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영화) 두 개의 사랑과 네 명의 운명, <와호장룡>을 보고
    읽고 보고 그리고..... 2021. 2. 17. 16:40

    이안, 2001(이 글은 영화헤살꾼이 될 수 있습니다.)

    와호장룡을 세 번이나 연거푸 봤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사랑과 네 명의 운명이 가로세로로 얽힌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바이와 수련의 사랑은 오래도록 숙성시킨 사랑같이 보인다. 몇십 년을 바라만 보며 기다린 연인들, 그들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법이다. 그들은 고요한 밤 같은 성정을 지녔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속성을 참아왔고, 무예를 익히면서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그에 비해 소룡의 사랑은 불 같다. 금방 뜨거워지지만 또 돌아서면 쉽게 식어버리고 잊을 수 있는 사랑 같다. 소룡은 한낱 도적인 소호가 품을만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소룡은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었으며, 아직 키우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숨어 있는 용이었다.  

    무당파의 여협 수련은 경비업체인 가업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북경에 가야할 일이 생겼을 때, 산에서 수련 중이던 무바이가 찾아온다. 그가 왔다는 하인의 전갈을 들은 수련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반가운 빛이 가득하다. 그는 수련의 동지이며 연인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둘의 얼굴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무덤덤한 표정이다.

    무바이는 무당파에서 파계를 하고 출관하여, 이제 검객으로 쓸 일이 없어진 청명보검을 북경에 있는 철대인에게 맡기려고 수련을 찾아왔다고 한다. 무당파의 후계인 사형이 검계를 떠나겠다는 말에 수련은 놀라 만류하며 이유를 묻는다.

    “묵상 수련 중에 알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갔어. 그곳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곳이었으며, 그곳에서 슬픔을 느껴 허무했어. 그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파계를 결심하고 가슴에서 떨쳐낼 수 없는 일을 생각했어.”

    도를 깨치고자 수련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희구하는 시공의 경계가 없는 곳은 곧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이상의 경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 도달한 무바이는 득도의 환희를 느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을 느꼈다며 허무했다고 했다. 이 말은 오욕칠정이 없는 세계는 인간다움 또한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욕망을 억누르고 버리는 게 도를 향한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하고자 함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능력만 있어도 인간세계에서의 도는 이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면벽과 묵언 등의 수행과 검객으로 피나는 수련을 하며 자신을 찾기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이것 또한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간직한 채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한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산을 내려온 것이다. 이제 고백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우쳤고 또 실행할 때가 되었다. 그 한마디, 가슴에서 떨쳐낼 수 없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수련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무바이가 말을 꺼냈을 때, 마침 하인이 나타나 말을 거는 바람에 하고픈 말을 또 하지 못하고 삼키게 되었다. 고백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무바이는 스승을 죽인 파란여우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 게 한이 되어 스승의 묘소를 찾아뵙고 용서를 빌겠다며 칼을 맡기고 떠났다.

    젊었을 때 수련에게는 약혼자 맹사조가 있었다. 그도 무당파의 제자였는데, 무바이를 구하다가 죽는 일이 생겼다. 그 후 수련과 무바이는 서로 마음이 끌렸는데 두 사람은 맹사조에 대한 의리와 우정으로 표현을 못하고 중년이 되었다. 사랑하는 감정은 어떻게라도 서로에게 전달되었는데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이라 이제나 저제나 진전이 없다. 이제 사랑의 다리라도 놓여지는 것일까. 둘의 마음을 일찌감치 눈치 챈 철대인은 이제 무바이가 수련에게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하며 둘을 응원한다. 철대인의 집에서 수련은 소룡을 우연히 만나는데, 소룡을 보면 보검을 보기 위해 수련을 기다린 듯하다. 귀족의 딸인 소룡은 수련을 만나자마자 수련의 강호 생활을 동경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을 선망한다. 소룡은 수련을 언니라 부르며 친하게 대하지만 청명검을 훔쳐 가는 만행을 저지른다. 수련은 소룡을 뒤쫒다가 그의 검법이 사부를 죽게 만든 파란여우의 검법과 닮았음을 알게 된다. 벽을 타고 다니고, 지붕을 넘나들며, 공간을 가로지르는 능력까지 두 여인의 무예는 막상막하로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허점이 소룡에게 있었으니 수련이 갖고 있는 인간애가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철대인의 연락에 늦게 결투에 합류한 무바이도 소룡의 무예가 출중함을 느껴 무당파의 제자로 삼아 무당심결의 정수를 가르쳐주고자 한다. 파계의 결심을 흔들만큼 소룡의 무예는 뛰어났다.

    소룡의 유모인 파란여우 고사낭은 무당파 스승을 죽이고 무당파의 비법인 무당심결을 훔쳐 달아났지만 글을 모르는 까닭에 제대로 된 검법을 익히지 못한다. 더구나 검을 쓸 때는 사람을 살리는 검을 써야 한다는 무당심결의 가장 중요한 비법을 알지 못해 악을 행하는 검법을 쓰고 있다. 그런 엉터리 검법을 소룡에게 가르쳤지만 소룡의 무예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소룡이 본인의 실력을 고사낭에게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고사낭은 그런 소룡에게 자기를 속인 것이라며 속마음으로 섭섭해 한다. 그러다가 무바이와 소룡의 결투에서 소룡이 검술이 뛰어남을 알게 되어, 소룡과 함께 강호를 접수하려는 꿈을 꾸며 소룡을 회유한다.

