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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한 주말 2022. 10. 08 토요일 맑음
    사노라면 2022. 10. 8. 18:07

    오늘은 하루 종일 우울하다.

    남편이 출근하는 날은 도시락을 싸느라 06시에 일어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늦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8시 30분쯤 일어났는데 꿈이 생각났다. 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나타나 놀라는 내용이다. 내가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어서 못 가 뵈어서 꿈에 나타난 것일까. 나는 잠시 죄책감 비슷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밭에 언제 갈까하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못 간다고 했다. 이유는 벌써부터 약속된 술자리가 저녁에 있는데 다른 친구 모친상을 당했다는 문자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자리하고는 정 반대인 한대병원에 가야해서 바쁘다고 했다. 술은 인천에서 마셔야 하는데 체면치레는 한대로 가야하니 차를 갖고 이동하겠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둘 중에 하나만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했다. 벌써 술로 인해서 119도 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무슨 운전이냐고 했더니 문상 가서 술을 안 마시겠다는 거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하루도 못 참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짐덩어리 차를 갖고 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난 여러 말로 얘기를 했지만 두 시에 차를 갖고 나가겠다고 했다. 난 이럴 때 남편이 싫다. 

    전에 시골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내가 말렸지만 기어이 가더니 다쳐서 입원해 있는 것을 모셔오기도 했다. 119 탔을 때도 예식장에 갔다가 오랜만에  친구 만났다고 3차까지 돌아다니더니 방향을 못 찾아 엉뚱한 데서 쓰러져서 행인의 신고로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난 거실로 나와서 생각했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고. 이젠 더 놀라고 속상해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정말 차를 갖고 여기 저기로 돌아다니면 이혼이라도 할 마음이었다. 더는 마음 졸이며 살고 싶지 않다. 이혼하고 시골가서 정말 혼자 살 거다. 아이들도 이젠 내가 돌봐주지 않아도 되니까. 모든 것 다 버리고 모든 인연 다 끊고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가서 담배를 피고 돌아와 씻는 소리가 들렸다. 힐끔 안방을 들여다보니 누워 있었다. 아니 왜 두 시가 넘었는데 왜 안 가지. 나는 그의 동태를 살피기도 싫어서 베란다에서 오래되었지만 사용은 별로 안한 튀김기를 닦는 일을 했다. 저걸 산 지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가족들 좋은 기름으로 치킨과 야채 튀김 등을 해주고 싶어 비싸게 주고 샀건만 처음에 몇 번 쓰다가 잊어버리고 있던 튀김기다. 묵은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다행히도 좋은 브랜드라 그런지 기름때가 잘 닦이고, 새 것 같이 된다. 조금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이 보낸 카톡 소리가 들렸다. 부조금 입금해달라고 하는 문자라는 걸 안다. 그럼 그렇지. 코로나가 바꿔 놓은 게 많지만 경조사 찾아다니는 것이 축의금 입금으로 간소화 되어 나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신세를 졌길래 꼭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평소 어머니 어머니하는 관계였나. 그러다 왜 또 마음이 바뀌었지. 컴퓨터로 계좌 이체를 하고 있는데

    나 무슨 옷 입어? 그러는 남편. 거기 꺼내 놨는데.. 하면서 들어가보니 매일 입는 티를 안 갈아 입고 그 위에다 잠바를 입으려고 한다. 나는 그 옷을 벗게 하고 지난주에 사다놓은 밀레 티를 입혔다. 친구라도 만날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가야지. 내가 안 챙겨주면 거지 같이 하고 다닐 사람이다. 그는 친구에게 전철 어디서 내리느냐고 통화한다.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그는 갔다. 

    내가 말한 대로 하고 갔지만 내 마음은 계속 우울하다. 남편이 고집을 부릴 때부터 속이 답답하더니 자꾸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점심도 못 먹고 결국 소화제를 먹었다. 모든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 처음부터 내 말을 듣고 그러겠다고 했으면 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나를 괴롭히려는 것인가. 

    그가 나간 뒤에도 컨디션이 영 안 좋다. 그리고 내가 바보같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왜 이렇게 상처를 받으면서 집착하는 것일까.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을.. 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다고 이렇게 연연하는 것인가. 아무 것도 없는데. 빈 주먹을 왜 이다지도 지키려는 것일까....

    결국 저녁때 배가 고팠지만 밥맛이 없어 찬밥으로 때웠다. 누구라도 있으면 더운밥해서 먹일 텐데, 나한테는 왜 이리 성의가 없을까. 이도저도 다 귀찮다. 날은 어둡고 찬 바람 분다. 난 색종이와 가위 풀 등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접기를 했다. 아이들 수업 지도에 쓸 교구를 만들다 보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딸이 들어오더니, 내 속을 알아차리고 "엄마, 마음 식히느라 애썼네," 그런다. 그러게. 나뭇잎이 물이 들고 떨어지려나 보다. 가슴으로 바람이 들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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