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살살 아파서 잠에서 깬 날은 6월 일요일 새벽 2시경이었다. 나는 일본 정로환 세 알을 입에 털어 넣으며 전날 먹은 족발이 소화가 안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틀림없어. 남편이 족발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그래도 위생 상태가 가장 나을 것 같은 백화점 식품부에서 사 왔건만 역시 사다 먹는 게 별로였나 봐. 약을 먹고 두 시간이나 지났건만 계속 아팠다. 4시에 남편이 깨어 일어나더니 왜 그러고 있냐면서 물었을 때도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남편이 운동하러 나가고 나서 여섯 시 정도가 되자 배는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난 혼자라도 응급실에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추석 때 식중독으로 타 왔던 약이 생각나서 한 봉지를 먹었다. 그랬더니 진통이 가라앉았고, 9시까지 잠을 잔 것 같다. 난 앞 뒤 잴 것도 없이 장염일 거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장염 하고는 아픈 본새가 달랐다. 장염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통증이 몰려오는데, 이 날 아픈 것은 계속 뱃속을 휘젓는 듯했다.
남편이 들어와서 지금도 아프냐고 물었다. 조금 낫긴 한데, 지금도 아프네. 그렇게 말하고 아침을 차렸다. 남편은 밥을 주고 나는 숭늉을 만들어 먹었는데 들어가지 않아 숟갈을 놓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밥을 먹고 나자 조금 쉬었다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병원을 어디로 가야할가야 할 지도 고민스러웠다. 오목교에 하루도 쉬지 않는 의원이 있었지만 어쩐지 근처 대학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이때에 종합병원에 간다는 게 영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12시쯤 되어 병원에 도착한 것 같다. 응급실 앞에서 열을 재고 인터폰으로 몇 가지 상황을 설명하니 문을 열어주었다. 접수를 하고 난 응급실로 들어갔고 보호자는 따라 들어올 수 없다면서 남편은 대기실에 있으라고 했다. 응급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데 침대를 배정받기 전에 한쪽에 서 있는데 어떤 간호사가 방호복을 입는 것을 보자, 갑자기 코로나의 현장 속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확 느껴졌다. 하필 이런 때에 이렇게 위험한 곳에 오다니, 빨리 주사 맞고 약 먹고 나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서 있는데 간호사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그 방에는 여자 의사가 있다가 나를 침대에 눕히고 배를 여기저기 찔러보더니 맹장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할 수도 있다면서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엑스레이와 CT를 해야 한다고 했다. 네에? 맹장요? 난 뭘 잘못 먹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요. 의사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나를 다시 응급실로 밀어냈다. 내가 나오니 간호사가 저 침대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안내했다. 입구에서 세 번째 침상이 비어 있었다. 난 운동화를 벗고 올라가 누웠다. 수술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일이 커진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수액을 놓더니 지금부터 금식입니다. 물도 마시면 안 됩니다 하였다.
그런데 응급실이 엄청 춥다고 느껴졌다. 간호사한테 얘기하니 내 자리만 에어컨을 껐다고 하는데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젊은 남자 의사가 오더니 다시 배를 꾹꾹 눌러보며 진찰했는데 역시 맹장이 의심된다며 여자 의사와 같은 말을 했다.
환자 싣고 다니는 직원이 나를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며 엑스레이도 찍고 CT도 찍었다. 검사 결과는 두 시간 후에 나온다고 했다. 저녁때가 되자 결과가 나왔는데 역시 맹장염이라고 했다. 남자 의사 말이 맹장이 부어 있고 피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나오니 수술을 해야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먼저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이 나와야 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다. 목구멍과 콧속에 면봉을 집어넣어 채취하는 코로나 검사 결과는 내일 12시에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원 준비를 하라고 했다. 지금 당장은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니까 진통제를 주사했나 보다. 좀 우선했다.
