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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용대 자연 휴양림
    휴양림을 찾아서 2018. 6. 4. 13:38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가고 싶어서 휴양림에 대기를 걸어놨더니 예약날 하루 전에 문자가 왔다. 토요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달리고 달려 숲에 도착하니 9시 반이다. 숲 입구 밥집에서 청국장 황태구이 비빕밥을 먹었다. 밥집 할아버지는 밥을 천천히 다 먹고 가란다. 숲까지 갔다가 오려면 족히 세시간은 걸리니 허기지지 않게 단속을 잘 해야 한단다. 다행히 반찬이 입맛에 맞는지 남편이 맛있게 잘 먹는 것 같다. 자작나무 군락지는 주차장에서 사오십 분 걸어가야한다. 1코스보다 3코스가 나을 것 같은 직감을 갖고 목적지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평지 수준의 산길은 이른 더위에 목마르고 기운이 쳐지는 느낌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무리의 사람들로 산길은 금세 가득 찼다. 물이 흐르는 계곡 다리에 다다르자 임도가 끝나고 오솔길로 시작되는 오르막이다. 평소 평지는 잘 걷지만 오르막이 있는 산길은 힘들어하는 남편이 자꾸 뒤처진다. 나는 한걸음 앞서 걷다가 그를 기다리고 다시 앞서다가 하며 그를 독려하였다. 다행히 오솔길따라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 있어 땀을 식히며 쉴 수도 있었다. 어느 만큼 올라가니 다리가 긴 사슴 같은 자작나무 숲이 펼쳐졌다. 햇살은 초록잎을 반짝이게 비춰주고 바람은 잎사귀를 흔들어 숲의 노래를 만든다. 하얀 다리에 검은 문양이 희극배우처럼 갖가지 표정으로 보인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 탄성, 숲은 사람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들고, 사람들은 어린아이마냥 들떠있다. 문제라면 숲에 비해 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숲의 고요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고산지대나 추운 지방에 많다. 일본에서 가장 추운 지방인 북해도에는 자작나무가 많았다. 고향이 평안도인 시인 백석의 작품 <백화>에도 자작나무가 많이 나온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시를 읽어 보면 자작나무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시를 읽어 보면 자작나무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자작나무는 수피에 기름 성분을 간직하고 있어 산간 지방에서는 불쏘시개로 쓰기에 제일 좋은 나무라고 한다. 비에 젖어도 잘 탄다는 자작나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지질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있단다. 추운 지방은 침엽수가 많은데 자작나무는 놀랍게도 활엽수이다. 그래서 북쪽 지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추위를 견뎌내야하고 그러기 위해 기름을 저장해 두고, 가을에는 잎을 빨리 떨어뜨린다니 나무의 슬기를 배운다. 나는 나무를 만나면 껴안아주는 습관이 있는데 자작나무를 안다보니 어떤 나무보다 수피가 부드럽다. 그런데다가 콩댐을 한 장판처럼 매끈매끈해서 촉감이 아주 좋다. 하얀 바탕에 검은 눈동자 무늬가 있는 실크를 두르는 기분이랄까.

    북해도에서도 그 촉감을 이웃들과 공유하며 얘기했던 적이 있다. 오늘도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데 혼자 온 다른 아주머니가 나를 찍어준다길래 자작나무 얘기를 해주고 만져보라고 알려줬다. 살살 아기 다루듯, 잠깐만 만져보세요. 수피는 벗기지 말고요. 살이 다치면 나무도 아프거든요.

    평화로 가득 찬 자작나무 숲

    우리가 아랫녘으로 놀러다니는 동안 좀 뜸했던 속초는 한 동안 일년에도 몇 번씩이나 왔던 우리의 휴양지였다. 용대자연휴양림은 미시령과 진부령을 가르는 삼거리에서 간성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로 입구가 나왔다. 시설은 다른 휴양림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지만 캠핑장이 바로 아래 계곡에 있어서인지 들어온 차가 많았다.

