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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루떡 이야기
    사노라면 2020. 3. 13. 10:43

      씨 뿌렸던 것들의 알곡을 거두어들인 늦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평온하였다. 초가지붕은 새 이엉으로 단장을 하고, 부모님은 일 년의 수고로움을 회상하면서 감사를 드리는 행사를 한다. 바로 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내는 일이다.

      어머니는 좋은 팥만을 골라 삶아내고, 아버지는 지게에 찹쌀을 얹고 읍내 방앗간에 다녀오신다. 우리는 집안에 감도는 축제 분위기에 벌써 마음이 들떴다. 어머니는 시루를 꺼내 깨끗이 닦으시고 우리에게 일 년 전과 똑같은 당부를 하셨다.

    너희들, 이 시루떡은 천지신명께 드리는 제물이니까, 정성이 모자라면 큰일 난단다. 그러니 부정한 마음을 갖지 말고 기다려. 특히 오줌을 누고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되니까 명심해. 알았지?”

      그때는 오줌을 누고 부엌에 들어오면 떡이 선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것을 어머니는 굳게 믿으셨던 것이다.

      시루 맨 바닥에는 있는 숨구멍에는 원형으로 썰어놓은 무를 깔고, 팥고물 한 켜, 쌀 한 켜, 번갈아가며 시루를 채운다음, 시루와 딱 맞는 솥에 시루를 얹어 놓는다. 그리고는 이라고 부르는 밀가루 반죽을 하여 솥과 시루 사이의 틈을 메꾸었다. 김이 새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불을 때는 어머니의 몸가짐은 정갈하고 성스러워 보였다.

      언제나 떡이 익을까 호기심에 가득 찬 나는 부엌을 기웃대며 왔다 갔다 하다 아까 오줌을 누고 온 생각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나 때문에 떡이 잘못 될까봐 방으로 뛰어 들어와 웅크리고 있자 언니가 물었다.

    왜 부엌에 나가 있지 그러고 있니? 떡순이가.”

      유난히 떡을 좋아하는 나에게 떡순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도 언니였다. 나는 처음에는 오줌 누고 부엌에 들어갔다는 죄상을 고백도 못하다가 나중에 개미만한 소리로 실토를 하였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이제 어떻게 하냐?”

      언니는 무언가 감추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뭇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떡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고 설렜지만 이제 혼날 일만 남은 나에게 그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마음이 떨리니 더욱 춥게만 느껴지다가 떡이 쪄지면서 점차 뜨뜻해지는 방바닥에 미끄러져 한참을 자게 되었나보다. 어지러운 꿈을 꾸며 시달리다가 일어나보니 밖은 벌써 밤이 되어 어두컴컴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줌 눈 내가 떡 찌는 부엌에 들어갔다가 놀라서 자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부정을 타서 떡이 안 되어 큰일이 일어났으면 어떡하지. 난 부엌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이럴 때 언니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책상에서 공부하던 언니도 없다.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언니가 다녀왔습니다.”하고 들어왔다. 난 언니가 방으로 들어오길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언니하고 불렀다.

    넌 아직도 자는 거야?”

    , 지금 일어났어. 떡은?”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떡 잘 안 돼서 다시 하신단다. 니가 오줌 싸고 들어가서.”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나도 모르게 으앙하고 울어버렸다. 내 울음소리가 워낙 크게 들렸는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왜 우냐고 물었다.

    쟤가 오줌 싸고 들어가서 떡이 설었다고 했더니.....”

    당황한 언니의 말에 어머니는 웃으시며 다가왔다.

    에휴, 언니가 장난을 쳤구만. 떡보가 떡을 안 먹고 자고 있어서 몰랐구나. 떡 맛있게 되었으니, 걱정 말아라. 제사도 잘 지내고 언니가 작은댁에까지 떡 갖다 주고 왔잖아. 이제 일어나 먹어라.”

      다행 중 다행이었다. 천지신명도 가끔은 졸기도 하시나 보네. 딴청도 쓰시나 보네. 난 떡을 먹으며 그래도 다시는 고사떡 찌는 곳에 얼씬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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