    소룡이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하는 날, 티베트에서 만났던 연인 소호가 찾아와 혼란을 만들고 소룡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무바이와 수련은 소호에게 이런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일이 아니라며 소호더러 무당산으로 가서 소룡을 기다리라고 한다.

    무바이는 주먹을 꽉 쥐면 아무 것도 없지만, 손을 펴면 그 안에 모든 게 있다라는 스승의 말을 인용하면서 수련에게 더 이상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음을 고백한다. 사매와 영원히 같이 있고 싶다고하며 차를 권하는 수련의 손을 잡는다. 이 손을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쳐 왔는가. 무림의 고수가 되어 강호를 제패하고 득도를 하여 완성된 구도의 길을 간다하더라도 그 길이 한 여자의 지아비가 되어 가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만 못할 것 같았던 남자, 이제 그들의 사랑이 실현되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까.

    자신이 무바이와의 결투에서 그를 이겼노라고 큰소리를 치며 거리를 떠돌던 소룡은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러 온통 난장판을 만들며 돌아다니다가 수련에게 찾아온다. 검을 원래의 자리에 반납하고 북경으로 돌아가라는 수련의 말에 소룡은 화를 내며 달아난다. 결국 수련의 안마당에서 결투가 벌어지는데 수련의 칼끝이 소룡의 목덜미를 향했으나 수련은 그녀를 해하지 않는다. 이 틈을 타서 소룡은 수련의 팔을 베어버린다. 호의를 베푼 상대에게 상처를 내는 행위는 검객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때 무바이가 나타나 소룡을 나무라자 소룡이 대숲으로 도망치고 푸른 대숲에서 흰옷을 입은 무바이와 소룡의 결전이 벌어진다. 그들은 춤을 추는 두 마리의 학처럼, 포효하며 달려드는 맹수처럼,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지만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벨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저 상대를 향한 탐색과 유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게임을 하는 것 같다.

    폭포 근처 바위 위에서 무바이에게 칼을 빼앗긴 소룡은 칼을 찾으러 심연으로 뛰어들고, 이를 파란여우가 와서 구해 달아난다. 파란여우는 기절한 소룡을 치료하지만 소룡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미향을 피워 소룡을 중독시킨다. 파란여우가 잠시 나간 사이 무바이가 소룡을 중독에서 풀어주고, 파란여우의 뒤를 밟은 수련이 나타난다. 다시 파란여우가 나타나 독화살을 뿜어 공격하자, 무바이가 많은 화살을 막아냈지만 한 개의 독화살이 무바이의 목에 꽂힌다. 무바이의 칼을 맞은 파란여우도 죽어가고 있다. 파란여우는 소룡이 자신을 속인 것을 비탄하며 가장 독한 독은 소녀의 마음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파란여우는 소룡을 자신의 후계로 삼아 강호를 지배하고 싶었던 욕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죽게 되자 비탄에 빠져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정신을 차린 소룡이 무바이를 위해 해독제를 찾으러 나간 사이에 무바이는 그동안 말 못한 사랑을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모아 수련에게 고백하고 일생을 허비했다고 한다. 수련은 그런 남자를 끌어안고 마지막 힘으로 명상하여 세상에서 자유로워져서 경지에 오르라고 한다. 역시 여협 수련다운 배려이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린 고백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수련의 팔자는 어찌 이리도 가혹한 것일까. 수련은 문무를 겸비한 수려한 자태에 얼굴에는 기품이 흐르고 마음 또한 자상하며 아랫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약혼자도 결혼도 하기 전에 죽고, 약혼자의 굴레에서 벗어난 중년의 나이에 동반자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줄 알았는데,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의 고백을 듣게 되다니, 그럼에도 수련은 여협답게 당당하다. 무바이가 죽고 소룡이 나타난다. 수련은 청명검을 소룡의 목에 대고 위협하는 듯하다가 무당산의 소호를 찾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자신에게 진실하라고 한다. 참된 검객 수련의 모습이다.

    무당산으로 가서 소호와 만났으나 소룡은 기쁘지 않다. 하룻밤을 지낸 후 소룡은 구름 가득한 산중으로 홀연히 몸을 던져 날아간다. 소룡에게 소호는 자신의 인생을 걸 만큼 만족스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을까.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희구했던 소룡은 무바이를 따라 영원한 강호 세계의 후계자가 되었을까. 구름 속으로 사라지던 소룡의 펄럭이는 치맛자락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루어지지 않는 욕망이 보여지는 듯했다.

    형태가 다른 두 가지의 사랑을 두고 무엇이 좋다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저 인생은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죽을 때가 되어 널 사랑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완성된 사랑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죽음으로 헤어지면서 네가 간절히 원하면 원하는 것은 이루어 질 거야라며 떠나는 것도 이해하고 용납하기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무구한 자연의 속성으로 보면 순간을 사는 것이 인간이련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로 가득한 인생을 오늘도 살아간다. 내게 주어진 숙제를 아직도 다 알지 못한 채...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