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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 제주 절물 자연 휴양림
    휴양림을 찾아서 2018. 10. 5. 19:17

    제주 여행의 시작은 휴양림 예약이었다. 어쩌다 보니 예약이 되었고, 바로 비행기표를 샀다. 차 렌트를 해 본 적이 없어 홈피에 가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자꾸 들여다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며칠을 고르고 골라 렌터카 업체도 정했다. 태풍 솔릭이 제주도를 뒤엎고 나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날씨가 바뀌랴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더니 드디어 청명한 초가을과 함께 그날이 왔다.

    아시아나 창 쪽에는 남편이, 통로 건너에는 제이가 있다. 그 동안 창 쪽에 내가 앉아 다닌 게 많아서 남편한테 양보한 건데 당연하다는 듯이 받으니 조금 심통이 나기도 한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 지금 지나가는 이곳이 어디의 상공 인지 궁금하다. 어떤 때는 통로에 왔다갔다하는 승무원에게 묻기도 하는데 그냥 모른다는 대답이 와서 별로일 때가 많았다. 자기가 다니는 길도 잘 모르나. 좀 그렇다. 그런데 이 뱅기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기장한테 알아 와서 알려준다. 친절해서 고마웠다. 아시아나가 한참 말도 많더니 승무원들이 상냥하니까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 같다.

    1시간도 더 걸려서 제주 공항에 내렸다. 공항이 항공편에 비해 좁다보니 상공에서 선회하며 내릴 시각을 조정하는 것 같았다. 공항은 시골 장날 국밥집처럼 사람들로 들끓는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정신이 없다. 우선 짐을 찾고 렌터카 셔틀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한참 가방 끌고 가니 거기도 업체가 정말 많아서 간신히 찾은 정신 또 실종된다. 업체에 도착해 뭐라뭐라 설명 듣고 사인하니 열쇠를 준다. 남편이 운전석에 앉아 제주항으로 입력한다생선을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그라 항구에 가서 갈치 사려고 그러나 싶다. 가고 싶은대로 가시구랴. 그런데 항구에 도착하니 썰렁하니 아무도 없다. 제이와 나는 얼른 방파제로 달려가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지는 해가 바다를 물들이고 빨간 등대 홀로 서 있다. 

    그러지 말고 흑돼지나 사러 갑시다. 제주동문시장 가는 길까지는 좋았는데 주차장에서 올스톱이다. 딸을 데리고 내려서 단걸음에 정육점가서 흑돼지 한 근 사서 남편한테 전화했다. 간신히 주차장에 들어는 왔는데 댈 때가 없어서 그냥 앉아 있는 중이란다. 우리가 주차장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리니 남편 차가 나왔다. 간신히 복잡한 소굴에서 탈출한 기분으로 숙소롤 향했다.

    벌써 땅거미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한라산 중턱 절물휴양림이다관리소에서 열쇠를 받아가지고 오솔길을 따라 오 분 정도 걸어가니 숲속의 집이 나왔다.

    우리 방은 수선화 6인실이다. 방 한 개에 거실이 넓고 부엌과 화장실이 있다. 거실 앞에는 테라스도 있고 현관 밖에도 넓은 테라스가 있다. 대충 씻고 삼겹살 구워 먹고 잤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남편은 벌써 일어나 산책 가고 없다. 나도 나가려고 하다가 열쇠가 없어 못 나가고 아침 준비를 하였다. 아침으로 빵과 잼을 준비해 갔는데 아무래도 밥이 나을 듯 하여 밥을 했다. 이 놈의 전문직 근성, 갈 데 없는 전업주부 못 버린다 앞치마. ㅋㅋㅋ

    남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농장을 찾아가는 길. 내비는 바로 여기라고 알려주는 데 아무리 봐도 밀감과수원 밖에 없다. 제이와 나는 벌써 차에서 내려 돌담길을 걷고 있다. 허리 쯤 되는 돌담길 너머 밀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돌담은 메타세콰이어가 이어진 마을 안길까지 죽 연결되어 있다. 관광지가 아니고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가식이나 꾸밈이 없어 좋다. 한참 있다가 동네 사람을 만나 p농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우리가 살짝 지나쳐온 곳에 있다. 농장에는 아무도 없고 깨끗해 보이는 집이 한 채, 정원수가 있고 마당에는 차가 한 대 세워져 있다. 한라봉 과수원은 모두 비가림 시설을 해 놓아 하우스로 이루어져 있다. 남편이 하우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열려서 진초록의 한라봉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농장지기에게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자, 우리는 농장을 나와서 사려니숲으로 갔다.

