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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신도 버린 사람들을 읽고
    읽고 보고 그리고..... 2008. 9. 23. 12:11

     껍질을 깨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나렌드라 자다브        강수정역                           김영사

     

    전에 성자가 된 청소부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적이 생각났다.

    불가촉천민이었던 청소부는 자기의 본분을 천직으로 성실한 삶을 살아 나중에는 성자가 된다는

    이야기 외 더 몇 편이 있었다. 모두 운명에 순응하며 더 낮은 자세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삶 속에 성자의 길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겸손과 절제, 그리고 고행 끝에 해탈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잘되지 않거나 모든 게 욕심이다 싶을 때 그  책을 다시 읽어보곤 하여 헝클어진 마음을 추스르곤 하였다. 참음으로 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행복할 것도 불행할 것도 없는 해탈의 경지에 성자는 있었지만 인간다운 인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게 무엇인가? 이 책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한 투쟁의 기록사였다.

    신도 버린 사람들은 성자가 되고자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도 아래에서 억눌려 살아왔던 하급민중들의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그들의 탈출구는 교육이었고 앞에서 이끌어주는 지도자였다. 첫 장에 제시되는 아들을 입학시키는 아버지 다무의 처절한 몸부림은 교육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아내 소누에게도 자의식을 일깨워주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있는 모습은 참 부러웠다. 충분한 대화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부부간의 삶, 갈등은커녕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시어머니와 순종하는 며느리 관계, 이웃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좋은 인간성 등 많은 면에서 지은이의 부모가 자녀들을 잘 기를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들을 읽으며 없는 게 죄가 아니고 희망을 버리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나도 언젠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미운 오리 새끼야. 내 안에는 백조가 있어. 원래는 나는 백조니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무가 자기안에 있는 백조를 꺼내라고 한 말에서 먼저 깨우치고 자녀들의 삶을 향상시키려 했음이 어떤 말보다 큰 의미로 다가옴을 느꼈다. 나는 지금도 내 안의 백조를 꺼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대끼며 살아온 나날 속에서 오리도 백조도 아닌 정체성 없는 무엇인가? 나는 잠시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소누가 강한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다무가 불교로 개종하려하자 소누가 그것만은 안된다며 한 말 -이렇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라고 당신이 가르쳐 주었잖아요. -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마 다무도 담모퉁이를 돌아가며 웃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남편 앞에서 큰소리치는 연습을 해야 다른 곳에서도 큰소리를 칠 용기가 생기겠지. 아닌가?

    이 소설의 형식은 2인 화자법을 쓰고 있어서 서로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가감없이 직접적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 가며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고 있어 자칫 한 쪽으로 쏠릴 수 있는 시각을 분산 시킬 수 있어 좋았다. 이러한 형식은 다무가 소누를 배려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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