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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트로이
    읽고 보고 그리고..... 2018. 7. 21. 13:42

    사랑과 전쟁의 대서사시

     

    영화는 트로이 사절단이 그리스 왕궁에서 메넬라오스 왕과 협상하는 장면으로 시작 된다. 두 나라는 전쟁을 하지 않기로 협약을 하고 사절단 일행인 헥토르와 파리스 두 왕자가 그리스를 떠나기 전이다. 그러나 파리스 왕자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 메넬라오스의 어린 왕비와 눈이 맞은 것이다.

     “내가 어제 당신을 만난 것은 내 실수요.”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파리스 왕자가 헬레네에게 말하자,

     “그럼, 그제도 실수였나요?”

    이들의 만남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트로이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여자가 더 용감하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내일이 두려워요. 당신이 가버릴 내일이.”

    이런 애절한 심정에 남자는 맹세하게 된다.

    “신의 저주를 받는다 해도, 인간의 저주를 받는다 해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같이 도망칩시다.”

    어린 왕비 헬레네는 16세에 정략결혼으로 늙은 왕에게 시집 온 터라, 결혼 생활에 신물이 났다. 늙은 멧돼지와 사는 미녀에게 삶은 아무 의미도 주지 못했다. 마음은 늘 공허하고, 몸은 로봇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젊고 싱싱한 파리스를 만났으니,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더 큰 게임이 시작되었으니 역사의 한 페이지에 진한 밑줄을 치게 만든 트로이 전쟁이 움트고 있었다.

    이 사실을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상에서 안 헥토르는 난감해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트로이로 둘을 데리고 간다. 왕비가 트로이로 도망간 것을 안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찾으러 간다.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숨기고 동생을 도와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그의 목적은 바람난 제수씨를 찾는 것이 아니라 트로이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작은아들이 데리고 온 며느리를 부드럽게 대해주지만 걱정이 앞선다. 분명 전쟁이 예고 된 상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큰아들 헥토르는 착한 효자이자 좋은 남편이고 갓 낳은 아들을 사랑하는 완벽한 인물이다. 그리고 트로이의 용장이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종소리가 트로이 성내에 불안하게 울려 퍼지고, 트로이 조정도 분주하게 돌아간다.

    트로이 해안에는 끝이 안 보일만큼 많은 군함이 출몰해 있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의 군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그리스에는 용맹한 장군인 아킬레스가 있다. 수백 척의 배를 이끌고 트로이 해안에 도착한 아킬레스는 첫 전승을 올린다. 신전을 점령하여 신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말을 하면서 석상의 머리를 잘라버린다. 그때 신전 안에 숨어있던 헥토르의 사촌인 여사제 브리세이아가 잡혀온다.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아에게 호의를 보이고 잘 대해 주지만 그녀는 아킬레스를 살인자라 소리치며 거부하고 반항한다. 메넬라오스는 브리세이아를 빼앗아 부하들에게 놀잇감으로 주게 된다. 이것을 안 아킬레스는 다시 브리세이아를 데리고 온다. 아킬레스는 이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왕을 위해 죽어야하는 수천 병사들의 삶은 무엇일까. 아킬레스의 부하들이 영웅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고 조언하여 참전하기는 하였지만 왕의 탐욕에 진절머리가 나서 더 이상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전쟁은 쉽게 결판나지 않고 일진일퇴하며 길어져 간다.

    브리세이아가 아킬레스가 신전의 석상을 부순 것에 대하여  항의하자, 아킬레스가 답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죽기 때문이야. 그래서 매 순간을 마지막으로 즐기지.”

    수명이 유한한 인간은 무병영원의 세계를 염원하여 죽지 않는 신을 선망하지만 죽음이 없다는 것 또한 그리 신나는 일이 아닐 거라는 의미로 보이는 말이다. 우리는 시공간의 제한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더 치열하게 삶과의 투쟁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면 대장편인 네버엔딩스토리 삶을 사는 신들의 입장에서 인간의 삶이 꽁트 같은, 아니 한 편의 광고보다도 더 짧은 시간을 살아야 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영웅의 말과 행동이 신보다 더 믿음직했는지 브리세이아는 마음을 열고 그의 뜨거움을 받아들인다.

    아킬레스가 자기 막사에서 나오지 않고 전쟁 거부를 하던 어느 날, 트로이군은 성벽에서 커다란 짚더미를 굴리는 데, 짚더미는 그리스군 진영에 닿기 전에 불이 붙어, 그리스군의 군사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고 군함이 불타게 된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아킬레스가 참전을 거부하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를 설득하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때, 아킬레스의 사촌인 어린 동생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의 옷을 입고 전쟁을 하다가 헥토르에게 죽는다. 이것을 안 아킬레스는 머리꼭대기까지 분노로 가득 차서 복수의 화신이 된다. 헥토르와 담판을 지으러 혼자 트로이 성 아래에서 헥토르를 부른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아무리 불러도 꼼짝 않던 장군이 스스로 갑옷을 입고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파트로클로스가 자기들을 구했다며 좋아한다. 때로는 이렇게 어부지리로 이득을 취하여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돌아서서 웃는 놈들이 있다.

