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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먼을 여행하다
    사노라면 2019. 3. 14. 14:29

     

     

    이번 여행은 리무진 타는 곳에서 터진 웃음보로 시작되었다. 가방을 화물칸에 싣던 운전기사가 동행 친구에게 하차 지점을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3공항요.”라고 답했던 것이다. 운전기사는 아직 짓지도 않은 곳에 어떻게 내려줘요?”라며 어이없어 했다. 내가 2공항이라고 정정하고 버스에 올라서 뒷자리에 앉았는데, 친구가 3공항이라고 한 게 너무나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새벽 시간이라 크게 웃지도 못하고 숨 죽여 낄낄대다가

    3공항이라고 했어?” 라고 물으니

    김포가 1, 인천 공항2, 새로 지은 곳이 3인줄 알았지.” 그런다.

    이런 새로운 발상이라니..... 이렇게 여행이 시작되었고, 살림만 할 줄 아는 아줌마 둘이서 즐거운 가출을 하게 되었다.

    2공항에 집합하기로 한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서 하나투어 부스에 가보니, 여기도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여행사에서 예약자 체크 후 입국시 주의사항이나 유인물 등을 나눠주는 것도 받고, 생면부지의 일행들도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벌써 출국장으로 들어간 팀이 있었다. 참 성격도 급하시지.....

    비행기에서 영화 한 편 보고, 기내식 먹고 나니, 벌써 샤먼 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젊은 남성이었다. 길림성에서 온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는 발음을 들어보니 말 안 해도 알겠다. 지난 번 장가계 때에도 비슷한 초로의 조선족 남자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샤먼 공항 입국장

     

    공항에서 5분 정도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데 무척 더웠다. 경량 패딩을 벗고 얇은 겉옷으로 갈아입었다. 거리에는 주홍색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멀리서 보니 능소화로 보이는 담쟁이덩굴도 보였다.

    맨 처음 도착한 관광지는 남보타사라는 절이었다. 입구에서 향을 나눠주면 불을 붙여서 향을 피우고 절을 세 번하면서 소원을 빌어보라고 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고, 연못에도 연꽃이 피어 있다. 절보다 정원이 더 넓어보였다. 절 안에는 금빛 찬란한 부처들이 인자한 웃음을 띠고 앉아 계셨다. 법당 뒤 커다란 바위에는 자가 금빛으로 새겨져 있고 여기에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보타사 바위에 새겨진 불심

    그리고 바위틈에서 자라 바위를 뿌리로 뒤덮고 있는 용나무가 몇 그루 있다. 나뭇가지에서 뿌리가 자라나 땅으로 파고드는 용나무 같은 모습은 대만의 길거리에서도 본 적이 있다. 조금 기괴스럽고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남보타사 길 건너편에는 샤먼대학교가 있다. 샤먼대학교는 중국 내에서 20위권 안에 드는 명문대면서 아름다운 캠퍼스를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유여행 시간에 꼭 샤먼대학교에 가 보리라 기대하고 왔는데 예약을 안 해서 못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실망스러웠다. 교정에 루신 기념관이 있다길래 <아큐정전>이니 <고향>이니 루신 단편도 몇 편 읽고 왔건만 정문 앞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지나갔다.

    샤먼대학교 정문

    그 다음으로 간 곳이 호리산 해안가에 있는 호리산포대박물관이다. 19세기 말 외세에 항거하기 위해 대포를 배치하고 실제로 발사되어 큰 배를 격침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들여온 커다란 대포는 배로 싣고 오는 비용이 대포 구입비보다 더 들기도 했으며, 탁송 기간 3년이나 걸려 들여 온 후로 구식 대포로 전락되었다는 해설을 들었다. 대포알을 장전하고 발사하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장정들이 동원되었을 정도로 큰 대포라고 한다. 호리산 해안에도 커다란 용나무가 있는데 영화 <아바타>에 나오기도 했단다.

     

     

    너무나 커서 장정 스무 명이 장전해야 쏠 수 있었다는 대대포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날씨가 쌀쌀해졌을 즈음에 샤먼 최고의 번화가라는 중산가에 내렸다. 새로 지은 주상복합 건물들이 죽 이어져 있다. 1층은 상가, 2,3층은 주택인 것 같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시장도 있고, 긴 대나무 양쪽에 과일 광주리를 매달고 지나가는 노인들도 보였다. 한참을 구경하고 다니니 배가 고파서 딤섬 한 판을 사 먹었다. 국물이 자작하게 나오는 작은 만두였는데 참 맛있었다. 중산가의 상점들은 우리나라 인사동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인사동은 차와 사람이 뒤엉켜 있어 더 복잡한데 중산가는 차량은 통행 할 수 없어 더 안전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명동과 비슷하다는 중산거리
    과일 파는 저울대 위에 디스플레이인가 재밌는 풍경
    허름한 옷차림의 행상들이 열대 과일을 메고 나와 거리에서 팔고 있다. 대나무 지렛대를 사용해 어깨에 메고 나니는 과일바구니를 내려놓고 대나무 파인 곳에 과일 디스플레이가 재미있다.

