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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이 어디 갔나요?
    수리재 이야기 2009. 3. 24. 22:55

    지난 주말, 수리재 마당에서 주목을 옮겨심느라 분주한데 아래 이장네 밭에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얘. 우리 점심 반찬도 없는데 너도 가서 뭣좀 캐와라." 하였다.

    호미와 비닐봉지를 들고 내려가보니 청평읍내에서 왔다는 아줌마 셋이서 수다를 떨며 냉이를 캐고 있다.

    나를 보더니 삼 년 전에 왔을 땐 그 많던 냉이가 다 어디로 갔냐며 물었다.

    글쎄요, 다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나는 냉이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느님께 여쭤보았다.

    하느님은

    너도 캐어가지 않았니? 대보름전에도 또 지지난주에도 조금이지만 캐는 걸 보았는데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잖아요. 전에는 훨씬 더 많았는데

    너 말고도 가끔 두세 명씩은 왔었다. 그들도 바구니를 채우지는 못했더라.

    아주 없어져 버릴 것 같아요. 씨가 마를 거예요.

    그렇지 냉이는 뿌리째 뽑아가는 거라 그럴 거다. 근데 네가 냉이 주인인 것처럼 들리는 구나.

    꼭 제 것처럼 아쉬워요, 웬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오는지

    그러자 하느님은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셨다.

    그중에 네가 젤 많이 왔었느니라.

     

    저 높은 곳에 계시면서 개미보다도 더 작은 저를 다 보고 계신 하느님,

    옳은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깨닫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하느님,

    저의 투정부리는 어리석음을 , 전지전능을 믿는 마음이 부족함까지

    다 알고 계시는 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이제 냉이 어디갔냐는 질문보다

    그동안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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