    저녁은 홍천강근처에서 사 온 민물고기 매운탕이다. 엊저녁에 남편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쏘가리 매운탕이란다. 그래서 매운탕집을 찾다보니 쏘가리는 안 잡혀서 없고 잡어탕만 있다고 해서 약간의 반찬과 밥까지 포장해 와서 편하다. 나도 나지 어지간하면 사 먹지 않으려고 등심이나 삼겹살을 준비하고, 채소까지 모두 챙겨오는 습성이 있어 쉬러 와도 주방 차지를 하곤 했었는데, 쉽다. 그래서 좋다. 남편도 먹고 싶은 거라 그런지 매운탕 맛있어 한다.

    저녁 후 산책을 나가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캠핑장은 숙소보다 더 잔치 분위기다. 들어와 쉬다가 9시가 넘어 별보러 나가다가 이웃과 동행해서 불빛이 없는 빈 터까지 가게 되었다. 이웃이 없었으면 무서워서 오지 못하는 그런 숲 가운데였다. 그곳 하늘에서 펼쳐지는 별들의 잔치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선명하고 뚜렷한 빛의 향연이었다. 별이 크게 보이니 별과의 거리가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듯 하다. 문명에서 멀어질수록 자연과 친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잘 보이는 까닭에 목이 아프기는 해도 참 좋은 시간이었다. 삼십여 분 별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다 데크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그 많던 별들은 다 자취를 감추고 크기가 훨씬 작아진 북두칠성만 오롯이 남아있다. 인공적인 불빛이 주는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며 평소에 우리가 접하는 자연은 얼마나 또 그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른 아침을 먹고 산행을 했다. 임도를 따라 가다보니 폭포도 두 개나 보았다. 물은 정말 맑고 많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동영상으로 찍었다. 산은 매봉산 1216미터, 골짜기 이름은 연화동이다. 퇴실시간에 맞춰 시간을 반으로 접어서 10시 10분까지만 오르기로 한다. 산길은 경사가 급하고 잔돌이 많다.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미끄러질까봐 걱정이다. 더군다나 나는 등산화도 아닌 런닝화를 신었으니 잔돌을 타면 그대로 구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정된 시각에 유턴하여 내려오다가 아니나 다를까 두 다리를 쭉 뻗고 산길에 주저 앉아 버리게 되었다. 남편은 내려오는 것은 쉽다며 벌써 저만치 앞서 있었다. 내가 소리치는 소리를 듣더니 뒤돌아본 남편은 하하거리며 웃고만 서 있다. 계속 웃는 그의 해맑음을 어찌 해석해야 하나. 나는 화가 나서 왜 웃냐고, 뭐가 좋아서 웃냐고 따졌다. 내가 괜찮은지부터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초등학교 신입생 가르치듯 하였지만 계속 웃는다. 지나간 옛날의 서운함까지 보태져서 더 열이 올랐다.

    "내가 무슨 일어도 당신 도움 청하지 않을 테니, 먼저 내려가라."고 소리쳤다. 늦게 서야 미안하다고 조심하라고 하더니 본인이 미끄러진 게 웃겨서 그랬다라고 하였지만 어떻게 해도 그 상황에서 웃은 게 이해불가였다. 남편은 5형제 속에서 셋째로 컸다. 중학교때부터 혼자 살며 공부를 했다. 어머니는 여장부같아서 혼자 집안을 일으켰다고 하니 여자가 가냘프든가 여자를 돌봐주고 보살펴줘야 한다든가 하는 교육을 본 바도 배운 바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배려하고 위로하는 것에 저렇게 미숙한 것일까. 평생을 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부족함이다.

    임도로 내려와서 숙소 근처까지 왔는데 숲해설사와 어제 별 구경한 이웃을 만났다. 해설사는 등산하고 온다고 하니 계곡물에 발을 좀 식히라고 안내해 준다. 나는 무릎까지 담그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넘 차갑다고 발을 적셨다 빼었지만 나는 십여 분 담그고 있었다. 어떻게 참고 있냐고 하지만 열 받은 마음을 식히는 중이라 참을만 하다는 걸 알리 없겠지. 어쨌든 찬 물에 식힌 게 발인지 마음인지 둘 다 훨씬 가벼워졌다. 남편 덕분에 무엇이든 열 받을 땐 찬물에 담그고 있어라. 그래야 빨리 식는다라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미끄러진 나를 보고 웃지만 않았어도 더 좋았을 용대휴양림을 두고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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