    저녁을 먹으러 가이드 추천의 훠궈식당으로 갔는데 입구에서 대만에서 맡았던 질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 역하고 토할 것 같은, 한 마디로 비위가 상하는 냄새로 저녁은 다 먹었다. 메뉴는 양고기와 소고기 샤브샤브였는데 나는 오이와 배추만 먹었다.

    숙소는 공항에서 가까운 샹루 호텔이었다. 규모는 굉장히 컸고, ㅁ자 형태로 지어져 있어 우리 방에서 호텔 안쪽 중정이 보였다. 방은 3인실로 방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침대도 킹 사이즈 두 개나 있어 우리는 남편이랑 왔어야 했다고 웃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깨끗하게 준비된 방에 들어와 씻고 누울 때의 이 기분이 좋다. 잠을 조금 설치기는 했어도 편하게 잘 잤다.

    그런데 친구는 유리창 너머에 바깥 풍경이 보이면 좋겠다고 했다.

    어제 저녁을 못 먹고 자서인지 아침 호텔식은 반찬이 없어도 두부배추조림의 담백한 맛에 잘 먹었다. 오늘 아침을 먹은 식당이 가이드가 호텔 내 식당 중 추천한 식당이라 다른 일행들이 먹을 게 없다고 불평했는지 가이드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럼에도 내가 잘 먹었다고 하자 어제 저녁을 못 드셔서 그런가 봐요 하며 미안해했다.

    오늘은 고랑서() 가는 날이다. 고랑서는 페리를 타고 가는 데 2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섬이다. 고랑서는 근대기에 조계지가 되었던 곳이다. 조계지는 개항장이 열리는 곳을 관리할 수 있게 외국에게 행정권과 치외법권을 주었던 곳이다. 중국 같은 자국의 입장에서는 주권 침해를 당했던 굴욕적 지역이다. 인천에도 조계지가 있다. 그래서 고랑서의 빨간 지붕들도 그때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섬 전체가 유럽풍의 건물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에서 내리니 야자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해변길이 나온다. 사람들은 관광객과 상인들, 그리고 물자 조달을 하는 잡부들이 많다.

    고랑서 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에도 붉은 장식이 걸려있다.
    고랑서로 물자를 조달하고 있는 배
    이 손수레로 먹을 거 등을 실어나른다.

    골목에 들어서자 작은 맛집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 대만 감자를 사 먹었는데 정말 최고였다. 겉은 바삭하게 튀겨졌고 속은 으깬 감자와 치즈, 버터와 채소들로 부드러워 살살 녹았다. 중국에서 이런 맛을 맛보다니... 그리고 대만에선 못 먹었는데.... 

    대만감자: 또 먹고 싶다

    숙장원 입구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정원을 보았다. 창살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정말 예쁜 꽃밭이었다. 

    정원

    숙장원은 대만 부자가 일본의 침략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 왔다가 만든 별장이라고 한다. 부자의 후손들이 나라에 헌납하여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바다와 해안의 큰 바위들, 높은 언덕에 지은 아름답고 큰 집, 오래된 갖가지 형태의 피아노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까지 정말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의 넓은 집에는 연못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숙장원에도 물론 연못 또한 아름다웠다.

    고랑서 해안에 야자수 가로수
    피아노 박물관: 갖가지 기묘한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도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악보가 인쇄되어 나오는 피아노, 현이 건반 위쪽에 보이게 만들어진 피아노 등

     

    숙장원을 나와 일광암에 올랐다. 커다란 바위 전체로 이루어진 바위산 꼭대기이다.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타원형 섬은 유럽 같고, 바다 건너 샤먼 시내는 첨단 빌딩 숲이 대비되어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친구를 잃어버렸다. 전망대에서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 내려가기로 하였다.

    일광암 전망대에서 본 고랑서 마을 전경
    이 아름다운 별장이 유럽인들의 주거지였던 적이 있다.