그 사이 레지던시에 있던 작은딸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때까지 남편도 대기실에 있었나 보다. 그때서야 딸과 남편이 번갈아 들어왔다. 밤이 되자 추운 정도는 더 심해지고 아주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배가 무척 아팠다. 간호사더러 추우니 담요 한 장을 달라고 했지만 담요는 없다며 홑겹 시트를 한 장 더 주었다. 배는 아프고 춥고 어느새 응급실은 아수라장처럼 시끄럽고 복잡해졌다. 어떤 환자는 의사가 와 보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아픈 몸을 끌고 바닥을 쓸며 기어서 나오더니 문 앞에서 더 크게 욕을 해댔다. 가끔 병원에서 행패 부리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는 걸 보았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보게 될 줄이야. 공포감이 심해져서 빨리 좀 어떻게 했으면 했다. 간호사들이 대응을 하였지만 환자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그러자 남자 직원들이 휠체어를 갖고 와서 억지로 태우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간 딸과 남편에게 입원 준비물을 문자로 적어 보냈다. 거기에 얇은 이불도 가져오라고 했다. 딸이 준비물을 잘 챙겨 가지고 왔다. 집에서 가져온 이불을 덮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열이 38도였으니 열로 인한 한전이었던 것이다. 보호자가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으니 남편은 집으로 가고 딸이 남았다. 나는 배가 너무 아프니 약을 달라고 했지만 진통제를 자주 줄 수는 없다면서 10시까지는 참으라고 했다. 그 와중에 응급실 화장실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코로나 의심 환자가 다녀갔다는 것이다. 뒤숭숭하고 두려워졌다. 과연 병원에 있는 게 안전하기는 한 걸까. 이러다가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10시가 넘자 진통제를 맞아서 어느 정도 통증이 멎었다. 난 딸도 놀라고 멀리서 오느라 지쳐 보여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딸은 엄마 혼자 놓고 가기가 그런 얼굴을 하였지만 난 단호하게 괜찮으니 가라고 했다. 딸이 가고 나서 얼마 있다가 입원실이 나서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은 환자 침대가 두 개 놓인 좁은 방이었다. 얼마나 비좁은 지 주사대를 끌고 화장실에 가자면 걸리는 게 많아서 불편하기만 했는데 다행인 것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응급실에 비하면 산속처럼 조용했다. 난 병실로 올라와서야 정상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퇴원하고 싶어 졌다. 아프지도 않았고, 열도 37도에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말짱한 것 같았다. 남편이 출근길에 병실에 들렀다. 간호사가 11시까지 보호자 대기하라고 하였다. 남편은 급한 것만 처리하고 오겠다며 금방 갔다.
11시에 남편이 왔을 때, 간호사가 들어와 떼어낸 장기를 기증하겠냐고 물었고 연구용으로 쓴다길래 사인을 해주었다. 코로나 검사가 11시 30분에 문자로 음성이라고 온 걸 모르고 있다가 12시에 알았다. 수술은 언제 하겠다는 말은 없어서 남편에게 얼른 집에 가서 밥 먹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12시 40분에 곧 수술 들어갈 거라며 알려줬다. 그리고 수술 후에는 다른 입원실로 갈 거니까 짐 정리하라고 했다. 난 너무 급박해져서 남편에게 빨리 오라고 했더니 지금 금방 숟가락 놓았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10분은 걸릴 텐데..... 내 맘대로 시간을 늘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근데 짐이야 별 것 없으니 걱정이 없는데 휴대폰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얼른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다. 사실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다. 누가 내 휴대폰을 맡아줄 것인가. 나를 데리러 온 남자 직원에게 사정 얘기를 해서 수술 대기실에서 잠깐 남편을 기다릴 수 있었다. 남편이 제트기를 타고 왔는지 나타났다. 휴, 남편은 휴대폰을 받아 들고 잘해라고 말했다. 응 의사가 잘하겠지 나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사실 혈관이 안 좋은 나 같은 사람이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참 난감하다. 더군다나 일반 주사도 아니고 만약을 대비해 수혈이라도 하게 될 때에 쓸 주사 바늘은 더 커서 튼튼한 혈관이 아니라면 잘 터진다고 했다. 이미 팔은 혈관 찾느라 주사로 벌집이 되어 있는데 아까 베테랑 간호사가 와서 손 모서리에 큰 바늘을 찔러 넣는 데 성공했다. 나는 두 번에 찾아낸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데 그 간호사는 얻어걸린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혈관 찾는 간호사들도 등줄기에 땀이 난다고 했다.
누가 날 깨웠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옮겨졌다. 리모델링을 하여 넓고 깨끗한 병실로 4인실이었는데 모두 커튼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코로나 영향인가 싶었다. 남편은 의사가 보여준 맹장의 실태를 보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보다 맹장 크기가 크고 생각보다 염증이 심해서 많이 아팠을 거라고 했다고 했다. 수술은 복강경 수술이라서 1~2센티 정도 상처가 셋 있다고 했다. 이제 괜찮으니 회사에 가 봐요. 그랬더니 참 아까 큰애한테 전화 왔었어. 당신 얘기했더니 놀라더라고 하였다. 병원 안팎의 사정이 여러 사람 달려와 있을 수도 없어서 말 안 했더니 좀 섭섭해하더라고 했다. 저녁때 통화에서 오겠다는 걸 괜찮다고 했다가 다음날 오라고 했더니 좋아했다. 저도 회사 다니느라 힘들 걸 생각해서 오지 말라는 것인데 나의 배려가 또 넘친 것인가
간호사가 와서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배식이 안 된다고 했다.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리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운동이라야 병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수술 부위도 당기고 더군다나 발에 주사기를 꽂았기 때문이다.