    헥토르는 아킬레스라고 생각해서 죽인 장군이 아킬레스가 아니라 그의 사촌임을 알게 되자 미리 각오를 하고 아킬레스의 결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부인을 불러 비밀 통로를 가르쳐 주며 만약의 상황이 오면 왕자를 데리고 잘 피하라고 신신당부한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감이나 한 듯. 아버지에게는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혹시 제게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별인사를 한다. 역시 효자다운 마지막 인사이다. 그리고 파리스와 헬레네에게도 의미심장한 눈빛의 인사를 나누고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비밀통로를 상기시킨 후 아들을 바라보다가 전장으로 나간다. 성 위에서 트로이의 왕과 가족들, 대신들, 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헥토르와 아킬레스는 목숨을 건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수십 합 끝에 헥토르가 죽는다. 아킬레스는 동생의 복수를 완성했다는 듯, 보란 듯이 시신이 된 헥토르를 마차에 매달고 다닌다. 트로이성에서 이를 지켜보던 프리아모스는 피눈물을 흘린다. 그날 밤 아킬레스의 진영으로 프리아모스가 몰래 찾아온다. 아킬레스 앞에 무릎을 꿇고 원수의 손에 입을 맞춘다. 죽은 아들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왕의 자존심도, 자신의 안위도 다 버리고 적장을 찾아온 것이다. 프리아모스가 애닲은 심정을 그대로 보이면서 시신을 달라고 하자, 아킬레스가 못주겠다고 한다.

    “그는 내 사촌을 죽였습니다.”

    “장군은 지금껏 몇 명의 사촌을 죽였습니까?”

    전쟁은 수많은 아들을, 남편을, 사촌을, 인간을 죽이고도 죄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들의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아킬레스는 자기가 죽인 그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위대한 영웅이 깨달을 차례가 되었다. 누가 죽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주는 것인지. 아킬레스는 아버지로서, 왕으로서, 아들을, 신하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읽고 헥토르를 주기로 한다.

    “곧 만나세. 친구.”

    죽은 친구를 보내는 좋은 친구의 모습이다. 영웅이라서 이렇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는 최고의 전사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의 왕보단 훨씬 존경스럽소.”

    아버지에게 아들을 보내며 찬사도 함께 보낸다. 그동안 브리세이아와 함께여서 즐거웠지만 숙부를 따라서 보내기로 한다.

    “넌 자유야 . 내가 고통을 줬다면 본의는 아니었어.”

    여기서 브리세이아의 눈빛이 흔들린다. 누구를 따라가야 하나. 적장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그러나 분위기상 숙부 프리아모스를 따라가야 한다. 그들의 이별이 여기서 끝이면 재미가 없다. 이렇게 시시한 이별은 스케일이 작은 우리 평민들의 일생에서나 생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큰 이슈가 되지 못한다.

      헥토르 장례를 치른 후, 전쟁은 속개 된다. 다시 대전투가 벌어지고, 패배한 그리스군은 퇴각한다. 벌판에는 시체들이 즐비하고, 거대한 목마만이 우뚝 서 있다. 프리아모스는 목마를 불태우자는 파리스의 말을 듣지 않고, 신전에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사제들의 말을 들어 성안으로 옮긴다. 그 큰 목마는 나무 기둥을 도르래 삼아 굴러가서 성안에 안치된다. 승전보를 울린 트로이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 목마에서 아킬레스와 용장들이 줄을 타고 내려온다. 트로이의 목마이다. 때를 기다리고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쳐들어온다. 자다가 칼을 맞은 트로이의 존망은 시간문제다. 불타는 트로이를 바라보는 프리아모스도 화살에 맞아 죽는다.

    비밀의 동굴 앞에서 헬레네와 파리스가 이별하고 있다.

    “얼른 가요.”

    “안 갈 거예요.”

    “우린 또 만날 거요. 죽어서도 함께 할 거요.”

    파리스는 마지막까지 트로이를 위해서 싸우겠다고 하며 헬레네를 동굴 속으로 들여 밀었다. 연인들은 세기의 사랑을 나눴지만 결국 금지된 장난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멸망에 이르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기저기 불바다가 된 트로이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누군가를 찾는 아킬레스. 드디어 신전 앞에서 메넬라오스에게 잡혀있는 브리세이아를 찾아낸다. 그 순간 파리스가 아킬레스를 발견하게 되고 그에게 화살 세례를 퍼붓는다. 다른 곳에 맞은 화살은 다 괜찮지만 신성이 없는 발목에 맞은 화살 때문에 죽게 되는 아킬레스. 사랑 때문에 목숨을 바친 영웅의 모습. 그 대신 그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유명한 단어를 남기게 되었으니 그가 바라던 의미는 아니었을지라도 후세에 기억되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

    “피로 얼룩진 내 삶에 넌 평화를 줬어. 가라, 어서 가라. 난 괜찮아.”

    끝까지 연인을 위해 어서 떠나라고 외쳤던 아킬레스. 죽어가면서도

    “난 괜찮아.”

    사랑 앞에서 무장해제 된 영웅의 모습이 어쩌면 인간 본연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세인들이여! 기억해다오. 내가 헥토르와 한 시대를 풍미했음을. 영웅들의 세계를. 그 이름은 길이 남는 법"

    트로이 전쟁도,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아의 사랑도,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도 모두 사라졌지만  3000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이 원하던 영원히 기억되는 삶을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죽지 않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고증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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