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둥이네 다녀온 뒤로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지 하지하며 찾았다는 하둥이. 진짜 마주치니 뒤로 슬그머니 빼기는 했지만 금방 친해졌다. 할아버지 전공대로 블럭으로 에펠탑을 쌓기도 하고 기차도 만들어주니 은이가 특히 좋아했다. 그리고는 "칙칙폭폭"이라고 했다. 그새 발음이 더 정확해지고 표현이 많아진 것 같았다. 색깔을 정확히 말로 구분했다. 은이가 조금 늦었나 싶었는데 정상 범위라고 해서 다행이다.
아기들의 배변 훈련에 도움이 될까해서 <누구 똥>이라는 책을 사갖고 갔는데 읽어주려니 두 녀석이 내 앞에 가지런히 앉는다. 책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똥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아기가 변기에 앉아서 똥을 누고 있는 그림책이다. 이런 간접 경험을 통하여 기저귀를 떼고 화장실에서 배변하는 것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주고, 똥마술도 보여주었다. 아기들은 똥, 방귀 이런 단어에 흥미있어하고 꺄르르 웃었다.
놀이터로 나갈 때 엘리베이터 앞 창문으로 공사장에서 일하는 굴삭기가 보였다. 진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 놀이터는 아직 찬기운이 남아있어 조금 추웠다. 그래서 계속 씽씽이를 타고 달리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사방에 녹음방초 어우러진 봄이다. 하둥은 꽃을 찾아다니는 데 민들레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나는 은이 옷이 노란색이라서 민들레하고 똑같은 색깔이네 하며 알려주었다. 라일락 향기가 좋아서 옆에 있던 랑이에게 이 꽃 냄새 맡아봐 하며 흰 라일락을 대주니, 랑이 하는 말 "아냐. 보라색" 그랬다. 난 깜짝 놀랐다. "엉? 랑이 보라색 좋아해?"하고 보라색 꽃을 대주니 눈을 스르르 감고 향기를 맡는 녀석이라니... "냄새 좋아?"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자기 표현이 확실하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랑이가 솔방울과 낙엽을 줍더니, 솔방울을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들어갔다. 밥 먹을 때도 솔방울을 만지작거리며 좋아했다. 밥 먹고 놀다가 자러 들어갔다. 낮잠은 특별히 제 엄마 방에서 잔다나. 내가 따라 들어갔더니 랑이가 할머니는 나가라고 손짓한다. 우리 엄마가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아기 볼래? 밭 맬래?하면 아기 안 본다고. ㅋㅋㅋ 하둥이 자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랑이가 깨서 솔방울 찾느라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나한테 봤냐고 물어서 버리지는 않은 것 같으니 천천히 찾아보라고 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딸이 우리 놀이터에 가서 다시 주워오자고 했더니 아니라고 싫다고 내 것 찾아야 한다고 했다나. 그래서 결국 랑이 텐트 안에서 찾았다고 한다. 지가 주워온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고 이쁘다.
은이는 밥 먹고 이를 씻다가 변기에서 쉬를 해보라고 하니, 정말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변기에서 했다. 아까 봤던 책을 벌써 흡수한 것일까. 그렇다면 학습 능력이 배우 좋은 은이다. 좋은 것만 보여줘야겠다. 점심을 먹을 때는 할아버지가 사 온 도다리를 익혀 주었더니 두 아기 모두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