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화요일 맑음
오후가 되자 하둥이네가 먼저 왔다. 하둥이는 출현만으로도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다. 처음에는 낯가림을 하느라 뒤로 빼고 가까이 오지 않는 하둥이의 긴장을 풀어주느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갖은 애교를 다 떨어야 한다. 아기들 속은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밀당 같은 것을 하는 중인 거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여기가 할머니 집이라는 것은 아는 것 같은 행동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실을 베란다까지 트지 않아서 창 밖에는 화분이 많다. 지난번 왔을 때가 4개월 전이었는데, 베란다에 꽃이 있어서 하둥이가 꽃, 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 창 밖을 보고 꽃이 없는데도 화분을 가리키며 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 아닌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나에게는 금방 경계해제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뒷걸음으로 걸어와서 내 무릎에 털썩 앉는 행동이 있으면 아기들은 이제 슬슬 적응이 되는 분위기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요놈들을 안아보나 싶어서 자꾸 손을 벌리지만 살짝 웃으면서 할아버지를 휙 지나치며 나에게로 달려온다. 할머니 품이 좋아 뛰어드는 게 한 마리 강아지다. 어떤 땐 두 마리가 동시에 안겨서 할머니가 뒤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사위는 깜짝 놀란 모양이다. 저렇게 할머니를 좋아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런다.
아기들을 데리고 카페에 가서 커피랑 미숫가루 음료도 사고 마트에서 과자도 사왔다. 아기들을 두 명이나 데리고 차도를 건너가는 일이 너무나 조심스럽기에 힘들고 어렵다. 딸은 어떻게 아기들을 돌보지? 너무나 힘들겠다. 아기들이 자라면서 행동반경이 커지고, 지금은 어디로든지 달려가는 정도이니 두 아기를 어떻게 안전하게 보살필까.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한 번 타고 집으로 데리고 오니 딸과 나는 땀범벅이 되었다. 안고 걸리고 해서 돌아온 길이다. 역시 먹을 게 친해지는 비결인가 보다. 할아버지랑도 음료를 마시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딸과 사위, 나와 남편이 사각형으로 앉아있으면 아기들이 달려와서 누구에게든 잡히는 놀이를 했는데, 아기들이 엄청 즐거워 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둘째 딸 부부가 왔다. 아기들은 다시 얼음이 되었다. 아주 얌전하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이모랑 또 잘 놀았다. 하둥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느라 신혼부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관객으로 있었다. 저녁 식사에는 둘째가 사온 소갈비가 한몫했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
8시쯤 되니 하둥이 졸려한다. 빨리 가라고 등떠밀어 보내고 둘째네도 여기 저기 다니느라 힘들어 보여서 하둥네 갈 때 함께 보냈더니, 집안이 절간 같다. 다만 잔해가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래도 고맙다. 내 딸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보낸 시간이 흐뭇하다.
랑이 "잡았다" "이모" 같은 소리까지 하였다. 은이는 책 읽는 자세가 아주 독서광이다. 샤인머스켓 한 송이를 거뜬히 해치우고 밥은 안 먹었다. 둘 다 잘 걸었는데 특히 은이가 훨씬 지구력이 있었다.