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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젤 맛있었던 개똥참외
    사노라면 2024. 2. 10. 12:22

    우리 어머니는 아이가 자라서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숟가락을 사 주었다. 각기 다른 모양이나 무늬가 있어 확실히 구별이 되는 아이용 수저였다. 그래서 우리는 꼭 자기 수저로만 밥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자랐다. 그러다 중학교 들어가면 어른용 수저로 바꾸어 주셨다. 그때도 서로 다른 수저를 사와서 헷갈리지 않게 하셨다. 어른용 수저로 바꿔 주는 것은 일테면 어머니가 부여하는 성인식이었던 셈이다.

    언니가 6학년이고 내가 3학년이던 어느 날, 언니 도시락 주머니에 내 수저가 들어간 것을 알고 내가 언니에게 화를 내다가 싸우게 되었다. 사실은 갓 시집 온 새언니가 구별을 잘 못하여 내 수저를 언니에게 주었던 것인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언니한테 왜 남의 수저를 갖고 다니냐며 따지니까 언니가 “이 메주 덩어리가”라면서 나를 때리려고 하였다. 내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못 생겼다고 해서 지어 놓은 별명이 메주였다. 그때 어머니가 보시고 언니를 혼내셨다. 언니는 왜 자기만 갖고 그러느냐고 억울하다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학교가 파할 때쯤 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 가려고 신발장에 가 보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내 신발이 없었다. 그때는 남자아이들이 관심 있는 여자아이 신발을 감추는 일이 가끔 있을 때였다. 나는 어떻게 집에 가야할지 몰라 동동거리고 있었다. 모두 집에 가고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언니가 나타났다.

    내가 우산 없는 줄을 알고 나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언니가 나타나서 조금은 안심이 되어 언니랑 같이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신발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언니는 등을 내밀고 우산은 나에게 들라고 하고 업히라고 했다. 내가 동생이긴 했지만 몸무게도 비슷한데 어떻게 업고 가려는 것인지 나도 난감하기만 했다. 신발이 없으니 발을 다칠까봐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이기는 하지만 2키로가 넘는 집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어쨌든 언니는 나를 업고 그렇게 교문 밖으로 나왔다. 이미 벌써 언니는 지치는지 손에 힘이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손으로는 언니를 잡아야하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어야 하니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나는
    “언니, 괜찮아?” 하고 묻고, 언니는 “끙”인지 “응”인지 모르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몇 발자국 더 가서 또 “언니, 괜찮아?”하고 물으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언니 이마에는 땀인지 빗물인지 연신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러더니 결국 나를 내려놓은 언니는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나에게 신겼다.

    “너 발 다치면 안 되니까.”

    “그럼 언니 너는?”

    “나는 조심해서 걸을 수 있어.”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

    조금 더 가니 한내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어서 다리 아래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나는 언니 등짝에 붙어 있는 동안 어제 언니가 엄마한테 혼난 일이 생각나서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언니, 어제는 미안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대들어서.”

    내가 말을 더듬거리며 언니한테 사과를 하자

    “그렇지? 네가 너무 성급한 건 알고 있니? 나도 미안해. 네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을 불러서. 이젠 나도 그 이름은 안 부를게.”
    언니도 사과를 하려니 쑥스러운 모양이다.

    “야야. 가만 있어봐. 여기 개똥참외가 있다.”

    언니는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수풀 속을 헤치다가 노랗게 익은 참외를 따서는 개울물에 씻어 가지고 올라왔다.

    “너 먼저 먹어.”

    “아냐. 언니 먼저 먹어.”

    “웬 일로 언니한테 양보하는 거니? 같이 먹자.”

    아직도 비가 죽죽 내리는 다리 밑에서 언니와 나는 개똥참외를 나눠 먹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참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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