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수요일 35도 맑음
평균 기온이 35도 넘는 날이 벌써 20일 째다. 사람들 모두 지쳐서 아우성이다. 나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른다. 지구의 종말이라도 온 느낌이다. 땅은 가물어서 쩍쩍 갈라진다고 하고, 아스팔트는 녹아서 들썩거리고 사상 유례 없는 더위라고 한다. 그런데
혼자 사시는 어머니 집이 문제다. 아침에 해가 뜨면서 벌써 거실은 햇살에 가득차고 앞 동 머리 위로 이동하는 한낮내내 폭염을 쏟아붓다가 저녁때가 되면 서향에 서치라이트가 되어 반사되는 햇살에 찜질방 거리가라한단다. 그래서 더위먹은 어머니가 어지럽고 식사도 못하신단다.
밤새 잠은 안오고 저러다가 이번 여름에 돌아가실 것 같은 걱정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니 어머니 보약은 소허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맞아 허파를 사 가지고 가자. 아침에 전화해서 허파 사갈게라고 하자 좋아하셨다. 독산동 우시장에 전화로 물어보니 소 부산물 아직도 팔고 있단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우시장에 내렸다. 막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어디냐?
나왔는데 왜요?
응 너 허파 오늘 사오지 말고 찬바람나면 사오라구, 너무 더운데 너 병날까 무섭다.
알았어요. 허파 사가면 먹기는 할 거지? 지금 여기 우시장에 와 있어요.
에이구, 더운데 그러지말아라.
몸이 약해 조금만 움직여도 잘 아픈 나를 염려해서 그러는 줄 잘 알기에 알았다고하고 끊었다.
허파 파는 곳을 찾아가니 오늘 나온 한우 허파란다. 정말 오늘 나온 거 맞아요하고 물으니 허파장사 아줌마 자기를 못 믿는다고 화를 낸다. 그게 아니라 약으로 쓸 거라 좋은 거 사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랬더니 좀 누그러졌는지 3000원 내란다. 다시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독산역으로 갔다. 독산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숨이 탁탁 막힌다. 서동탄가는 전철이 온다. 일단 탔더니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이런 지독하게 더운 날엔 대중교통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사람들도 별로 없다. 한숨 돌리고 서동탄에서 내려서 5분 기다리니 천안 완행이 왔다. 갈아탔는데 거기도 자리가 많았다. 오산에서 급행으로 갈아타고 천안에 내리니 배가 고파서 배가 아파왔다. 길가에 빵집에서 급히 때우고 택시를 타고 어머니 댁으로 들어갔다.
마르고 오그라든 어머니는 6월보다 훨씬 더 작았다. 6월에는 도어락도 잘 열어주더니 이번에 그것도 못 연다. 동생한테 비밀번화 물어봐서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엊그제 고장난 에어컨 고쳐놓은 동생 덕에 집안은 시원하다. 잠깐 앉아있다가 허파를 손질하려고 보자기를 끌렀다. 새우젓 무침, 마늘 초절임, 오이지, 깻잎절임, 묵 가루 등 반찬 가져간 것부터 정리를 하는데 어머니가 왔다갔다 하시더니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누가 이 더운데 오라니. 니들이 오면 난 더 힘들어. 주부가 없으니 내가 니들 알려줘야 하는데.....
푸념이 한 시간 정도 하신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허파를 삶았다. 어머니 푸념 속에서 이 더운데 가스불 쓰는 게 싫어서 저러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더위에 시달렸으면 저러시나 싶어 안스럽다.
너희들이 왔다가서 그릇을 아무데나 놓고 가면 난 그걸 찾느라 신경질이 나고 짜증이 나서 죽겠다
눈이 급속도로 안 보이는 어머니기에 어머니가 놓은 그대로 놔 두고 가야하는데 딸들이 제각각 놔두고 가니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엄마, 누가 오면 엄마가 해놓은 대로 해놓고 가라고 알려줘야지. 말 안하면 모르니까 신경을 못 쓰는 거여 이제부터는 꼭 그 얘기를 해요. 그리고 방금 온 사람 앞에서 오지 말라고 다 싫다고 좀 하지 말고.....
그랬더니 알았다고 하신다.
삶은 허파를 썰어 양념을 해서 다시 볶았다. 허파 볶음과 새우젓 등 가져온 반찬과 저녁을 차려 드리니 잘 드셨다. 특히 깻잎과 마늘 절임을 잘 드셨다. 장가계에서 사온 대추사탕도 드렸더니 좋아하신다.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는 다른 딸들은 사탕 한 개도 안 사왔는데(받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네가 사다주니 맛있다고 잘 드신다.
그런데 밤 9시경,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다가 깜빡 잠이 잤나보다. 눈을 떠보니 어스름 불빛에 흰 옷 입은 어머니가 앉아계셔서 깜짝 놀랐다.
왜 그러셔유?
다리가 저려서 잠을 못자고 있다.
왜지?
아마도 마늘을 먹어서 그런가 싶다.
연하고 독한 맛이 없다고 맛있다고 했잖아유?
그러게. 그런데 왜 또 갑자기 다리가 떨리지? 요즘 괜찮았는데......
주물러 드려도 두드려 드려도 다 싫대서 어쩌나 보려고 누웠다. 한참을 다리를 붙잡고 계신 작은 노모의 형상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한 30분쯤 지나니 누워 주무시는지 기척이 없다. 기척이 없으니 또 불안하다.
깰까봐 건드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숨소리가 쌕쌕 난다. 주무시는 것 같다. 그제서야 나도 안 오는 잠을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