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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읽고 보고 그리고..... 2008. 10. 20. 08:52

        비극적인 운명을 사랑으로 마무리한 태양의 여인

     

     

    평소 나의 성격은 느긋한 면이 좀 더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급하다. 천 개의 태양이 아니라 단 한 줄의 빛이라도

    마리암을 비춰주길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가 죽을 때까지 여명조차 보이질 않았다.

    나의 인내력은 강하다.

    비바람 천둥 번개에 거칠고 모진 그녀의 가시밭길 따라 걸으며

    할퀴어진 내 상처에 피가 흐른다. 그래도 함께 간다, 답답함에 숨통 막혀가며.

     

    누구에게서 어떤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운명이라 부르는가?

    한 번 부여받은 운명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기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건가?

    사생아이기에 여자이기에 스스로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지 못한 현실은

    우리의 역사에서 익히 많이 들어왔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지배적인 인류역사상에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은 뉴밀레니엄으로 세계가 떠들썩하던 그때 무렵이다.

    기아, 난민등 어두운 이미지로 남아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작금의 이야기라는 게 또한 비관적이다.

    우리가 개인의 행복추구에 몰입해 있는 동안 지구 저 편에서 행해졌던 인권부재, 여성학대등

    남성우월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시대적 배경과 문화까지 픽션은 아니니까.

     

    소설을 읽다보니 뉴스에서 보도했던 석불파괴에 관한 장면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아쉬움이 되살아나고 문화유산을 흥정거리로 내세웠던 탈레반이나

    모른 체 했던 세상인심에 대해 분개하는 마음이 들었다. 힘의 논리로 지배당하기는

    개인이나 국가 간이나 별 다른 게 없어 보인다.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 보게 되있으니 말이다.

     

    철저한 여성 봉쇄 사회인 아프간의 여성으로 태어나 행복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살았던

    마리암에게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해 준 것이 또한 여성 라일라였으니

    그것은 같은 여성이 겪는 고통을 통해서였다. 그들이 마당에서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이

    이 소설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마음을 전하는 것의 시작은 어려웠으나

    진심을 느끼고 나면 너무도 쉽게 일치될 수 있음을 이심전심, 동병상련이라 하지 않던가?

     

    마리암이 죽고 나서 비로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라일라와 그의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인의 꿈이기도 하다.

    그 밝고 따뜻한 태양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을 비추고

    라일라와 타리크에게도 진정한 삶을 선물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싶었던 삶, 그것은 그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내어준 마리암의 생애였다.

    요즘도 어두운 소식만 들리는 아프간에 자유와 평화의 태양이 떠오르길 바라는

    마음이다.                                             

                                                                                                     20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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