    삼나무 숲이다.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은 그 자체로도 멋있다.

    삼나무 겉껍질은 조각조각 모자이크처럼 이어져 있는데 모양도 예쁘지만 초록색 이끼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하늘을 덮을 듯 빽빽한 숲속은 사람들 다니기 좋으라고 길에 멍석을 깔아놓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 숲 가운데는 큰길이 있고 양쪽 가에 산수국 가로수가 있다. 꽃이 필 때 사진을 찍으면 아주 멋있는 배경이 될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숲을 걷다가 나와 태흥리 어촌계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전복젓 비빕밥, 생선초밥, 회덮밥을 먹고 바닷가 산책을 하였다. 커피 마시러 테라로사로 갔다. 테라로사는 양평보다 작은 규모, 대신 뜰에 귤나무가 있다. 커피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서귀포로 가는 길, 쇠소깍으로 들어갔다.

     

    쇠소깍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생긴 커다란 골짜기이다. 둥글둥글한 돌이 많아 우리는 돌탑을 쌓는다. 묵언 속의 내기가 되었는데 남편 승이다. 13층까지 완벽하게 쌓는다. 저 멀리 어느 곳에선가 파도가 몰고온 하얀 물보라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평화롭다. 시장에서 구문쟁이 회를 떴다. 구문쟁이는 다금바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횟집에서 속여먹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안전하게 횟집에 가서 설명 듣고 1.5kg7만원 주고 찌개 양념도 얻었다. 모자도 샀다. 귤도 사고 서더리탕 끓여먹을 대파와 콩나물도 샀다. 점심에 한라산을 마신 남편 대신 내가 운전자다. 1131도로를 주파해야 한다. 1차선 도로에 규정 속도는 시속 40km, 굽이굽이 꼬부랑길을 달려간다. 뒤를 보니 차가 줄줄이 따라온다. 내가 45km로 달리니까 바싹 뒤쫓아온다. 그래도 내 덕분에 사고 안 나는 줄 알라고 큰소리치며 달렸다.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많으면 괜히 빨리 달려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지만 규정 속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오르막에 2차선이 생겨 비켜주었다.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숙소로 돌아오니 어두컴컴, 한라산 중턱이라 해가 빨리 진다.

    ... 구문쟁이 맛있다.” 

    구문쟁이 맛은 약간 고소하고 살은 부드럽다. 우리가 자주 먹는 광어나 도다리하고는 질감이나 식감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깻잎과 상추에 싸서 먹으니 금상첨화이다. 저녁 후에 바람을 쐬러 테라스로 나오니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3일째 곶자왈로 갔다. 절물에서 가까운 교래휴양림이다. 전에 89일 올레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누가 올레 코스 중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서슴치 않고 곶자왈이라고 했다. 교래 숲에는 독약으로 쓰는 천남성이 많았고, 길가에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야생화가 피어있다방울꽃과 여뀌다. 우리는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숲 속 곶자왈을 벗어나 용눈이 오름으로 갔다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마음을 비우면 날아갈 것 같다. 오름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본다. 제주의 검은 밭이 모자이크처럼 보이고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저기는 성산일출봉, 저기는 한라산 남편의 손끝에서 지도가 그려진다.

    오름에서 내려와 공항 근처 일식집으로 달려갔다. 맛집이라고 해서 갔는데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제이가 들어갈지 말지 망설인다.

    그래도 들어가보자나의 적극적인 제안에 모두 들어가 나가사끼 우동과 튀김 정식과 연어구이정식을 시켰다. 먹어보니 썰렁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맛깔스럽다. 남편은 술도 안 마시고 식사만 한다. 속으로는 어제 내 운전 솜씨가 별로 였나. 왜 소주를 안 찾지 하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루 먼저 가는 딸을 공항에 내려주고 제주 문학의 집을 찾아갔다. 돌담으로 지어진 멋스런 문학관이라고 생각한 내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가 주차장도 없는 건물 3층에 북카페로 운영하는 것 같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삼양해수욕장으로 갔다. 제주에 왔으니 지방문학에 대해 친근해지고 싶었지만 좀 안타까웠다.  

