리도 듣는다.
숙소에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다. 밥은 가져온 쌀과 돼지고기와 머위와 부추로 해결하기로 했다. 채소를 다듬고 있는 부엌에는 다른 일행들이 왁자지껄 하다. 내가 김치 없으니 이걸로 해결하자고 남편한테 하는 소리를 들은 이웃이 김치를 준다.
우리는 조촐하지만 맛있는 만찬을 즐긴다. 나도 소주 한 잔 마신다.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쾌청하다. 맑은 햇살이 초록산을 더욱 신선하게 해주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어제 남은 김치와 라면과 부추로 남편이 맛있는 아침을 만들어왔다.
앞산을, 또 그 뒤에 겹겹이 둘러친 산들을 바라보며,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정말 평화와 행복 그 자체이다. 오늘 이렇게 충전한 것으로 피곤한 일상을 이겨내는 것이리라.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남편은 이렇게 좋은 아침의 감흥으로 벌써 이슬이와 일체동심이 되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