병실동은 오늘 처음 연 것이라 병실 반은 비어 있었다. 나는 복도 끝에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서 멈추어 서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였다. 6단지가 보였고, 학원으로 들어찬 상가들이 보였다. 하늘엔 옅은 노을이 지고 있어서 그걸 보노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밤에 퇴근길에 들른 남편이 손 한 번 잡아주고 갔다. 밤이 되어 자려고 하였으나 왼쪽 옆구리가 너무 불편하여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말하니 진통제를 주었으나 별로 나아지지 않아 잠을 설치고 말았다. 비몽사몽하고 엎드려 있는데 새벽에 남편이 걸어서 왔다며 일찍 들렀다. 그때 가스가 나올랑 말랑하더니 남편이 가고 나서 조금 나왔다. 간호사에게 고지하고 아침 식사를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았다. 밥 먹는 소리,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정겹게 커튼 너머로 들려왔다. 밥 먹는 것 같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를 절감한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진 것을 경험하면서도 또 그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내 집에서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게 정말 은혜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하루 더 경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수술한 의사가 회진을 왔다가 수술 설명을 해주고 내일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떼어낸 맹장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내 몸의 일부였다가 이젠 결별한 장기였다. 생각보다 염증 심했고, 일부는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너도 많이 아팠겠다. 나도 아팠어. 헤어지는 것은 이렇게 모두 아픈가 보다.
수혈했나요라고 물으니 아뇨. 괜찮았어요 그런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점심에는 밥이 나왔는데 따뜻한 걸 좋아하는 나는 찬밥에 식은 국물을 먹을 수가 없다. 상추 겉절이가 나왔는데 밭에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남새들이 생각나기만 할 뿐 젓가락이 가질 않았다.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는 불만족으로 끝나고 배는 더 허전해졌다. 이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수액은 떼기로 했다.
저녁때 큰애가 온다더니 병원에 알아보니 보호자 증이 있어야 한대서 결국 퇴원 후에 집으로 오기로 했다. 작은애가 와서 손발을 주물러 주었다. 화가라서 인지 손끝이 야무져 무척 시원하다. 그 애가 다녀가고 난 남편에게 퇴근길에 병원 오지 말라고 했다. 좀 자고 싶으니 그냥 집으로 가요. 남편은 또 얼마나 피곤하랴. 남편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럼 그러겠다며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또 옆구리가 아파서 자지 못했다. 아침에 회진 온 의사에게 말하니 수술할 때 필요해서 몸에 가스를 넣었는데 그게 안 빠져서 아픈 것이니 자꾸 움직여서 빨리 배출시키라고 하였다. 새벽에 피검사를 끝으로 발에 부착해 놓은 주사 바늘을 뺐다. 손발이 고생 많았다. 여기저기 멍 자국이 한바탕 전투를 치른 병사처럼 보인다. 남편에게 내 차를 갖다 놓으라고 부탁했더니 새벽에 주차장에 넣어 놓았다고 했다.
피 검사 결과가 오전 8시에 나왔는데 염증 수치가 아직 있지만 처방약 잘 먹으면 될 것 같다며 오늘 나가라고 했다. 작은애가 와서 퇴원 수속을 하고 짐을 쌌다.
작은애가 병원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길래 의자에 앉았는데 에어컨 바람이 싫어 테라스로 나왔을 때, 휘청했다. 아차, 괜히 차를 갖다 달라고 했나. 택시 타고 갈걸. 이건 아닌 것 같군. 그래도 이제 와서 차를 끌고 가야지 놓고 갈 순 없어 차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주위에 긴장감이 돌며 의심 환자가 119로 들어오고 있다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주차장 모퉁이로 가서 차를 돌려 나오는데 119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내려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또다시 얼음처럼 긴장되었다. 나는 조금 기다려서 창문을 모두 닫고 쌩하니 119차 옆을 지나 병원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잠시 환자였던 걸 잊어버리고 평상시처럼 운전해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냥 살 것 같다. 능골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신선하고 부드러운지 아픈 것도 다 잊어버릴 것 같다. 3박 4일 동안의 맹장과 헤어지기는 여러 가지 북새통 속에서 이렇게 끝이 났다. 그날 저녁에 옆구리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나는 잠에 취해 꿀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