    내려가는 길은 세 개라서 헷갈리지 말고 내려오라는 가이드의 당부를 잊어버리고 나는 다른 길로 내려갔다. 결국엔 모이라는 장소로 오긴 했지만 마음고생 좀 했다.

    다시 샤먼 시내로 나와 먹자골목인 증조안으로 갔다. 좁은 골목에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일행을 놓쳐서 친구와 둘이 다녔다. 가게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길을 잃을까봐 잘 기억한다고 했지만 결국 이 골목 저 골목 헤매고 다녔다. 이 곳 젊은이들도 모두 QR코드를 쓰는 것을 보고 놀랐더니 중국은 거지도 QR로 받는다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너 또 다른 샤먼에 도착해서 연극을 볼 차례다. 연극에 앞서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일행들이 컵라면과 고추장 등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먹을 게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었나보다. 잡은 물고기한테 미끼 안 주는 것은 세계 불문율인가 보다. 공연장 근처에는 이 식당 말고는 분식집 하나도 없었으니, 반찬 부실하다고 투정 할 수가 없다. 조금 허기만 때우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이미 켜져있는 스크린에는 주석 시진핑도 와서 관람하고 찬사를 보냈다는 영상도 자주 나오기도 하였다.

    용이 물을 뿜어내는 연극 장면

     

    360도 회전하는 객석도, 원형으로 꾸민 무대장치도, 스케일이 정말 크고 웅장해서 연극은 재미있게 보았다. 엄청 높은 곳에서 다이빙하는 장면, 중국 예의 알록달록한 영상과 인형들, 젊고 아름다운 무희들의 유연한 몸놀림 등 볼거리가 있었고, 내용은 중국을 지켜낸 역사를 보여줬고, 엔딩에는 모국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가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방을 바꿨다. 이번에는 밖의 풍경은 잘 보이는 데, 비행기 소음이 크게 들렸다. 난 피곤했는지 금방 잠들어서 잘 몰랐는데 친구는 새벽 두 시까지 소음에 시달렸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은 가이드가 추천 안한 큰 식당으로 갔다. 어제 식당보다 훨씬 가짓수가 많고 맛도 괜찮았다. 저 가이드 의심 된다고 우리는 웃을 수밖에.....

    토루는 샤먼 시내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산골 마을이란다. 가는 도중 복강성 시골 풍경이 보였는데 바나나과수원이 정말 많았다. 바나나열매뭉치를 비닐로 감싸 놓은 게 보였는데 친구 말에 의하면 바나나가 빨리 익게 하기 위해서란다.

    관광버스가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는 종착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버스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니 원탁테이블이 있는 식당이었다. 반찬을 담은 큰 접시가 세 개 원탁에 놓여지자, 일행들은 벌써 컵라면에 물을 붓느라 야단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컵라면을 한 개씩 준다. 아니 괜찮아요. 혹시 필요하면 부탁할게요. 그런데 여기도 어제 저녁처럼 반찬이 부실한가요? 일행 중 한 아저씨가 그렇다고 라면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날씨는 춥고 식당은 허술하고 식사는 형편없을 것 같은 우울함이 원탁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주방에서 연이어 반찬 접시들이 날라져왔다. 그런데 각종 신선한 야채들로 만든 먹음직한 현지 요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이김치가 내 입맛에 맞았다. 오이김치는 씹으면 아삭하는 소리가 날 만큼 식감이 좋았다. 쌀밥도 집에서 먹는 맛과 비슷해서 컵라면이 울고 갈 만큼 잘 먹은 식사였다.

    토루는 산을 넘어가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이곳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한단다. 산은 구불구불하고 산 아래부터 다랑이밭이 층계를 이루어 산 중턱까지 이어져 있다. 주로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비안개는 더욱 심해져서 산꼭대기쯤에서는 차창 밖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잠시 차에서 내렸는데 전라갱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망대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안개에 가려 정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타고 토루 마을로 향했다.

    전라갱은 4개의 원형 토루와 1개의 방형 토루가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4개의 반찬과 1개의 탕처럼 보인다고 하여 사채일탕(四菜一湯)이라고 불린단다. 전라갱은 우렁이 마을이라는 뜻으로 황 씨 일가가 우렁이를 먹이로 오리를 키웠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는 유래가 있다고 한다.

