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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 변산 자연 휴양림
    휴양림을 찾아서 2017. 9. 22. 18:09

    늦은 휴가를 떠난다. 남편은 길 밀린다며 아침 7시에 출발하자고 한다. 나는 수요일인데 뭐 그리 급해서 출근시간을 택하느냐며 밥이나 먹고 가자고 했다. 말이 오락가락하다가 교통 상황 보고 하자고 절충해서 국에 밥 한술 뜨고 9시쯤 서해안을 향해 출발했다.

    차는 서부간선에서 조금 막히고 그런대로 쌩쌩 달린다. 두어 시간 지나니 갈숲마을에 도착했다. 신성리 갈대밭 가는 길가에 코스모스가 많다. 70~80년대에는 길가에는 거의 코스모스가 많았는데 어느 때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고향의 그때를 생각하며

    그래서 하양, 빨강, 분홍 색이 어우러진 코스모스 길을 보면 아련한 향수가 생긴다. 금강 하류 억새밭은 이제 억새가 피어 자주꽃이 올라와 있고 잎은 아직 푸르다. 강둑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억새가 무성하고 어른 키를 넘기고도 남게 크다. 2미터 이상 자란 것 같다. 억새밭에는 영화 "JSA"와 다른 드라마 찍은 촬영지라고 포스터와 함께 알림판이 있다. 공동경비구역을 볼 때 저런 억새밭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이 곳이라고 한다. 억새밭 속을 이러 저리 거닐 수 있게 샛길을 내놓아서 남편과 함께 걷다보니 생각보다 엉뚱한 위치에 와 있다.

    억새
    신성리 억새밭 이정표
    키를 넘는 억새들

    억새밭에서 나와 2킬로미터 쯤 길가에 폐교를 이용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 집 반찬하고 거의 똑 같은 반찬을 준다. 깻잎 장아찌, 가지나물, 오이지 등등 다른 것은 보쌈으로 나온 돼지고기 정도였다. 담백한 맛이었다. 무인 판매대에서 늙은 호박 한 개 샀다. 변산반도는 언제 와도 좋은 풍경을 준다. 햇살을 튕겨내는 바닷물이 은빛으로 넘실댄다. 어부들의 살갗은 구리빛, 음성도 햇볕에 그을렸는지 탁하기만 하다. 궁항, 격포항을 들러 오다가 모항으로 들어갔다. 작고 아담한 해수욕장엔 아무도 없고 하얗고 고운 세모래가 깔려 있다. 이제 들어오기 시작한 밀물을 따라 다니며 물장난을 한다. 나는 어린애처럼 놀지만 남편은 교관처럼 나를 지키고 서 있다.

    밀려오는 바닷물

    휴양림은 더욱 아름다웠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깨끗하고 하얀 담벽에 엷은 붉은 색의 지붕이 잡지에 나올 만하게 예쁜 집이었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가까이 다가와 있고, 뒤에는 소나무 숲이다. 편히 쉴 수 있다. 조금 누워 쉬다가 곰소항엘 갔다. 젓갈과 생새우를 샀다.

    풍경
    달개비
    누군가의 기원일까
    환상일까, 꿈일까

    생새우를 찌고 젓갈에 청양고추와 마늘을 양념하여 김치와 내놓으니 저녁상이 푸짐하다. 해가 지는 어스름을 즐기는 만찬이었다. 아침을 일찍 먹고 부안 마실길을 돌기로 했다. 휴양림 양 쪽으로 마실길이 이어져 있어서 왕포항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모항 쪽으로 갔다.아래로는 바닷물이 철썩이고 산길에는 발이 새빨간 게도 바쁘게 돌아다닌다. 우리는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두 시간 동안이나 트레킹을 한 셈이다. 숙소로 돌아와 뻗었다. 11시가 되니 아직도 여름 기운이 남은 햇살이 앙탈을 부리듯 더위를 뿜어냈기 때문이다.남편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로 안 가고 국도로 가겠단다. 그래야 산천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다나. 이건 내가 늘 하던 말인데, 어느새 남편에게 전염이 되었나보다. 고창을 지나 영광 법성포까지 갔다. 우리나라 조기 대신 중국산 부세가 더 많은 법성포에서 굴비정식을 먹는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굴비 4마리가 접시에 담겨있다. 전라도답게 조금 짠 반찬들이 열 몇 가지 올라와 있다.증도로 가기 전에 무안 전통시장에 들러 건고추를 10근 샀다. 올해 고추가 되지 않았다더니 장에도 고추가 별로 없다. 비싸지만 꼭 있어야할 식재료이기에 사지 않을 수가 없다.무안은 구릉지가 많고 흙이 유난히 붉었다. 붉으스레한 밭에서 머리에 수건과 모자를 쓴 여인네들이 열을 지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진정한 삶이 그곳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안이 마음에 들었다. 무안을 지나 섬과 육지를, 섬과 섬을 연결한 다리를 몇 개나 지나자 증도가 나왔다. 정해 놓은 숙소가 없으니 아무 데나 발길 닿는 대로 간다. 가다보니 서쪽 끝 지점이 나왔다. 더 이상 차량 출입을 금하는 팻말이 비뚜름하게 서 있다.                             

    (일몰 전망대에서)

    다시 차를 돌려 지나올 때 봐 놨던 희망 민박에 전화를 하였다. 방은 많았다. 비수기이고 평일이라 그런지 정말 한가함 그대로다. 우리는 푸른 잔디와 바로 바다가 연결되어 있는 이곳에 짐을 풀었다. 넓은 마당에는 둘이 탈 수 있는 그네가 두 개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맘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밖에 나간 남편이 날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나와. 저거 보게." 더 자고 싶지만 얼른 세수만하고 나가니 물이 들어오고 었다. 그런 풍경이 멋져서 보여주고 싶었단다. 우리는 한동안 바닷물이 주름을 접었다 폈다를 하며 들어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증도 태평염전에서 한 시간 가량 머물렀다.

     

    소금밭 백일홍

    염생 식물을 소개하는 소금밭 데크를 걷기도 하고 소금을 만드는 염전 구경도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선운사에 들렀다. 꽃무릇이 막 피기 시작한 선운사 입구는 붉은 크레용을 마구 칠해놓은 듯하다.                                    

    장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장어를 포장했다. 하룻저녁 또 어디선가 자고 가자고 했는데 장어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여행은 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생하려구.

    내 생각에 집에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것들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도 좋은데, 집이 그리워지네요. 집을 확인하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한 것, 여행이 주는 또다른 선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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