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서 하는 집안 일을 할 때 나는 팟캐스트를 잘 틀어 놓는다. 소설을 읽어주는 작가는 작품과 관련된 이모저모와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 만나는 작가일 경우 그에 대해서 잘 모를 때가 많은데 작가의 이력을 알려주고 그의 작품 세계를 해설해주는 것은 청자에게 매우 유익한 경우가 된다. 작가 본인 소설일 때도 있고 있지만 다른 작가의 소설일 때가 더 많다.
소설의 중간부분만을 읽어주기도 하고 때에 따라선 전편을 다 읽어줄 때도 많다. 요즘 들어 눈도 알러지가 와서 책 보기가 어려울 때가 많은데 이럴 때 참 좋은 앱이다. '목사의 기쁨'은 로알드 달의 소설집 "맛"에 실려있는 작품중 하나이다. 고추장을 담으며 들었는데 이야기가 어찌나 맛갈나는 지 손과 눈은 고추장을 담았지만 귀와 가슴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었다.
보기스는 치밀하고 교묘하다. 그 당시 목사가 웨건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라는 점을 노려 항상 마을 어귀 구석진 곳에 차를 세워 놓을 줄 안다. 웨건은 물건을 발견하고 실어오기에 부족함 없는 승용차요, 짐차이기에 그에게는 꼭 필요한 운송 수단이다.
아무리 탐이 나는 물건이라도 금방 덥석 사려고 하지 않고 에둘러 밀당을 하는 천부적인 기술을 발휘한다. 시골 무지랭이들을 주물럭 거리는 솜씨가 밀가루 반죽깨나 해 본 솜씨다. 그러나 그의 재능과 욕심이 낳을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목사 행세를 하는 골동품상 보기스가 수 억은 할 것 같은 보물을 발견하고 노련하고 유익한 협상을 하여 거의 다 헐값에 살 수 있었던 나무 서랍장이 산산 조각난 땔감이 된 사정을 모른채 금덩이를 싣고 갈 웨건을 몰고 농부의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캐스트는 끝났다.
나는 달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그 뒤가 너무도 궁금하였다. 뒤로 나자빠져 뇌진탕이라도 걸린 목사의 처절한 심경을 어떻게 묘사하였을까 나는 고추장을 대충 마무리하고 책방으로 달려가 책을 나꿔채듯 사가지고 왔다. 그러나 목사의 기쁨은 거기가 끝이었다.
맛에 실린 나머지 단편 9가지도 그런 구성이었다. 뒤로 나자빠진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독자였다. 뭔가 허탕하고 속은 것 같은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상큼한 맛이었다. 달의 작품은 대체로 이야기를 쉽고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소설집 맛은 열가지 반찬을 모두 독특한 재료와 양념으로 톡쏘는 맛을 준다음 다음 먹어볼 반찬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러나 호기심이 강하게 촉발되는 잘 차려진 성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성찬의 공통분모가 있다. 맛은 다르지만 눈과 입을 통해 식도로 내려가던 반찬이 주는 쾌감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욕심이 과해서”라고 일축해 버릴 때가 많다. 나의 욕심이 아니라 너의 욕심이다.
욕심중에는 물욕이 대표적일 것이다. 아흔 아홉섬을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 백 섬을 채우려고 한다는 오래 된 속담이 있다. 달은 인간의 머리꼭대기까지 차 있는 욕심과 음험함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목사의 기쁨은 아주아주 싸게 사서 아주아주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식은 목사의 것만 아니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집도 주식도 발바닥에서 사서 상투에서 팔기를 바란 적은 없는가 재산이 불어나는 상상에 빠져 좋아한 적은 없는가 달의 소설집을 읽으며 때론 무료하고 한심한 나의 일상을 깨소금 맛으로 변하게 하는 마법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