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에 도착해서 우리 방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방안 풍경이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예쁜 세면대에 타일도 세련된 색상으로 되어 있고 부엌도 어디보다 간결하면서도 정갈하게 보였다. 더군다나 다른 휴양림 4인실에는 없는 별도의 방까지 있어 더 좋다.
외관은아름답고 내부는 더 깨끗한 휴양관
오늘 아침 둔덕산에 올랐던 게 부담이 되는지 앉고 일어설 때마다 허벅지가 아팠다. 남편보다 내가 더 심했다. 숙소에 들어올 때는 시간이 여유로우니 산책이라도 하자고 하였지만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냥 쉽시다. 그렇게 동의했다.
가은 밭에서 뜯은 냉이를 무치고, 어제 남은 등심을 구워 저녁으로 먹었다. 가을 냉이는 일품이다. 우린 고기보다는 나물을 더 좋아한다. 그것도 금방 무쳐내어 뜨거운 밥에 얹어 먹으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피곤했는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남편은 새벽에 테라스에 나가 별 구경을 했다고 한다. 잠보인 나는 그걸 매양 놓치고 만다.
아침은 라면을 끓여서 찬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씻고 나오니 남편이 상차림을 했는데 그의 물컵이 상 위에 있지 않고 방바닥에 내려져 있어서 의아했다. 난 밥을 다 먹고
“일어나기 어려우니 나 물 좀 줘요. 당신 컵에 물이 가득 차 있던데....”
남편은 주춤하다가
“이거 물 아냐. 소주야.” 그런다.
“아니, 소주를 왜?”
이번 휴가를 떠나기 전 아침에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엄포를 놓고 다짐을 받았었다. 반주를 좋아하는 그는 쉬는 날이면 아침에도 한잔하고 싶어 하였지만 습관이 되는 게 무서워 내가 절대 금하지 않으면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마시려구. 근데 못 마셨네.”
나는 술을 빼앗아 도로 술병에 넣어버렸다.
‘남편도 자기랑 싸우고 있구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따라놓고도 안 마셨으니.’
남편도 더 이상 달라고 안 하고 밥을 먹더니 바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우리는 휴양림 뒷산은 너무 가파르다고 해서 임도를 걷기로 하였다. 임도는 시원하고 넓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임도는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길이라서 높은 곳에 있다. 산 아래 마을과 작은 호수 먼 산들이 보인다.
임도는 널찍하고 걷기에 편했다. 길 가엔 들꽃도 피어 있다
임도의 끝은 말티재정상과 연결 되는데 거리는 약 2.5 km 정도다. 반쯤 갔을 때 보라색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어 검색해보니 끈끈이대나물이라고 했다.
임도 모퉁이를 돌아가니 말티재가 보였다. 세조가 가마를 타고 가다 고개가 높고 험해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어갔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는 고개다. 털실을 풀어 놓듯, 뱀이 기어가듯, 사과를 돌려 깎은 듯한 말티재를 보고 싶어서 속리산 휴양림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잘 했다. 너무나 멋진 고갯길이다.
임도에서 찍은 말티재
우리는 숙소를 나와 말티재정상에 올라가보고 법주사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말티재정상에는 전시를 할 수 있는 긴 복도와 카페가 있는 건물이 있다. 농촌 사진 전시회가 열려 옛 추억을 소환하게 하는 장면이 많이 걸려 있다. <꼬부랑>카페 이름이 재미있어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했다. 남편은 건물 지붕과 연결된 산길까지 올라가 봤는데 구불구불한 고갯길은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임도에서 못 찍었으면 말티재 사진은 없을 뻔 했네.”
고개를 내려오니 평지가 펼쳐지고, 정이품송이 지지대에 의지한 모습으로 길 옆에 모셔져 있다.
정이품송
사람과 같은 영험한 소나무이기에 벼슬까지 하사 받았지만 연차가 워낙 오래되어서인지 그 모습이 부축 받는 노인 같다. 나무도 사람도 나이가 많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보다. 조금 더 가니 법주사다. 법주사도 언덕 진 곳에 있는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거의 평지에 절이 있다. 법주사는 말사가 90여개에 이르는 대찰이라고 한다. 553년에 창건 되었다하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1624년에 중창한 후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절이 있는 곳은 모두 명당터라 그런지 절 마당에 부서지는 햇살이 곱다. 법주사를 나와 부여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