    토루는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공동주택으로 3층이나 5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바깥으로 통하는 대문은 한 개이고 주택의 형태는 원형이나 사각형 구조로 되어있다. 외벽은 전체를 흙으로 발라 화재 방지를 하였고, 주택 안쪽은 목재로 지어져 있었다. 1층에서 맨 위층까지 한 가구가 사용하는 데, 1층은 부엌, 2층은 창고, 3층은 침실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장실은 어떻게 사용했을까. 토루 밖에 공동 재래식 화장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대강 짐작 할 수 있었다. 토루 안에 있던 공동 우물은 식수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복강성 토루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유창루는 700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14세기경에 이런 산골에서 이런 건축술이 가능했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수를 하긴 했지만 원래의 형태가 많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에 또한번 놀라게 되었다. 

    높은 데서 안개가 살짝 걷힌 찰나에 건진 전라갱 한 컷
    원래는 창문이 없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만들었다고 한다. 외적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창문이 없는 게 훨씬 유리하다.

     

    시래기를 말려 놓았길래 물어보니 무청이 아니라 갓청이었다. 갓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토루 안에는 지금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보인다.

     

    주민이자 상인인 어떤 아저씨가 자기 집 앞에서 찍어준 사진. 고마워서 기념 자석을 하나씩 샀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기 전에 재래시장에서 가이드가 중국 유자를 사 주었다.

    중국산 유자

     

    꼭 작은 박처럼 생겨서 우리나라 유자 상상을 하면 오산이다. 장사하는 아줌마가 껍질을 까서 나눠줬는데 큰 한라봉처럼 조각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것을 덜컹이는 산골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먹는데 먹기가 불편하고 맛도 그다지 먹을 만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배를 타도 멀미를 하지 않는데 웬일인지 토하고 싶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였다. 가슴을 두드리며 차에서 내리니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자기도 울렁거려 혼났다고 하였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는 내내 내 손을 주물러 주었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래도 낫지 않아서 결국 저녁은 먹지 못했다. 삼겹살 먹으러 가자는 가이드에게 우리는 호텔에서 내리겠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무엇이 아쉬운지 자꾸 권유했다. 가이드가 차내에서 파는 목이버섯만 사 주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조금 쉬다가 호텔 앞에 있는 쇼핑센터에 구경 갔다. 마트도 있고, 옷가게도 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몸이 덜덜 떨리는 게 큰일이다 싶었다. 친구가 자는 것 같아 살금살금 일어나 욕실로 가서 드라이로 몸을 덥히고 들어왔더니 잠이 왔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반신욕을 해서 땀을 냈다. 그랬더니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레스토랑에 가서도 어제 저녁 못 먹은 것까지 잘 먹었다. 메뉴 중에 콜드 디쉬가 있었는데 오도독하고 씹히는 맛이며 약간 고추냉이 맛까지 나서 맛있게 먹었다.

     

    샹루호텔 조식 메뉴 중에 하나인 냉채, 반찬 중에 제일 맛있었다. 우리나라 한정식집에도 있어서 알게 되었는데 이름이 '산미나리', '궁채나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밥을 먹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인근 아파트단지를 구경하며 샤먼 사람들 사는 모습을 스케치 할 수 있었다. 단지내 상가에서는 부동산과 택배회사 맛사지숍과 미용실, 반찬 준비하는 식당 아줌마들과 아이들 데리고 나온 주민들도 만났다.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이런 참모습을 보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싸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중국의 서민아파트에는 모든 창문에 창살이 촘촘하다. 도둑이 많아 설치해야 한다고 하는데 고급아파트는 경비시설이 잘 되어 있어 그렇지 않았다. 테라스에 화분이 많고, 꽃이 창살 밖으로 나와 피어있어 보기 좋았다.

     

    부동산 중개소. 매물 전단이 붙어 있다
    오래된 아파트인지 나무도 울창했다. 열매가 탐스럽다

     

    이번 여행은 시간을 단축하자면 2박을 해도 괜찮을 일정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쉬고 싶어서 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일정으로 피곤하지 않아서 좋았다. 무언가 생각하고 싶을 때 잠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와 조금은 색다르지만 우리와 과히 다르지 않은 이웃나라 마실이었다그리고 이번 여행의 포인트는 친구와 함께했다는 점이다. 가족과 갈 때는 서로 챙겨줘야 하는 부담이 없지 않지만 친구와 같이 가니 가족과는 다른 편안함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복잡하거나 힘든 길에서는 손을 꼭 잡고 걸었다는 점에서 서로를 위하는 좋은 동반자가 되기도 하였다. 친구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우리 열심히 살고 또 같이 갑시다.

     

    (2019.2.22.~2.25 대한항공  날씨 11~22/ 옷차림 얇은 패딩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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