    삼양해수욕장은 그야말로 철지난 해변이다. 검은 세모래가 깔린 해변을 걷고 있는데 바람이 거세다. 파도가 넘실대는 저쪽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좀 가까이 가서 구경하는 데 패러글라이딩 보드를 타는 사람도 있다. 정말 멋진 취미를 가졌네.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런데 해수욕장 백사장에 웬 민물이 솟아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솟아나온 물의 힘으로 백사장에 예술작품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해수욕장 주차장 근처에 수원지라고 팻말이 붙어있던 건물이 생각났다. 바닷물에서 실컷 놀고 민물로 씻으면 될 것 같다며 남편과 둘이 웃었다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항 경매 시장 구경도 하고 절물휴양림 곳곳을 걷자.남편과 약속하고 잠이 들었다아침 630분에 일어나니, 남편은 제주항에 가자고 한다. 난 휴양림에서 시간 보내고 싶은데... 그의 제안을 언제나 존중하다보니 벌써 제주항이다. 어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작은 배는 벌써 피항해서 물건이 별로 없단다. 한 상자를 사자니 넘 많고 가격도 수협에 택배로 주문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절충 끝에 반 상자 사서 포장비 만원 주고 싣고 왔다휴양림 입구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맨 왼쪽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숙소와 가장 가까운 거리로 이 길을 자주 이용했는데 오늘은 오른쪽 길로 가고 싶어졌다. 이른 시간이고 비까지 젖어서 인지 한 사람도 없는 삼나무 숲길이다. 숲길따라 걷다보니 곳곳에 전시된 목공예 작품들을 따라 사진도 찍는다. 지난 여름 솔릭의 영향으로 쓰러진 나무라는 설명도 있다. 한 바퀴 돌다보니 연못도 있고, 족욕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약수터에서 한모금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가방을 싸 놓았다.밥 먹고 숲을 돌 차례가 되었다. 나는 남편이 잘 알고 있다고 해서 그를 가이드 삼아 믿고 가기로 하였다. 공항에 늦지 않기 위해서 시간 안배를 해 보았다. 렌터카 반납이 1230분이니 늦지 않도록 숙소 출발은 1130분으로 하고 앞으로 40분 걸어갔다가 유턴하여 숙소롤 온 다음 커피 마시고 출발하자절물오름으로 오르는 데크로 이어진 길 아래쪽에 나 있는 오솔길로 들어갈 때 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곶자왈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절물오름의 풍경이다. 곶자왈은 여성적이라면 절물은 남성적이다. 여긴 선이 굵고 키가 큰 나무들이 많다. 공통점은 모든 숲이 공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큰 나무를 의지해서 타고 오르면서 살아가는 덩굴 식물들과 이끼류를 보면서 숲의 화애로움을 생각한다. 나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중심이 아니고, 우리 모두 서로 같이 살아가자 숲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가다가 어린 사슴을 보았다. 몸은 수풀 속에 감춘 채 동그랗고 검은 눈으로 우리 쳐다보다가 산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만치 가니, 조릿대가 많은 구역이 나왔다. 시간을 보니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남편한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 길을 쭉 가면 오름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되니 시간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난 반신반의하면서 아닌 데요. 관리소에 전화 해 볼까라고 하였지만 그의 의지가 분명하여 그냥 따라갔다. 십여 분을 더 가서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관리소에 전화를 하니 되돌아 나오는 게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것이다. 벌써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남편한테 뭐라 하기도 전에 발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따지는 건 이따하고 일단 숲을 벗어납시다. 그러나 들어올 때는 천천히 걸어서인지 괜찮았던 길이 비에 젖어서 미끄럽고 돌투성이라 위험하다. 에휴, 이게 뭐람. 남편이 착각한 것 같다. 내 말 좀 듣지. 속으로 혼자 짜증. 사슴 만난 데까지 왔다. 이미 옷은 땀으로 다 젖었고... 남편도 미안해 하는 것 같아서 말도 못하고.... 숙소에서 가방 끌고 나오니 운동화는 흙과 풀이 묻어 지저분해서 피난민 같다. 우린 마주 보고 웃었다공항 가는 길은 왜 이리도 막히는 지 차에 기름 채워야하니 주유소도 들리고 그래도 5분 전에 반납할 수 있었다. 또 셔틀타고 공항에 가니, 짐 부치고, 빨리 13번 게이트로 가란다. 숨이 턱에 닿게 사람 피해 달리고 달려 도착한 13번 게이트.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연발이다. 무려 30분이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비행기를 타고 커피를 마시는 데 맛이 괜찮다. 안 늦고 뱅기 탔으면 되었지 뭐. 좀 뛰긴 했네. 여태까지 다녀 본 휴양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의 추억이 또 한 페이지 생겼다.

                                                                                                          제주 여행 2018. 9.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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