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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 양평 산음 휴양림
    휴양림을 찾아서 2017. 9. 5. 14:11

    제이가 어딜 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애가 귀국하고 나서 여행 한번 안 했으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애는 유럽과 미국을 수시로 드나들고 사니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여행을 자주 하는 애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제이는 여행이 아니라 학업 때문이었고, 전시 때문에 뉴욕에도 몇 번 간 것이기에 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부에 시달리고 전시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 쌓였어도 한번도 힘들다고 투정 안 하는 그애가 대견하다. 올해도 5월 초에 전시 오픈하고 강사로 나가는 중이라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갈래?"하고 물었더니 금방 검색해서 산음휴양림 예약을 하였다. 마침 오늘 빈 방이 있어서 가능했다. 일단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얏호!!! 일상을 떠난다는 것 때문에 에너지가 생긴다. 평소 같으면 꽉 막힌 88도로도 오늘은 모세의 기적처럼 쫙 갈라져 우리의 통행을 원활하게 도와준다. 금방 양평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속도를 내다보니 벌써 용문도 지나 단월로 접어든다.

    밥은 먹고 가야지하며 제이가 검색하니 산속에 음식점이 있단다. 그곳을 찾아 고고씽하였다. 가다보니 청평에서 청운면 갈 때 가던 국도가 나왔다. 국도에서 비포장도로로 조금 들어가니 숯가마가 나오고 그곳이 음식점이다. 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어슬렁 걷고 있고 아줌마들은 아예 마루에 벌러덩 누워 있다. 숯이 나오면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모양이다. 배고파서인지 고등어자반이 맛있었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가서 마을을 지나 깊은 산속에 있는 휴양림에 다다랐다.

    방에서 짐 풀고 쉬다가 주변을 걷기로 하였다. 산책길이 있어서 들어가보니 개울도 있다. 월요일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개울에서 물장난하며 놀았다. 연리지도 보고 야생화도 보았다. 이런 숲속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아무 것도 없어도 자연속에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숨을 쉴 수 있고,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을.. 그애도 이런 걸 좋아하니 수다를 떨 필요도 없고 휴대폰을 들여다볼 일도 없다. 이 시간을 즐긴다는 것은 그냥 이 시간 속에 머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그애도 알고 나도 안다.

    저녁은 제이가 간단히 차렸다.

      "맘은 아무 것도 하지마슈. 운전하셨으니 밥은 내가 책임질게유."

     정말 무엇을 잘 아는 딸이다.

    산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잤나보다. 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두드린다. 제이가 자고 있길래 혼자 나와 숲속을 걸었다. 숨어있듯이 자작나무 숲이 있었다. 미끈하게 잘 생긴 몸체와 점박이 무늬가 특징인 자작나무는 시인 백석의 시에 잘 나오는 소재이다. 그래서 더 멋있게 보이는 것일까? 갑자기 젊은 백석이 옆에 서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보고 싶어졌다. 일본 유학생으로 영문학을 전공한 그의 시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의 풍속과 고향의 냄새로 가득했다. 먹는 것보다는 입는 것에 멋을 낼 줄 알았던 그 시대의 모던보이. 그러나 그의 문학에는 먹는 냄새로 침을 삼키게 했고, 고향의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람이란걸 알게 하였다. 나는 한참이나 백석에 빠져 있다가 들어왔다.

     "엄마, 뭐하고 왔어?"

     "데이트, 아주 멋진 사람과....."

    마침 양평 장날이라 장에 들러 구경을 하고 파 모종과 미나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제이도 나도 번개외박을 한  셈이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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